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02화 (502/1,303)

502화 아선의 고뇌 (1)

이현종, 이수혁 부자가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쯤, 우창윤 교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씨…….’

최연소 기조실장이다 보니 이런 일이 드물지는 않았다.

너무 빠른 출세는 원래 이런저런 뒷말을 끌고 다니는 법이지 않은가.

원장 앞에서 딸랑이를 대체 얼마나 흔든 거냐, 아니다 원장이 아니라 이사장을 대상으로 흔들었다 등등.

소인배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기조실장으로 욕심만 낸 게 아니라 실적 또한 만만치 않게 내고 있다 보니 그건 어지간히 누른 참이었다.

‘또 모르겠네?’

이번 고민은 조금 달랐다.

환자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런 일은 자주 없는 일이었다.

우창윤이 수혁이나 이현종에 비하면 좀 밀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내분비내과 의사로서의 실력은 꽤 대단한 편이어서였다.

애초에 우창윤 때문에 태화나 칠성의 내분비가 아선만 못하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을 정도였다.

‘아……. 뭐냐고 이거.’

하나 그 또한 사람인지라 어려운 케이스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 알면 그게 바루다고 수혁이지, 사람이란 말인가.

해서 우창윤은 병동 스테이션에 앉아 눈을 모니터에 처박은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분위기가 심각하다 보니 다른 이들 또한 입을 다물고 우창윤만 바라보았다.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아랫사람들 편하게 대해 주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우창윤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레지던트와 펠로우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긴장감이 솟아오른 펠로우가 마른 침을 삼켰다.

‘나한테 물어보지 마라.’

우창윤도 모르겠는 걸 펠로우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건데, 그래도 레지던트들 앞에서 모른단 말을 하는 건 민망한 일이었다.

“박 선생.”

물론 우창윤은 그런 펠로우의 심경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은가.

“아, 네.”

마른침을 하도 삼켜서 그런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된 박아름이 답했다.

올해로 내분비 내과 펠로우 1년 차인 박아름은 나름 레지던트 시절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은, 일종의 기대주라 할 수 있었다.

우창윤 또한 애정을 갖고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 이건데 그렇다 보니 모른단 말이 더 안 나왔다.

“뭔지 알겠어?”

“그…….”

“그? 그가 뭐야. 그 무슨 신드롬?”

“아뇨, 그…… 잘 모르겠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추임새였어?”

“네.”

“그런 거 하지 마.”

“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창윤은 칼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듣기론 레지던트 시절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의 일인자였다고 하던데, 교수가 되고서부터는 안면몰수하고 태도를 달리했다.

다시 말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을 제일 미워했다.

‘거울을 보는 거 같아서 그런가?’

원래 동족 혐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아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이런 사소한 결점이 우창윤에 대한 충성을 흔들지는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양반이라, 어떻게든 교수 자리로 꽂아 주는 사람이었다.

그게 정 안 된다 싶으면 로컬에서 제일 좋은 자리라도 구해왔다.

개원을 하게 되면 억지로 본인이 같이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에라도 꽂아서 병원을 띄워 주기도 했다.

‘아, 근데 대체 뭐지? 우 교수님도 모를 정도면 이거 진짜 희귀한 병이란 건데?’

박아름이 고뇌에 빠진 사이 우창윤은 고개를 돌려 레지던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의 시선을 받게 되면 어느 레지던트라도 움찔하게 되어 있었다.

설령 뭘 알고 있는 상태라도 그랬다.

지금처럼 정말이지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구나.”

어찌나 반응이 노골적이었는지 우창윤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는 아예 묻지도 않았다.

혹시 모르는 일이라 1년 차, 심지어 인턴도 돌아보았으나 다들 격한 반응뿐이었다.

‘하긴 인턴이 알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물론 인턴이 의외로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머리로만 알고 경험은 없는 상태지 않은가.

그 말은 곧 죽은 지식만 쌓은 상태라는 건데, 오히려 그래서 더 편견 없이 아무 소리나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임상 의사는 환자를 보면서 증상에 집중하고 그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 중 흔한 것부터 떠올린 후 소거하는 훈련을 받게 되는데, 인턴은 질환명만 주구장창 알고 있다 보니 대충 기억나는 걸 떠든다 이 말이었다.

우연히 그 질환이 맞을 때도 있어서 교수들은 꽉 막힌 케이스에서 더 인턴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죄지은 표정이었다.

‘그래……. 증상이 좀 이상하긴 해.’

환자는 약 한 달 전부터 배꼽 주변의 통증과 설사라 하기에는 애매한 잦은 배변을 주소로 동네 내과를 다니다가 호전이 전혀 없어 아선 병원에 온 참이었다.

처음엔 소화기내과로 갔는데 거기서 보더니 이건 내분비 질환 같다고 보낸 참이었다.

평소라면 설사를 하는데 왜 내분비가 메인이냐, 너희가 보고 있으면 우리가 가서 보겠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기조실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때 아니던가.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았는데, 받고 보니 확실히 내분비 질환 같기는 했다.

“일단…… 환자분한테 가자. 설사는 좀 어떠셔?”

“약 먹으면 호전이 되는데, 완전히 끊기지는 않습니다.”

“로컬에서 나간 분변 검사에서는 뭐 나온 거 없었지?”

“네. 감염성이나…… 독소로 인한 설사는 아닙니다.”

“와서 양상 변한 건 없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흠. 그래……. 가자.”

우창윤은 한숨 섞인 그래를 외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환자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후.”

그 병실을 보고 있으려니 또 한숨이 흘러나왔다.

대학병원 의사가, 그것도 아선과 같은 대형 병원 의사가 뭐로 살겠는가.

다 내가 환자 제일 잘 본다는 자부심 하나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한데 모르겠다니.

한숨이 푹푹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아, 그래. 들어가자.”

벌써 전과 받은 지 이틀째인데 얼굴 볼 때마다 잘 모르겠다, 기다리자라는 말만 하고 있었다.

민망한 마음 때문인지 우창윤은 자신도 모르게 우두커니 서 있다가 펠로우가 재촉을 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앉은 환자는 아주 왜소했다.

34세 여환이었는데, 키가 154에 40kg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잦은 골절로 인해 다리에 일부 변형마저 와 있었기에 원래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아, 교수님.”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환자였으나,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볼 때마다 화사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보통 때 같았으면 우창윤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을 터였다.

‘하.’

하지만 지금은 도리어 마음이 불편했다.

차라리 환자가 좀 틱틱 대는 사람이면 조금이나마 덜 미안할 텐데.

이 사람은 사람이 너무 좋았다.

“네, 환자분. 오늘은 좀…… 어떠셨어요?”

“계속…… 좀 불편하네요.”

우창윤의 말에 환자는 배꼽 주변을 가리켰다.

여전히 아프다는 뜻이었다.

그럴 터였다.

진단도 못 하고 약만 주고 있는데 좋아질 리가 있겠는가.

이미 동네 병원에서도 약은 줬었으니, 아선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치료만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일단 혈액 검사가 나갔으니까 내일이면 다 나올 겁니다. 그거 보고 또 말씀드리죠.”

“네, 교수님. 언제쯤 나을 수 있을까요?”

우창윤 정도 연륜이 쌓이면 머릿속과는 달리 겉으로는 침착함을 가장할 수 있었다.

나쁜 게 아니라 원래 의사는 그래야 했다.

환자는 안 그래도 아파서 불안한데, 거기다 대고 의사까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될 치료도 불안해서 안 될 공산이 컸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도 있었다.

물론 역량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빨리 가능한 곳으로 보내야 하기도 하지만, 아선과 같은 4차 병원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여기서 모르는 건 다른 곳 어디라도 모른다고 봐야 했다.

“그…… 우선은 검사 결과를 봐야죠. 제가 판단하기론 환자분 골절이나 이런 것들이 다 연결이 되어 있을 겁니다. 진단이 쉽지는 않겠죠.”

“아…….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너무 힘들진 않으시고요?”

“그래도 입원하고 수액도 맞고 그래서 그런가……. 힘든 건 좀 나아졌어요.”

“그것 다행이네요. 그럼 내일 오전에 또 뵙겠습니다.”

“네, 교수님.”

우창윤은 내내 딴생각을 하면서도 환자와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나누곤 빠져나왔다.

‘다른 곳도 다 똑같을까?’

원래 아선 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라면, 그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모르면 다른 곳 어디에서도 모른다고 여기는 게 맞기는 했다.

그리 머지않은 과거까지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지금 우창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수혁…….’

수혁이 여기 와서 저지른 사건이 하나 있지 않은가.

도저히 모르겠던 환자 하나를 해결해 주고 간 일이 있었다.

‘으하하!’

다음 날 이현종이 껄껄 웃어 재꼈던 것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마 하윤이만 엮여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뭐라고 하긴 했을 터였다.

‘아니, 아니지. 그 환자…… 덕분에 제때 치료가 되긴 했어.’

마음 같아서는 그랬을 거란 얘기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덕분에 도움이 되긴 했다.

아마 혼자 낑낑댔으면 환자 예후가 그렇게까지 좋진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다.

‘아예 정식으로 도움을 받으면……. 음.’

그러면 이 환자도 어쩐지 더 빨리 좋아질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수혁과 이현종까지 머리를 합쳤는데도 모르겠는 환자라면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건데, 그건 순수한 의사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나 그런 거지, 기조실장 입장에서는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어, 어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엘리베이터에 탄 우창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구실이 있는 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열릴 때까지도 내내 고민에 잠겼다.

‘대놓고 의뢰를 하게 되면…… 태화에서 가만히 있을까?’

그놈들이 그럴 리가 없었다.

한때 독보적인 일인자로 군림할 때는 존심을 엄청 챙기더니만, 이제는 그런 거 없었다.

「아선병원 기조실장 우창윤 내분비내과 교수,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에 정식으로 환자 의뢰!」

아마 이런식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설 터였다.

이현종은 아예 학회에 가서 광고를 하지 않았나.

‘와……. 그 사람도 진짜 이제 선이 없네.’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찼다.

그런 상황에서 이걸 어떻게 정식으로 밀어 넣는단 말인가.

해서 다시 한번 혼자 고민에 빠져 보기로 했다.

“하이, 시발.”

우창윤이 다시 입을 연 것은 3시간가량이 훌쩍 지나서였는데, 표정은 더 안 좋아져 있었다.

이리저리 서칭을 해 봐도 도저히 모르겠어서였다.

“어……. 어, 하윤아. 네가 그 부회장이라고?”

해서 우창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딸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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