463화 또 도와주세요 (3)
아닌 게 아니라, 아이는 정말이지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아이의 보호자, 그러니까 부모는 둘 다 그런 아이를 끌어안고만 있었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서적으로 친밀한 사람인 경우, 특히 그 사람이 주 양육자이면서 부모인 경우엔 이런 스킨십만으로도 어느 정도 통증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는 점이었다.
“약 줄게요. 지금 뭐 주고 있죠?”
“일단은 엔세이드 주고 안 들으면 올라갑니다.”
“그래, 바로 주죠.”
“충분히…… 보신 거죠? 녹화는 떴습니다.”
“음. 네 더 봐 봐야…… 애가 고통스러워만 하지.”
“네.”
수혁의 말에 주치의가 고개를 끄덕였고, 대기 중이던 간호사가 즉시 약을 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혁에게 집중했다.
이 방 안에 있는 누구라도 아이를 아프게 하고픈 사람은 없었다.
상대가 누가 되었건 고통받는 걸 보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그 대상이 아이가 된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미가 있어야 되는데…….’
주치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와는 벌써 며칠 같이 지낸 사이가 된 참 아닌가.
위 연차, 교수들은 늘 너무 아이들에게 정 주고 지내다가는 오히려 소아과 의사 오래 못 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애가 좋아서 소아과를 선택한 그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아까 봤던 아이 얼굴 다시 한번 보여 줘.’
[네, 근데 아까 아이 볼 때 수혁의 심장박동이 증가했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야지. 명색이 내과 의산데.’
[네, 알겠습니다.]
바루다는 방금 전 수혁이 보여 주었던, 실로 오랜만에 보는 인간적인 모습에 당황했더랬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픈 건 좀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과에서 마음이 닳고 또 닳은 수혁이 그런 모습을 보일 턱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수혁의 얼굴엔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해서 바루다는 이내 아이의 얼굴을 띄워 주었다.
‘NRS 8점 이상이라고 했지?’
[네. 아이들은 성인보다도 편차가 크겠으나, 최소 8점입니다.]
‘그 위일 수도 있겠네?’
[네.]
‘흠.’
NRS 점수란 통증에 있어 환자 본인이 평가하기에 지금 통증이 몇 점에 해당하는지 보는 지표였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만큼 객관적인 지표로 쓸 수는 없으나, 8점이나 1, 2점과 같은 극단적인 점수는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었다.
수혁은 그 점을 기억하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 그러니까 아이를 제외한 보호자, 소아과 주치의, 담당 간호사 그리고 내과 레지던트들이 자신만 보고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급한 건 아이에 대한 진단이었다.
‘일단 긴장성 두통 따위는 아냐.’
[네. 그렇습니다.]
‘편두통……? 도 가능성은 떨어지지.’
[네. 이미 김수민 교수가 편두통 약을 쓴 적이 있습니다. 별로 듣지 않았습니다.]
또 앨리스 증후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가 호소한 증상은 오로지 통증 하나뿐이었다.
전조 증상은 전혀 없었다.
드물게 그런 형태의 편두통도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런 경우라 해서 약이 안 듣지는 않았다.
그러니 편두통도 배제해야 했다.
‘군집성 두통도…… 가능성은 없지?’
[네. 크게 떨어집니다. 동반되는 증상이 보이지 않아요.]
두통에서 기질적 원인을 보이지 않는 두통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두통만큼 흔한 증상도 없는 만큼, 아주 다양한 종류의 질환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짚어 볼수록 고개만 저어질 뿐이었다.
무슨 도장깨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콧물이나 충혈 등……. 전혀 없었어.’
[네. 다시 분석해 봐도 그런 기미는 없습니다.]
‘그럼…… 음. 삼차 신경통이 두통으로 발현되는 건 아닌가?’
[지금까지 중에서는 가장 가능성이 있는 얘기지만, MRI나 CT에서 삼차 신경이 지나는 곳에 구조적 문제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가능성은 있잖아.’
[네, 그렇죠. 하지만…….]
바루다는 고개를 저으며 아까 확인했던 영상, 그러니까 아이가 두통을 겪을 때 지었던 표정을 재생했다.
단지 재생만 했을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가 왜 이걸 다시 재생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3차 신경통 특유의…… 양상은 아니구나.’
[네.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있을 수 있으나 이 환자 같은 경우엔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합니다. 지금도 약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아이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이 들어간 후다 보니 아까보다는 나아 보였으나, 잘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통 소염제나 타이레놀에 반응이 없는 두통이라.
그러면서 기질적인 원인은 관찰되지 않고, 오로지 두통만을 보이는 환자.
수혁은 실로 오랜만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통 환자를 보다가 두통이 오다니.
기이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혁.]
‘응?’
그때 바루다가 수혁을 불렀다.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래 봐야 태반은 얄미운 얼굴이었으나, 하여간 뭔가 중요한 얘기를 꺼낼 작정인 듯했다.
[두통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봐? 모를까 봐?’
[아뇨, 정리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정리라…….’
수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아파하고 있는 와중에 머릿속이나 정리하고 있다는 게 한가롭게 느껴졌지만, 아예 감도 못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현재 태화에서 가장 우수한 의사는 바로 수혁 본인이지 않은가.
그에게 어렵다고 느껴지는 케이스는 남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처럼 여겨질 터였다.
실제로 김수민 교수는 며칠 혼자 끙끙대다가 결국, 수혁에게 의뢰를 한 참이었다.
‘두통은 다양한 원인을 통해 유발되지. 외상도 있고, 수면 부족이나 산소 부족에 의해서도 가능하고……. 또 스트레스에 의해서도 유발되지. 혹은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부족에 의해서도 가능하고.’
[이 아이가 이러한 원인을…… 그러니까 유발 요인을 진술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 없어.’
주치의뿐만 아니라 김수민 교수도 직접, 그것도 여러차례 아이에게 증상에 대해 문진한 기록이 있었다.
두통 외의 모든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두통은 그 어떤한 전조 증상도 없이, 그리고 유발 요인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일반적인 원인이 아니란 얘기죠. 그렇다면 보다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원론적인 접근? 뭔 소리야?’
[원론적이라는 단어가 뭐냐고 묻는 건가요?]
‘아니, 인마.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흐음.]
‘의, 의심하지 말고. 하려던 말이나 계속해 봐.’
바루다는 잠시 더 수혁을 미심쩍다는 얼굴로 바라보았으나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바루다가 오랜만에 고양된 탓이었다.
사실 최근 들어 수혁은 바루다를 거의 데이터 저장소 격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가.
기가 막힌 추론은 바루다가 아닌 수혁에게서 튀어나오는 게 더 많았을 지경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나름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 모든 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신경과에서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두통이 있을 경우 뇌파가 바뀝니다. 알고 계시죠?]
‘그렇지. 당연히 그렇겠지.’
[이 뇌파의 변화는 두통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원인이 되기도 하죠? 시간의 선후 관계를 살펴본 연구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아, 그렇지.’
수혁은 얼마 전 신경과 환자들도 보기 위해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다른 과라고는 해도 이미 교과서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래였다.
최근에 나온 논문들을 훑지 않고서는 별로 지식 쌓기에 도움이 안 될 지경이었다.
방금 바루다가 언급한 내용 또한 논문에서 나온 것이었다.
바루다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수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명백한 도발이었고, 수혁은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이 자식이 이거.’
[모르죠? 모르겠으면 그냥 참아요. 원래 내과 의사의 세계에서는 아는 놈이 갑입니다.]
‘그건 그렇지. 알았어. 알았어. 대신 별거 아니면 넌 뒤졌다.’
[징벌 방법도 모르면서……. 아무튼, 어떤 원인에 의해 유발되건 간에 뇌파의 변화가 두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아이 같은 경우 다른 원인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뇌파의 변화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어쩌면 뇌파의 변화만이 원인일수도 있죠.]
‘어…….’
이렇게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긴가민가했다.
왜냐하면 뇌파 변화라는 것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랬다.
바이털의 변화나 신경 전달 물질의 변화, 또는 하다못해 스트레스라도 있어야만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또다시 말을 이었다.
여전히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이상한데, 반박할 말이 없죠? 그럼 해 봐야 합니다. 어차피 뇌파 검사는 그리 해가 되는 검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알았어. 너 근데 확신이 좀 있는 거 같은 얼굴이다? 정말 근거가 방금 말한 것만 있는 거 맞아?’
[그건 뇌파 검사해 보고 말해 주겠습니다.]
‘확실한 근거는 아니구나. 아니면 쪽팔릴까 봐 이러네, 이거.’
[저는 인공 지능입니다. 쪽팔리는 게 뭔지 알지만, 그걸 걱정하진 않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요새 너 하는 거 보면 그냥…….’
[하여간 이제 그만 주절거리고 검사나 해 봅시다.]
‘허.’
수혁은 바루다가 오늘따라 아주 시건방지단 생각이 들었으나, 맞는 말이긴 해서 일단은 따르기로 했다.
“뇌파 검사요? 그건 갑자기 왜……?”
“뇌파 변화를 좀 보려고. 지금 검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잖아. 이제 실마리가 될 수 있어.”
“음……. 알겠습니다. 아, 보호자분. 아픈 검사는 아니에요. 그냥 머리에 달기만 하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주치의는 생각보다 그럴싸한 얘기가 안 나오자 조금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아예 모르겠는데라는 말보다는 그래도 뭐라도 해 보자는 말이 낫지 않은가.
게다가 뇌파 검사는 MRI나 CT처럼 재워야 하는 검사도 아니고, 어디 아프게 하는 검사도 아니었다.
해서 주치의는 주저하지 않고 검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물론 그냥 하지는 않고, 김수민 교수에게 노티는 했다.
노티를 받은 김수민 교수는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하지 말라고 할 명분도 찾지 못하겠어서 하라는 말을 했다.
대신 자리는 지키기 위해 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밥도 먹지 않고 달려왔다.
“자, 이걸 이제 지켜볼 거예요. 두통이 찾아올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 보도록 할게요.”
문제는 김수민 교수만 온 게 아니란 점이었다.
오전에 외래를 같이 봤는지 이기자 교수도 따라왔다.
뿐만 아니라 이기자 교수와 같이 있었을 것이 뻔한 이현종도 왔다.
그는 아주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동시에 기대감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수혁아, 또 뭘 보여 주려고 이렇게 사람들을 다 불렀어?”
“그…….”
‘부른 게 아니라 그냥 댁들이 알아서 온 건데요’란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대신 수혁은 판이 커진 것이 불안해 바루다를 불렀다.
‘인마, 이거 의미 있는 거지?’
[의미 있습니다. 87% 확률로 확신합니다.]
‘아까 네가 한 말만으로는 그렇게 확률이 높진 않을 텐데?’
[다른 근거도 있습니다. 일단 지켜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