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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476화 (476/1,303)

476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있다 (4)

조태진은 바루다와 수혁이 확인한 바대로 껄껄 웃고 있었다.

어찌나 밝게 웃는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심지어 이현종을 마주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랬다.

이현종이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같이 대화하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지 않은가.

수혁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다 그렇게 인식되어 있었다.

근데도 저런 얼굴이라니.

수혁은 대체 뭔 일인가 싶어서 빠르게 다가갔다.

“어, 수혁아.”

“왔어? 그렇지 않아도 가려고 했는데. 하하.”

조태진은 허허 웃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곤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수혁에게 가져다주었다.

수술을 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운신하는 게 아주 편하지는 않단 걸 알고 있어서였다.

수혁은 감사 인사와 함께 앉고는 물었다.

“그 환자 때문에 오셨어요?”

“어? 어어. 아, 이거야 원. 오늘 내가 멘탈이 좀 안 좋았나 봐…….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어서 너까지 불렀는데, 생각해 보니까 하하. 이게 참, 민망하네.”

“민망해요?”

“어. 너한테까지 물어볼 일이 아니었는데…….”

조태진은 껄껄 웃으며 이현종을 그렇지 않냐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이현종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만 못 알아먹는 거야?’

[저도 못 알아먹고 있습니다만.]

‘이게…… 보통 나랑 아빠랑 대화할 때 남들이 느끼는 감정인가.’

[유추해 보건대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젠장.’

[아직도 멀었군요. 둘은 확실히 정답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감도 못 잡았죠.]

수혁도 종래에는 웃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으나, 다행히 나머지 둘은 워낙에 수혁을 천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고자 했던 말을 털어놓았다.

조태진은 계속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걸 놓쳤다는 게 이상하다는 얼굴이라고 할까.

하여간 몰라선 안 된단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왜……. 가성 혈소판 감소증 있잖냐.”

“아, 네.”

“아무리 조심을 했다고 해도……. 그래도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혈소판 8만에 멍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상하잖아.”

“그렇죠. 하하.”

수혁도 그걸 몰랐냐는 얼굴로 웃었다.

[연기 잘하시네요.]

‘표정 출력이나 잘해. 솔직히 존나 가만히 있고 싶은데 웃는 거니까.’

[네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덕분에 조태진은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 랩을 다시 봤지. 역시 8만이야. 변화가 없어. 그런데 환자는 괜찮단 말이야? 혈소판이 이러면 증상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 참, 나도 이게 이제야 떠오르다니 머리가 굳었나…….”

“늙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내가 너보다 나이 많어.”

이현종은 그런 조태진을 바보라고 놀렸다.

어려운 케이스 모른다고 바보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일일 텐데, 조태진은 그저 웃어넘겼다.

아무래도 몰라선 안 되는 케이스가 맞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요. 하하. 그럼 당연히 이 랩이 맞나, 의심을 했어야 하는데.”

“아, 그렇죠. 랩을 의심해야죠.”

여기서 몰랐던 티를 내면 어떻게 될까?

설마하니 이 둘이 여태 수혁에게 취했던 태도를 싹 바꿀 리는 없겠지만.

하여간 적잖은 실망을 할 거 같았다.

해서 수혁은 당연히 해야 할 걸 안 하셨다는 투로 맞장구를 쳤다.

조태진은 민망하다는 얼굴로 하하 웃었다.

“그러니까. 특히 혈소판이면 랩을 의심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으니까.”

“그렇지.”

“해서 이거 봐라. 말초 혈액 도말 검사 의뢰했더니……. 역시 응집이 있어.”

그러면서 결과표를 하나 띄웠다.

진단 검사 의학과에서 혈액 도말 검사한 것을 찍어 놓은 사진이었다.

조그마한 혈소판들이 저들끼리 모여 있었다.

응집이 발생한 것이었다.

거기까지 봤음에도 수혁은 뭔가 떠올리지 못했다.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태진만 신나서 떠들 뿐이었다.

“EDTA 의존성 혈소판 응집이 생길 수 있는 걸 내가 간과했지 뭐냐. 거참 혈액을 벌써 10년 넘게 보는데……. 하 오늘 신환이 많기는 했나 봐.”

“아……. 네.”

EDTA 의존성이란 말을 듣자 그제야 감이 왔다.

이 환자에서 나타난 혈소판 감소는 체내에서의 감소가 아니라, 실험실에서의 감소일 뿐이었다.

원인은 다양한데, 간혹 혈소판이 이렇게 검체에서 응집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도말 검사를 해 보면 작은 혈소판이 지금처럼 응집되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 환자는 진짜 혈소판이 감소한 건지 아니면 실험실에서만 그렇게 보이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헤파린 써서 다시 검사 나가도록 했어. 그거 결과 보고 괜찮으면 바로 갈 거야.”

“그렇네요. 다행이네요.”

“어. 하……. 랩이 이거…… 이렇게 딱 끄면 안 믿을 도리가 없어 보인단 말야. 아직도 이러네.”

“그럴 수 있죠.”

조태진은 충격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을 받은 건 수혁이었다.

랩이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상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함에 있어 가장 객관적인 지표였다.

당연히 수혁은 이 랩 결과를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바루다 또한 그랬다.

‘이럴 수가 있나.’

[허……. 랩이 잘못된다. 이건 또 처음 보는 추론이군요.]

‘근데…… 환자에게 증상이 없다면 의심을 해 봤어야 하긴 해.’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군요.]

‘응. 설마하니 랩이 잘못될 리가 있나 했지.’

[저도 그랬습니다.]

태화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한 검사 결과를 들고 온 상황이었다면 얘기가 조금 달랐을 수도 있었다.

작은 병원의 검사는 종종 틀리기도 하니까.

전원 와서 괜히 검사를 한 번 더 해 보는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정확도 측면에서 보면 비교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태화의 검사조차 틀릴 수 있다고?

이건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가성 혈소판 감소증……. 이거 혈액 환자에서는 그래도 0.1% 정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아직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어쩌나.”

이현종은 수혁의 속도 모른 채 조태진을 나무랐다.

0.1%면 드문 경우이긴 했지만, 그래도 천 명당 하나에서 발생한다는 얘기도 되지 않는가.

모름지기 대학 병원의 대학 병원이란 소리를 듣는 태화의 일원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진단 시에 생각해야만 했다.

조태진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니까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그리곤 레지던트를 슥 하고 돌아보았다.

한 너덧이면 다 사겠다고 하겠는데 많아도 너무 많았다.

‘딴 데서 말 나오게도 생기긴 했네.’

조태진은 통장 잔고와 얼마 뒤 있을 아내 생일 그리고 자신의 용기를 가늠한 후, 말을 이었다.

어쩐지 아까보다는 덜 호기로워 보였다.

“요 앞 호프집에서 쏘죠.”

“응? 호프집?”

“네. 그…… 있잖아요.”

“어디. 만월?”

“만월은 일식집이잖아요……. 그 왜…… 모이다 호프집.”

“모아더……? 애들 다니는 데 아니냐? 개강 총회하고 뭐 그런 데잖아. 맥주 물 섞어서 팔고.”

“에, 에헤이.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사장님 섭섭하시겠네.”

“아냐, 나한테 그랬어. 그렇게 안 하면 타산이 안 맞대. 나도 그러라고 했지 뭐. 명색이 의대생 다니는 곳인데 술 센 거 먹여서 뭐 해. 약하게 먹는 게 피차 좋지.”

“그…….”

원장이 나서서 불법을 방조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이 양반 말마따나 만월이라도 갔다간 아내 생일 선물은 고사하고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터였다.

신현태야 원래도 부잣집이고 부잣집에 이사 가기도 했으나,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잖아도 워낙 바쁜 몸이라 데리고 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돈까지 펑펑 써 재끼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아무튼, 모이다에서 쏠게요. 애들이 너무 많잖아요, 인간적으로.”

“아니, 뭐……. 누가 뭐래?”

“지금 눈으로 뭐라고 하고 있잖아요.”

“난 미식가니까, 그렇지. 그래도 뭐…… 거기 치킨은 잘 튀겨.”

“그럼 지금 혈종 도는 애들까지 해서 같이 가죠.”

“어, 그럴래? 너 그 환자 말고는 뭐 없나 보다?”

“없긴요. 오늘 신환 엄청 왔다니까……. 무균실 갔다 온 거예요. 환자가 젊어서……. 아휴.”

조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대고는 몸을 일으켰다.

혈종은 누구 말마따나 정말이지 감정 소모가 큰 곳이었다.

환자 상태가 휙휙 바뀌기도 하거니와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들이 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30분 이따가 로비에서 봬요. 거긴 뭐 걸어가면 되니까. 쉬엄쉬엄 갑시다.”

“어, 그래. 말투는 무슨 맡김상(오마카세) 사는 애처럼 하네. 만 원짜리 옛날 통닭 사 줄 거면서.”

“아, 좀……. 애들은 그래도 좋아해요.”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 조태진은 대충 인사를 하고는 사라져 갔다.

30분 뒤라고 했으니, 이쪽도 시간이 별로 없었다.

회진 돌고 나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행한 점이라면, 이미 딱 돌기만 하면 되게끔 정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현종은 환자 일보를 들고 일어서서는 1년 차가 튀어 나가기 전에 입을 열었다.

“아, 알지? 우리는 회식 1차만 하는 거. 니들끼리 2차 가고 하는 건 자윤데, 교수들은 1차에서 빠져 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어.”

“네, 교수님.”

“그렇다고 너무 그렇게 웃으면 내가 좀 서운하다.”

“아닙니다, 교수님! 2차 가시죠.”

“안 가. 니들이랑 가면 소맥 먹을 텐데……. 야, 이제 소맥 먹으면 다다음 날까지 힘들어.”

교수 입장에서는 맛없는 병원 밥 대신 다른 거 사 주는 것이겠지만, 레지던트들에게는 또 다른 업무의 연장일 수 있지 않은가.

특히 연차가 낮은 친구들에게는 거의 확정적으로 그랬다.

1차 하고 다시 들어와서 일해야 할 가능성도 컸다.

제아무리 전공의 법이 바뀌면서 주 88시간 이내로 근무하게 되었지만, 점심, 저녁 시간 다 빼고 계산을 하게 되니 실제로는 주말까지 다 해서 매일 13시간 이상 일을 해야만 했다.

해서 이현종은 내과만큼은 이런 원칙을 정해 놓고 있었고, 당연히 레지던트 대부분은 좋아했다.

옛날과는 달리 술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드물기도 해서였다.

“어, 수혁아. 가자.”

회진을 돌고 로비에 가자, 조태진이 손을 번쩍 들고는 수혁을 불렀다.

“야, 너 그거 몰라서 부른 거 아니고 그냥 요새 수혁이 얼굴 볼 일 없어서 핑계 댄 거 아냐?”

“네? 아유, 아녜요. 그럴 리가.”

이현종은 찰싹 달라붙는 조태진이 싫어서 나무랐다.

수혁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상황이었다.

아빠랑 삼촌이지 않은가.

비록 피가 섞인 건 아니지만, 수혁은 그냥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인간관계가 애틋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교주님.”

그때, 그 인간관계 중 하나인 안대훈이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혈종이라고 들었던 거 같았다.

이제 머리를 되도 않는 방법으로 가리는 건 포기했는지 시원하게 민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높은 사람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교주라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뭐야, 인마. 교주라고 하지 말라니까.”

“그…… 교인 중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무슨 미친 소리야,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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