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79화 (479/1,303)

479화 도와주세요, 교주님 (3)

결심이 선 수혁은 하윤에게 말했다.

“혹시 지금 환자 보러 갈 건데 도와줄 수 있을까?”

“네? 어떻게요?”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 둥 하는 소리가 튀어나오진 않았다.

직접적으로 교주라고 부르지만 않을 뿐, 수혁을 교주라 생각하는 건 하윤도 마찬가지여서였다.

교주의 명에 의문이 있을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행할 것인가 뿐이었다.

“우창윤 교수님 출입증 있으면 들어갈 수 있잖아.”

“아! 그렇군요! 역시.”

말을 꺼내는 수혁도 답하는 하윤도 딱히 이게 범죄라고 생각지 못했다.

남의 병원에 남의 출입증을 가지고 드나드는 건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만, 둘 다 환자 하나 살리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뭐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하윤은 아직 20대고, 수혁도 이제 막 서른이 된 참이니까.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냐?”

“어, 뭐야. 술자리 와서 전화를 하고. 뭔데?”

하지만 어른들은 좀 달라야 했다.

특히 이현종은 60을 훌쩍 넘어 곧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그래야만 했다.

“아……. 우창윤 교수님이 고민 중인 케이스가 있는 거 같은데, 거기 좀 가서 보려고요.”

“어딜 가, 아선?”

“네. 안 될까요?”

수혁도 이현종을 돌아보고 나니 아차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선을 좀 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돌아오는 답이 정상적이진 않았다.

제정신인 이현종도 이상하지만, 술 마신 이현종은 진짜 더 이상해서였다.

“아니, 안될 거 뭐 있어? 가자.”

“네, 갈……. 네?”

“같이 가자. 나 아선 못 가 본 지 좀 됐어.”

“아니……. 같이요?”

“어어. 너무 몰려가면 좀 그렇고. 너, 나, 우하윤 이렇게 가자.”

“어…….”

수혁은 그제야 이러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둘이 몰래 휙 갔다 오는 건 몰라도, 전직 원장이 라이벌 병원에 몰래 갔다 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잠깐.”

그때 조태진이 나섰다.

애초에 아내에게 혼날까 봐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을뿐더러 술이 세기로 유명한 그였기에 얼굴은 완전히 멀쩡했다.

‘휴.’

[그래, 조태진이 이현종보다는 정상이죠.]

해서 수혁은 안심했다.

그리고 조태진이 말을 잇자마자 너무 섣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고 나서 또 둘만의 추억이 있네 없네 이럴 거잖아요. 안 돼. 나도 가.”

돌이켜보면 수혁에게 신이 내렸네 어쨌네 하던 게 바로 조태진이지 않은가.

또라이로 치면 거의 뭐 대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

[미친.]

수혁과 바루다가 각기 한숨을 내쉬는 동안, 이현종과 조태진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수혁이 들고 있던 탭을 집어 든 채였다.

“어, 하윤아. 여기 모이다야. 호프집. 그리로 와라.”

“아……. 네. 차 끌고 가야겠죠?”

“어? 어어어. 아빠 차 몰고 와. 그럼 주차장 바로 들어가잖아.”

“아……. 넷이 간다고요?”

“어. 왜.”

“아뇨,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당황한 것은 하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대학에서도 교수라고 하면 왕이겠지만, 의대에서 교수는 진짜 왕이어서였다.

학교 졸업하면 대개의 경우 남남이 되는 다른 단과 대학과는 달리, 의대 교수는 인생 방향에 따라 평생 봐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개원했는데도 결국에는 연이 닿을 때도 많았다.

우창윤의 딸로 살아온 하윤은 그런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냅다 고개를 숙이고 아빠 출입증을 챙겼다.

“딸, 어디 가?”

“병원.”

“병원? 이 시간에?”

“어.”

“그래……. 조심히 갔다 와라.”

엄마의 의심 따위는 없었다.

원래 대학 병원 의사는 밤낮없이 환자가 안 좋으면 병원에 가야 하는 존재들이지 않은가.

차라리 이 시간이면 양반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간혹 새벽에 나갔다가 다다음 날쯤 들어올 때도 많았으니까.

부우웅.

하여간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하나가 모이다 호프집 앞에 섰다.

“이야……. 이 새끼 돈 많이 벌었구나?”

이현종은 그 차를 보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사실 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긴 하지만, 하여간 동그라미 네 개 붙은 게 유명한 외제 차라는 건 알아서 그랬다.

“에이, 교수님. 이건 그렇게 비싼 차 아니에요. 모델이 일단 오래됐잖아요.”

“그래? 엄청 큰데?”

“크기는 한데, 중고로 사면 5천 정도면 사요.”

“그 정도면 비싸지.”

“뭐…….”

조태진은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해 주려다가, 이현종은 아예 차를 안 끌고 다니는 양반이라는 걸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수혁 옆에 앉았다.

“이 새끼가 이거.”

“가면 얼마나 간다고요. 지금 가면 안 막혀서 금방이에요.”

“그 새끼들은 왜 남의 병원 가까운 곳에 지었대?”

“네? 갑자기 또 얘기가 왜 그리로 튀어요.”

“하여간 맘에 안 들어. 아선 놈들.”

이현종은 딸 듣는 앞에서 아빠 욕을 시원하게 하고는 하윤을 돌아보았다.

“어, 하윤아. 가자.”

“아……. 네.”

아마 하윤이 이현종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다면 상처도 조금 받았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하윤은 수혁과 제법 가까운 사이이니만큼,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해서 별로 놀라지 않고 액셀을 밟았다.

“다녀오십쇼!”

뒤로 레지던트들과 이현종의 카드 한 장을 남긴 채였다.

안대훈은 함께 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한참 차를 바라보다가, 아래 연차들을 돌아보았다.

‘우리 신도들도 내가 챙겨야지.’

첫 번째 사도로서 책임이 막중하지 않은가.

해서 이현종의 카드와 함께 2차 장소로 향했다.

조태진이 쏜 모이다와는 달리 가격이 좀 나가는 곳이었다.

이현종은 딱히 레지던트들이 쓴 돈에 대해서라면 뭐라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저기야? 와, 병원 또 하나 지었냐?”

레지던트들이 자기 카드 들고 이자카야에 들어간 줄은 꿈에도 모르는 이현종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병원에 소리를 질렀다.

한강 변에 자리한 아선 병원은 그새 또 한 동을 더 올린 참이었다.

이현종은 이쪽으로는 소변도 잘 안 싸는 사람인지라 아예 처음 보았다.

“아, 네. 좀 됐는데.”

“그래? 넌 어떻게 알어. 이직 준비하냐?”

“네? 아뇨, 미쳤어요, 제가. 그냥 여기 학회 할 때 와서 봤죠.”

“아선 학회를 와? 여기서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아유……. 제가 가르치러 왔죠.”

“우리 지식을 아선에?”

“하…….”

조태진은 거따 대고 괜히 한마디 보탰다가 곤욕을 치렀다.

수혁은 이현종이 아선, 칠성이라고 하면 발작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았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다만 속으로 바루다와 대화만 나눌 뿐이었다.

‘병원이 크기는 크네.’

[아시아 최대 사이즈라고 들었습니다. 3,500병상이라고 했죠?]

‘미쳤지, 진짜. 뭔 놈의 병원이 이렇게 커?’

[그러니까요. 사이즈 크다고 다 좋은 병원이 아닌데 말입니다.]

결론은 이현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바루다는 태화에 대한 충성심이 수혁보다 더 컸고, 수혁 또한 아버지 이현종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탓이었다.

띵.

그사이 하윤은 차량을 끌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원래 아선은 고질적인 주차장 부족으로 인해 레지던트나 주니어 교수들은 병원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는 못 대는데, 역시 기조실장은 달랐다.

“다 왔습니다.”

“와……. 기조실장이 세네. 입구네, 바로.”

“그러니까요. 우창윤 교수님 저랑 얼마 차이도 안 나는데…….”

“영혼을 팔아서 그…… 아니, 하윤아. 뭐 욕하는 건 아니고 알지?”

“네네. 알죠.”

덕분에 일행은 지하 2층 병원 입구 바로 앞에 차를 댈 수 있었다.

병실로 향하는 것도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윤이 우창윤 교수의 출입증을 들고 와서이기도 했거니와, 가운도 한 아름 들고 와서였다.

다들 가운을 걸친 데다가 당당하게 병동을 해치고 다니니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못했다.

3,500병상이나 되다 보니 직원들끼리 얼굴을 다 알지 못하는 것도 한가지 이유였다.

“아……. 여긴데…… 음. 열 신데, 괜찮겠죠?”

“똑똑 해 봐. 주무시면 나가린데, 이거.”

“네.”

게다가 하윤은 아빠 따라서 병원에 여러 번 와 본 적이 있는 몸이었다.

나름 지리에 익숙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병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길 모르면 병원 안에서 몇 시간 헤매는 일도 흔한 병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하윤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구세요?”

“아, 네. 우창윤 교수님…….”

“아이고, 네. 들어오세요.”

안에서 답이 들려오자마자 일행은 안으로 들이닥쳤다.

“어…….”

당연하게도 환자는 크게 놀랐다.

이 시간에 오는 의사라면 기껏해야 주치의나 인턴 정도이지 않던가.

한 명이 올까 말까 하다는 얘긴데, 지금 들어온 건 무려 넷이었다.

심지어 그중 둘은 나이가 지긋한 게 누가 봐도 교수였다.

“어…….”

“놀라셨죠? 당이 계속 떠서……. 저희가 왔습니다.”

“아,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현종은 그런 환자를 보며 당당히 말했다.

스스로 거짓말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럼 좀 보겠습니다.”

“네, 교수님.”

환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수혁은 바로 환자에게 다가가서 상태를 더욱 면밀하게 살필 수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얘기였다.

‘뭐…… 황달 같은 건 없고…….’

[혀는 건조하네요.]

‘그거야 뭐 당뇨면 그럴 수 있지. 조절이 잘 안 되고 있으니까.’

[네.]

그 외에도 피부색이 검고, 복부에는 갈색 선조도 있었다.

나름대로 특이한 점이라고 하면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고혈당이라면 이럴 수 있었다.

아마 수혁이 아니라면 이렇게만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수혁이었고, 심지어 바루다도 있었다.

‘음……. 의뢰서를 보면 이 환자 당 뜬 게 불과 1년 전이야.’

[그렇습니다.]

‘근데 피부에 이 정도로 변화가 있으려면 혈당 수준이 엄청나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당뇨에서 그럴 수 있을까?

[아뇨, 가능성은 아주 작습니다.]

피부 침착까지 생기려면 당뇨가 오래되거나 엄청난 고혈당이 있어야만 했다.

이 환자는 1년밖에 안 되었으니, 고혈당 수준이 엄청나야 한다는 얘기였다.

한데 심지어 이 환자에 대해서는 약도 썼는데 이렇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인슐린 쓰고 있는데도…… 조절이 안 되지.’

[네.]

‘그럼 이건 뭔가 당을 올리는 질환이 따로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음……. 그것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신?’

[우창윤 교수가 그걸 놓쳤을까요?]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봐야지.’

[확인해 보죠.]

여기까지 추론해 낸 수혁은 잠시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병동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간호사들 그리고 레지던트들 모두 저 새끼들은 뭔가 하는 얼굴이 되었으나 일단 무시했다.

그리고 하윤의 도움을 받아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찍었네.’

[음. 별거 없군요.]

그중에서도 복부 CT를 확인했는데, 뭐가 없었다.

왜 우창윤이 그렇게 고뇌했는지 알 거 같았다.

수혁이 딱 복부 CT를 확인했을 때 내쉬었을 법한 한숨을 쉬고 있을 때쯤, 전화가 울렸다.

신현태였다.

“어, 원장님?”

“어, 수혁아. 회식 중이라며? 나 일 일찍 끝나서……. 가도 돼?”

“아……. 저희 병원이에요.”

“그래? 어딘데? 갈게.”

“어……. 아선이에요.”

“응? 이게 또 무슨…… 무슨 소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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