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89화 (489/1,303)

489화 드디어 외국 환자 (1)

수혁은 거기까지 말했음에도 기실 기대를 품지 않았다.

질환을 알고 있지 않은 한 유추는 불가능해서였다.

당연히 류동진은 어리둥절한, 반쯤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만 모르나 싶어서였는데 신현태는 그저 웃고 있어서 판별이 불가했다.

‘우리 수혁이. 말하는 것 좀 봐라.’

자기도 의사인 주제에 영 모르겠단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감염내과 의사가 다른 질환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이기도 했고, 지금은 그저 수혁이가 대견스러워서이기도 했다.

‘미만성 거대 B 세포 비호지킨 림프종이겠군.’

반면 조태진은 감을 잡아서 웃고 있었다.

어떻게 팔꿈치인데 류동진보다 조태진이 잘 아느냐는 질문은 의미 없을 터였다.

조태진이 비록 수혁 옆에만 서면 좀 이상해 보이겠지만, 실은 혈종의 라이징 스타 아닌가.

혈액암이라고 분류되는 질환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한 스페셜리스트가 없다, 이 말이었다.

심지어 수혁의 도움 하나 없이 스스로 NEJM에 벌써 논문을 두 개 다 더 등재했을 정도의 능력자였다.

‘하……. 내과 놈들은 아나?’

하여간 류동진은 신현태, 조태진 둘 다 웃고 있음에 좌절했다.

내과 쪽이 원래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원래도 내과로 빠지는 애들이 공부 벌레들 아닌가.

의사들끼리도 그런 게 나뉘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정형외과는 스스로 평하기를 상남자들의 과라고 하기에 일쑤였다.

실제로 의대 내에서는 제일 거친 사람들이 가는 과이기도 했고.

‘나도 공부 아예 안 하지는 않는데……. 이쪽도 좀 할걸. 아니, 의뢰를 하지 말걸……. 아니지, 안 냈으면 이거 진단 못 했을 거 같은데. 하, 망할.’

류동진은 복잡해진 머리에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뼛속 깊이 느꼈군요.]

‘무력감을?’

[네. 각인했습니다.]

‘좋아.’

수혁과 바루다는 그런 류동진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치고는 실제로 입도 열었다.

“미만성 거대 B 세포 비호지킨 림프종이겠죠. 95% 이상의 확률로요.”

“허…….”

“환자분 정말 많이 아팠을 겁니다. 바로 혈종으로 전과해서 조직검사 의뢰하고 결과 나오는 즉시 항암 치료를 해야 합니다.”

항암 치료.

환자들이 듣기에도 절망스러운 말이겠지만 의사에게도 사실 비슷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었다.

조태진처럼 혈액종양내과 의사라 늘 하는 치료가 항암 치료라면야 당연히 익숙하겠지만.

항암 치료와 거리가 있는 의사들은 듣자마자 경직되기 마련이었다.

류동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항암 치료…… 아…… 이거 설마 죽을 수도 있고 그러나요?”

“반응이 그리 나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수혁은 충격받은 얼굴이 된 류동진을 보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촬영 막바지에 다다른 환자가 보였다.

그저 팔꿈치가 아프단 생각만 하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든 치료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암이란 질환을 생각한 적이 있을까?

[죽을 수도 있다고 하십쇼.]

‘넌 닥쳐, 인마.’

아마 한 번도 없을 터였다.

당연히 죽음을 떠올린 적도 없을 테고.

다만 불편함을 어떻게든 해결하기만을 원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수혁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게 환자가 아니라 류동진임에 안심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이도 있고 하니 죽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아이고, 이런 젠장……. 너무 늦어서 그래요?”

“지체됐냐고요? 아뇨, 너무 자책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도 한 달 전이라면 바로 진단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말은 누구라도 못했을 거란 얘기죠.”

말하자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못하면 남들도 못 한다 뭐 이런 뜻이었다.

건방지기로만 따지면 점입가경이라 할 수 있었는데 반발심은 크게 누그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이놈 아니었으면 환자를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 아닌가.

골절로 와서 치료해 줬는데 난데없이 암이라니?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는 질환이었다.

“그…… 네, 감사합니다.”

“그렇죠. 감사하죠?”

“네?”

“하여간…… 혈종으로 전과시켜 주세요. 입원 준비해서 오시라고 말씀드려 놨으니, 바로 입원 될 거에요. 조태진 교수님, 되죠?”

수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의 아니, 당황한 얼굴의 류동진을 외면한 채 조태진을 돌아보았다.

조태진은 허허 웃었다.

“당연히 되지.”

병실이 없어도 만들어서 받을 생각이었다.

수혁이가 보내는 환잔데 아무렴 여부가 있겠는가.

집에라도 가능하면 받아야 했다.

수혁은 조태진이 설마하니 이런 미친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요. 조직검사 서둘러서 하고…… 항암 들어가면 아마 괜찮을 겁니다. 다만 부위가 팔꿈치다 보니…….”

“팔꿈치가 무슨 문제가 될까요?”

류동진은 수혁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은 꿈에도 몰랐다.

수혁과 바루다는 정확히 꿰뚫어 보았지만.

[보기 좋군요.]

‘그래, 이게 올바른 눈높이지.’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류동진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혀서 수혁과 눈을 마주치고 있어서였다.

조태진이나 신현태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배 높은 사람이 이러고 있으면 교정해 줘야 할 텐데 그냥 두었다.

마땅한 대우라고 생각해서였다.

“뼈가 너무 작아서요. 통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예후에 그리 좋은 인자는 아니거든요. 아시죠, 원래 암은 증상이 있으면 조금 진행한 상태라는 거.”

“아…….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팔꿈치는 작아서 완전히 괴사가 오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커요. 그럼 절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팔을 잘라요?”

류동진은 대번에 절단술부터 떠올렸다.

오버하는 건 아니었다.

큰 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류동진이야 상지를 보는 교수니 좀 나았지만, 김선웅은 정말 많은 사람의 발과 다리를 잘랐다.

“아, 아뇨. 뼈를 자르죠.”

“아, 휴.”

“항암이 잘 들으면 괜찮고요.”

“그…… 잘 부탁드립니다.”

“저보다는 조 교수님이 하시겠죠.”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하여간 교수들끼리의 대화는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다 끝난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은 이제 시작이었다.

담당하던 교수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당사자는 어떻겠는가.

때문에 촬영실을 나올 땐 다들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암 환자에게 당신 암 걸렸다고 선고하기 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어서였다.

“제가 말씀드리죠.”

모두들 저어하는 가운데 조태진이 나섰다.

그라고 해서 나쁜 소식 전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여기선 제일 나아서였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대라면 다음과 같았다.

‘수혁아, 형이 이렇게 도움이 된단다.’

당연히 조태진이 이런 얘기를 막 떠들 만큼 정신이 없지는 않았기에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다만 신현태는 조태진의 꿍꿍이속을 손쉽게 꿰뚫었다.

‘그래, 그렇게라도 쓸모를 증명해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쉽사리 예상이 가능해서였다.

“저도 같이 가 있겠습니다.”

“네. 저도 뒤에 있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여간 말을 꺼내는 건 조태진이라도 익숙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기에 류동진과 수혁 모두 환자에게로 몰려갔다.

환자는 잠시 이렇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데 놀라워하다가 진단명을 듣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암 환자들이 흔히 보여 주는 부정 단계였는데, 조태진은 거기다 대고 굳이 아뇨 당신 암이 맞아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의심이 될 뿐,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한다고 돌려 말했다.

덕분에 환자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속은 엉망이겠죠?”

“당연하지. 당장 나부터도 암이라고 하면…….”

수혁은 입원을 위해 원무과로 향한 환자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신현태가 인상을 쓴 채 대꾸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니, 이런 표정을 짓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들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니만큼 금세 다른 화제로 옮겨갈 수 있었다.

너무 한 환자에 매몰되어 있으면 다른 환자 치료하는 데 영향이 가지 않는가.

더 나아가 계속 그런 상태에 있다 보면 오히려 대학 병원에서 더 일하기도 어려웠다.

“아, 맞아. 수혁아.”

해서 더 일부러 화제를 돌리는 것도 있었다.

신현태는 실제로 중요한 일이기도 해서 더 손쉽게 입을 열 수 있었다.

“네.”

“의뢰 왔어.”

“어……. 제가 모르는 의뢰가 있어요?”

“국제 의뢰는 그쪽으로 안 가잖아. 아직 시스템이 없어서.”

“아……. 외국에서 의뢰가 왔어요?”

사실 류동진은 이제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아무리 수혁에게 은혜를 입은 상황이기는 해도 계속 있기는 좀 껄끄럽지 않은가.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고, 상처 입은 자존심은 자존심이었다.

‘외국?’

하지만 너무 흥미로운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해서 류동진은 김선웅과 함께 모르는 척 자리를 뭉갰다.

“응, 너 싱가포르에서 리홍이 의원이랑 좀 잘 지냈잖아.”

“아……. 그렇죠.”

“그 사람 의리 있더라고. 아직 우리 센터 짓지도 않았는데 지인들 통해서 홍보를 좀 한 모양이야.”

“오…….”

“싱가포르 대학 병원에서 의뢰가 왔어. 알지? 싱가포르 대학 병원이 어떤 위치인지.”

“알죠. 우리로 치면 태화죠.”

사실 태화라는 것도 좀 모자란 감이 있었다.

국제 대학 순위에서 싱가포르 대학은 11위, 아시아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명문이기에 그랬다.

꼭 대학이 좋다고 병원 수준도 높은 건 아니겠지만, 전반적으로 싱가포르 의과 대학 수준이 영국보다도 높다고 인정하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응, 거기서 온 의뢰야.”

“되게 중요하겠는데요?”

“그렇지. 다행히 그쪽은 협조적이야. 리홍이 의원 입김이겠지. 아예 모르는 케이스인 거 같기도 하고.”

“음……. 과가 어딘데요?”

수혁의 말에 신현태가 조태진을 힐끔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이제 보내고 싶은데 그럴 명분이 없었다.

이제 더 없어질 터였다.

“혈종.”

“오, 그럼 나도 도울게.”

“저야 좋죠. 환자 언제 오는데요?”

신현태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조태진을 견제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의뢰 방식이 다소 특이한 탓이었다.

아니, 어쩌면 21세기에 알맞은 방식일 수도 있었다.

“안 와.”

“네? 안 와요?”

반면 대답을 들은 수혁과 조태진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처음 싱가포르 대학 측에서 얘기를 들었을 땐, 신현태도 이랬으니까.

환자도 안 보낼 거면서 의뢰 운운한 것에 화까지 났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 나서는 전혀 생각이 달라진 상황이었다.

신현태는 이 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응, 비대면이야. 원격이지.”

“아……. 어차피 진단을 모르는 거고, 치료는 거기서도 될 거라 생각하는 거죠?”

“그것도 있는데,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대. 도저히 올 수 없는 상황이래.”

“아하……. 합리적이네요.”

“그렇지.”

“언제 된대요, 그럼?”

“지금도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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