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정형외과도 (4)
안대훈은 먹던 치킨까지는 완전히 씹어 넘긴 후,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환자한테 전화 걸 건데 개인 번호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르는 번호라 받지도 않을 게 뻔했다.
“안녕하세요, 태화 의료원 수석 전공의 안대훈입니다.”
안대훈은 아직 검지에 묻은 양념도 채 닦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나 튀어 나가는 말투는 공손하면서도 정중했고 또 어딘지 모르게 위엄마저 서려 있었다.
아마도 개뿔 의미도 없는 수석 전공의라는 직함 때문일 터였다.
그냥 3년 차나 4년 차, 그러니까 제일 높은 연차의 레지던트를 뜻하는 말일 뿐인데 환자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말이어서 그랬다.
“아……. 아이고, 네.”
늘 그러하듯 이번에도 효과가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건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는 거부터가 심상찮은 일이니까.
“류동진 교수님 외래 보고 계시죠?”
“네, 네.”
“6개월간 지속되는 팔꿈치 통증이 있으시고요?”
“네, 아유……. 이거…….”
안대훈은 이런 전화를 많이 해 봤는지 자연스럽게 통화를 이어 나갔다.
비결은 딴 게 아니라 그저 신뢰감만 팍 실어 주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소속을 밝혔을 때 이미 반쯤 먹고 들어갈 수 있었다.
상대가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여전히 노인들은 의사라고 하면 원래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 주었으니까.
“류동진 교수님이 환자분을 통합진료센터에 의뢰했습니다. 혹시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현종, 이수혁 교수님이 이끄는 국내 제일의 진단팀입니다.”
“아……. 네. 들어 봤죠. 병원 입구에서 본 거 같은데.”
거기에 더해 이현종과 이수혁의 이름까지 팔면 게임 끝이었다.
김다현 이사장이 정말이지 홍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였다.
아마 의료법 위반만 아니었으면 TV 광고라도 돌렸을 터였다.
“네, 엄청 유명하신 분들입니다. 이제 그분들이 환자분을 보실 텐데……. 혹시 내일 병원 오시는 게 가능할까요?”
“내일요? 그…… 가능은 한데, 의사 선생님 볼 수는 있는 건가요? 예약도 잘 안 되던데.”
“통합진료센터는 일반 창구로 예약이 되는 센터가 아니라, 무조건 의뢰를 통해서만 예약이 되는 곳이라서요.”
“아……. 네, 그럼 가야죠. 가겠습니다. 지금도 너무 아파서요. 약 먹는데도…….”
“네, 그럼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에만 오시면 됩니다. 괜찮으세요?”
“갈게요.”
“네, 혹시 모르니까 입원 준비해서 오시는 게 좋겠어요.”
“네.”
환자는 목소리만 들어도 아파 보였다.
통화 내용을 들여다보아도 그랬다.
별로 불편한 게 없는 사람이라면 대학 병원이라는, 딱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편감을 수반하는 공간에 내일 당장 오겠다는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잘했네.”
“아닙니다, 교주님.”
“전화할 때는 멀쩡한 사람 같더니, 끊고 나니까 도루묵이네.”
“저는 지금이 제 평생에서 제일 멀쩡합니다.”
“후. 그래……. 일단 마저 먹자.”
“네. 무리해서 드시진 마시고요. 아까 인스타에 올렸더니 벌써 남은 음식 문의가 들어옵니다.”
“미친놈들…….”
“네, 미쳤습니다. 교주님께.”
“하.”
수혁은 잠시 대훈을 바라보았다.
전화할 때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믿고 교정에 들어가야 할까?
[늦었습니다.]
그때 바루다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꺼냈다.
수혁은 그럼에도 일단 집어 들었던 치킨은 입 안으로 옮기면서 물었다.
‘왜.’
[최근 정신과 질환도 공부하고 있죠?]
‘어, 근데 그쪽은 난 못 할 거 같은데.’
[아무튼, 해당 지식을 활용해서 안대훈과 그 일당을 살펴봅시다. 어떤 경우죠?]
대부분 경우에서 같은 질환 군으로 묶인 환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마련이었다.
심각한 질환인 경우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치료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간혹 잘못된 정보가 돌아서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치료 과정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기에 그런 일은 적었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이었다.
‘우울증이나…… 망상 환자들은 모여 있으면 별로지.’
[네, 그렇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환자들을 환자들끼리 모아 두면, 서로의 우울감이 강화되기 마련이었다.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우울감이 전염된다는 얘기.
조금 다른 얘기지만 비슷한 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아 두었을 때도 비슷한 부정적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망상도 강화될 수 있었다.
‘이 새끼들 그럼 지들끼리 망상 강화하는 건가?’
[이미 충분히 진행했다고 볼 수 있죠.]
‘하……. 진료 예약해 줄까?’
[병식이 없는데 진료를 볼까요? 이들에게 수혁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긴 하잖아. 똑똑한…….’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 위에 있는 존재라는 얘기죠.]
여기까지 대화를 이어 나간 후 안대훈을 보자 조금은 무서웠다.
어딘지 모르게 눈동자도 좀 돌아간 거 같고, 뭐 좀 그랬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잘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놈이 설마 수혁에게 위해를 가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아우, 배불러.”
그런 와중에도 손과 입은 쉬지 않았기에 곧 수혁은 부른 배를 안고 뒤로 물러났다.
처음 시켰을 때 예상했던 것처럼 꽤 많은 양이 남아 있었다.
안대훈은 그걸 무슨 성수 따르듯 고이 모아다 인사를 꾸벅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수혁은 그런 안대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당직방을 나왔다.
‘수혁아, 다 좋은데 네가 너무 당직실에서 개기면 이제 레지던트들하고 펠로우들이 힘들어한다.’
신현태에게 실로 정상적인 조언을 들은 덕이었다.
사실 불편해하던 거로 따지면 레지던트 대도 비슷하긴 했지만.
이제는 명색이 교수인데 당직도 아니면서 당직방에서 자꾸 자는 건 민폐였다.
게다가 수혁의 오피스텔은 진짜 고급이지 않은가.
왕자 생각을 해서라도 써먹긴 해야 했다.
해서 수혁은 널찍한 오피스텔에서 공부하다가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는 커피까지 내려 먹고는 병원에 되돌아왔다.
“좋은 아침!”
동시에 이현종을 볼 수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이기자 교수와 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기분은 어제가 더 좋아 보였다.
아마도 우창윤 교수를 갈궜기 때문일 터였다.
“아, 아빠.”
“정형외과에서 협진 했다며? 김선웅이야?”
“아뇨, 류동진 교수님이요.”
“김선웅 이 새끼는 뭐 해? 감히 우리 수혁이 몸에 칼 대는 은혜를 내려 줬더니.”
“그…….”
보통은 수술해 준 사람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심지어 그 수술이 아주 잘 됐다면 필시 그래야 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소리를 해서 뭐 하나.
비효율적이었다.
“아무튼, 뭐 같아?”
“딱 봐서는 모르겠는데……. 수술이 잘못되거나 한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래? 하긴 그렇겠지. 우리 병원이 어디 골목 가게도 아니고.”
“환자 불렀어요. 아마…… 이따 올걸요? 회진 돌고 나면.”
“아, 그래? 음, 근데 나는 못 볼 수도 있겠네.”
“왜요?”
“아, 저번에 본 환자 기억나? 조현희라고 승질 드러운.”
“아……. 네. 기억나죠.”
“외래 맞춰서 오랬는데 부득불 오늘 오겠다네. 신현태 이놈은 교수 보호해 줄 생각은 안 하고 외래 캐파 하나짜리 열어 버리고.”
이현종이 싫어하는 걸 대 보라고 하면 아마 한두 개는 아닐 터였다.
멍청한 의사부터 해서 맛없는 음식 등등 엄청 많았다.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둥글둥글한 사람도 아니니까.
하지만 제일 싫어하는 걸 대 보라고 하면 역시 병원에 와서 특혜 달라고 떙깡 피우는 사람이었다.
“여당 원대 대표 엄마잖아요.”
“그게 뭐. 지금 안 보면 죽어? 그렇다고 해도 응급실로 와야지.”
“그건…… 맞는 말이네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신현태 놈이 난리를 피우는 통에……. 동생 잘못 둔 죄지. 권력에 눈이 멀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된 거……?”
“후원금이라도 받아야겠어. 이대로 그냥 보면 권력에 지는 느낌이잖아.”
“아, 파이팅입니다, 아빠.”
저렇게라도 기분이 풀리면 다행이었다.
병원 입장에서 봐도 손해는 아닐 터였다.
어차피 연구비야 차고 넘치게 받는 양반이라, 후원금은 늘 환자 보조금으로 받지 않던가.
다시 말하면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 쓰이는 돈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벌써 그런 식으로 죽을 사람 살린 게 올해만도 여럿이었다.
“어, 이수혁 교수.”
아무튼, 회진을 돌고 난 이현종은 외래로 내려갔다.
잔뜩 볼멘소리를 해 대긴 했지만 하여간 내려갔다.
그 후에 수혁을 찾아온 이는 류동진 교수였다.
“아, 류 교수님.”
“어제…… 그, 협진 혹시 봤어요?”
못 봤으면 지울 생각도 있었다.
김선웅과 대화를 하다 보니 얼결에 넘어갔는데,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생각이 달라져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정형외과 교순데 설마하니 이제 갓 교수 단, 그것도 내과 의사보다 모를까.
괜히 환자 헛걸음 시키거나 오히려 안 좋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네. 봤죠.”
“어……. 6시 넘어서 냈는데 벌써 봤어요?”
“네. 저는 보통 8시 넘어야 집에 가서.”
“부지런하시네…….”
하지만 수혁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다른 교수 중에서도 8시 넘어야 집에 가는 사람은 부지기수일 터였다.
태화 의료원에서 일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환자 때문에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보통은 연구가 발목을 잡았다.
“네, 뭐. 환자 보는 게 재미도 있고…….”
“그래서 환자분은 오시기로 했나요?”
“네. 여기로.”
“아……. 오시네.”
“저분이세요?”
“네.”
류동진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60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 환자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간 병원을 하도 왔다 갔다 해서 그런가, 발걸음에 망설임이 적었다.
이런 표현이 좀 우스울 수도 있겠는데 초보 환자는 아니란 얘기였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수혁은 환자가 병원에 익숙해지기 전에 해결책을 얻어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같이 보실 건가요?”
“네? 아니……. 저는 그냥 뒤에 있죠.”
수혁의 생각과는 별개로 류동진은 불안했다.
차라리 정말 뛰어나서 잘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망치면 어쩐단 말인가.
이 걱정 때문에 어제는 잠까지 설친 마당이었다.
“네.”
그에 반해 수혁은 류동진의 불안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직접 수술하는 게 아닌 이상, 진단하는 데 있어서는 이미 정형외과 교수들보다 낫다고 굳게 믿어서였다.
아주 근거 없는 헛소리는 아니었다.
몸은 결국, 하나이지 않은가.
증상이 팔에 나타났다고 해서 전신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전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내과 의사가 더 못 할 이유 또한 없었다.
“환자분.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팔꿈치가 아프세요?”
“아……. 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보겠습니다.”
덕분에 수혁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넘쳤다.
‘선무당이 아니길 빈다…….’
류동진의 흔들리는 눈동자하고는 아주 대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