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90화 (490/1,303)

490화 드디어 외국 환자 (2)

지금 된다고?

수혁과 조태진은 조금 놀란 얼굴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그런 둘을 보면서도 신현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왜? 여기 설비도 다 있잖아?”

“있기는 있는데……. 그거 비용 지불 문제가 있어서 보류잖아요.”

수혁은 이현종과 함께라고 하기엔 거의 혼자 설계한 센터를 돌아보았다.

구석에 원격 진료실이 놓여 있었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거 아니었다.

그냥 빠른 컴퓨터에 웹캠과 감도 좋은 마이크 그리고 방음 설비가 된 방일 뿐이었다.

어차피 게임 방송 같은 걸 할 게 아니어서 컴퓨터는 기부받아서 써도 되는 수준이었으나 방음에는 돈이 좀 들어간 거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예 쓰지 못하고 있는 건 원격 진료라는 게 국내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아서였다.

“어, 그렇지. 근데 뭐……. 내가 누구니. 원장 아니냐.”

“네, 그렇죠.”

원장이 뭐,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수혁이 여태 본 원장은 이현종과 신현태뿐이지 않은가.

경영 쪽으로 수완이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해서 바루다나 수혁이나 별 기대 없는 얼굴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돈이 중요한 건 아니죠?]

‘어차피 내 돈도 아냐. 들어와 봐야 병원 돈이지.’

[속이 시커멓네요?]

‘뭐 인마. 환자 볼 생각이 있으면 되는 거 아냐?’

[그건 그렇죠.]

방금 말한 것처럼 진료비라는 게 다 병원 문제 아닌가.

당장 망할 수도 있는 병원이라면야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볼 수도 있겠는데, 이곳은 태화였다.

그중에서도 태화 생명은 직접적으로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라 돈이 진짜 많았다.

애초에 태화에 속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관련 상품을 팔아도 회사가 충분히 돌아갈 만큼 커다란 사이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대부분의 적자 보는 과 의사들의 마인드는 이러했다.

‘회의 때 좀 미안해하고 돌아서면 되지 뭐. 우리 센터는 심지어 적자도 아냐. 투자금 생각하면 좀 속이 쓰릴 수도 있겠는데…….’

[이현종 말로는 마케팅 효과가 있어서 괜찮다고 하던데요.]

‘아빠는 원래 제멋대로 말하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혓바닥이 길었는데, 뻔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원장이다 보니 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꽤나 당당한 얼굴로, 원격 진료실로 향하면서 입을 열었다.

“기부금 받기로 했어. 물론 잘되었을 때 얘기긴 한데. 네가 뭐 잘하겠지.”

“아……. 기부금이요? 환자가 부자예요? 아니면 좀 너무하잖아요.”

“부자래. 부자니까 리홍이가 직접 연락을 하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아…….”

아픈 사람에게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건 분명 마음 아픈 일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또 이렇게 기부금을 받게 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태화나 칠성, 아선은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환자들 치료가 잘 이루어지는 편인데, 이런 식의 기부금이 많아서였다.

일종의 선순환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여간 앉아 봐.”

“아, 네.”

“이거 켜서……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아. 맞아. 번호가…… 옳지 여깄네.”

신현태는 미리 받은 내용이 있는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러자 곧 모니터에 낯선 풍경이 떴다.

어떻게 봐도 우리나라는 아니었다.

병원 생김새도 그렇지만 앉아 있는 이들이 외국인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중 아는 얼굴도 있었다.

리홍이였다.

[환자가 어지간히 거물인 모양입니다.]

‘그렇겠네. 이 양반이 전화로 청탁만 한 게 아니라 아예 이렇게까지 있는 거 보면……. 이거 어쩌면 나한테도 잘된 일 같은데.’

[환자를 눈앞에 두고서도 한결같은 이기심. 존경합니다.]

‘말로 맥이지 말고.’

[저는 진심인데요?]

‘그런 데다가 진심 담지 말라고.’

수혁은 실로 오랜만에 바루다에게 진심으로 빡쳐서 뭐라고 해댔다.

덕분에 어색하다 여겨질 만큼의 침묵이 있었는데, 다행히 상대는 그저 회선이 느려서라고만 여기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수혁 교수님.”

해서 리홍이는 다시 한번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인사를 건네 왔다.

수혁도 두 번 씹을 수는 없어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의원님.”

“갑자기 이렇게 부탁을 드리게 됐습니다.”

“네, 저야 의사니까요. 환자 보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그…… 네.”

리홍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환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주었다.

환자 본인이 직접적으로 리홍이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환자의 형이 아주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정계 쪽으로 후원도 많이 하는 거물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부탁을 했어요? 저한테 진료 의뢰해 달라고?”

“네. 제가 좀 얘기를 많이 했더니……. 전에 보셨던 다른 의원님도 사석에서는 꽤 얘기한 모양입니다.”

“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의원들의 말이 아닌가.

상대가 가벼이 여겼을 리는 없었다.

그중 누군가 기억해 뒀다가 절망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다시 한번 떠올렸다고 해도 어색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환자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몰라서……. 지금부터는 여기 장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을 겁니다.”

“아, 네. 그렇게 하시죠.”

리홍이는 잠시 환자의 배경에 관해서만 얘기하고는 슬쩍 뒤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장이라는 의사가 앞으로 나섰는데 얼굴만 봐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HD 화질임에도 그랬다.

[그건 수혁이 인간성을 많이 잃어서 그렇습니다.]

‘아, 나만 그런 거야?’

[아뇨, 사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 새끼가.’

바루다도 바로 분석이 안 되는 것을 보면 보통 포커페이스가 아니었다.

하여간 그는 곧 의무 기록을 화면에 띄우곤 입을 열었다.

“환자는 50세 여자로…… 흡연력이나 기타 다른 기왕력은 없습니다. 38도의 발열과 기침을 주소로 응급실에 내원했습니다. 응급실에서 시행한 검진에서 폐에 덩이가 관찰되었고……. 이게 당시 찍은 CT입니다.”

“폐암이군요. 좌측에.”

“네. 수술은 하려면 할 수도 있겠는데……. 열이 문제입니다.”

“그렇군요.”

폐가 뭉글뭉글한 조직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안쪽엔 아예 감각이 없는 장기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폐암은 증상을 일으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와는 별개로 빨리 자라는 편이기도 했고.

하여간 여러 가지로 참 예후가 좋지 못한 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환자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기침을 하는 바람에 작은 종양을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폐암에 대해서는 따로 워크업을 들어갔고, 발열 원인에 대한 워크업도 진행 중입니다.”

“네. 열이 있는 상태에서 항암 치료는 어려울 테니까요. 수술은 더더욱 그렇고요.”

“네, 그렇습니다. 근데…….”

“발열 원인을 모르시겠다는 거죠?”

“네.”

“일단 사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네.”

수혁의 말에 닥터 장은 엑스레이를 띄웠다.

좌측 하엽에 덩이가 있었고, 그 밑으로 하얗게 변한 병변이 보였다.

그냥 이렇게만 봐서는 하엽에 발생한 암덩이가 무언가를 틀어막으면서 발생한 무기폐 또는 감염으로 보였다.

[그 정도라면 싱가포르에서도 진단을 하긴 했을 겁니다.]

‘그렇겠지? 제대로 된 의사라면.’

[네.]

하지만 간단한 케이스는 아닐 터였다.

그래야만 했다.

만약 이것도 모른다면 싱가포르에 대한 생각을 싹 갈아엎어야 할 터였다.

“CT도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지금 그런 결론을 내리는 건 성급하기 그지없는 짓이니만큼, 수혁은 CT도 띄워 달라 요청했다.

이런저런 요청이 귀찮을 수도 있을 텐데 닥터 장은 군말 없이,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흐음…….”

“저희는 처음 엑스레이만 봤을 땐, 종양으로 인한 폐쇄 효과 또는 압박으로 인한 염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CT에서는 전혀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네.”

연조직으로 보이는 덩이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덩이는 근처에 있는 어떤 기관지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연하고 있는 기관지들도 염증 자체와는 딱히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그저 흔한 흡입성 폐렴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죠?]

‘응. 흐음……. 흔해 보이는데 흔하지 않은 병이라 이거지.’

사실 CT까지 찍었다면, 수혁과 바루다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힌트를 주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건방지다는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겠으나 어쩌겠는가.

실제로 그런걸.

그런데 이 케이스는 모든 추론을 부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치료 경과는 어떻죠?”

“네. 일단 배양 검사 싹 나갔습니다.”

“네. 항생제는요?”

“경험적으로…… 타조박탐과 레보플록사신을 사용 중입니다.”

“반응은 어떻죠?”

“별로…….”

타조박탐과 레보플록사신이라면 초기 치료로 꽤 강하게 들어간 셈이었다.

일반적인 지역 사회 획득 폐렴이라면 저거에 반응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닥터 장의 표정도 그렇고, 이어서 띄워 준 의무 기록을 봐도 그렇고 반응은 거의 없었다.

아니, 진행하고 있었다.

“엑스레이가 약간…… 진행했네요?”

“네.”

“배양 검사에서는 뭐 자란 건 없고요?”

“아직 보고가 나올 단계는 아닙니다……. 5일째니까죠. 그래도 아예 그람 양성인지 음성인지조차 파악이 안 됩니다.”

“파악이 안 된다는 건가요? 아니면 배양이 안 된다는 겁니까?”

“판단이 어렵습니다.”

“흐음.”

판단이 어렵다라.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터였다.

[세균성 폐렴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바이러스일까? 바이러스라고 하기엔…….’

[양상이 너무 다릅니다.]

‘결핵? 싱가포르만 해도 결핵이 우리처럼 많지는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어.’

[아……. 그렇군요.]

대한민국에서 결핵은 흔하디흔한 병이었다.

한때 박멸했다, 아니면 박멸해 간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중국과 북한이 아직 결핵 호발 국가다 보니,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드문 병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결핵 가지고 헤매고 있는 걸 한국에서 연수 간 의사가 얘들 병신인가 하고 진단해 준 사례가 엄청 많았다.

“결핵 관련한 검사는 나갔나요?”

“아……. 네. AFB 염색 검사 및 배양 다 나갔습니다.”

“오, 별건 없고요?”

“네.”

해서 꽤 자신 있게 물었는데 이것도 꽝이었다.

이것만 꽝인 게 아니라 그냥 다 꽝이었다.

[음…….]

‘괜히 한다고 했나.’

[아뇨,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뭐가 남았나.’

[객담이 잘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관지 폐포 세척 검사하고 거기서 배양을 해 보죠.]

‘아하. 오키.’

진행하는 폐렴은 그 자체로 예후가 좋지 못했다.

암까지 있는 환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진단하는 것이 중요했다.

해서 수혁은 좀 과하다 싶은 검사를 얘기했다.

닥터 장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별 고민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침 검사실이 남습니다. 바로 해 보죠.”

“그것도 영상으로 볼 수 있을까요?”

“네, 됩니다.”

“그거 잘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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