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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496화 (496/1,303)

496화 국제 진료소 (1)

수멘 소리가 절로 나와도 이상할 거 하나 없게 느껴질 만큼이나 인상적인 진단이었다.

한국에 있는 안대훈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현장에 있는 닥터 양은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이제 빼겠습니다.”

“빼고 바로 ABGA(동맥혈 가스 성분 검사) 나가.”

“네, 교수님.”

위닝 프로토콜을 시행하자마자 바로 벤틸레이터 모드를 딱딱 바꿀 수 있었다.

대체 왜 이걸 여태 강제로 숨을 불어 넣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다 고집 때문이지 뭐.’

닥터 양은 저도 모르게 불퉁한 얼굴을 하고는 환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고열에 기침 때문에 붉게 상기되어 있더니만 지금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심지어 제정신에 관이 낑겨 있는데도 그랬다.

“자……. 숨 참으세요. 이제 뺍니다.”

닥터 양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리나케 말을 이은 후, 관을 부드럽게 빼냈다.

주사기로 튜브에 있던 공기를 뺀 다음이었기에 딱히 저항은 없었다.

“쿨럭.”

물론 기침이 나오는 걸 피하기는 어려웠다.

닥터 양은 나름 실력이 좋고, 또 능숙한 의사였기에 당황하지 않고 종이컵을 환자 입에 대 주었다.

“가래 나오면 삼키지 말고 그냥 다 뱉으세요.”

“퉤.”

“네, 잘하셨습니다. 이거, 한 번 더 컬쳐 나가 주세요.”

닥터 양은 힐끔 종이컵 안을 바라보았다.

색이 좀 누렇기도 하고, 피도 살짝 섞여 있었다.

당연히 그리 좋은 소견은 아니었으나, 환자 상태를 생각해 보면 호들갑 떨 만한 일도 아니었다.

‘암에서 나왔나, 피는.’

암 조직이라는 게 정상 조직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마구잡이로 자라나는 성질도 있다 보니, 신생혈관을 함부로 만들었다.

그렇게 함부로 만들어진 건 아무래도 정상 조직에 비해 잘 터져서 이런 식의 출혈도 잘 일으켰다.

“환자분, 숨차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계속 가래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건 검체로써 검사실에 내려가야 의미를 갖는 녀석 아닌가.

그보다는 눈앞의 환자에 집중해야 했다.

지금까지의 진행 경과로 미루어 볼 때, 십중팔구 별문제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워낙에 삽관한 거 뺄 때 사고가 잦은 편이라 신경 쓰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었다.

“어……. 네. 괜찮…… 좀 아프긴 합니다.”

환자는 그런 닥터 양과 뚱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닥터 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별문제 없구나.

게다가 산소 포화도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닥터 양은 아까 있었던 닥터 장의 분부를 잊지 않았다.

‘지금 기분도 나쁜데, 시키는 거 안 했다가 또 무슨 꼴을 당하려고.’

특별히 나쁜 놈도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놈도 아니지 않은가.

문서에서 본 이수혁 교주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말이었다.

해서 닥터 양은 환자의 손목을 붙잡고는 말을 이었다.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동맥혈 가스 성분 검사를 해 보겠습니다.”

“아……. 네. 그, 응급실에서 한 그건가요?”

“네. 좀 아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상당히 아팠던 모양이었다.

아직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정신도 없을 텐데 걱정부터 하는 것을 보면.

‘아……. 부채꼴로 찔렀구나.’

손목을 딱 보니, 환자가 오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잘해도 아픈 게 ABGA이지 않은가.

간혹가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게 그 유명한 골수 검사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잘못하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지금 이 환자가 그랬다.

처음에 동맥을 못 찔러서 반만 뺐다가 이리저리 휘적거린 흔적이 있었다.

“응?”

“다 됐어요.”

“와……. 진짜 잘하시네요.”

“아뇨, 뭘.”

각오하고 있던 환자는 단 한 방에 피가 나오자 놀란 얼굴로 닥터 양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경탄이 서려 있었다.

몇 가지 오해 때문일 텐데, 굳이 정정해 주진 않았다.

‘그때보다 혈압이 높아서 그런가 쉽네.’

물론 닥터 양의 실력이 응급실 인턴보다야 낫기는 할 터였다.

내과 레지던트들은 중환자실 환자들에 대해 A-line을 잡아야 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태반은 수혁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수멘이다, 정말.’

이래서 태화 의료원 레지던트들의 신앙이 날로 깊어지나 보다 하면서 닥터 양은 분석기를 돌렸다.

동맥혈 검사는 결과를 빨리 볼 수 있어서 이럴 때 선호되는 검사인 만큼 결괏값이 즉시 나왔다.

“교수님, 정상입니다. 약간…… 이산화탄소 분압이 낮기는 한데…….”

“과호흡이 오는 건 정상이지. 음. 정말 좋아졌네.”

“네.”

닥터 양은 여전히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닥터 장을 보며 뒤에 이어질, 맞는 균이 나왔으니 당연하죠라는 말을 애써 삼켰다.

이러다 설마 수혁의 공을 덮기 위해 약을 다시 바꾸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내가 정말 무식해서 그 인간 말을 못 알아들은 거구나.’

하지만 닥터 장은 닥터 양의 생각만큼 못난 인간은 아니었다.

계속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자기반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수혁의 말이 맞지 않았나.

그렇다면 배경 지식이 못 알아먹었다는 말도 맞을 터였다.

실제로 Talaromyces marneffei라고 생각하고 역산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럼…… 그 양반은 얼마나 대단한 거야?’

설마 모든 병을 다 완벽하게 꿰고 있나, 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억측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Talaromyces marneffei라는 게 한국에서 호발하는 병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이쪽에서, 그러니까 동남아 등지에서 훨씬 많이 발생하는 병이었다.

근데 그런 걸 나보다 더 잘 알다니.

건방진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 싱가포르 내에서도 실력이 괜찮은 편이라 자평하고 있던 닥터 장이었기에 놀라움과 자괴감은 더더욱 컸다.

“일반 병실로 올리고.”

“네, 교수님. 약은…….”

침묵이 길어질수록 닥터 양의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해서 일부러 약에 관해 물었더니만 장이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 새끼가 정말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려나 하고 있으려니, 장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이트라코나졸 계속 써야지. 흉부외과 쪽에도 연락하고.”

“네?”

“수술해야 될 거 아냐.”

“아……. 네.”

“그리고…… 아니다. 의원님 쪽은 내가 연락하지.”

“네, 교수님.”

바로 일을 진행시킬 생각인 듯했다.

양은 그래도 자기 교수가 아주 막장은 아니란 생각에 만족한 얼굴로 병동에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장도 전화를 걸었다.

우선은 흉부외과 교수에게였다.

“어……. 알지? 내 앞으로 입원한 환자. 그 왜 폐암인데 열나 가지고, 어. 수술 못 하고 있던.”

“알지. 리홍이 의원 지인이라며?”

“그 의원 지인이 문제가 아니라, 이 양반이 그냥 VIP야.”

“아, 그렇긴 해. 카지노 사업하는 사람이라며. 근데 왜.”

“열이 내렸어.”

“아, 그래? 그럼 컨디션은?”

장은 흉부외과 교수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환자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삽관되어 있었다는 게 무색하리만큼 멀쩡해 보였다.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스마트 폰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어디 안방에 누워 있나 싶을 만큼 평온해 보였다.

‘이틀…… 아니, 하루만 늦었어도 저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거야.’

진균에 의한 폐렴은 대개 진행이 빠르지 않은가.

게다가 근처에 암 덩이까지 있는 경우라면 더욱더 안 좋았다.

기왕에 파괴된 조직은 감염에도 취약하기 때문이었고, 또 동시에 감염에 의해 파괴된 조직은 암 덩이가 자라기에도 좋아서였다.

그야말로 아주 크리티컬 한 타이밍에 적절히 약이 들어갔단 얘기였다.

“왜 말이 없어. 상태는 별로야? 그럼 나 좀 그런데. 테이블에서 잘못되면…….”

“아니, 상태 좋아. 지금 스마트폰 하고 있어.”

“어? 그래? 그렇게 좋아?”

“어. 엑스레이도 많이 풀렸어. 증상 생각해 보면 아마 거의 다 좋아졌을 걸, 감염은.”

진균이니만큼 잔불 끄려면 꽤 오랫동안 치료를 하긴 해야겠지만.

수술을 못 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아니, 지금 해야 했다.

“그래? 그럼 해야지. 안 그래도 덩이 봤는데 폐절제술이면…….”

“사진 다시 봐봐. 종괴 일부는 진균 감염이었더라고, 더 작아졌을 거야.”

“오, 그래? 어디…… 그러네. 이 정도면 엽 절제술로도 되겠다.”

“잘됐네.”

“잘됐지. 하고 나서 항암 치료는 해야 될 텐데.”

수술하고 바로 항암 치료를 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항암제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일정부분 정상 조직도 공격을 하지 않는가.

근데 그 정상 조직에 상처가 있는 상태라면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었다.

때문에 큰 수술을 하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항암 치료가 더 뒤로 밀렸다.

수술 후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더 밀렸고.

그러다 암이 재발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당연히 수술 범위가 작아진 것은 아주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 할 수 있나?”

“오늘? 아……. 오늘…… 금식은 됐고?”

“됐지. 삽관한 거 오늘 뺐는데.”

“아……. 바쁜데.”

“리홍이 의원한테 지금 전화할 건데, 그래도 바빠?”

“아니, 시간 내야지.”

“그래.”

장은 뒤로 빼려는 동기 녀석을 리홍이를 앞세워 붙들어 놓고는, 말한 대로 리홍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개 의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물이라 바쁠 때가 많을 텐데, 운이 좋아서 그런지 이번엔 한 번에 받았다.

“아, 닥터 장.”

“의원님. 환자 때문에 연락 드렸습니다.”

“아……. 어떻게 됐습니까?”

어찌나 바쁜지 본인이 VIP라고 해 놓고, 심지어 외국에 있는 수혁에게 의뢰까지 하라고 부탁까지 해 놓은 주제에 이후론 단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다.

수혁도 닥터 양도 딱히 리홍이에게는 상태에 관해 얘기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긴장감이 맴돌았다.

닥터 장은 별로 시간 낭비하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인지라 뜸 들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의원님께서 연결해 주신 이수혁 교수님이 바로 진단을 내려서……. 약을 썼습니다. 지금 열 내리고 다 좋아져서 오늘 수술할 예정입니다.”

“아……. 한 번에 맞히던가요?”

“네. 당일에 맞혔습니다.”

“들어 보니 어려운 진단명이었습니까?”

“아주…… 어려운 진단명이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어떻게 맞힌 건지 모르겠습니다.”

장의 말에 리홍이는 퍽 당황했다.

닥터 장이 프라이드가 꽤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역시…… 이수혁 그 사람이 대단하긴 하구나.’

다시 한번 수혁에 대해 감탄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태화 측에서 온 제안이었는데, 글로벌 의료 허브의 일환으로 국제 진료소를 짓겠다는 내용이었다.

기껏해야 병원 하나 짓는 건데 뭐 대수냐 싶겠지만, 의료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라 신중해야만 했다.

투자 규모도 봐야 했고, 동시에 실력도 검증이 되어야만 했다.

규모야 사실 더 볼 것도 없긴 했다.

태화만 한 기업이 흔하진 않은 데다가 의지도 강해 보였으니까.

문제가 되는 건 실력이었는데, 벌써 세 번이나 겪지 않았나.

‘밀어붙여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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