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화 정형외과도 (5)
수혁은 그렇게 환자를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가 팔꿈치를 들여다보았다.
수술받은 흔적이 선연했으나 이미 잘 아물어 있었다.
근처 연조직에서 통증이 유발되지는 않을 거란 얘기였다.
“팔꿈치 움직이는 건 어떠세요?’
“아……. 이렇게는 되는데요.”
다만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다.
팔을 완전히 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환자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뒤에 서 있던 류동진 교수를 바라보았다.
아마 시야에서 완전히 거두기도 쉽지는 않았을 텼다.
류동진 교수는 누가 정형외과 아니랄까 봐 키가 꽤 큰 편인데, 그런 양반이 앉지도 않고 서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원래 수술하고 나서는 저렇게까지 제한이 있지는 않았어요.”
환자의 눈빛을 받은 류 교수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대꾸했다.
손을 휘적거리면서였다.
뭔가 문책하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환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수술하고…… 두 달? 그때는 이것보다는 더 펴졌어요.”
“그 이후로 이렇게 된 거란 얘기시죠?”
“네.”
“류 교수님. 이런 경우가 잦은가요?”
수혁은 그런 환자의 말을 듣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었다.
드물다는 거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부러 물어본 거라고 보면 되었다.
[이 사람은 지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 실력에?’
[별로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뒷자리에 서 있다는 거부터가…….]
‘감시받는단 느낌이 드는 게 착각이 아니라는 거지?’
[네, 수혁은 사람인데 왜 그렇게 둔할까요? 안대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난리 법석을 피웠을지도 모르겠단 판단까지 서는데요.]
‘그럼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요. 실력을 보여주시죠. 원래 그런 거 잘하지 않습니까?
‘오케이.’
이런 대화를 나눈 탓이었다.
물론 류동진은 수혁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친구가 역시 잘 모르는구나.
그래도 묻는 걸 보니 사고 칠 생각은 없어보여 다행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답을 해주었다.
“드물죠.”
“수술 후 연조직이 유착되는 경우가 일반 외과에서는 흔한데……. 정형외과는 어떻죠?”
“장 유착 말씀하시는 거죠?”
“그뿐만 아니라 목이나 어디가 되었건 간에 생길 수 있죠.”
“음…….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드뭅니다. 그리고 MRI에서 어느 정도 확인이 될 텐데…….”
“한 달 전에 찍은 영상에서는 그런 소견이 없었어요. 맞죠?”
“아, 네.”
류동진은 약간 쌔한 느낌을 받았다.
어째 알면서 물어본 거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묻기엔 환자가 있었고, 수혁은 이미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 상황이었다.
“제가 수술 후 찍은 영상이랑, 수술장에서 찍은 수술 영상도 봤는데…… 수술이 잘못된 거 같지는 않더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근데 왜 아픈 거죠?”
환자는 수혁의 말에 잠시나마 원망하는 눈빛을 류동진에게 쏘아 댄 후 물었다.
정말 궁금했다.
수술이 그렇게 잘됐으면 대체 왜 아픈 걸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미 병원 앞을 서성이던 브로커가 접근한 적도 있었다.
의료 사고일 수도 있지 않은가.
병원에서 작정하고 숨기려 들면 밝히기 어렵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단 당시부터 지금까지 류동진 교수의 태도를 돌이켜 보면, 이 사람은 좋은 의사 같았다.
그래서 보류하던 찰나에 수혁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믿어 보자.’
여기서도 결론이 안 나면, 미안하지만 법적인 도움을 받아 볼 생각이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나 내막까지 캐내지는 못했으나, 바루다는 어찌 되었건 환자가 꽤 절박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다.
[서둘러서 진료 보는 게 좋겠군요. 환자는 이미 참을성이 바닥났어요.]
‘나 원래 서두르잖아?’
[말도 빨리하라 이 얘기죠. 검사할 거 있으면 빨랑 하고요. 우리가 의심하는 게 뭔지도 털어놓으세요.]
‘알았어, 알았어. 왜 이렇게 보채?’
인간화되어 가고 있는 바루다와는 반대로 인공지능화되어 가고 있는 수혁은 그러한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원래도 천천히 갈 생각은 없었으나, 이제는 액셀을 밟을 생각이어서 그랬다.
“의뢰서 내용과 환자분 검진 내용을 종합해 보면…… 환자분은 대략 6…… 아니죠. 이젠 7개월이 다 되어 가는군요. 하여간 그때 넘어지면서 팔꿈치에 골절이 발생했습니다. 이전에 골다골증으로 진단받은 적은 업고요.”
“네.”
“관절 부위긴 했으나, 다행히 완전히 동강 난 것이 아니었고 관절 부위를 직접 침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술도 잘됐고요. 수술 후 2달 후에 시행한 검진에서는 그 어떤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네, 맞아요. 조금 우리긴 했지만…… 이렇진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동시에 움직임에 제한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후 시행한 영상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어요. 자율신경계통 검사도 했는데 정상이었고요.”
“네, 음. 그래요.”
환자는 빠르게 이어지는 수혁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 불만 어린 얼굴이 되었다.
대단히 똑똑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긴 하는데, 정리해 보면 다 아는 내용이지 않은가.
여태 했던 진료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역시 브로커를…….’
브로커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때 수혁이 기습처럼 입을 열었다.
“그 말은 곧 골절 외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는 걸 시사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수술이 잘되었으니 골절은 해결된 셈이죠. 그런데 그 후에 통증이 생겼으니 새로운 병이 생겼다는 걸 의심해 봐야겠죠.”
지금껏 들어 보지 못한 논리였다.
환자에게는 놀라운 얘기였고, 류동진에게는 황당한 얘기였다.
새로운 질환이 생겼다면 MRI에서 놓쳤을 리가 있는가.
끼어들려 했으나 수혁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가고 있어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고 환자분의 MRI와 이전에 찍은 영상을 보겠습니다.”
“네.”
수혁은 그사이 환자의 엑스레이와 MRI 영상을 띄웠다.
영상의 종류가 다르다 보니 해당 영역에 대한 지식이 없는 환자로서는 이게 뭔가 싶기만 했다.
처음엔 류동진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상 본 것으로 따지자면, 거의 외울 지경이었기에 그랬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었다.
“이때 보면 엑스레이에서 골유합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아, 골유합이라는 건 뼈가 붙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때 이미 깁스 푼 지 한 한 달은 되셨을 거예요.”
“네, 맞아요. 그땐 다 나았다고 생각했습니다.”
“MRI를 볼게요. 골유합 상태 자체는 비슷합니다. 근데…… 이 안에, 그러니까 골수인데요. 이곳의 활성도가 조금 증가해 있습니다. 이 말은 골유합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뼈가 뭔가 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거죠.”
“교수님이 골절 후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소견이라고 했는데요.”
“맞아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환자분이 60세니까 반응이 좀 느리다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엑스레이 소견을 보면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환자분은 지금 증상이 있죠.”
“음……. 그건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이게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 약간요. 약을 먹어도 아프긴 해요, 이제는.”
수혁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보기 전에는 그럴 수 없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환자의 왼팔 오른팔의 두께가 달라서였다.
수술 때문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골절이 발생하면 해당 부위 팔은 더 얇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근육이 빠져서인데, 이 환자는 반대였다.
[촉지 했을 때, 왼팔의 팔꿈치 부근의 뼈가 전반적으로 우측보다 두껍습니다.]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분석한 바에 따르면 환자의 뼈는 조금 자라 있었다.
황당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나이 60에 뼈가 자라다니.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일까?
그건 또 아니었다.
“오늘 MRI를 한 번만 더 찍어 보죠. 뭔가 더 달라져 있을 겁니다.”
“어……. 그거 비싸던데.”
“하지만 진단을 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그…….”
환자는 망설였다.
MRI란 검사가 위험하지는 않아도 보통 성가신 게 아니어서였다.
땅땅땅 울리는 소리도 소리였고, 시간도 길었다.
무엇보다 비쌌다.
“이수혁 교수님. MRI를 한 달 간격으로 찍는 프로토콜은…….”
“거의 없죠. 하지만 이 환자와 같은 케이스를 자주 보십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프로토콜을 따를 이유가 있을까요? 이미 수술 후 MRI를 찍었다는 것부터가 일반적이진 않지 않나요?”
“그건…… 네.”
류동진은 이현종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더 홀가분하게 온 참이었다.
아무리 타과 교수라고 해도 이현종은 좀 대하기가 까다로워서였다.
아니, 원래 내과는 좀 껄끄러운 상대긴 했다.
뭔가 바이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매달릴 만한 상대가 내과뿐이어서였다.
그중에서도 심장을 보는 이현종은 벌써 몇 명이나 살려 준 전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의사 집단에서는 다소 거친 축에 든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 앞에서, 심지어 전임 원장에 지금도 잘나가는 사람 앞에서 감시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근데 이수혁 교수도 만만치는 않구나……. 괜히 아들이 아냐.’
류동진 교수는 일목요연하게 따지고 드는 수혁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듣다 보니 달리 할 말이 없어져서였다.
“환자분, 익히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환자분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MRI를 찍어 보는 게 좋아요. 이 시간으로 부른 이유도…… 저희가 MRI 예약을 미리 해 놔서입니다. 지금 찍으면 바로 찍을 수 있어요.”
“찍으면…… 뭐가 나올까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얼마나요?”
“95% 이상.”
“아.”
환자는 수혁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분명 MRI는 불편한 검사였고, 또 비싼 검사였다.
심지어 저번에 한 검사에서는 이렇다 할 이익도 보지 못한 참이었다.
오히려 제일 듣기 싫은 소리인, 수술은 잘됐다는 말만 더 듣게 되었다.
해서 절대 찍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눈앞의 젊은 의사가 이렇게 나오자 또 생각이 바뀌었다.
“찍으시죠. 반드시 뭔가 나올 겁니다.”
“그…… 알겠습니다.”
장담까지 한다고 하니 더 무를 이유도 없었다.
환자는 곧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센터 내에 마련된 MRI실로 향했다.
센터 내에 있다고 해서 센터에서만 쓰는 건 아니라 약간의 대기가 있었다.
환자야 누운 채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있었기에 류동진과 수혁은 조금 시간이 떴다.
류동진 교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정말 장담할 수 있습니까? 교수가 그런 소리…… 함부로 해서는 안 될 텐데요.”
“네, 그렇죠. 하지만 이번엔 달라요.”
“음…….”
“류동진 교수님.”
“네?”
“저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겠죠?”
“아……. 네.”
내과 쪽에서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못 들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관심을 두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천재라고 했던가?
아니, 어떤 놈은 아예 현대 의학의 역사를 바꿀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류동진은 다른 의사들이 그러하듯 자신도 충분히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홀랑 넘어가기보다는 오히려 반감을 가진 편이었다.
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수혁이 입을 열었다.
“그 소문은 오히려 축소된 거예요. 오늘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말을 듣는 순간 류동진은 환자에 대한 걱정을 잊고 기도했다.
‘이 새끼 제발 틀리게 해 주세요.’
건방져도 너무 건방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