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화 드디어 외국 환자 (7)
레지던트의 생각대로 곰팡이 배양 결과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과는 관계없이 약은 수혁이 일러 준 대로 썼기 때문에 환자는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었다.
아직 닥터 장은 그럴 수 없다고 했으나, 레지던트는 오늘에야말로 위닝을 해 보리라 마음먹은 채 회진을 기다렸다.
눈은 환자에게 고정하고서였다.
“밤새 열 없었죠?”
“네. 이틀 전부터는 열 없어요.”
“바이털도 다 좋고요?”
“네. 할 게 별로 없어요, 이 환자는.”
“역시 약 바꾼게 주효했나? 진짜 수멘인가?”
“네?”
“아뇨, 이건 혼잣말.”
그동안 레지던트는 수혁에게 더 심취해 있었다.
당직이 아닌 날은 시간이 나긴 하지만 어디 가서 뭘 할 만큼 시간이 나는 건 아니라 할 게 팬 계정 들어가는 거 말고는 없어서였다.
게다가 팬 계정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어서 구경하는 맛도 있었다.
그에 더해 댓글 하나를 남겼더니만 아예 난리가 나서 더더욱 그랬다.
└정말 싱가포르 의사예요?
└대박, 이수혁 교주님 팬이 싱가포르에도 있다니.
└역시 국적과 인종을 가르지 않으시는도다.
정상적인 반응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반응도 섞여 있었다.
수혁바라기안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녀석이 특히 그랬다.
국적과 인종을 가르지 않으시는도다는 대체 뭐란 말인가.
콘셉트겠지만, 참으로 희한한 콘셉트라 할 수 있었다.
└네. 싱가포르 대학 병원이요. 지금 이수혁 교수님이 원격으로 환자 하나 봐주시는데……. 덕분에 환자 살 거 같아요.
└역시…… 수멘.
어지간하면 그 사람하고는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으나, 상주해 있는 사람이 이 사람뿐이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방금도 디엠이 날아와 대꾸를 해 주었더니, 신나서 계속 떠들어 댔다.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새 신자님.]
[네? 새 신자요?]
[기적의 현장 말입니다.]
[무슨…….]
알아듣기 힘든 말도 있었지만, 다행히 의사는 맞는지 알아먹을 만한 말도 있었다.
[플루코나졸을 이트라코나졸로 바꿀 때를 말하는 겁니다. 딱 한 번 환자 보고……. 몇 번 고민하시더니 그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도 있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감동 감화되시는 것도 당연하죠.]
[그…… 네. 뭐. 아무튼, 이게 정말 맞으면 대단한 건데, 논리가 약간 뛰었잖아요?]
[원래 그러합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신묘한 행사를 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이 대화를 계속 이어도 되나 싶기도 했다.
아니,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혁바라기안, 그러니까 안대훈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곧 이수혁 교주님 만나 뵈러 가는데……. 환자 상태를 좀 말씀드릴까요?]
[아, 그래요? 그럼 좋죠.]
성질만 내고, 좋아졌다고 해도 믿지 않는 닥터 장보다는 수혁이 더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비록 몸이야 만리타향에 떨어져 있지만, 조언은 따박따박 해 줄 거 같았다.
나무위키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혼내긴 하지만 안 알려 주는 경우는 없다고.
“교수님.”
안대훈은 그렇게 레지던트에게 들은 정보를 가지고, 보무당당하게 센터 내로 들어섰다.
수혁으로서는 그렇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눈이 반쯤 돌아가 있어서였다.
새 신자가, 그것도 싱가포르에서 생겼다는 사실에 흥분한 탓인데 그것까지는 제아무리 바루다라 할지라도 분석이 불가능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왜, 왜. 나 좀 바쁜데?”
“싱가포르 환자 때문에요.”
“응……? 그거 연락 없던데. 내 번호 알잖아, 거기 교수가.”
“디엠이 왔습니다.”
“디엠이……?”
요즘 신세대들은 톡 대신 디엠이나 페북 메신저 쓴다고 하더니만, 거기 교수가 그런 과였나.
수혁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우선 대훈에게 앉으라 권했다.
밑도 끝도 없이 찬양하러 온 게 아니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아버지 이현종이 나름 티칭 마인드가 있지 않은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닮아야겠단 생각이 들어 노력 중이었다.
“환자가 어떤데?”
“여기.”
“아……. 진짜 디엠이네. 뭐야, 이 사람? 왜 전화를 안 하고……. 그리고 왜 너한테?”
“그건…….”
안대훈은 눈알을 굴렸다.
수혁은 나무위키가 있는지, 그게 영문 번역본도 있는지, 그리고 팬 계정이 있는지도 모를 터였다.
알게 되면 어떨까?
‘기뻐하진 않겠지. 모르는 데서 선을 행하시는 분이니까.’
알고 보면 수혁처럼 티 다 내면서 치료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안대훈은 제멋대로 그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수혁은 미심쩍은 눈으로 안대훈을 보다가, 이내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꺠달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환자 상태가 오지 않았나.
심지어 아주 좋아져 있었다.
“일단 혈압도 좋고……. 열도 없고. 사진도 벌써 좋아졌네?”
보통 엑스레이는 증상이 좋아지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야 변화를 보이는 법이었다.
한데 이 환자의 엑스레이는 벌써 꽤 좋아져 있었다.
심지어 종양 크기도 작아 보였는데, 이건 아마 Talaromyces marneffei가 종괴처럼 보이던 게 줄어들어서 이렇게 보이는 것일 터였다.
다만 아예 없어지진 않았다.
제대로 된 약을 제때 넣었으니 빠르게 반응을 보이긴 할 테지만, 애초에 면역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감염이니만큼 완전히 없애는 데는 지리한 시간이 필요했다.
“근데 왜 삽관이야? 빼지. 이 상태에서 해서 좋을 게 있나?”
“레지던트가 보냈는데, 권한이 없어서요.”
“레지던트……?”
수혁은 다시 한번 의심 어린 눈으로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왜 레지던트랑 연락이 닿았을까?
그 눈빛에 안대훈은 하마터면 사실대로 털어놓을 뻔했으나, 충심을 억누르고 모르쇠를 쳤다.
“그냥 왔어요, 교수님.”
“음. 아무튼……. 이대로 두면 안 되겠네. 원래는 내일 전화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오케이, 잘했어.”
“감, 감사합니다.”
“바들바들 떨지 말고…….”
아까 안대훈이 이성을 총동원했을 때처럼 간신히 미친놈아 라는 말을 참았다.
주변에 사람도 있거니와 안대훈이 충신이라는 것 정도는 그 또한 알고 있어서였다.
따르릉.
그렇다고 해서 안대훈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건 괴로운 일이었기에 수혁은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노상 대기하는 건 아니었기에 받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받기는 받았다.
닥터 장은 아니었지만.
“음?”
“아, 안녕하십니까. 이수혁 교수님. 저는 장 교수님 밑에서 돌고 있는 닥터 양이라고 합니다.”
“아……. 레지던트예요?”
“네.”
“디엠 보낸?”
“네!”
이 새끼는 대체 어떻게 안대훈에게 디엠을 보냈을까?
다시금 의심이 쳐들었지만,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을 따랐다.
[안대훈 얽힌 일은 깊이 알아봐야 기분만 나빠집니다. 동의합니까?]
‘그렇긴 해.’
[지금 중요한 건 이 환자고요. 닥터 장이 협박까지 한 환자입니다. 리홍이가 따로 부탁하기도 했고.]
‘맞네. 알았어.’
언제부터 바루다가 이런 면에서 오히려 수혁을 앞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수혁 개인에게는 편리한 일이었다.
하고 싶은 생각만 해도 되니까.
“환자 상태 보니까, 위닝 하고 일반 병실 가서 걷게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던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닥터 장이 거부해요?”
“네. 어, 아이고. 교수님.”
둘이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닥터 장이 들어왔다.
다른 이에게 전달받은 탓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좋아지고 있는 게 언짢았는데, 의사인 주제에 그걸 언짢아하는 자신을 발견해서 또 언짢은 마당에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수혁이 먼저 전화를 했다고 해서 삼중으로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넌 왜…… 네가 이걸 왜 받아?”
“죄송합니다. 전화가 오길래.”
“에이.”
해서 레지던트에게 화를 내고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말이 맞는 거 같은데 무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인 데다가, 여기서 함부로 전화를 끊었다가 리홍이 통해서 연락이 오면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
“그…… 이수혁 교수님.”
“네. 환자는 좀 어떤가요?”
대신 둘러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터였다.
설마 저놈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었을 리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냥 별 차이 없습니다.”
“제가 들은 거랑 다른데요?”
“네?”
“열도 없고, 엑스레이도 좋고, 심지어 관 통해서 석션 할 때 나오는 가래 양도 현저히 줄었던데. 위닝 왜 안 합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보다는 환자 상태에 대해 정확히 처치하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은데요.”
어떻게 들어도 수혁의 말이 맞았다.
의학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그랬다.
‘역시 이수혁 교수님……. 아, 한국어로는 이제 교주님이라고 한다고 했지. 교주님…….’
때문에 레지던트 닥터 양은 수혁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닥터 장의 뒤통수를 볼 때는 사정 없이 인상을 썼기에 주변에 있던 간호사는 양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과하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원래 이렇지는 않은데…… 되게 추하게 나오시네.’
담당 간호사로서 환자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처치를 미루고 있는 닥터 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지금 호전된 것은 사실이에요. 일시적이나마…….”
“일시적? 이틀 동안 일관되게 좋아지고 있던데?”
“좋아진 이유를 모르지 않습니까?”
“왜 몰라요? 제가 병명까지 다 말해 줬는데.”
“그 병명의 근거가…….”
“치료가 되면 역으로 진단하는 경우도 많죠? 이 경우가 그런 거 같은데.”
이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일부 질환의 경우엔 어떤 약에 듣는지 보고 진단을 내리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첫 단추가 좀 이상하지 않았나?
닥터 장은 수혁의 말이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그게 석연찮아서 말을 따르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그때 레지던트가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조심스레 닥터 장을 불렀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닥터 장이 자기를 부르는 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닥터 양은 장이 앉은 의자를 치고 있었다.
“저기.”
“왜요.”
“나 말고 뒤를 봐요.”
“뭔 소리예요, 갑자기.”
화면을 통해 모든 걸 훤히 들여다보는 수혁은 뒤를 가리켰다.
장은 기분 나빠 하다가, 인기척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나서야 뒤를 봤다.
아까 자신이 혼냈던 양이 서 있었다.
“뭐야, 인마. 왜.”
“검사실에서 전화 왔습니다.”
“검사? 뭔 검사.”
“곰팡이 배양…… 결과 나왔습니다.”
“그래? 뭔데?”
장은 틀리기를 기도했다.
이게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혁의 코를 납작 눌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 그런 식의 못된 기도를 잘 들어주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이건 지금 하는 기도와는 관계없이 벌써 한참 전에 확정된 결과였다.
“Talaromyces marneffei…… 가 자랐다고 합니다.”
“하.”
“이제 고집 그만 부리고 제 말대로 합시다, 닥터 장.”
장은 수혁의 은근한 말에 바로 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떨구었다.
누가 봐도 비참해 보였는데, 수혁은 반대로 턱을 살짝 들고 있어서 더 대조적으로 보였다.
안대훈과 닥터 양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수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