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77화 (477/1,303)

477화 도와주세요, 교주님 (1)

교인이라니.

이제 하다 하다 이놈이 진짜 종교를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안대훈 옆으로 따라붙은 놈들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그저 존경하는 교수를 보고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추종자가 아니라 광신도라 불러도 괜찮을 거 같을 지경이었다.

“어, 수혁아. 이쪽으로 와라. 일단 시작은 자리 잡고 시작해야지. 섞일 때 섞이더라도.”

“아, 네. 교수님.”

병원마다 그리고 과마다도 문화가 다르긴 할 터였다.

하지만 그 어떤 병원이나 과라고 해도 의사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경직되어 있고 수직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진 못할 것이 분명했다.

태화 의료원 내과는 그나마 이현종이라는 기인이 아주 오래전부터 조직 문화를 바꾼 바 있는 데다가, 그 후로도 계속 제법 부드러운 사람들이 과장을 이어 온 덕에 두들겨 패는 문화가 있거나 술을 강압적으로 마시게 하는 문화는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회식이라고 하면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그래. 음. 이야, 수혁이는 이제 진짜 교수 태가 딱 나네. 얼굴은 어려 보이는데……. 뭔가 느낌이 그래도, 어?”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 숙이고 보면 레지던트고 그래요.”

“그거야……주니어 스탭은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랬어.”

“구라 치지 마 인마. 인턴 때도 이 얼굴이었잖아. 내가 너 볼 때마다 얼마나 헷갈렸는지 아냐.”

지금 이현종, 조태진 그리고 이수혁 이렇게 세 교수가 앉는 자리는 맨 안쪽에 위치했다.

입구에서 멀고, 주방에서도 멀고.

이를테면 가게에서 제일 쾌적한 자리라 할 수 있었다.

“야, 혈종은 좀 어떠냐?”

“늘 비슷하지……. 너는 어때. 이수혁 교주…… 아니, 교수님 밑에 있으니까 많이 배우지?”

“너 그거 콘셉트 아니구나?”

“콘셉트라니.”

“아니, 아냐. 아무튼, 응 많이 배워. 진짜 아는 것도 많으신데, 가르쳐 주시기도 잘하셔,”

“그래. 너도 이번 기회에 어때.”

“아니……. 난 기독교라니까.”

“우리는 다신교야. 열려 있어.”

“미친놈이.”

그 옆으로는 보통 펠로우가 자리하는데, 지금은 두 분과 모두 펠로우가 빠졌기에 3년 차 치프들이 앉았다.

그 옆으로는 2년 차, 제일 바깥으로 1년차 와 인턴이 자리했다.

당연히 아직 1년 차와 인턴은 자리에 앉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눠 주기 위함이었다.

“아니, 이런 거 하지 말라니까?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자리를 나눈 거야.”

이현종부터가 질색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교수님,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원하는 교수님들이 훨씬 많다니까요.”

“군대야?”

“군대보다 더하죠, 사실. 근데 어쩌겠어요, 이 맛에 교수 한다는 친구도 있는데.”

“어떤 새끼가 그래. 말해 봐.”

“프락치 노릇은 할 수 없고요…….”

전반적인 병원 분위기나 의대 분위기가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심지어 아직도 마이너 서저리 과에서는 입국식 때 사발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냥 사발식도 아니고, 고개를 숙이게 한 후, 술을 머리로 부어 흘러내린 술을 받아 마셔야만 했다.

이현종은 그 얘기 들었던 때가 생각이 났는지 콧김을 내뿜었다.

“아니, 때가 어느 땐데 이래. 그거 우리 이사장이나 위에 그룹에서 알면 어떻게 나오는지 알어? 사발식 하는 과지?”

“네? 아니, 왜 갑자기 급발진을 하세요…….”

“내가 그때 알았으면 갔을 거야. 가서 깽판 쳤을 텐데.”

“이제 원장도 아니신데…….”

“현태 보내야지. 이번에는 안 놓친다.”

“거참. 하여간…….”

조태진은 이현종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크게 놀라진 않았다.

워낙에 이상한 인간이지 않은가.

만약 신현태가 이랬다면 아는 사람 다 전화해서 왜 이러시는지 아냐고 묻겠지만, 이현종은 별 이유 없이도 이럴 수 있었다.

해서 그냥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딱 봐도 여기가 제일 높은 사람들이 모인 테이블이라는 걸 잘 아는 종업원이 사장과 함께 나와 있었다.

“아, 사장님.”

“네, 교수님. 오랜만이시네요?”

“네, 자주 와야지 하는데……. 병원 일이 이게 참.”

조태진은 너스레를 떨고는 주문을 했다.

생맥주 2천 cc짜리를 일단 하나씩 테이블에 올리고, 치킨 및 마른안주 등을 시켰다.

거의 국룰과도 같은 주문이었기에 이현종과 수혁 모두 딱히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거 말고 딴 걸 시키면 기분이 이상할 거 같기도 했다.

모이다는 생맥에 치킨, 이게 의대생 때부터 지켜진 불문율이었다.

“하여간 수혁이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얘? 얘야 당연히 잘하지.”

“근데 수혁이는 어떻게 생각하냐. 만족해?”

“어……. 만족……. 음. 어때? 아들.”

주문이 끝나자 다시 수다가 이어졌다.

아무리 의사라 해도 회식 자리에서까지 다 병원 얘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학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주제가 더 한정적이었다.

하긴 이 사람들이 모여서 재테크 얘기나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할 터였다.

태화 의료원에서 교수 노릇 하려면 관심이 조금이라도 딴 데 있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고, 기대도 높았다.

“저요? 저야 좋죠. 일단 케이스가 다양해져서 좋아요.”

“그래? 어렵진 않고? 아무래도 현대 의학이……. 분과가 세분화되다 보니까, 이제 나는 다른 과 얘기는 진짜 모르겠던데.”

“그렇긴 한데……. 아직은 사실 거의 내과예요. 다른 과 환자는 안 와요, 아직. 기껏해야 소아과?”

“그래? 왜 그러지? 그렇게 광고를 하는데.”

“아무래도 타과에 자기 과 환자 물어보는 게 이상하죠.”

“음……. 한 번만 물어보면 알 텐데.”

조태진은 안타깝다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수혁이가 얼마나 뛰어난데, 그럴 아직도 몰라주는 인간이 많단 말인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곧 음식이 나왔다.

별로 놀라거나 반가워할 만한 음식이나 술은 아니었다.

치킨은 아마 어느 닭이든 기름에 튀기면 이 맛이 날 터였다.

아니라면 그건 사고였다.

“음…….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물론 이현종은 좋아했다.

미식가이니만큼 워낙에 좋은 걸 많이 먹고 다니다 보니 오히려 노골적으로 튀긴 음식이 간만이라 그랬다.

“아, 맞아. 교수님 이기자 교수님이랑 사귀는 거……. 그거 결혼 염두에 두신 거예요?”

“어? 뭐 나야 그렇지. 그쪽은 아직 모르겠고. 결혼하면 나야 좋지. 헤헤.”

“그렇게 좋으세요?”

“좋지, 인마. 이기자 같은 사람이 어딨다고.”

“그거야…….”

조태진은 ‘제 아내가 더 나은데요’라고 하려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팔불출 소리 듣는다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고는 겨우 참았다.

그렇게 몇 번인가 더 얘기가 오고 가자, 슬금슬금 3년 차들이 몸을 일으켰다.

교수 테이블로 인사를 오기 위함이었다.

“아, 그거 하지 말라니까. 그냥 편하게 먹자고 나눈 거야.”

“교수님, 어차피 애들 그러면 더 마음만 불편해요. 술 안 주고 덕담이나 해 주면 되지, 뭘.”

“다른 놈들은 이거 오면 술 주지?”

“일단 맥주만 시키질 않죠. 소맥이지. 그 왜 유명하잖아요. 조승규.”

“아, SM5? 그 새끼 아직도 그래?”

조승규라면 수혁도 잘 알았다.

무슨 뭐 실력이 좋거나, 논문을 잘 써서는 절대 아니었다.

SM5 몰고 다니면서 회식 시작할 때 소맥 5잔 말고 시작해서였다.

조태진은 이현종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짓더니 히히 하고 웃었다.

“차 바꿨어요. SM7으로.”

“미친놈이. 오라 그래.”

“지금 수술 중일걸요?”

“그래? 고생은 하는구나. 그럼 뭐…….”

시간이 8시가 다 되어 가는데 수술하고 있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여간 이현종은 없는 사람 얘기하는 것보다는 눈앞의 애들한테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곧 3년 차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

그리고 안대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전등 아래 서 있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거기에 너무 진중한 눈빛까지 더해지니 정말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음!”

세상에 이렇게 묘하게 생긴 놈이 있었단 말인가.

아마 원장 경험이 없었다면 깔깔 웃었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이제 이기자랑 사귀기도 하는, 진짜 어른이지 않은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좋은 말만 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 3년 차들. 병원의 기둥들. 많이 배워라. 많이 배워서 많이 살려. 어디 가서 내과 죽었다 하면 무시하라고. 그런 말 하는 새끼들은 의사가 아냐.”

“네.”

“어차피 지가 아프든, 환자가 아프든 하면 우리한테 올 거라고. 자부심을 가져. 요새 자꾸 페이 얘기 들리는데……. 그건 우리 교수들이 고민할 일이지, 너네는 아직 아냐. 일단은 배우고 실력 쌓으라고. 어떻게든 대우 올려놓을 테니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늘 생각하고 있던 말이라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조태진이나 수혁마저 놀랄 지경이었다.

‘하긴 이래서 후배들이 절대 충성하지.’

윗사람 중에, 그것도 이현종처럼 유아독존 해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후배 챙겨 주는 게 어디 흔한 일이란 말인가.

이현종이 좀 괴짜 기질이 있는 데다가, 사람 만나는 걸 아주 즐겨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잘 따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3년 차들도 이현종이 어디 싸울 일 있으면 대신 싸워 주고 한다는 거 정도는 잘 알고 있기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회식 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안 먹이는 것만 해도 좋은 교수긴 했다.

“2년 차들은 아직 백 보나? 고생이다.”

“1년 차, 힘내. 도망만 가지 말고. 하다 보면 내과처럼 재밌는 게 없어.”

하여간 이현종의 덕담이 이어졌고, 조태진과 수혁도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고 나서는 비로소 자유 시간이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아니면 할 말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떠들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안대훈과 그 일당들이었다.

“교주님.”

“아, 씨. 교주라고 하지 말라고.”

“아, 여기선 안 되나요?”

“어디서도 안 돼, 인마!”

“아무튼……. 긴히 드릴 말씀이.”

“사이비 종교 음모 꾸미듯이 하지 말라고…….”

안대훈은 수혁의 손사래에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윤 부회장 일입니다.”

“하윤? 우하윤?”

“네.”

“뭔데.”

어지간하면 무시할 텐데, 하윤이 얘기라면 또 그럴 수는 없었다.

수혁교의 창시자 중 하나란 말을 들을 정도로 충성파 아닌가.

게다가 자기가 속한 연차 중에서는 가장 유력한 교수 후보이기도 했다.

실력뿐 아니라, 인맥도 좋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아선에 있다 해도, 걸출한 성과를 내고 있다 보니 아마 무시하기는 어려우리라.

“그게 좀.”

“뭐.”

“하윤이 아버지가 우창윤 아닙니까. 아선 병원 내분비.”

“어, 그렇지.”

“거기 어려운 케이스가 있는데, 모르겠나 봐요. 그렇다고 협진을 내기는 그렇고……. 근데 또 자기 아빠니까 돕고 싶은 거죠.”

“아……. 그래? 우창윤 교수님 케이스야?”

“네.”

“음……. 얘기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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