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화 정형외과도 (3)
보통 뭔가 재미난 것을 보기 전에 치킨을 시키지 않는가.
수혁과 안대훈도 그랬다.
재미난 것이라는 게 케이스라는 게 차이점일 뿐이었다.
그냥 이렇게 말하기엔 조금 많이 큰 차이점인데, 둘은 전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했다.
[돌았네요, 드디어. 케이스를 보려고 치킨을 시키다니.]
바루다만이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수혁이 인공지능인지, 아니면 자신이 인공지능인지 모르겠을 지경이었다.
‘뭐 인마. 보드람 시킬 건데. 불만 있어?’
[아뇨.]
하지만 바루다도 금세 굴복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파인 다이닝을 깨나 다녔다 자부하는 몸이지만, 그럼에도 치킨은 별미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프라이드의 최고봉인 보드람이라면 군침이 넘쳐 흐를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수혁은 정말 치킨 먹으면서 케이스를 보려고 일부러 기다렸다.
안대훈도 완전히 같은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으나, 그는 그저 수혁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만족이었다.
‘하루의 마무리를 이수혁 교주님과 함께할 수 있다니……. 수멘.’
심지어 케이스도 보게 되지 않았나.
너무 큰 보상이라 할 수 있었다.
“어, 왔나 보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어. 양이 좀 적은데, 몇 마리 시켰어?”
“세 마리요.”
“그건 좀 많지 않니?”
“남으면 저희 애들 주면 됩니다.”
“먹다 남은 걸 준다고?”
레지던트들이 좀 불쌍한 존재들인 건 맞았다.
특히 내과 같은 바이털과 레지던트들은 병원에서 도통 나갈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제때 밥 먹는 경우도 드물었다.
저녁 회진 돌고 환자 정리하고 하다 보면 금세 식당은 끝이 나니까.
이것도 운이 좋을 때의 얘기였다.
갑자기 환자가 안 좋아지면 저녁 생각 자체가 사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먹다 남은 치킨을 탐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혁 때라면 몰라도, 이제는 전공의법이 개정되면서 주 88시간만 일하면 되니까.
“네, 좋아할걸요.”
“확신에 찼네. 태화 의료원이 그렇게 빡센가……? 우리가 그러니?”
“아뇨. 이수혁 교주님이 시켜 먹은 거라고 하면 다들 한 입이라도 먹으려고 할걸요.”
“아……. 신도들이니…….”
“네.”
“그래……. 뭐 마음대로 해라. 배고프다, 먹자.”
“네!”
수혁의 의문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안대훈은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곤 1층 로비에서 치킨을 받아다 당직실로 돌아왔다.
‘음.’
[향긋하군요.]
그와 함께 당직실 안이 치킨 튀긴 냄새로 가득 찼다.
“맛있네.”
“네.”
맛 또한 기가 막혔다.
기분이 좋아진 둘은 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케이스를 열었다.
“60세 여환이고…… 지속되는 팔꿈치 통증.”
“수술도 받았네요. 골절로.”
“팔꿈치 수술이 좀 어려울 수 있지.”
시작은 김선웅, 류동진과 비슷했다.
우선 수술이 잘못되었을 거라 상정하고 살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류동진이 수술이 잘됐다고 호언장담했던 게 괜한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영상을 두 번이나 돌려 봐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잘하시네?”
“태화 교수님들이니까 수술 잘하시죠.”
“하긴 그렇지. 음……. 아예 흠잡을 데가 없는데.”
“네. 수술은…… 완벽해요.”
수술에 대해서라면 문외한인 주제에 이런 말을 한다고 하면 곤란했다.
수혁은 정말로 진지하게 통합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몸이었다.
위에서도 그랬다.
덕분에 각 수술 영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언제든 직접 수술실에 들어가 참관할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수술실에 참관실이 없어 아주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그렇게 보아 온 수술이 한두 개는 아니었다.
“수술 후 시행한 검사도 괜찮네.”
“네, CT까지 찍었는데……. 이것도 정상이네요.”
“근데 계속 아프다?”
“CRPS는 아닐까요?”
대훈은 이 비슷한 케이스를 본 적이 있었다.
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였는데, 외상 후 발생하는 만성 통증에 있어 그리 드물지 않은 원인이었다.
수혁이라고 해서 떠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애초에 이 질환이면 놓치지 않았을 테지.’
[제때 병원에 온 경우라…… 사실 발생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그래.’
하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자극에 의해 아프다는 얘기가 없어.”
“아주 미세한 자극이라…….”
“그리고 CRPS라 하기엔 통증이 적어.”
“아.”
“또 자율신경계 이상이 관찰되지 않지. 잘 보면……. 여기 검사했잖아. 네 말대로 태화 의료원 교순데 이걸 안 했을 리가 없지.”
“그렇네요. 음…….”
신경 손상의 증거 없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경과가 달랐다.
완전히 배제해도 좋았다.
“그럼…… 음…….”
“잠깐 더 자세히 볼까.”
“아, 네.”
안대훈은 이제 솔직히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정형외과를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아마 그쪽 1년 차랑 비교해도 달리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수련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수혁처럼 해당 과가 아닌 주제에 그 과보다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못해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았다.
괜히 다른 과 의사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각 과를 포괄해서 보라고 만든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차 각과의 2년 차 수준만 되어도 좋겠단 말을 심심치 않게 하지 않은가.
“음…….”
해서 안대훈은 치킨 먹기와 띄우라는 영상 띄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니, 수혁을 관찰하는 데 열중했다.
이토록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는 법이었다.
“여기…… 여기 골유합이 조금 이상한데.”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억지가 섞여 있습니다.]
“환자가 증상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억지는 아냐.”
[음, 그렇군요. 환자가 증상이 있으니…… 의심해 볼 만합니다.]
수혁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소리 내 말했다.
안대훈은 사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수혁에게 실제만큼 무식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어쩐지 끄덕이다 보면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하여간 공부한 게 완전 헛짓은 아니어서 수혁이 하는 말의 일부는 알아먹을 수 있었다.
“여기…… 불유합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불유합이라고 판정할 수 있지. 이 각도에서는 좀 애매하지만.”
“음……. 그렇군요.”
“이 환자 입원해 있나? 그럼 사진 좀 더 찍어 보고 싶은데?”
“아뇨, 외래 베이스 환자입니다.”
“외래야? 근데 왜…… 아, 우리 센터가 그런 센터지.”
단순 협진이라면 당연히 입원한 환자만 의뢰를 내는 게 맞았다.
입원 환자를 외래로 보내면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입원한 상태에서는 협진 형태를 취해야만 다른 과 진료를 볼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통합진료센터는 그런 게 없었다.
모든 형태의 협진을 다 받았다.
필연적으로 잡일이 발생한다, 이 말인데 레지던트들에게는 이곳이 태화라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대학 병원 같았으면 이 환자에게 연락하고 외래 잡아 주고 하는 거 전부 레지던트가 했을 테니까.
“직원한테 돌려 놔야겠네. 음……. 다른 검사는 없나.”
“MRI 있네요. 마지막 외래에서.”
“수술 후에 MRI까지 찍는 경우는 진짜 없을 텐데.”
“네, 수술 전에도 안 찍은걸…… 정말 모르시겠나 봐요.”
“응, 그렇지. 근데 이미 다쳤고, 수술까지 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불유합이라는 것도 애초에 추정이었다.
수술해 놓은 부위다 보니 확실한 판단이 어려워서였다.
MRI야 X-ray보다는 좀 나았으나 훨씬 좋다, 이런 말을 하기는 무리였다.
“T1에서 조영증강 이미지…… 음, 이쪽이 좀 이상해 보이는데.”
“그런가요?”
“응. 이게 좋아지는 상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안에서 뭐가 자라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
“자라요? 여기 팔꿈치인데요?”
“나도 그게 고민이야.”
팔꿈치는 어떤 종류의 종양이건 간에 거의 발견되지 않는 장기라고 보면 되었다.
애초에 관철 부위가 종양이 잘 안 생기는 부위이기도 했고.
게다가 이 소견은 억지로 종양이라고 생각해야 그렇게 보일 뿐, 일반적으로는 골 유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랬다.
하지만 수혁은 이 영상이 무려 수술 후 6개월이 다 되어서 찍은 것이라는 데에 주목했다.
‘이상하지?’
[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유합 속도가 늦어지는 게 맞습니다만, 팔꿈치를 잘 고정했다면 이미 붙었어야 합니다. 제대로 붙었냐, 안 붙었냐의 얘기가 아니라…….]
‘유합 과정 자체는 끝났어야 해. 게다가 수술은 정말 깔끔하게 잘 됐는데, MRI에서 보면 불규칙한 음영이 있잖아.’
[그건 유합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소견이지 않습니까?]
‘얘가 정신이 없네. 치킨 먹어서 그런가.’
[무슨…….]
수혁은 어리둥절해하는 바루다를 내버려 둔 채, 다른 영상을 띄웠다.
수술 후 일상적으로 찍는 영상이었다.
그리곤 마치 안대훈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확실히 이상한 게 이미 여기서 유합이 된 거로 보이거든.”
“아……. 네.”
“근데 MRI를 보면 진행 중이야.”
“아……. 그럼 정말로?”
“드문 경우긴 하지. 하지만 외상이 종양 발생을 촉진시킨다는 보고도 있잖아? 불가능한 경우는 아냐.”
“근데 좀 드문 거라 처음부터 이걸…….”
“우리 센터가 통합진료센터인 것을 생각해야지. 의뢰한 게 류동진 교수님이라는 것도 중요하고. 애초에 드문 게 아니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아.”
항상 그런 건 사실 아니었다.
되도 않는 케이스가 오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에 아예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감을 못 잡아서 여기까지 오기도 한다는 얘기.
하지만 그건 대개 태화가 아닌, 2차 병원에서 오는 의뢰에 해당했다.
적어도 태화 내에서 오는 케이스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아…….”
“일단 먹자. 이것만 봐서는 확신하기가 어려워. 내일 당장이라도 환자 오라고 하고 싶은데……. 직원은 퇴근해서.”
“제가 할게요.”
“응? 네가? 너 지금 혈종이잖아.”
“그래도 너무 궁금한데요? 게다가 교주님 말씀대로면 이거 종양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유합처럼 보이는 종양은 아마도 골수에서 자라는 종양일 터였다.
정말 재수 없으면 혈액암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안대훈이 이렇게 말하자 수혁도 더 할 말이 없어졌다.
[할 말이 없긴요. 내일 하면 되는데, 솔직히 바로 보고 싶어서 종용하는 거 아닙니까?]
‘맞아. 근데 너는 어떤데.’
[저도 종용하고 싶군요.]
‘그럼 입 다물어.’
[넵.]
해서 수혁은 속내를 감춘 채,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 볼래? 시간이 늦어서 근데.”
“저 이런 거 잘해요. 제 논문 주제가 설문지 아닙니까.”
“아, 맞네. 그렇지. 논문을 왜 3개나 쓰니, 근데.”
“교주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려고요. 하여간…… 제가 한번 내일 오실 수 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어, 그래.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강요하면 안 돼. 아니, 아닌가? 암이면…….”
“네, 제가 적당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