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07화 (507/1,303)

507화 아선의 고뇌 (6)

수혁의 말에도 불구하고 우창윤은 긴가민가했다.

‘얘가 천재인 것은 맞지.’

이제 와 새삼 그걸 의심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러니까 부탁할 생각도 들었던 거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이 하는 말을 다 곧이곧대로 듣기엔 너무 허황되게도 들렸다.

여기서 갑자기 맥큔 올브라이트 증후군의 원인을 규명할 수도 있다고?

말이 되나?

다다다닥.

우창윤이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벌써 병동 스테이션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Gs 알파 단백질…….]

‘음, 여기 있네. 세포 내에서 신호 전달 체계에 영향을 주는데……. G 단백질 커플링 수용체에 결합을 해서야.’

[생각보다 아주 다양한 곳에 영향을 미치네요.]

‘유사한 녀석들도 많아. 이 중에 힌트가 있겠는데.

수혁은 어지간한 의사들은 알아듣지 못할 만한, 그러니까 지나치게 분자 구조적인 대화를 바루다와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임상에 대한 자료만 데이터베이스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기존에 있는 병을 진단하기엔 충분해도, 그렇지 않은 질환들을 진단해 내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해서 최근 그 이하 단계의 정보도 꾸준히 넣고 있었다.

다행히 일본을 주축으로 해서 분자 구조에 관한 연구가 2000년대 들어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치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여기, 색소 침착에 관여하긴 하지만…… 변이 정도가 낮아서 구조가 비슷한 단백질이 충분하다면 괜찮을 수도 있겠는데요?]

‘어, 그렇네. 성조숙증도 그래.’

[다른 장애는 변이 정도가 적어도 일으킬 수 있겠습니다. 대체 가능한 구조물이 없어 보여요.]

심지어 수혁은 바루다를 이용해 화학식만 보고도 어느 정도 모양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직 수용체 결합 확률까지 계산할 수 있진 않았지만, 대강의 가설 정도는 세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지금 이 환자를 눈앞에 두고 있지 않았다면 그저 가능성 작은 가설에 불과했겠지만, 눈앞에 둔 이상 그렇지가 않았다.

반드시 실험을 통해 검증을 해 봐야 하는 가설이 되었다.

높은 확률로 이론이 될 터였다.

“그래서 지금 수혁이 아선이야?”

그 모습을 안대훈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무척 수상한 모습이었지만 일단 가운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데다가, 어딘지 모르게 병원에 익숙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딱히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네. 아선에서…… 환자 보고 나와서 지금 컴퓨터 하고 있어요.”

“그럼 그거 진단에 들어갔다는 거 아냐? 걔 컴터 뚝딱 하고 나면 그러던데?”

“표정만 봐도……. 제가 보여 드릴게요.”

심지어 영상통화 중인데도 그랬다.

덕분에 안대훈은 편하게 프락치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신현태를 불러서 급히 아선으로 출동 중인 이현종도 덕분에 편하게 아선 병동 상황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네. 이거 최소 5초 전인데.”

“그렇죠?”

“이제부터 병동 다 찍어. 녹음도 중요해. 들켜도 되니까 진단할 때 그걸 찍으라고.”

“네네.”

해서 이현종은 명을 내렸다.

옆에서 당연하다는 듯 밤에 불려 나와 운전 중인 신현태는 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수혁이 아선 병원에 가서 어렵디어려운 환자를 진단해 내는 게 좋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말릴까?’

특히 방금 신호 위반하는 차에 역전당하고 나니 현타가 몰려왔다.

입을 달싹이며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아니다……. 그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

이현종의 반쯤 돌아간 얼굴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쑥 들어갔다.

원래도 정상이 아닐 때가 더 많은 인간인데, 지금은 그중에서도 발군이었다.

이제 와서 돌아가자고 했다간 핸들을 꺾어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운전을 해 본 양반이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테지만 이현종은 이 나이 되도록 운전이라곤 안 해 본 사람 아닌가.

개념도 없어서 그냥 막 나갈 게 뻔했다.

“빨리 가!”

“아, 알았어.”

신현태는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심정으로 액셀을 밟았다.

태화나 아선이나 그렇게 거리가 먼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금세 병원에 닿을 수 있었다.

문제는 주찬데, 이현종이 묘수를 냈다.

오랫동안 의사로 살아오면서 켜켜이 얼굴에 쌓인 분위기를 믿자 이거였다.

“어어, 형. 잠깐만.”

물론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을 믿지 못했다.

아니, 믿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불안했다.

당연히 말리려 했으나 소용은 없었다.

“일단 저따 세워.”

“저기는 진짜 그냥 로비잖아…….”

“세우라니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인마.”

“우리 병원에서도 여기다 세운 적은 없는데.”

“너는 없어도 난 많어.”

“그래? 민원 장본인이 형이었어?”

“진짜 급해서 세운 거야. 감염이랑 심장이랑 같냐?”

“하우.”

원래 이현종이 자기가 원하는 일이 생기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나름 논리도 좋았다.

적어도 신현태가 지금 당장 대응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끼이익.

해서 신현태는 인상을 쓴 채로 로비 앞에 세웠다.

“어, 거기!”

당연하게도 시큐리티 요원이 달려 나왔다.

이미 밤이라 딱히 오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다고 허용을 해 줄 거면 뭐 하러 규칙을 만든단 말인가.

24시간 주차가 안 되는 곳도 있는 법이었다.

“거봐, 오잖아!”

신현태는 그런 시큐리티의 얼굴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반면 이현종은 당당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심장 내과 이현종인데, 지금 환자 넘어간다고 해서요.”

“아, 아! 네!”

그리곤 태화 병원 출입증을 절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밀고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야! 너도 와! 보조해야지!”

신현태를 부르면서였다.

“아니…….”

신현태가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놀랍게도 시큐리티가 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세상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들어가시죠! 그동안 차는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어……. 어어, 네.”

신현태는 얼결에 로비를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이현종을 따라잡았다.

“된다고? 이게 된다고?”

“되지. 인마 내가 응급 짬밥이 벌써 수십 년이야. 밀고 들어가서 살린 사람만 수백이다.”

“오늘은 아니잖아.”

“그때를 딱 떠올렸지. 그럼 분위기가 나온다니까. 병원에 있는 사람이면 안 속을 수가 없어요.”

“허……. 이…….”

신현태는 사기꾼이라는 말을 겨우 참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선이 초대형 병원이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그중에는 의사들도 있었는데, 몇몇은 둘을 알아보기도 했다.

이현종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신현태는 현직 원장이어서 그랬다.

“어?”

“왜?”

“태화 교수님들 본 거 같아서.”

“이 시간에?”

“어. 맞는 거 같은데…….”

“에이, 설마. 학회도 없는데.”

“하긴 그렇지?”

이런 마당에 사기꾼이니 뭐니 하면서 이목을 끌 이유는 전혀 없지 않겠나.

해서 안대훈이 말해 준 병동으로 부리나케 걷기만 했다.

그마저도 병원이 물색없이 커서 꽤 오래 걸렸다.

“하여간 아선 놈들은…… 건설사 기반이라 그런가. 뭔 놈의 병원이 이렇게 커.”

“형……. 여기 아선이야. 말 조심해. 맞아 죽는다.”

“의사가 사람을 패?”

“아니, 그런 게…… 그런 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선 애들이 태화 와서 태화 욕하면 가만히 둘 거야?”

“미쳤어? 죽여야지.”

“이렇게 사람이…….”

표리부동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현종을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고개를 둘러보니, 어떻게 들어갔는지 병동 문 안쪽에 있는 안대훈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둘은 안대훈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죄지은 게 있으니 몸을 잔뜩 움츠리고서였다.

“어떻게 됐어?”

“직접 보세요. 지금 막 몸 일으키셨어요.”

“그래? 표정은 5초 전이었는데?”

“뭔가 자료를 다운받은 거 같아요. 교주…… 아니, 교수님은 천재지만 우창윤 교수는 일반인이지 않습니까. 납득하려면 쓸데없이 많은 자료가 필요하겠죠.”

“아, 그렇지. 그 말 좋다. 너 센스 좋았다.”

이현종은 안대훈의 말에 흡족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쑥 내밀었다.

너무 많이 내밀어서 들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우창윤은 이미 수혁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성조숙증하고 색소 침착은 Gs 알파 단백질의 변이가 경하면…… 다른 유사 단백질로 대체가 되어서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 이건가?”

“네.”

“잠깐…… 잠깐만. 이건 너무 갑작…… 갑작스러운데.”

맥큔 올브라이트 증후군의 정의가 바뀌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어디 다른 교수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뒤통수 딱 때렸을 텐데, 이수혁이지 않은가.

게다가 분자 구조까지 내려받아서 보여 주는 통에 신뢰감이 어이없게 올라가고 있었다.

혼미해져서 벽을 짚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갑작스럽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근데…… 이게 확실합니다. Gs 알파 단백질이 원인인 게 억지 추정이 아니란 거죠. 이론적으로 다 들어맞지 않나요? 환자분 상태도 그렇고요.”

“그렇게만 들으면 그래. 그런데…… 아니, 근데. 이게…… 이런 거대한 일이 이렇게 갑자기?”

“원래 위대한 발견 중 많은 것들이 우연히 이루어졌죠.”

“그건…… 그렇지. 잠깐만, 그래도 나도 시간이.”

“네.”

우창윤은 그리 많이 남지 않은 머리를 쥐어 싸매고는 고민에 빠졌다.

어찌나 격렬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지 머리 전체가 새빨게질 정도였다.

그게 약간 열 받은 문어 같은 모양이라 멀리 있던 이현종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러다 안대훈을 봤는데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으하하.”

그 순간 우창윤이 눈을 부릅떴다.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와서였다.

“응?”

“왜요?”

“아니, 아냐. 악몽을 꿨나.”

“갑자기요?”

“아니……. 그래. 음. 생각해 봤는데 맞는 거 같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여간 우창윤은 수혁의 이론을 영접하기로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다른 이론은 떠오르지 않는 데다가, 이 이론은 그럴싸한 것을 넘어 확신이 들었다.

“그럼 환자분한테 갈까요?”

“음……. 가지. 이대로 치료해 보는 게…… 좋겠어.”

“네.”

하여 둘은 환자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11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어서 복도가 조금 어둑해진 상황이었다.

다행히 병실 불은 켜져 있어서 큰 부담은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환자분?”

“아, 네.”

환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잠깐 다녀온다고 하긴 했으나, 그 잠깐이 진짜 이렇게까지 잠깐일 줄은 몰라서였다.

수혁은 그런 환자를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진단이 나왔습니다. 약이 있는 질환이에요. 어느 정도 호전이 있을 겁니다. 잘 관리하면 앞으로의 증상도 예방할 수 있을 거고요.”

환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망찬 내용의 말을 입에 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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