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화 드디어 외국 환자 (4)
신현태는 정말로 무서운지, 아니면 단순히 소름이 돋은 건지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런 신현태를 빤히 보면서도 조태진은 자신의 의견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아니, 이거 봐. 이렇게 하는데 신내림이 없다고? 나도 원래는 어? 무신론자라고.’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였다.
수혁이 지금 띄워 둔 곰팡이는 아무 곰팡이가 아니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로 있다 보면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그런 곰팡이였다.
그렇다고 뮤코마이코시스나 액티노마이코시스처럼 자주 볼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한 번 봤어. 한 번 봤는데…….’
아무리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교수라고 해도, 딱 한 번 본 케이스를 절대 잊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기엔 그런 케이스가 꽤 많아서였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수명과 그에 따라서 새롭게 생겨나는 건강 문제들은 가파르게 발전하는 현대 의학조차 완전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인상적인 놈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Talaromyces marneffei……. 백혈병 환자였지. 폐에 전이된…… 애초에 신장 이식받은 환자라 면역 억제제를 쓰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이 곰팡이는 존재도 몰랐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이게 알게 생긴 이름이 아니지 않은가.
원래는 남중국, 동남아, 동북 인도 등 지역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풍토병인데, 당연히 폐렴을 일으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폐는 워낙 밖에서 유입되는 이물이나 균 또는 바이러스가 많은 만큼 감염되는 경우도 흔하다 보니 착각하기 쉽지만, 같은 이유로 면역 체계가 아주 잘 잡혀 있어서였다.
일단 코털부터가 방어막이었다.
해서 이 곰팡이가 주로 감염을 일으키는 형태는 우리가 가장 흔히 보는 진균 감염의 형태, 즉 무좀과 같은 피부 질환이었다.
“이게…… 면역이 억제된 상태에서는 폐렴을 일으킬 수 있어요. 지역도 동남아에서 호발 하니까, 싱가포르가 포함되어 있죠.”
“호발이라고 해도…… 드물 텐데.”
그게 폐렴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나름 핫 한 이슈가 되었다.
때문에 신현태도 이 곰팡이의 이름은 알았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어떻게든 대화는 된다 이 말이었다.
“드물죠. 하지만 감염 형태를 보면…… 꽤 잘 들어맞아요.”
“어디…… 음. 그렇네. 엑스레이 형태나, 증상 같은 것들이…….”
그리고 신현태는 신내림까지는 믿지 않았지만, 수혁의 실력은 믿고 있었다.
당연히 수혁이 하는 말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해서 수혁이 가리킨 영상이나 문헌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그럴싸했다.
확실히 아까 전달받았던, 싱가포르에 입원해 있는 환자와 거의 같았다.
무엇보다 종괴 형태까지도 흡사했다.
‘이건 왜 이렇지?’
설마하니 폐암의 형태도 영향을 미치는 건가?
신현태는 잠시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 이거 설마?”
“종괴가 다 종양은 아닐 거예요. 그중 일부는 이 곰팡이 감염에 의한 겁니다.”
“아예 암이 아닐 가능성은 없고? 거기서 보인 종괴 전체가…….”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만…… 환자가 기왕력이 없다고 해서요.”
“아, 아무것도 없었으면 애초에 이 곰팡이로 인한 폐렴에 걸릴 일도 없다?”
“네. 100%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긴.”
당뇨 같은 병이 있어도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면역 억제 환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대개는 혈액순환이 크게 떨어지는 부위, 즉 발 같은 곳이 취약해질 뿐이었다.
이런 기회 감염으로 인한 폐렴까지 일으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이 환자는 당뇨도 없다지 않은가.
“어……. 그럼 이거 빨리 전화해서 알려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신현태가 수혁의 말을 곱씹으며, 정말로 놀란 얼굴이 되어 있는 사이 조태진이 끼어들었다.
암 환자에서 감염 질환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아서였다.
외과처럼 1분 1초를 다투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환자의 예후가 아예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었다.
특히 아까 크기처럼 수술로 떼어 낼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폐암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종류에 따라 완치를 장담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떼어 냈느냐 아니냐는 천지 차이였다.
“아, 그래, 그래. 빨리 전화하자.”
신현태도 동참했다.
조태진처럼 암 환자를 많이 봐서는 아니었다.
다만 감염 또한 얼마든지 급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곰팡이라면, 심지어 면역력이 훼손된 상태에서의 곰팡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Talaromyces marneffei가 뮤코마이코시스처럼 환자를 산 채로 잡아먹듯 빨리 진행하는 놈은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서둘러 처리하는 게 나았다.
“네, 그럴게요. 음…….”
“왜?”
“아뇨, 다시 정리해 봤는데 그래도 역시 이 질환일 가능성이 95% 이상이에요.”
“네가 그렇게 말하면 항상 100%던데.”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신현태의 말대로 수혁이 말하는 95%는 사실상 100%였다.
그럼에도 저렇게 말하는 건, 바루다가 현대 의학의 한계를 상정해 두고 있어서였다.
아예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진 질환이 아닌 이상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 바루다의 판단이었다.
꼴값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수혁도 동의했다.
그냥 내과 의사가 아닌 태화의 내과 의사 그러니까 현대 의학의 선봉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한계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서였다.
따르릉.
하여간 신현태는 수혁과는 달리 100%란 확신을 가지고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그런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확연할 만큼이나 노골적이었다.
“어……. 신 원장님.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덕분에 신현태는 전화를 걸자마자 떨떠름한 얼굴의 싱가포르 의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과한 반응은 아니었다.
남은 지금 잘 모르겠는 환자, 그것도 하필이면 VIP가 그래서 죽겠는데 처웃고 있지 않은가.
아마 신현태도 평소라면 여기서 더 웃거나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스스로 이현종보다는 나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기도 하거니와, 어떻게 봐도 그게 사실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 네.”
수혁이가 95%라고 했으니까.
수혁이의 95%는 100%니까.
나는 그런 수혁이를 믿으니까.
“어, 네……?”
싱가포르 의사는 이 양반이 아마도 잘못 말했거나, 내가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현태 원장이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현태는 나름 싱가포르 병원에서 논쟁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리홍이가 와서 부탁한다고 해도 대뜸 외국인 의사한테 부탁해 봅시다 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게다가 상대 외국인 의사가 무슨 이 분야의 대가인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아도 아까 있던 통화에서 별반 소득을 얻지 못해 부정적인 여론이 득세하고 있는데, 아무리 미친놈이라 해도 굳이 다시 전화해서 시비를 걸지는 않을 거 같았다.
“아까 그 환자 말입니다. 하하.”
한데 신현태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잠깐 잘못 걸었나 싶었는데, 그 환자 운운하는 거 보니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싸우자는 건가?’
나름 리홍이 편에 서서 우호적인 여론을 펼쳤던 싱가포르 의사의 얼굴이 더 험상궂어졌다.
벌커덕.
뒤이어 들어온 닥터 장은 더했다.
신현태의 말을 전해 들어선 아니었다.
환자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있어서였다.
“무슨 일이죠? 지금 환자 삽관까지 했는데.”
“아……. 그렇군요?”
삽관했다는 건, 폐렴에 있어서 당연히 안 좋은 사인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웃을 수 있을 만큼 이상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신현태는 얼굴 가득 떠 있던 미소를 조금 지웠다.
‘이거 이렇게 되면 옳게 진단을 내려도 죽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치료도 타이밍이 참 중요했다.
아무리 진단을 잘 내렸다 해도 타이밍을 놓치면 환자는 잃을 수도 있어서였다.
이미 진행한 폐렴은 특히 더했다.
한번 망가진 폐는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바이러스 또는 세균의 배지가 되기 때문이었다.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삽관을 했다는 건, 일단 환자가 사선에 진입했다는 뜻이었다.
해서 할 말을 잃어버린 신현태를 대신해서 수혁이 나섰다.
신현태는 안 그래도 비켜 줄 요량이었기에, 마침 잘됐다 여기며 뒤로 슥 하고 물러났다.
“아……. 이수혁 선생님.”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 닥터 장은 조금 누그러진 얼굴이 되었다.
별거 없었단 의견도 있지만, 하여간 나눈 대화가 아예 의미가 없지는 않아서였다.
아니, 꽤 진전을 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여간 곰팡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그뿐이었다.
그것만으로 환자가 살아나진 않았다.
“네, 닥터 장. 아까 논의를 통해 환자가 진균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클 거란 결론을 내렸었죠?”
“결론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가능성은 있겠다 싶습니다.”
“약을 혹시 변경했습니까?”
“플루코나졸을 추가했습니다.”
“음.”
현명한 선택이었다.
플루코나졸이라면 상당히 많은 수의 진균에 듣는 약이니까.
하지만 Talaromyces marneffei에서는 아니었다.
“환자의 엑스레이를 띄우시고…… 이 화면을 보시겠습니까?”
해서 수혁은 모드를 강의 모드로 바꾸었다.
그저 내가 저 사람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단 뜻은 아니었다.
수혁 자체가 이쪽으로 재능이 있기도 하지만, 바루다도 있어서 가능한 일인데 수혁은 벌써 표정이나 말투 그리고 목소리까지 싹 바꿔 버린 참이었다.
“어…….”
덕분에 닥터 장은 물론이고 뒤에 불만 어린 얼굴을 한 채 대기하던 다른 의사까지 조금은 당황했다.
어딘지 모르게 수혁에게서 풍겨오는 대가의 풍모 때문이었다.
말을 들을 이유는 이제 없는 거 같은데, 그래도 들어야 할 거 같았다.
“자, 그렇게 띄우시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엑스레이를 띄우고 있었다.
눈은 수혁이 들이민 탭 화면에 고정했고.
“보시면 엑스레이 양상이 비슷하죠?”
“어…….”
“그리고 환자의 증상도 비슷합니다. 열나고, 기침하면서 동시에 배양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요. 무엇보다 환자는 최근 여행을 다녀온 바 있더군요, 대만에.”
“아……. 네. 근데 그 엑스레이는 대체 뭡니까?”
“Talaromyces marneffei 환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소견입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아주 드문 병은 아닐 텐데, 대만에서 아무래도 더 흔하죠.”
“아……. 음. 그…….”
이렇게만 보면 단정 지어서 말해도 좋을 만큼 확연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감염병에서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고, 비슷한 엑스레이 소견을 보이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불신의 빛을 지우지 못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그럼……?”
수혁은 아까 바루다가 보여 주었던 진균이 이루고 있던 콜로니를 떠올렸다.
여기서 그게 보였다는 말을 했다간 이상한 취급을 받게 될 터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을 테니까.
해서 말을 지어내기로 했다.
“환자의 면역 상태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배양 결과, 약에 대한 반응 모두를 고려한 결과입니다. 그러면 진균 감염일 가능성은 100%이며 그중에서 Talaromyces marneffei일 가능성은 90%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놈은 플루코나졸에 죽지 않죠.”
“그렇게 말해도 저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와 닥터 장의 배경 지식의 양이 달라서 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시는 겁니다.”
“뭐, 뭐라고요?”
달리 말하면 빡치게 만들기로 했다.
수혁의 연기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닥터 장은 바로 얼굴이 붉어졌다.
너 무식하다는 말을 정면에서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동시에 뒤에 있던 신현태는 이마를 짚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더니……. 이 새끼가 이현종이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