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있다 (3)
환자는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한의원이요.”
“한의원? 피부 때문에 가신 거죠?”
“네네.”
수혁은 흠 소리를 내고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한의원이면……. 뭔 약을 썼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러게요. 성분을 알 수 없으니…….]
의원에서 쓰는 약들은 모두 성분명은 물론이거니와 용량도 정확히 공개되어 있지 않은가.
애초에 그러지 않으면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약은 아직 성분명 표기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유추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팠다.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약을 먹고 피부 병변이 어땠어요?”
“음……. 먹을 땐 좋아지다가, 끊으면 안 좋아지고 그랬어요.”
“그렇군요.”
피부 병변은 이유가 뭐가 되었건 대개는 스테로이드를 쓰면 잠시 호전이 되기 마련이었다.
수혁은 아마도 한약 성분이 스테로이드였을 거라 여기며 질문을 이었다.
“혹시 진단명은 뭐라고 들으셨나요?”
“구진이라고 들었어요.”
“음, 구진. 계속 거기서 치료받은 건가요?”
“아뇨. 끊으면 바로 안 좋아지길래, 피부과로 갔어요.”
“피부과에서는 진단명을 뭐라고 했나요?”
“접촉성 피부염이요.”
접촉성 피부염이라.
지금처럼 전신에 구진이 번져 있었다면 그렇게 진단을 내렸을 거 같진 않았다.
해서 수혁은 질문을 다소 구체화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얼굴, 발목, 배에 다 붉은 구진이 있었나요?”
“아, 아뇨. 그때는 발목에만요.”
“아, 그렇군요.”
발목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접촉성 피부염이라는 진단명도 아주 황당하진 않았다.
하지만 틀린 건 매한가지였으니, 아마 별로 호전을 없었을 터였다.
수혁은 그렇게 확신한 채 질문을 던졌다.
“거기선 무슨 약을 썼죠?”
“스테로이드요. 연고랑 먹는 약 다…….”
“효과는 어땠죠?”
“똑같았어요. 약 쓸 때는 좋아지다가, 안 쓰면 나빠지고요.”
원래 원인 질환 교정 없는 스테로이드 치료는 이런 경과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간혹 소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는 격으로 낫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같은 스테로이드라도 용법에 따라 효과가 아예 달라지기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수혁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질문을 이었다.
“그래서…… 이 병원으로 간 거예요?”
“아, 네. 그 무렵부터 발목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이거, 이 발진? 이게 번지고. 그때는 몸도 좀 부었어요.”
“부종이 있었다는 거군요.”
“네.”
“열도 있었고요?”
“아, 네. 열감이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입원도 하고 했는데…….”
환자는 투병 생활을 오래 한 사람 특유의 표정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원인이라도 알고 고생을 했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혁은 그런 환자를 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미열, 구진, 전신 부종……. 기생충 항체는 음성이고, 호산구는 증가 되어 있어.’
[스테로이드는 단기 효과만 볼 뿐, 별 재미를 못 봤습니다.]
‘음…….’
[이렇게만 들어서는 딱 떠오르는 병이 있지는 않군요. 추가적인 신체 검진을 요청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문진은 이만하면 된 거 같았다.
하여간 환자가 언제부터 어떤 증상이 있었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대강 파악한 셈 아닌가.
쉬운 케이스라면 여기까지만 해도 답이 보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검진을 더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검진이라는 건 시진과 청진 등을 포함했다.
그저 보고 듣는 게 다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은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일단 좀 볼까요?”
“아, 네.”
“목부터 보죠.”
“네? 목은 딱히…….”
“단서가 있을 수도 있어서요.”
“아……. 네.”
시작은 목이었다.
설압자로 혀를 누르고 라이트 펜으로 안을 비춰 인후두 부위를 들여다보았다.
통증이 없던 만큼 발적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이 아예 없진 않았다.
“지금 코가 살짝 넘어오는데, 불편하진 않으세요?”
“아……. 코 넘어오는 건 원래…….”
“비염이 있으신가 보네요?”
“네.”
“일 년 내내 그러세요?”
“그런 편인데…… 환절기엔 좀 더 심해져서 약 먹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렇군요. 가렵지는 않고요?”
“힘들 때는 그렇죠.”
“네, 그렇군요.”
코가 목 뒤로 넘어오는 것을 ‘후비루’라고 하는데, 이게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알레르기 비염을 의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려움증이 주된 증상인 데다가 환절기 때 심해진다고 하면 알레르기 비염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 환자는 호산구까지 증가해 있으니 문제 목록에 알레르기 비염을 추가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
[저도 동의합니다. 추가합니다.]
‘알레르기라……?’
[천식은 없는지 추가 문진 및 청진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래.’
그냥 호산구만 튀어 올라가 있으면서 피부 병변이 있다면 누구나 오리무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레르기 증상이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해서 수혁은 저도 모르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환자분.”
“네.”
“혹시 밤에 기침 나거나 쌕쌕거린 적은 없어요? 숨이 찼다거나…….”
“밤에……. 아.”
“아?”
“한참 이거 심할 땐 밤에 숨차서 깬 적이 있어요.”
“그렇군요. 그거 이전 병원에서도 알고 있나요?”
“아뇨. 딱히 상관이 있는지 몰라서 말씀 안 드렸어요. 관계있나요?”
환자는 혹시 하는 얼굴로 물었다.
답을 바로 들을 수는 없었다.
수혁이 또다시 바루다와의 대화에 돌입했기 때문이었다.
‘천식 진단받은 적은 없겠지만…….’
[증상은 빼박이죠. 소리 들어 봐요, 빨리.]
‘알았어.’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수혁은 환자가 앉아 있던 의자를 휙 하고 돌렸다.
그리곤 청진기를 두른 채 입을 열었다.
“청진 좀 할게요.”
“네? 아, 네. 근데 저 이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소리가 헷갈려요.”
“어……. 네.”
환자는 원래 대학 병원 의사는 이렇게 마이웨이인가 하면서도, 진료에 혹 방해가 될까 두려워 입을 다물었다.
그 덕에 수혁은 온전한 청진을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청진은 아니었다.
바루다가 여태 쌓아 온 데이터베이스와의 비교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흠……. 애매한데?’
[아뇨, 이 정도면 휘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
[네.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십시오. 흡연력도 없습니다.]
‘아, 그렇네. 그렇지. 그럼 좁아진 거네.’
[네. 천식이 있습니다.]
사실 지금 바루다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천식이 있다고 단언하려면 자극에 의해 정말 기도가 좁아지는지 폐활량 검사를 통해 확인을 해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단계를 뛰어넘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정황상 의심이 되면 그걸로 되었다.
이 환자의 진짜 진단명을 추론하는 데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천식이 있고 호산구가 증가해 있으면서……. 기생충은 아니야. 그리고 피부염에 미열까지 있으면…….’
[한 가지 질환밖에 없죠.]
‘척 스트라우스 증후군이구나. 그렇게 드문 건 아닌데…….’
[의심하지 않으면 절대 진단할 수 없는 병 중의 하나긴 합니다.]
‘하긴. 그리고 과다호산구증후군도 근접하게 다가가긴 했어. 천식이 있는 줄만 알았다면 진단을 못 하진 않았을 거야.’
[동문 실드 그만 치시고요. 환자가 슬슬 이상하게 생각할 시점입니다.]
바루다는 둘의 대화가 10초를 넘어가고 있음을 알렸다.
사실 이거 반만 가만히 있어도 상대는 충분히 이상하게 여길 만했다.
그렇기에 수혁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치 혼자 생각에 잠겼다 깨는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였다.
다행히 환자는 수혁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괴짜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뭘 하든 그렇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환자분.”
“네.”
“환자분은 알레르기 비염과 미약한 천식이 있는 거로 생각이 됩니다.”
“아……. 네.”
그보다는 무게 잡고 부르길래 뭔가 대단한 진단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름이 나와서 실망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이른 참이었다.
수혁은 곧장 말을 이었다.
“이렇게 천식이 있는 환자에서 호산구가 증가하고, 다른 장기를 다발적으로 침범하는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척 스트라우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환자분의 병명이 바로 이 척 스트라우스 증후군이에요.”
“네? 척 뭐요?”
“척 스트라우스 증후군.”
“어……. 그냥 이렇게 진단이 돼요?”
“왜요?”
“저는 큰 병원 온다고 해서 뭔가 더 검사를…….”
“아. 네, 검사를 해 보긴 할 겁니다. 하지만 정황상 이 질환일 가능성이 95%가 넘어요.”
사실 100%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 틀렸다가는 대참사 아니겠는가.
수혁이 망신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태화의 위신도 문제였다.
해서 교수들은 될 수 있으면 확진할 수 있는 검사가 시행되기 전에는 단정 짓지 말도록 교육받았다.
수혁이 봐도 그게 옳은 방향 같아서 지침을 따를 뿐이었다.
“아……. 그렇구나.”
“치료도 조금 조정할 겁니다. 우선 천식에 대한 치료로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쓸 거고요, 먹는 스테로이드에 경우에 따라 면역억제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스테로이드만으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커서 아마 단기적으로라도 면역억제제는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아……. 오…….’
환자는 정말이지 놀란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6개월 동안 여러 병원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지 않았나.
그걸 5분 남짓한 진료만으로 해결한다니.
이거야말로 기적 같았다.
반면 뒤에 있던 사원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수혁이 이런 식의 진단을 내리는 건 이제 일상이지 않은가.
그보다는 오늘 저녁이 삼계탕인데 그거나 먹을 수 있게 그만 끝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일단 입원하시죠. 폐 기능 검사, 메타콜린 유발 검사, 피부 반응 검사, 엑스레이에 CT 및 몇 가지 혈액검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다 필요한 검사인 거죠?”
“물론입니다. 척 스트라우스 증후군은 피부뿐 아니라 폐에도 자주 침범하고 복강에 있는 장기도 침범할 수 있어 지금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려면 CT를 찍어 봐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치료만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걱정 마세요. 저를 만난 이상 낫게 될 겁니다.”
수혁은 예의 그 신뢰감 짙은 미소를 보이곤 입원 처방을 내렸다.
센터는 아직 병실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라 곧 배정되었다.
사원은 그 알람을 확인한 후, 환자를 원무과로 안내했다.
“이따 병실에서 뵙겠습니다.”
“네, 교수님.”
수혁은 그 환자에게 인사한 후, 사원과도 잠시 마무리 인사를 나누고 센터로 돌아왔다.
센터엔 조태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맞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 건 해결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고 있던 수혁은 삽시간에 돌덩이라도 씹은 기분이 되었다.
외래 보는 중간중간에도 고민을 해 봤으나 여전히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만요.]
‘왜.’
그때 바루다가 수혁을 불렀다.
[조태진 얼굴이 밝아 보이는 게……. 진단을 내린 모양인데요?]
‘어, 정말?’
[뭘 그렇게 놀랍니까? 조태진도 저 분야에서는 최고입니다.]
‘아, 그렇지. 오…….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