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93화 (493/1,303)

493화 드디어 외국 환자 (5)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합니까?]

바루다마저 놀란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반면 수혁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아니, 당당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 보니 닥터 장은 더 화가 났다.

‘나 무식하다는 말을 하면서 저따위 얼굴이야?’

나름 쿵푸도 배운 몸으로서 눈앞에 있었다면 두들겨 팼으리란 다짐까지 했다.

하지만 화면 너머에 있는 수혁은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 있었다.

게다가 리홍이의 비호를 받는 몸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때리면 어떻게 될까?

태형행이 될 수도 있었다.

놀랍게도 싱가포르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체벌이 있었다.

“무슨…….”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닥터 장은 욕설 대신 조심스레 입을 뗐다.

다만 욕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상태여서, 그냥 입만 뗐다.

그래도 됐다.

어차피 수혁이 계속 떠들어 댔으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을 거예요. 배경 정보가 다르면 같은 단서도 똑같이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아까랑 별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계속해서 너 무식하다고 떠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보다 못한 신현태가 살짝 나섰다.

그렇다고 우리 수혁이를 가리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수혁아, 너무하는 거 아닌가?”

이현종이었으면 저만치 밀쳤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였다.

세상에 싱가포르에서 귀한 결심해서 환자 의뢰를 했는데 이렇게 나가다니.

첫 거래가 마지막 거래가 되는 수가 있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뇨, 계셔 봐요. 제가 보여 드릴게요.”

“어……. 뭘? 저 사람 혈압 오르는 거?”

“아니, 아뇨. 환자 고칠 거예요.”

“그래? 그러니?”

“네.”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 열 받게 하는 거랑 환자 고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신현태는 뒤로 물러났다.

이현종이 아니라 우리 수혁이지 않은가.

얘라면 뭔가 보여 줄 터였다.

“원장님도 신내림 믿는 거죠, 이제?”

“뭔 개소리야?”

뒤로 물러나자마자 별로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조태진이 여전히 정신 나간 얼굴로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었다.

신내림이라니.

의사도 과학자의 일종인데.

얘는 그런 소리를 아직도 하고픈가.

“그렇잖아요. 지금 뭔가 보이는 거예요, 수혁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너 자꾸 그러지 말라니까. 너무 무서워. 지금 눈동자도 이상한 데 보고 있다고.”

“수혁이가 보는 거 찾으려고요.”

“미친놈이?”

놀란 것은 신현태뿐만이 아니었다.

바루다도 놀랐다.

[와, 방금 식겁했네.]

‘왜?’

[조태진이랑 눈 마주쳤습니다. 실제로 절 본 건 아니겠지만…….]

‘태진이 형이 좀 이상하지…….’

[좀 이상한 게 아니죠. 게다가 지금 하는 소리가 어찌 보면 맞는 말 아닙니까?]

‘그렇긴 해. 아휴, 그렇게 생각하니까 소름 돋는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았다.

이 말처럼 지금 수혁이 처한 상황을 잘 말해 주는 게 또 있을까?

그럼에도 수혁은 팔뚝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슥슥 털어 내고는 닥터 장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마냥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어서였다.

“닥터 장. 저 환자는 Talaromyces marneffei이 맞습니다. 이해는 잘 안 가시겠지만…….”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까 말씀드린 근거요.”

“그것만으로…….”

“모든 확률을 계산하고 소거하면 결론이 이렇게 나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록 수혁이 Talaromyces marneffei라는 곰팡이를 확인하게 된 것은 온전히 바루다의 시각 정보 분석 덕이었지만, 확인하고 난 다음 역계산을 해 보니 이렇게만 나왔다.

다시 말해 닥터 장이 수혁과 같은 결괏값을 내지 못하는 건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가 맞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진짜 부족하면 이해할 수 없기도 했거니와, 수혁의 말투가 기분 나쁘기도 해서 닥터 장은 납득이 된다기보다는 화가 났다.

“대체…….”

“근데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으시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뭘 어떻게 해요?”

닥터 장은 자신도 모르게 통화 종료 버튼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다시 수혁을 바라보았다.

잔뜩 화가 나 있으면서도 의문이 떠 있는, 아주 복잡한 얼굴이었다.

하여간 환자가 뭔지 모르겠는 건 확실하지 않은가.

수혁은 그가 생각하기엔 논리도 근거도 없이 Talaromyces marneffei이라는 곰팡이를 의심하고 있고.

비록 근거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싸한 직함을 가진, 그것도 꽤 실력 좋다고 소문난 병원의 교수가 저리 확신을 갖고 있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찜찜해지던 참이었다.

[걸려들었군요.]

‘진짜로?’

[네, 저런 말투를 쓰는 사람들은 대개 승부욕이 강하더라고요. type A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흠. 신기하네.’

A형 성격이라고 하면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떠올리기에 십상인데, 그렇진 않았다.

이건 그냥 과학적으로 나눈 성격 유형이었고 실제 임상에서 자주 쓰는 성격이기도 했다.

하여간 수혁은 바루다가 단지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 성격 유형을 맞추고 또 그에 맞는 전략까지 짠 것에 대해 놀라워하다가, 닥터 장을 바라보았다.

“Talaromyces marneffei가 맞다면, 플루코나졸은 무용지물입니다. 이건 인정하시죠.”

“음……. 그렇죠. 하지만 그건…….”

“그렇다면 이트라코나졸을 써야 해요. 200mg bid로. 환자 면역력 상태에 따라 날짜는 달라지겠지만……. 암 때문에 면역이 흔들린 상황이라면, 또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면 수개월까지 써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다 그냥 추론에 근거한 처방 아닙니까?”

“한번 써 보세요. 환자가 좋아지면 계속 쓰면 되죠.”

“실험을 하자고요?”

“그건 닥터 장 생각에서야 그렇고요. 저는 확신합니다. 게다가, 제 조언으로 기관지 세척액으로 검사 들어가지 않았나요? 곰팡이 배양 검사?”

“그…….”

“곰팡이는 세균과는 달리 좀 빨리 확인될 겁니다. 그때 Talaromyces marneffei가 나오면 지속하고 아니면 멈추시죠. 물론 그 전에 환자 상태부터 좋아질 겁니다.”

“어…….”

닥터 장은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기만 했다.

여전히 수혁이 생각하는 진단명이라 단정 짓기엔 정보가 부족하다 여기고 있으나, 말을 듣다 보니 또 흔들려서 그랬다.

한편으로는 지기 싫은 마음이 불끈 고개를 들기도 했다.

“아니면요?”

“아니면 제가 책임을 지죠.”

“무슨 수로 책임을 집니까? 사람 생명은…….”

“VIP라서 곤란한 거 아닙니까? 실패에 관한 얘기는 제가 책임지고 리홍이 의원과 하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신가요? 환자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요?”

“음.”

수혁은 아픈 곳을 파고들었다.

그냥 이 병원 환자라면 이런저런 얘기 없이 쓰자고 하면 다들 쓸 텐데, 저쪽은 상황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싸가지 없어 보이겠지만, 실제로 싸가지 없는 짓거리지만 어쩌겠는가.

저쪽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것처럼 수혁도 필사적인 것일 뿐이었다.

“아니잖습니까? 아무것도 못 해 보고 환자 죽이느니, 제 말을 듣는 게 좋을 겁니다.”

[수혁, 방금은 선 넘은 거 같은…….]

“닥터 장. 한 번만 제 진심을 믿어 보세요.

[멜로물입니까?]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음.]

중간에 좀 급발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닥터 장은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에 받친 표정이 마음에 걸렸으나 하여간 끄덕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긴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보죠. 대신…… 환자가 잘못되면 당신 책임이고, 지금 태화 의료원에서 추진 중인 국제 진료소 그거…… 제가 어떻게든 훼방 놓을 겁니다.”

수혁 뒤에 있던, 그러니까 신내림을 주제로 옥신각신하던 신현태와 조태진마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강렬한 메시지였다.

특히 신현태는 잠시 몸을 떨었다.

태화 국제 진료소를 훼방 놓겠다니.

그거 태화 바이오까지 다 결제돼서 진행 중인 대박 건수인데.

사실 이 원격 진료도 거기에 보탬이 될까 해서 진행한 건데 이렇게까지 얘기가 나와?

‘수, 수혁아.’

신현태는 엎질러진 물이라도 퍼담고 싶은 생각이었으나, 그렇다고 수혁을 쥐 흔들거나 하진 못했다.

그래 봐야 물이 퍼 담아지는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수혁을 믿는 것뿐이었다.

‘수, 수멘.’

여태까지보다도 더 격렬하게.

“좋습니다. 그러시죠.”

수혁은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닥터 장은 좀 더 열이 받았으나, 이미 내기는 받아들여진 상황이었다.

두고 보자는 말만 속으로 되뇌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는 않았다.

‘아니지? 이렇게 되면 내가 환자 잘못되기를 바라는 거 같잖아?’

여느 의사들이 그런 것처럼 경쟁심이 강한 사람일 뿐 나쁜 놈은 아니지 않은가.

‘하씨 그럼 내가 이수혁 저 새끼를 응원해야 하나.’

닥터 장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옆에 있던 의사, 레지던트는 그런 닥터 장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강 듣기로는 외국인 의사,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쳐 발린 상황 아닌가.

대놓고 무식하다고 하는데 거따 대고 별말도 못 하고 부들거리더니만 종래에는 그 사람이 쓰자는 약까지 쓰게 된 참이었다.

닥터 장이 그래도 싱가포르 내에서는 꽤 명성이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되다니.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들었지?”

“네? 네. 그…… 힘내십쇼.”

“뭔 소리야, 이 자식이?”

그런 사람이 갑자기 고개를 확 돌려 들었냐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화이팅 자세가 나갔다.

그랬더니만 더 화가 났는지 씩씩댔다.

‘뭐야.’

이해는 안 가지만 어쩌겠는가.

레지던트가 고개 숙여야지.

나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고개 숙이는 각도의 차이일 뿐. 레지던트가 을질 해야 하는 건 다 같았다.

“이트라코나졸로 바꿔. 치료 세팅……. Talaromyces marneffei 타깃으로 바꾸고.”

“아직 결과 안 나왔는데요?”

“그…….”

기분 나쁘지만, 배양 결과만 기다리기엔 환자 상태가 그닥이었다.

벌써 삽관까지 한 이상 좀 더 지체했다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 한 채 송장 치우는 수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수혁과 통화를 하기 전이라면 할 말이 있기는 할 터였다.

현대 의학이 만능은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데 권력자라고 해서 뭐 어쩔까.

하지만 수혁이 분명 의심되는 진단명을 말했고 또 치료 방법까지 말해 버린 이상, 환자가 잘못되면 책임은 온전히 자신 몫이 될 터였다.

‘개새끼. 자라 새끼. 때려 죽일 새끼.’

닥터 장은 욕을 속으로나마 시원하게 내뱉고 나서는 레지던트를 돌아보았다.

“아, 하라면 하라는 대로 좀 해!”

아까 수혁이 닥터 장에게 하고픈 말이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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