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천재를 쥐어짜면 (4)
이기원 의원은 방침이 결정된 후, 조용히 병동 스테이션에 찾아가 주의 사항을 건넸다.
안 그래도 성질 더러운 자신의 어머니가 밥까지 안 먹으면 더 난리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걱정과는 달리 조현희는 물도 허락 안 되는 밤을 차분히 견뎠다.
말로는 절대 페이스메이커를 안 달 거라고 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어쩌면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던 찰나에, 정말로 그걸 안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혈압 재겠습니다.”
“네.”
심지어 5시에 와서 깨우는 데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환하게 웃어 주기까지 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간호사는, 인계 때문에 조현희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가 듣던 것보다 훨씬 젠틀하시다는 말까지 했다.
환장할 광경을 지켜보는 비서의 마음은 복잡했다.
‘심장 고치러 오셔서……. 머리가 고장 났나?’
평소 구박을 워낙 많이 받았으니 그러길 바라서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으나, 딱히 그렇진 않았다.
물론 모욕감을 느낄 때도 있는 건 사실이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뺨 맞을 때는 더 그랬다.
노인에게 맞는 거라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냐마는 기분이 그렇진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 엄마…… 병원비 싹 냈는데.’
하지만 이 노인네는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나쁠 때는 함부로 대했지만, 또 평소에는 자기 사람이란 생각만 들면 어찌나 살뜰히 챙기는지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을 지경이었다.
비서만 해도 월급 외에 받는 돈이나 이런저런 혜택이 더 많았다.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닌데 그랬다.
특히 저번에 어머니 쓰러졌을 땐, 자기 일처럼 칠성에 전화도 해 주고 직접 와서 특실까지 잡아 주는 등 최선을 다해 주었다.
‘정작 사모님이 가면 나는 어떻게 되지?’
하여간 복잡한 마음으로 보고 있으려니, 눈을 반쯤 감고 있던 조현희가 말을 걸어왔다.
“아, 김 비서.”
“네, 사모님.”
“이현종……. 좀 알아봤어?”
“아, 아. 네. 알아봤습니다. 어떤 거부터…….”
비서는 이현종을 캐기는 캤는데 뭐가 없어서 참 민망했다.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어디 힘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병원 내에서만 있었던 사람인데 뭐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심지어 결혼한 적도 없고, 자녀도 갑자기 다 커서 나타난 수혁 말고는 없어서 별로 뭐 걸릴 게 없었다.
“미혼이야?”
“네?”
한데 첫 질문이 좀 이상했다.
대뜸 미혼이냐니.
뭔가 약점 잡으려고 하신 거 아니었나.
뭐 이런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다시금 질문이 들어왔다.
“미혼이냐고.”
“아……. 네. 결혼한 적은 없습니다. 이수혁 교수가 아들이라는데, 등본상에는 안 들어가 있고요.”
“혼외자야?”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약간 문제가 있죠?”
비서는 여전히 조현희의 평소 성향상 당연히 이현종이 좀 뻗대는 걸 마음에 안 들어 한 나머지 해코지를 할 거라 여겼다.
‘치료해 주는 사람한테 이러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뭐……. 무리는 아니지?’
양심에 걸리긴 했으나 조현희는 원래 그렇지 않던가.
한데 조현희가 말이 없었다.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만 숨죽여 웃고 있었다.
‘왜 저래……. 진짜 무섭게.’
더 알아본 것도 있었는데 계속 웃고만 있으니 뭘 더 말해 줄 수가 없었다.
물어보면 말해야지 하고 다짐했으나 그럴 기회는 없었다.
이송 요원이 올 때까지 내내 웃어서였다.
“조현희 님. 맞으시죠?”
“네.”
“등록 번호 20210310 맞으시고요?”
“아……. 네.”
“네, 그럼 중재시술실로 모시겠습니다.”
이송 요원은 간호사와 함께 들어와 몇 가지 질문으로 누워 있는 사람이 조현희가 맞는지 확인한 후 중재시술실로 갔다.
비서 또한 따랐는데, 이제부터는 더더욱 이현종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할 수 없었다.
애초에 보호자가 되어 가지고 시술하는 사람 뒷조사를 했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 아닌가.
드르륵.
입 다물고 걷다 보니 곧 시술실이었다.
풍선 삽입이면 그냥 센터 내에 있는 시술실에서 해도 되겠지만, 이건 좀 중요한 시술이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심장내과 의사들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태화가 워낙 이현종 때문에 심장내과 쪽으로 유명하다 보니 환자가 꽤 많았다.
그중에는 응급 환자도 있어 보였다.
“빨리, 빨리!”
심근경색으로 실려 와 진단이 되면 약을 씀과 동시에 이렇게 중재시술실로 와 막힌 혈관에 풍선을 주입해 뚫어 주기 마련이었다.
이 시술이 나오기 전에는 무조건 가슴을 열어야 했다.
시간이 생명인 심혈관 질환에서 이 시술의 탄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여전히 흉부외과가 나서야만 하는 심각한 상황도 있고, 또 중재 시술하다가 찢어지거나 하면 흉부외과가 필요했지만 하여간 이 시술 이후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드르륵.
조현희는 눈앞에서 지금 당장은 거의 죽었다고 해도 좋을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
아무리 기가 센 사람이라 해도 이런 걸 코앞에서 보면 숙연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조현희는 이제 곧 심장에 시술을 받아야 하는 몸이지 않은가.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려 왔다.
뒤늦게 도착한 이기원 의원이 손을 붙잡아도 걱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와……. 이런 모습 처음 보는데.’
확실히 어머니가 늙기는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원 의원이 세월의 무상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며 손을 잡고 있으려니, 시술실 안쪽에서 누군가 수술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현종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시술을 맡은 이현종입니다.”
응급인 경우에는 인사고 나발이고 다 불가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이렇게 집도의가 환자에게 인사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처음엔 많은 반발이 있었다.
특히 하루에 많은 수의 수술을 해야 하는 마이너 서저리과에서 그랬다.
바빠 죽겠는데, 이미 병동에서 본 환자 얼굴을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또 봐야 하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태화에서 이 지침을 실행한 이후 환자 만족도가 올라갔다는 통계가 있어,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강화만 되고 있었다.
“아……. 네.”
조현희는 이현종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흥미가 있기야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와 같은 종류의 흥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수술복을 입은 이현종은, 거기에 개인 수술모까지 단정하게 쓴 이현종은 꽤 멋있었다.
원래 사람은 자기 본연의 위치에서 제일 빛나는 법이라지 않던가.
게다가 조현희는 지금 징검다리 효과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래요. 떨리죠? 너무 걱정 마세요. 주무시고 나오면 끝납니다.”
“아……. 네.”
해서 이현종에게 손이 붙들린 채 수줍게 미소까지 지었다.
물론 이현종은 이기자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인 데다 눈치는 밥 말아 먹은 지 오래라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하고 다시 시술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혁을 비롯한 레지던트들과 심장내과 교수들 그리고 펠로우들이 모여 있었다.
이현종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치료를 들고 온 마당이지만, 그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태화 의료원 심장내과 교실에서 이현종은 거의 신이자, 맹목적 추종의 대상이었다.
드르륵.
곧 확인 및 마지막 절차를 마친 조현희가 침대에 실린 채 시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마취과 의사와 함께였다.
시술이 반드시 마취가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심장 시술이다 보니 환자가 긴장해서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거나 하면 어렵게 되었다.
병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일반 병동이 아니라 시술실이지 않은가.
게다가 소독하고 드랩까지 쳐야 하는 꽤 커다란 시술이었다.
칼을 대지 않는다 뿐, 어지간한 수술보다 더 부담이 클 수도 있었다.
“주무실 거예요.”
“네.”
해서 마취과 의사가 주도해서 환자를 재우는, 이른바 수면 마취가 필요했다.
아닌 게 아니라 꽤 긴장하고 있던 조현희는 약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
“됐습니다.”
“응. 좋아.”
마취과 의사의 사인을 받은 이현종은 펠로우의 보조를 받아 아주 능숙하게 조현희 환자의 허벅지를 닦았다.
그리곤 납복 위에 수술복까지 차려입은 후 일회용 드랩을 쳤다.
방사선을 이용해 환자의 몸속을 보면서 하는 시술이기에 납복은 필수였다.
“자……. 빈맥-서맥 증후군에 대한 RFCA 맞죠?”
이현종은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펠로우와 방 안에 여러 의료진들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네. 그럼 RFCA 시작합니다.”
바보도 아니고 맨날 보는 환자한테 시술하는 건데 설마 실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이 절차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는 별 희한한 사고도 많았다.
폐암에 걸려 떼어 내야 할 폐가 아니라 반대편 폐를 떼질 않나, 축농증 걸린 코가 아니라 반대편을 하질 않나 하는 있어서는 안 될 사고들이 있었다.
해서 귀찮은 거라면 딱 질색이 이현종도 매번 반복해야 하는 이 절차만큼은 존중했다.
톡.
확인 절차가 딱 끝나자마자 이현종은 가이드 카테터를 허벅지 혈관에 푹 하고 찔러 넣었다.
그리곤 막힘없이 심장까지 직진하고는 부정맥을 일으키는 부위를 찾아 지지기 시작했다.
꽤나 주의해야 하는 시술인 것이, 이거 하다가 오히려 심각한 부정맥이 발생하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뇌경색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전기 신호를 지도화했고, 또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지져야 할 부위를 지져 나갔다.
‘대단한데…….’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네가 나 가이드 하면 할 수 있을까?’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보시면 화면에 나오는 심장은 2 dimensional image, 즉 평면적인 데 반해 실제 시술은 입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아무리 저라도 해도……. 경험이나 사전 지식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군. 역시 아빠는 괴물이야.’
[수혁도 좀 그렇게 되면 좋겠군요.]
그 모습을 보며 수혁이나 바루다만 감탄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 들어와 있는 모두가 그랬다.
“와…….”
“미쳤네. 이게 이렇게……?”
“새로운 이론이고 자시고……. 그냥 너무 잘하시는데?”
“그, 김 교수. 김 교수가 후임이잖아. 저렇게 할 수 있겠어?”
“노…… 노력하겠습니다.”
누군가는 좌절했고, 누군가는 탄식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현종의 시술은 완벽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였냐면 시술하고 있는 이현종마저 놀라고 있을 지경이었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수혁이랑 맨날 같이 붙어 다니는 데다가, 수십 년간의 짝사랑도 이루어지고.
그야말로 말년에 인생의 최고조에 다다른 셈 아닌가.
“녹화하고 있지?”
“네, 하고 있습니다.”
“그래, 발표할 때 쓰자고. 나 손이 왜케 좋냐.”
“그…… 네, 맞습니다.”
덕분에 이현종은 세계 최초로 빈맥-서맥 증후군에 시도된 전극카테터절제술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남은 일은 정말 서맥이 안 나타나는지 기다리는 것과 그렇게 되었을 시 NEJM에 또 하나의 초대형 논문을 내는 것뿐이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시술실은 역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