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94화 (494/1,303)

494화 드디어 외국 환자 (6)

‘왜 나한테 지랄이지?’

레지던트는 한국 속담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그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나이도 비슷해 뵈는 이수혁한테는 찍소리 못해 놓고서는 왜 자기한테는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불만이 끝도 없이 차올랐다.

“선생님, 그럼 플루코나졸은 디씨하고 이트라코나졸로 가요?”

“아, 네.”

물론 그렇다 해서 시킨 일을 등한시하지는 못했다.

인턴보다야 사정이 낫다곤 하지만, 하여간 병원 밑바닥에 있는 존재이지 않나.

상대가 같은 레지던트라 해도 연차가 높으면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건 교수의 명이었다.

까라면 까야 했다.

이유를 몰라도 상관없었다.

뭐가 되었건 지시가 떨어진 이상 책임은 장에게 있는 데다가, 일개 레지던트보다야 교수가 훨씬 낫기는 할 테니까.

‘근데…… 그 교수가 이수혁이라는 사람 말을 듣는 거란 말이지?’

윗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수혁을 아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레지던트는 정말이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국제 학회에 갈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장 교수님이 한참 어린 사람 말을 듣지? 게다가 리홍이…… 그 사람 의원이잖아? 그것도…… 로열 패밀리.’

하여간 이수혁에 대한 궁금증이 확 일었다.

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별 기대는 없었다.

영어권 나라가 아닌 이상, 영문 이름으로 쳤을 때 의미 있는 결괏값이 뜨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와……. 이거 설마 다 그 인간이 쓴 건가?’

하지만 이수혁의 영문 이름은 좀 달랐다.

구글 한바닥을 채우고도 남을 논문이 주르륵 나왔다.

별 볼 일 없는 논문이면 그런갑다 할 텐데, 인용 점수가 다들 장난이 아니었다.

논문 업적만 해도 눈알이 훌렁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잉.”

NEJM, Lancet, Nature 등등 하나만 내도 가문의 영광이 될 법한 논문이 수두룩한 가운데, 실제로 소리를 냈을 정도로 충격적인 문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무위키? 이게 왜 영문으로 있어? 아, 동명 연예인이 있나?’

나무위키에 등재된 의사는 아마 노벨 의학상을 받은 의사만큼이나 희소할 터였다.

대부분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작성하는 문서지 않은가.

의사가 추종자를 거느리기는 어려우니, 엄청나게 유명해야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저렇게 젊은 의사가 이만큼이나 논문을 썼다는 건 좀 놀라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의학계는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어서 갑자기 스타 의사가 튀어나오기는 어려웠다.

‘아……. 종교 문서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어차피 땡땡이를 치리라 마음먹은 참에 눌러본 문서는 카테고리 분류가 종교로 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수혁도 종교인으로 되어 있겠거니 하고 봤는데 의사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밑으로 내려 보니 사진도 아까 본 이수혁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 문서는 이수혁에 대한 문서인 듯했다.

혼란스러웠다.

‘뭐여?’

왜 의사가 종교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왜 이게 영문으로까지 번역이 되어 있을까?

수상쩍은 생각에 심장이 다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생애…… 생애도 있네.’

누군지는 몰라도 이걸 작성한 사람은 수혁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생일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어디 나왔는지는 물론이거니와 각 학교를 다닐 때 있던 일화들까지 줄줄이 쓰여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것이 있다면 일화들이 하나같이, 뭐라고 해야 할까? 과했다.

“뭘 보면서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지어요?”

“아……. 아뇨. 뭐, 잠깐 시간 나서.”

레지던트는 중환자실 간호사가 부르는 바람에 거의 기적을 행하시었다 수준의 문서에서 간신히 눈을 뗄 수 있었다.

“근데 환자는 어때요?”

“네? 처방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뭐가 바뀌겠어요.”

“하긴…… 저 오늘 당직이니까, 뭔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네.”

“거참.”

“네?”

“아뇨, 이건 혼잣말.”

그렇다 해서 이수혁 문서에서 완전히 신경을 끈 건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강제로 눈을 떼서 그런가 자꾸 아른거리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교인 레지던트에게 종교색이 짙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의사인 이수혁이 신기하지 않은가.

‘호커 센터에서 대강 사다가 먹으면서 당직실에서 봐야겠다.’

해서 레지던트는 부리나케 달려 나가서 닭고기 덮밥을 사다가 당직실로 들어왔다.

그리곤 한 입 뜨고, 한 번 문서 보고를 반복했다.

‘와……. 진짜 대단하긴 하구나.’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까지의 업적은 대단하다기보다는 이게 사실인가 하는 생각만 드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와서 이룩한 업적들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인턴 때의 업적은 별거 아니었으나, 레지던트 때의 업적은 가히 신화적이라 할 수 있었다.

1년 차 때부터 아무도 모르는 환자를 진단하고, 논문도 쓰고, 지금은 아예 모든 과 환자를 보고 있지 않은가.

이게 사람인가 싶었다.

“응?”

자기도 모르게 수혁이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링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는데, 팬 계정이라 했다.

‘의산데 팬 계정도 있네. 어디…… 뭐 죽을병 걸렸다가 살았나. 하긴 그럴 수도 있지.’

환자는 말 그대로 아픈 사람이라, 다들 절박하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희귀병 환자거나 아예 진단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서 구원해 준 사람이라면 뭐 팬을 할 수도 있을 터였다.

보아하니 수혁은 그런 환자를 정말 많이 고쳐 준 모양이니, 어쩌면 팬클럽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좀 이상한 일이지만 레지던트 노릇 하다 보면 병원 외적인 일이라면 다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 동시에 다 재밌어 보이기 마련이라 레지던트는 저도 모르게 계정을 눌러 들어갔다.

‘와……. 사진이 왜 이렇게 많아. 누가 따라다니나?’

분명 아까 화면상에서 본 수혁은 못나지는 않았어도 아주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이 계정에 뜬 수혁은 미남이었다.

보정을 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 나오게 찍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이 거의 매일 올라오는 거로 봐서는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지극 정성이라 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매 사진마다 댓글 수가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와…….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리네. 미쳤네.’

다들 한글이라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만큼은 특정해서 번역기를 돌려 볼 수 있었다.

의외로 무슨 뜻을 가진 단어는 아니었다.

그저 발음만 알아먹을 수 있었다.

‘수멘? 이게 뭐야?’

유행하는 언어인가 싶어 나머지 문장도 다 돌려 보니, 뭔가를 기원하는 말인 거 같았다.

‘오늘 우리 환자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멘’이라는 뉘앙스로 쓰인 게 제일 많아서였다.

‘아, 환자 연락 안 오나?’

정신없이 문서에 인스타그램까지 탐닉하다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보통 중환자실에 간 환자, 그것도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는 환자라면 벌써 연락이 와도 댓 번은 와야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병원에서는 아무래도 좀 불안해지기 마련이었다.

해서 전화를 걸어 보니, 정말로 별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요?”

“네. 열도 내리고 상태 좋습니다.”

“열이…… 내려요?”

그 정도가 아니라 호전이 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잘됐다 하고 그냥 두었겠으나, 그러기엔 지금까지 보아 온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설마 정말 이것도 맞춘 건가……? 그 이름 이상한 곰팡이균인 걸……? 말이 되나?’

레지던트도 그 자리에 있었기에 수혁이 하는 말은 빠짐없이 들었더랬다.

들으면서 든 생각은 닥터 장이 화낼 만도 하다는 것이었다.

생떼에 가깝지 않았나.

아는 게 없어서 못 알아먹는 거라니?

레지던트가 보기엔 오히려 그쪽이 마땅한 근거를 대지 못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게 맞아떨어진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업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수혁이란 사람은 모든 진단에 있어 합당한 근거를 댄 건 아니지 않은가.

어떤 케이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진단을 내리기도 했더랬다.

‘정말…… 뭐가 있나?’

레지던트는 종교적 환상에 젖어 두근거리며 중환자실로 향했다.

원래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했을 때도 제자인 도마는 손가락을 상처에 굳이 집어 넣어보고 나서야 믿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안대훈이나 우하윤같이 믿음이 신실한 사람이라면 수멘 한마디 하고 믿었겠지만, 레지던트는 믿음이 부족한 자였다.

“환자 어때요?”

“어……. 오셨어요? 진짜 아무 일도 없는데?”

“아니, 뭐. 제 환잔데 별일이 있어야 오나.”

“그건…… 그렇죠.”

그건 그런데 왜 평소에는 안 왔니, 뭐 이런 얘기는 없었다.

간호사도 다 융통성이 있을 만큼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어서 그랬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환자에게 다가간 레지던트는 크게 놀랐다.

정말로 열이 내려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환자 얼굴도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혈압도 안정적이고…… 압력도…… 음……. 내가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좋아졌는지, 어제 삽관했는데 이제 빼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간이 적당하면 빼야지 싶어서 시계를 봤는데 아직 새벽 2시였다.

‘지금 빼다가 사고 나면…….’

3년 차만 됐어도 기관 삽관한 거 뺐다가 이상해지면 바로 넣지 뭐 이러고 말았겠지만, 이제 갓 2년 차가 된 레지던트로서는 두려웠다.

혹 뺐다가 다시 못 넣으면 환자는 죽을 테고 자신의 앞길도 어두워지지 않겠나.

해서 궁금증을 뒤로하고 다시 당직방으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 엑스레이는 자기가 나오기 전에 볼 수 있게, 조금 당겨서 찍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서였다.

“좋아졌네.”

아침에 그렇게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본 닥터 장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환자가 좋아졌는데 왜 그러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제 당하는 걸 봐서였다.

“위닝 할까요?”

“응? 아니, 미쳤어? 어제 꽂았는데. 이러다 왔다 갔다 하면 어떡해.”

“아, 네.”

“일단 두고 봐.”

“네.”

“아.”

닥터 장은 성질을 내며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네?”

“그…… 배양 검사는 어떻게 됐대?”

“어제 나가서 아직 확인을…….”

“야, 세균 말고 곰팡이도 나갔잖아! 그건 빨리 나오니까, 전화해 봐.”

“네.”

“에이.”

그리곤 다시 성질을 내고 완전히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레지던트는 왜인지 모르게 이수혁을 떠올렸다.

문서에서는 분명 그의 뛰어난 인품을 칭찬하고 있었다.

비록 거슬릴 때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우매한 대중이 이해를 하지 못해서라는 주석도 붙어 있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개소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닥터 장을 보고 있으려니 수혁의 인품이 좋다는 게 사실 같았다.

‘일단 전화는 해 봐야지. 근데 곰팡이라고 해도……. 하루 만에 나오나?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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