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72화 (472/1,303)

472화 천재를 쥐어짜면 (5)

이현종이 워낙에 잘하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더 잘해서 그런가, 시술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와……. 따로 편집할 일도 없겠네.’

같이 들어온 펠로우는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런 종류의 시술은 죄다 녹화를 따기 마련이었다.

딱히 교수의 지시가 없어도 그랬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잘하는 시술을 여러 번 돌려 보는 것이 꽤 도움이 되어서였다.

평소에도 그런데 오늘은 어떻겠는가.

이현종이 따로 지시까지 한 참이었고, 녹화의 목적은 자랑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당연히 영상이 깔끔해야 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건 펠노예 아니, 폘로우의 일이었다.

‘원본 그대로 내는 게 오히려 더 멋지겠어.’

한데 이렇게 잘돼 버리면 일이 줄어든 셈이었다.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보호자 빨리 오라고 해. 안내 나간 것보다 절반밖에 안 걸려서……. 어디 딴 데 가셨을 수도 있겠네.”

물론 제일 기분 좋은 건 당사자인 이현종이었다.

맨날 하던 거라고 해도 특별히 잘된 날은 살짝 조증이 오나 싶은 기분이 되는 게 집도의고 또 시술의지 않은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환자 깨우고 있겠습니다.”

“어어. 나는…… 오셨대?”

이현종의 말에 부리나케 뛰어나갔던 담당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디 안 가시고 그냥 대기실에 계십니다.”

“아, 그렇구나. 오케이. 수혁아, 가자.”

해서 이현종은 벗어 재끼던 수술복을 그대로 찢어 버리고, 납복은 걸어 놓은 채 밖으로 향했다.

슬슬 다리 때문에 서 있기가 힘들던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현종의 뒤를 따랐다.

차라리 움직이는게 나을 때가 있었다.

‘근데 난 왜 가는 거야.’

[같은 센터 의사니까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런가.’

[그리고 이현종은 원래 어딜 가든 수혁을 대동하기 원합니다.]

약간 절뚝이면서 대기실로 가자, 간호사가 전해준 대로 이기원 의원이 보였다.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꽤나 초조한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라도 자기 엄마 심장 시술한다는 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현종에게는 정말이지 익숙한 일이었기에 그리 당황하지 않고 이기원을 불렀다.

“보호자분.”

이현종답게, 의원님 따위의 호칭은 없었다.

어쩌면 지금쯤이면 의원인 것도 잊었을 수도 있었다.

[확실합니다. 자각 못 하고 있어요.]

‘어찌 보면 부럽지 않냐? 어떻게 사람이 이러지.’

[수혁과는 확실히 다르죠.]

‘야, 나를 왜…….’

[수혁은 단 한번도 잊지 않았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보통 다 그래.’

[누가 뭐랍니까?]

수혁과 바루다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기원 의원이 후다닥 달려왔다.

뒤에 있던 비서나 보좌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일 때문에 민원인들과의 만남이나 당내 회의, 심지어 다른 당 원내 대표들과의 회동도 미룬 참이었다.

오늘 결과가 안 좋으면 이게 또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었다.

‘안 되는데.’

‘지금이 중요한 시점인데…….’

물론 정치인 본인의 건강 이슈보다는 훨씬 나았다.

게다가 한동안 어머니의 건강 악화를 염려해 따라다니는 모습은, 적어도 유교 문화가 자리한 대한민국에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랏일 하는 사람이 계속 가정사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 악재였다.

해서 이기원 의원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보좌관들도 조마조마한 얼굴을 한 채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표정이 잘 안 보여 더더욱 초조했다.

아마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안심할 수 있었을 터였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왜 이렇게…… 빨리…….”

이기원 의원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물었다.

원래 수술이나 시술은 예정되어 있던 시각에 끝나는 게 제일이란 소리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엄마 들어가 있는 동안 계속 친구나 지인인 의사들에게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답이 그랬다.

해서 걱정이 되었다.

“아, 아주 잘됐어요. 시술은 완벽합니다.”

“아, 아! 그렇군요!”

하지만 이현종이 시원하게 답해 주자마자 불안은 훅 하고 사라졌다.

어찌나 극적이었는지 다리에 힘이 조금 풀렸을 지경이었다.

“뭐……. 페이스메이커 없이 증상이 과연 얼마나 좋아질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시술은 완전히 잘됐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기원 의원은 양측의 부축을 받은 채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소문에 따르면 꽤 소탈하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니만 진짜인 모양이었다.

수혁은 지금껏 이기원 의원이 보여 준 모습을 기반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때 이현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근데…….”

“네네.”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환자분과도 얘기를 해야 하긴 하는데.”

“아, 네네. 어떤…….”

이기원 의원은 이 양반이 불법을 요구하는 것만 아니면 다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원래 큰 꿈이 있다 보니 특혜니 특권이니 하는 걸 제일 싫어하지만, 은인에게는 예외를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현종이 요구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심지어 기부금도 아니었다.

“아, 환자분 케이스로 논문을 좀 내려고요. 어차피 학문 목적이고 익명으로 나가는 데다가 얼굴 사진이나 하여간 신원 특정할 수 있는 건 안 쓰겠지만……. 이게 의미가 더 있으려면 좀 꾸준히 병원을 다녀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정말 증상 조절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아……. 아! 그런 부탁이시군요.”

이기원은 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칠성에서는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부금을 요구한다거나, 아니면 몇 가지 병원 사업을 논의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왜 친구들이 이현종이면 믿을 만하다고 했는지……. 좀 알겠네.’

수혁이라는 아들을 밝히기 전까지 학문과 결혼한 몸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보통 그런 소리 하면 좀 고깝게 생각할 텐데, 이현종이다 보니 반응이 영 달랐다 했다.

그 인간이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그랬다.

“제가 어떻게든 설득을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교수님 말씀이라면 들을 것도 같습니다. 원래 안 그러는데, 교수님한테는 의지를 하는 거 같더라고요.”

“하하. 제가 좀 믿음직하죠.”

“네네.”

이현종은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회복실로 향했다.

방금 수면 마취에서 꺠어난 조현희가 보였다.

“가만히 계셔야 됩니다!”

“아우…….”

“일어나면 안 돼요! 방금 심장 시술받았어요!”

100% 그런 건 아니지만, 마취에서 깰 때의 행동에서 진짜 성품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이비인후과 내에서 천사로 소문나 있던 의사는 깨어나자마자 하는 말이 ‘감사합니다’였다고 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난동은커녕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해서 회복실 간호사들과 마취과 의사가 아주 감탄했다는 도시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져 왔다.

“아유, 여기. 여기 손 좀!”

“네네.”

조현희는 평소 태도가 콘셉트는 아니었는지 난동이 보통은 넘었다.

“나 가도 돼?”

이현종이 마취과 레지던트에게 이렇게 물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 모르겠네요.”

“약 뭐 썼지?”

“프로포폴이요. 이런 약이 아닌데…….”

“그렇네. 마취약도 아닌데 왜 이러셔.”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낫습니다. 심장 시술한 분이라 저희가 최대한 안정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래, 그래. 음.”

잠시 대기한 이현종은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환자에게 다가갔다.

“이이잇!”

꽤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환자는 완전히 안정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말도 안 하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현종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환자분.”

“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회복실에서 갖은 노하우를 다 동원해도 안정이 안 되던 환자가 금세 조용해진 것.

당사자인 이현종도 좀 놀랄 지경이었다.

“음?”

“계속하시죠.”

“어어.”

해서 마취과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술은 정말 잘됐어요. 걱정 마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 그래요. 이따가 병실에서 또 봅시다.”

“지금 가시게요?”

“가야죠……. 환자 봐야지, 이제. 외래 가야지.”

“아…….”

그 말에 환자는 심지어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고, 떠나가는 이현종을 보며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아마 조현희를 잘 아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면 어머나 세상에 라고 했을 터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그러니까 방금 전의 난동만 본 사람이 보기에도 이상한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아, 이번 달부터 외래 열리는 거 알지?”

하여간 밖으로 나온 이현종은 수혁을 불렀다.

이제 센터 돌아가는 게 어느 정도 안정된 데다가 센터에서 퇴원한 환자들 경과 관찰할 목적으로라도 외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교수 회의에서 안건으로 나왔는데, 이현종이나 이수혁이나 환자 많이 보는 데 딱히 거부감이 없어 그대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센터로 펠로우까지 받을 계획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병원 요구를 들어주는 게 도리에도 맞았다.

“아, 네. 오늘부턴가요?”

“응. 내가 오전, 네가 오후. 시술 때문에 시간 확 미뤄 놨었는데, 당겨도 되겠네.”

“네네. 진짜 잘하시던데요.”

“맨날 하니까 그렇지. 아무튼, 나 없는 동안 센터 잘 지켜 줘.”

“네.”

연애하러 돌아다니는 사이에도 잘 지켰습니다란 말까지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대신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센터로 돌아왔다.

레지던트들도 다 같이 시술을 본 참이라 그런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와……. 이현종 교수님이 왜 최곤지 알겠더라.”

“그거 하시는 것만 보면 되게 쉬운 시술인 줄 알겠어.”

“그러니까. 카테터 혈관 통해서 심장 넣는 것도 어려운데……. 전도로 지지는 건 진짜 어렵지.”

“거참……. 나도 순환기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너 동맥혈 채혈 잘했잖아. 잘하겠지.”

“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

오전 회진도 돌고 가서 그런가 더더욱 시끄러웠다.

환자 앞에서야 레지던트들도 하나의 당당한 의사였으나, 피교육자 신분이다 보니 이럴 때는 또 학생 같은 느낌도 있었다.

수혁도 아직 교수보다는 레지던트에 가까운 시절이다 보니 그대로 두고 있었다.

오는 길에 사 들고 온 커피를 홀짝거리면서였다.

부우웅.

그때 전화가 울렸다.

조태진이었다.

“어, 삼촌. 웬일이에요?”

“웬일은 무슨 우리 사이에.”

“그건 그런데……. 이 시간에는 잘 전화 안 하시잖아요.”

“어, 뭐. 그렇긴 하지. 그래. 사실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네, 어떤 거요?”

“외래 보고 있는데, 아……. 이거 판단이 좀…… 어려워. 등록 번호 불러 줄 테니까 좀 봐줄 수 있어?”

“어……. 아뇨. 센터 전화 저한테 돌리면 되니까, 그냥 제가 지금 갈게요. 환자 있어요?”

“와, 그래 주면 고맙지. 그래, 잠깐 대기하라고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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