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드디어 외국 환자 (3)
닥터 장은 흔쾌히 된다고 했지만 그건 의사의 말일 뿐이었다.
동시에 옆에 있던 시설 관리팀 인원의 얼굴이 썩었다.
“그…… 이렇게는 안 되고요. 핸드폰으로 전송 전환하겠습니다.”
기관지 폐포 세척이라는 검사라는 게 지금 한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닌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실상 기관지 내시경이지 않은가.
검사 전 검사야 이미 와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하고 있으니 상관이 없었으나, 그래도 검사실에서의 준비는 필요했다.
해서 시설 관리팀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얼추 맞출 수 있었다.
“잘 보이시나요?”
“음. 네. 나쁘진 않은데요?”
“네. 다행이네요. 핸드폰이 요새…… 이거 어디 거지. 아, 칠성이네.”
“괜찮습니다, 핸드폰이야 뭐 취향이죠.”
“네네.”
핸드폰 카메라 화질이 어지간한 디지털카메라보다 좋아진 지도 오래 아닌가.
그중에서도 칠성은 다른 성능보다는 카메라에 올인 한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감히 칠성을 써?]
‘화내지 말고…….’
[태화에 전화할 건데 칠성을 써요? 엿 먹이는 거 아닙니까?]
‘뭐……. 설마 그렇게까지 생각이 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하여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냐. 들어간다, 들어가.’
[후…….]
당연히 바루다는 분노했다.
칠성 얘기만 나오면 이러는 놈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태화 전자에서 어떤 코드라도 심어 놓은 모양인데, 가끔은 이렇게 성가실 때도 있었다.
쑤욱.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요한 시점에도 떠들어 대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딱 기관지 내시경이 환자의 기도를 통과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바루다도 칠성에 대한 분노를 잠시 접어 두고 핸드폰을 통해 전송되는 화면을 응시했다.
‘carina 통과한다…….’
[좌측이 좀 까다로울…… 와 잘 들어가네. 기술 좋은데요?]
‘싱가포르 의과 대학이 만만한 학교는 아니잖아.’
기관지 내시경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닌데 닥터 장은 정말이지 수월하게 술술 진행하고 있었다.
바루다나 수혁뿐 아니라, 옆에 있던 신현태, 조태진도 다 놀랄 지경이었다.
“잘하시네.”
“그러니까요. 왼쪽을 이렇게 망설임 없이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아……. 이제 세척한다.”
“네.”
폐포 세척이란 말 그대로 생리 식염수를 이용해 기관지 내부를 닦아 내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되면 숨 못 쉬어서 죽는 거 아닌가 싶을 텐데, 그래서 한쪽씩만 시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식하게 물을 많이 집어넣지는 않았다.
바로 빨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넣었다.
자칫하면 이것 때문에 환자가 죽거나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음…….”
“음.”
“으음.”
그냥 이렇게만 봐서는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가래 색이 누렇네, 뭔가 나오기는 하네 뭐 이 정도였다.
신현태나 조태진뿐 아니라 수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음.]
하지만 바루다는 조금 달랐다.
녀석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같다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 일행은 모두 영상의학과에서 쓰는 판독용 모니터를 통해 화면을 보고 있었다.
비록 저 멀리 싱가포르에서 건너오는 영상이기는 했으나, 칠성의 놀라운 기술력이 있어서 그런가, 그리 다운그레이드가 안 되어 있었다.
‘왜?’
[섞여 나오는 것 중에 포자가 있는 거 같아서요.]
‘포자? 진균 감염이라고?’
[네, 근데…….]
‘말이 되냐? 이 환자는 암 환자긴 해도…… 초기야. 면역 억제는 없어. 항암제도 안 썼고…… 아까 랩도 봤잖아.’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앞뒤가 잘 맞지 않아서요.]
분석을 통해 바루다가 내린 결론은 다소 엉뚱한 것이었다.
면역이 정상인 환자에서 진균, 즉 곰팡이가 나온다라.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근데 보인다는 거지?’
[네.]
‘분석이 잘못됐을 가능성은?’
[흔적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잘못됐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만약 옳다고 해도…….]
‘양이 적다면 우연히 밖에 있는 포자가 안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온 것일 수도 있지.’
[네.]
곰팡이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도록 설계된 것이 포자니 당연한 일 아닌가.
심지어 부비동과 같이 비어 있는 공간 안에서는 정상 면역 상태인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안에서 곰팡이가 자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 봐야 보통은 알레르기 반응이나 압박으로 인한 부비동염 말고 다른 증상은 잘 못 일으키지만.
하여간 기관지 안에 훅 하고 들어갔던 포자가 나오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오히려 바루다의 지나치게 뛰어난 분석력 때문에 헷갈리게 된 상황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문제 목록에는 추가해. 저쪽에는 얘기 못 하겠지만.’
[네.]
물론 두 눈으로 봤다는데 무시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상대가 바루다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 녀석의 분석력은 날로 대단해져만 가고 있으니까.
“음……. 이만하면 될 거 같네요.”
“배양하실 건가요?”
“네.”
“곰팡이 배양도 하는 게 어떨까요?”
해서 수혁은 은근슬쩍 곰팡이 얘기를 꺼냈다.
닥터 장은 조금 황당하단 얼굴로, 그러나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와 대꾸했다.
“곰팡이 감염을 의심합니까?”
“혈액이나 객담에서 무엇이 자라는지 파악이 안 된다고 한다면……. 곰팡이도 용의 선상에 넣어야겠죠.”
“으음……. 뭐, 해 보죠.”
크게 품 드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 나온 게 많아서 딱히 검체에 대한 낭비도 아니었다.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그래도 일단 해 보기로 했다.
지금 시행한 검사 자체가 쉬운 검사도 아닌 만큼 될 수 있는 한 검체를 활용해 보는 게 옳아 보이기도 했다.
‘정상인데……. 가능할까? 뭐 아예 없는 일은 아니긴 해.’
드물지만 있을 수는 있을 터였다.
해서 검사는 바로 나갔다.
문제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검사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장은 원격 진료를 이어 나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수혁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바루다 덕에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포자 모양은 특정 가능해?’
[이렇습니다.]
바루다는 아까 보았던 포자를 띄워 주었다.
사실 포자라기보다는 일종의 콜로니라고 보면 되었다.
포자의 크기는 너무 작아서 제아무리 바루다가 분석의 귀재라 해도 딱 볼 수는 없어서였다.
‘흰색의 타원형……. 이런 식의 콜로니 이루는 곰팡이는 수도 없이 많을 텐데.’
[하지만 그중에서 인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곰팡이는 적을 겁니다.]
‘하긴, 음. 그럼 일단 찾아보자.’
[네.]
둘은 원격 진료를 중단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별 미련 없이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오히려 시끄러운 건 조태진과 신현태였다.
암이 있다 보니 조태진의 관심을 끌었고, 감염이다 보니 신현태의 관심을 끌어서였다.
게다가 둘은 이수혁만 앞에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다.
“흐음……. 흡입성 폐렴으로도 보이는데 말야.”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흡입성 폐렴은 보통 우측에서 호발 하잖아요.”
“반드시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 기저 질환이 있으면…….”
“기왕력 없다는 말은 찜 쪄 드셨…… 아니, 죄송합니다. 원장님. 멱살은 놓고요, 수혁이도 잇는데.”
“네 생각은 어떤데.”
“암 환자다 보니……. 역시 기회감염도 떠올릴 수 있죠. 일단 지금 흔히 보이는 폐렴 원인 균주는 아닌 거잖아요?”
“기회감염은 새끼, 항암 치료했어? 했냐고. 혈종이라 그런가, 뭐만 하면 기회감염이래. 세상에 감염병이 얼마나 많은데.”
“나원, 원장님. 암 환자는 그 자체로 면역이 흔들리죠. 애초에 정상 면역에서는 암이 안 생길 거다, 뭐 이런 극단적인 의견도 있는…… 오늘 아침에 뭐 드셨길래 이렇게 기운이 넘치세요?”
멀리서 보면 아마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양반들이 점잖게 입고 몸싸움이라도 벌이는 줄 알았을 터였다.
하지만 가까이서 듣고 있으면 꽤 유용했다.
나름대로 둘 다 거물급 의사들 아닌가.
품고 있는 지식이 미친 수준이다, 이 말이었다.
‘아 하긴 그럴 수 있지. 암은 그 자체로 면역을 뒤흔들 수도 있지…….’
[네, 기회감염일 가능성이 올라가네요.]
‘확실히 이 둘이 교수님은 교수님이야.’
[그렇네요. 최근 하도 이상한 짓만 해서 잊고 있었습니다.]
수혁과 바루다는 둘의 대화에서 쓸 만한 것들을 취합했다.
컴퓨터를 두들기면서였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했고 또 데이터화를 해 두었다 해도 곰팡이 콜로니 모양은 알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특수 상황이 아니고서는 전혀 쓸모가 없어서였다.
“네 말대로 기회감염이라고 치자……. 그럼 뭐가 가능할까?”
“별의별 균이 다 가능하겠죠?”
“그게 할 소리냐? 교수가?”
“제가 감염은 아니잖아요.”
조태진은 전 씨름부 출신답지 않게 얄미운 얼굴로 헤헤 웃었다.
신현태는 또 멱살을 잡으려다가, 이미 두 번의 멱살로 쏠린 관심을 떠올렸다.
‘내가 이현종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소문나서는 곤란하지.’
괴짜 이현종은 이미 그 길을 수십 년간 걸어오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이 그런갑다 해 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전형적인 내과 의사였다.
이런 게 퍼졌다가는 그 사람 미쳤다라, 원장 되더니만 갑질 하더라 뭐 이런 오만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해서 손을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고 말을 이었다.
“이러니까 어? 열만 나면 협진 내고.”
“잘 봐주시니까요. 근데 뭘 의심할 수 있는데요?”
“이미 배양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으니……. 아무래도 바이러스나 진균이겠지. 전형적인 바이러스 모양은 아닌데, 기회감염이라고 생각하면 저런 모양도 불가능한 건 아냐.”
“그렇겠네요. 그럼 정확히 어떤?”
“그거야 아직 알 수가 없지. 어떻게 알어, 인마.”
“근데 너무 시간 끌면 죽을 거 같던데……. 수혁아, 너 생각은, 수혁아? 얘 어디 갔어?”
“잉. 어디…… 아, 저깄네. 네가 쓸데없는 소리 하니까 애가, 인마.”
“에이……. 컴퓨터로 뭐 알아보려고 했겠죠.”
“말대꾸를 왜 이렇게 하지. 내가 원장인데.”
둘은 티격태격하다가 스테이션으로 도망간 수혁을 찾아 달렸다.
수혁은 조태진 말처럼 컴퓨터를 두들기고 있었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해봐야 몇 분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의 서칭 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바루다의 도움도 있는 데다가, 지금까지 너무 많은 자료를 찾아온 탓이었다.
“이게 뭐니?”
“곰팡이…… 이거 설마?”
해서 조태진과 신현태가 수혁의 뒤에 섰을 땐 뭔가 의미 있는 자료가 떠 있었다.
“수혁아, 아니지?”
“에이, 뭐가 보였다고 이걸…….”
“아닌가? 오셨나?”
“너 그런 소리 하지 말랬지.”
“그럼 달리 뭐 설명이 됩니까?”
“그건……. 그, 음.”
“거봐요. 있다니까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그분이 계시다고.”
“섬찟한 얼굴로 중얼거리지 말고. 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