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화 정형외과도 (6)
‘하나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류동진이 자신이 안다기보다는 들어 보기라도 한 신을 다 찾아가며 기도했다.
수혁이 틀리는 게 환자에게 불행한 일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귓가에 울리는 건 단 하나, 방금 수혁이 했던 그 건방지기 짝이 없던 말뿐이었다.
‘소문이 축소된 거라고? 와…….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한참을 어이없어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또 센터 내에 들어섰다.
둘이었는데 하나는 김선웅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현태였다.
“어…….”
계속해서 감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던 류동진은 팔짱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표정 또한 달리해야만 했다.
신현태가 누구란 말인가.
‘미친 사람이지. 이수혁한테 미친 사람.’
수술 전에 김선웅한테 거의 매일같이 찾아와서 난리 법석을 피워 대던 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오죽하면 순한 편인 김선웅이 술 먹자고 하더니 내과 개새끼들이라고 외쳤을까.
병원 바로 앞에 있는 호프집이라 병원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임을 생각하면, 김선웅이 당시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그 미친놈이 아랫사람이면 참 좋을 텐데.
하필 원장이 됐다.
언제까지 내과가 권력의 중심에 있을 거냐는 말이 다 나올 정도였다.
다른 병원 같았으면 매출로 딱 줄 세워서 정형외과가 한 번쯤 할 때가 됐을 텐데.
‘이것도 이수혁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센터 새롭게 출범하는데 원장이 내과 아니면 아무래도 밀어주는 데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이사회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터였다.
다른 과로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리 내과가 기둥이니 뭐니 해도 연속으로 원장단을 내과에서 꾸리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어, 류 교수. 협진 냈다며.”
“아……. 네, 원장님. 하하.”
물론 류동진은 사회생활을 할 만큼 한 사람이었다.
속으론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노골적으로 티 내진 않았다.
“어쩐…… 어쩐 일이세요?”
“아, 뭐 정형외과 첫 의뢰기도 하고. 나도 얘기할 게 있어서 왔지.”
“그러시구나.”
“근데 환자는 어디…… 아, MRI 찍나? 뭔가 결정적일 때 온 거 같은데?”
“그…….”
류동진은 차마 그렇다고는 말을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틀리라고 기도했던 주제에 안면을 싹 갈고 그따위 말을 떠들기엔 아직 낯짝이 덜 두꺼워서였다.
대신 먼저 들어온, 아마도 프락치 노릇을 했을 것이 뻔한 김선웅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너는 뭐 하는 새끼야, 뭐 이런 얼굴이었다.
김선웅으로서는 김선웅대로 억울했다.
‘나는…… 나도 감염 환자 있어서 협진 냈는데, 원장님 병동 오셔서 마주친 거라고…….’
해서 눈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
물론 둘이 부부도 아닌데 복잡한 얘기가 눈으로만 전달될 리는 없었다.
류동진은 그저 이상한 새끼네 하고는 다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신현태는 수혁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간 후였다.
애초에 류동진의 기대가 잘못된 것이었다.
수혁이랑 류동진이 있는데 왜 이쪽으로 관심을 둔단 말인가.
“어, 수혁아. 환자 MRI 찍어?”
“네. 삼…… 아니, 원장님.”
“하하하하! 삼촌이라고 해도 되지, 뭐. 낙하산도 아닌데. 숨길 거 있니.”
숨기고 자시고 할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삼촌이 아니라는 얘기는 그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원장이 상대라서라기보다는 사람이 이렇게 좋아서 껄껄 웃는데 거따 대고 무안 주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하여간 왜 찍는 거야? 대강 들었는데 찍기는 했다며?”
“아……. 네. 골유합으로 보이는 골수 활성화가 있는데, 제가 봤을 땐 그게 골유합이 아니라 그냥 다른 이유로 활성화가 일어난 거 같아서요.”
“음. 그럼 뭐…… 종양 얘기하는 건가?”
“네.”
“조태진……. 쟤도 불렀니?”
신현태는 그럼 혈종 조태진이 볼 수도 있겠네, 뭐 이런 유쾌한 드립을 치려다가 센터 유리문 너머로 보인 진짜 조태진의 얼굴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쟤는 대체 여기 왜 왔을까 싶었다.
따지고 보면 신현태 본인이야말로 딱히 할 일도 없이 온 참이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현종이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 여기면서였다.
“어, 아뇨. 근데 옆에 있는…….”
“대, 아니지. 하하. 안대훈 선생?”
“네. 그 친구랑 어제 이 케이스 같이 검토하긴 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주 할 일 없이 온 건 아니로구만.”
신현태는 괜히 류동진 눈치를 살폈다.
자신도 그렇지만, 조태진도 이 케이스는 핑계일 게 뻔했다.
그저 수혁 얼굴이나 보고 될 수 있으면 점심도 먹으려고 왔을 터였다.
류동진이 보기에 내과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야, 넌 왜 왔어.’
‘아니, 나는 협진 냈는데……. 원장님이 오셨더라고. 얘기하다가 보니까 여기던데.’
‘가서 분 건 아니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수상해. 괜히 어? 정형외과 환자를 의뢰하라고 하고 말야.’
‘불긴 뭘 불어. 나 안 친해.’
‘안 친하다고? 너 저번에 레미 마르탱인지 뭔지 하는 꼬냑도 선물 받았다며.’
‘그건 아들 수술 잘해 줬다고 받은 거지…….’
기우라고 보면 됐다.
류동진은 내과 놈들보다는 배신자 색출에 여념이 없었으니까.
“교수님들 이제 곧 찍을 건데……. 들어오실 건가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제 환자가 안에 들어간 탓이었다.
조영제도 쏠 거라 라인도 잡고 하느라 시간이 걸린 편이었다.
“아, 네.”
“그래, 들어가자.”
“나도.”
“아니, 그럼 저도.”
수혁이 들어가자 신현태, 조태진 그리고 류동진이 차례로 들어갔다.
더 들어갔다간 터질 거 같아서 밖에 남은 김선웅은 이미 터질 거 같아 보이는 촬영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여기서도 거의 바로 볼 수 있는데 굳이 저길 왜 들어가는 거야?’
수혁을 수술해 주기도 했고, 또 그의 실력도 인정하는 바이긴 했으나 개인적인 호감은 없는 터라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안에서는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신현태와 조태진은 티 나지 않게 수혁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 바람에 정작 제일 중요한 방사선사가 옆으로 밀렸다.
‘여기가 다 좋은데…….’
MRI도 그렇고 CT도 그렇고 방사선사는 모두 소속이 영상의학과였다.
기기가 응급실에도 있고, 여기도 있고 지하에도 있지만 모두 거기서 파견을 나온다는 얘기.
그중에서 센터 MRI실은 나름 꿀 보직이었다.
응급실처럼 급한 환자를 찍는 것도 아니고, 지하에 있는 정규 MRI실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어서 그랬다.
다들 선호하는 자리다 이 말인데, 인계 사항에 뜻밖의 주의 사항이 있었다.
‘낑기지 않게 주의할 것.’
그냥 보면 이게 뭔 소리야 싶을 텐데 와 보면 알았다.
“아우. 저 좀 이거.”
“아, 죄송합니다.”
“하하.”
교수들 틈바구니에서 촬영을 해야만 했다.
이게 육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데, 정신적으로도 피곤했다.
“이제 나오나?”
“아뇨……. 지금 눌렀어요.”
“그래요? 궁금해서.”
“네…….”
“그럼 지금 나오나?”
“그…….”
“하하, 미안해요. 미안.”
그나마 이현종보다는 다들 나았다.
이현종이 들어오는 날은 버튼 누르지 않게 주의까지 줘야 했으니까.
다행히 이 중에서는 그렇게까지 성질이 급하거나 또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어서 촬영 자체는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그 말은 곧 영상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단 뜻이었다.
“음…….”
그냥 봐서는 사실 차이를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쪽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좋은 신현태가 보기에도 그랬다.
‘확실히 골수가 좀 증강되기는 하네?’
딱 이 정도였다.
그에 반해 조태진과 류동진은 감회가 달랐다.
‘이거…… 여기가 팔꿈치지?’
조태진은 다소 익숙한 모양임을 상기했다.
하지만 부위를 떠올리고 나서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더 증강이 되네. 이거 정말로……?’
방금 전까지도 영상을 보고 온, 그야말로 이 케이스에 매몰되었다고 해도 좋은 류동진은 입을 벌렸다.
그냥 옛날에 봤던 거로 만족하고 또 이 영상을 봤다면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여겼을 터였다.
그만큼 변화가 확연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조금이나마 더 증상이 되었다.
조금이면 별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러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이라 예민하게 반응해야만 했다.
“류 교수님?”
그렇게 입을 벌리고 있으려니, 수혁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연배를 고려하면 버릇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류동진은 그러지 못했다.
수혁이 아까 건방진 말을 했을 때보다도 더 건방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랬다.
키가 류동진보다는 작아서 올려다보는데도 이런 느낌이 들 정도면 얼마나 표정이 노골적인지 짐작 가능할 터였다.
‘옳지, 잘한다.’
‘역시 우리 수혁이.’
정말 삼촌이나 형이었으면 이럴 때 바로잡아 줘야 할 텐데.
신현태와 조태진은 그런 수혁을 그저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자세한 건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이 환자에게 통증을 일으키고 있는 건 골절이 아닙니다.”
“그…… 나도 이제는…….”
“종양을 생각하시겠죠? 그럼 어떤 종양일까요?”
“어떤?”
류동진은 화낼 타이밍을 놓친 채 뒷걸음질 쳤다.
종양까지 말했는데 어떤 종양이냐고 물으면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조직검사를 하기 전에 종양 종류를 특정할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맞지 않았다.
‘근데……. 이것도 사실 상식에 맞지는 않지.’
오죽하면 기도까지 했을까.
틀려야만 했는데, 맞아 버렸다.
류동진은 이제 신 대신 니체를 찾으며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신은 죽었다는 말 말고는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어떤 종양을 의심하나요?”
“아니, 조직검사를 안 했는데……. 방금 이수혁 교수도 말했잖아요? 조직검사를 안 했다고.”
“네, 그래도 그 전에 의심할 수 있는 소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대체 그게 뭐냐는 말이 하마터면 나갈 뻔했다.
간신히 참아 내기는 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밖에 있던 김선웅으로서는 대체 뭔 얘기가 오가길래 저렇게 됐나 싶을 따름이었다.
그때 안대훈이 입을 열었다.
“류동진 교수님 술 좀 사 드려야겠는데요?”
“응?”
“지금 발리고 계신 거 같아요. 교주님한테.”
“뭐, 뭐라고? 발려? 교주?”
내과 애가 맞나 싶었다.
종종 망상 장애 환자들이 가운 입고 나타나지 않던가.
김선웅은 심지어 학생 시절 실제로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이상한 열기를 띠고 있는 것 말고는 확실히 의사 같았다.
‘내과 놈들……. 하여간 이상해.’
김선웅이 고개를 다시 한번 가로젓는 사이, 수혁이 말을 이었다.
“비호지킨 림포마가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동떨어진 골수에서 발현되는 건 정말 드문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첫 케이스 리포트가 보고된 이후로는 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죠.”
“어…….”
“그중에서도 팔꿈치에 호발하면서, 호발이라고 하기엔 극히 드물지만, 상대적으로 호발한다는 뜻입니다. 하여간 팔꿈치에 호발하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동시에 이 정도의 속도를 보이는 질환은 하나뿐이죠. 여기까지 하면 아시겠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