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12화 (512/1,303)

512화 이제 칠성? (1)

이기원은 곧 가장 친하게 알고 지내는 칠성 병원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의 주치의이기도 했는데, 어머니가 하도 고집을 부린 데다가 치료를 막상 태화에서 받는 바람에 조금 서먹해진 참이기도 했다.

“어,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전화가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현종이 이상한 거지 대부분 의사는 아니, 대부분 사람은 권력자에게 호감을 느끼기 마련이어서 그랬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전화가 걸려 와서 그런가. 평소보다도 더 반가워 보였다.

“네, 박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덕분에 어머니 잘 치료 받았는데 감사 인사도 못 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네? 아이고, 아닙니다. 나랏일 하시느라 바쁜데……. 전화 못 하는 게 무슨 대수인가요.”

너무 반가워하는 걸 보니, 조금 반감이 들 지경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이현종과 수혁을 만나서 더 그랬다.

이미 은혜를 한번 입은 데다가, 종친이라는 말에 호감이 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둘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비굴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기원은 그런 사람이 좋았다.

‘뭐……. 박 교수님도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아마 의원 된 지 얼마 안 된 상황, 그러니까 주변의 반응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바뀌었을 때라면 대놓고 뭐라고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원으로 살아온 지 오래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이현종이나 수혁 같은 사람이 드물다고 봐야 맞았다.

“네, 하하. 하여간…… 제가 이렇게 전화 드린 건 말입니다.”

“네네.”

박 교수, 즉 박국진은 전화라 상대에게 보일 리가 만무한데도 고개를 연신 숙였다.

그러면서 이 양반이 대체 왜 전화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태화 측에 후원금 1억 넣었던데…….’

액수가 크기는 하지만 병원 운영비 전체로 두고 보면 욕심이 날 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기원은 권력자인 동시에 명사이지 않은가.

심지어 안티도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여당 측 인사면서도 중도적인 언행을 보임으로써, 야당의 미움을 사지 않아서 그랬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사람이 참 괜찮았다.

‘아마 태화로 마음이 기운 거겠지?’

그런 사람을 잃게 된 게 한이었다.

누구 탓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순수한 실력에서 밀려서 벌어진 일이니까.

‘이수혁…… 걔를 진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끌고 왔어야 하는데.’

박국진이 한창 아쉬워하고 있을 때쯤, 이기원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도움을 좀 받았잖습니까?”

“아, 네 그렇죠.”

이기원은 보지 못했겠지만, 박국진은 얼굴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대외적인 반응을 아예 하고 있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존재이지 않나.

게다가 최근에 아선이 진료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나서면서 안에서도 이런저런 말이 나왔다.

여기서 오히려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게 더 의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라고.

진료에 자신이 있으면 협력 체계 구축하고, 거기서 못 보겠는 환자를 받자는 말까지 나왔다.

‘멍청이들.’

물론 그들 말대로 이현종이나 이수혁이 자존심 하나 지키자고 환자 골로 보내진 않을 터였다.

라이벌인 것과는 별개로 실력이나 인성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던가.

특히 이현종은 괴짜이긴 해도 환자에게 절대로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환자들 사이에서는 친절하다는 말까지 듣겠는가.

‘그 사람들이 모르면…… 우리는 절대 알 수가 없어.’

하지만 박국진은 이런저런 이유로 프락치를 운영하고 있는 편이었다.

주워들은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 둘은 진짜 천재다. 각각도 천잰데 시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사람들이 이수혁을 좀 간과하는데, 오산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통합진료센터의 핵심은 센터장인 이현종이 아닌 이수혁이란 생각이 들었다.

녀석의 성장 속도는 이미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그거 추천해 주신 게 박 교수님이시죠. 정말 감사히 생각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아뇨.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추천을 해 주신 거지 않습니까?”

“음……. 그건 맞기는 합니다. 일이 잘 풀려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박국진이 괜히 이기원 교수의 어머니를 통합진료센터로 던진 게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보기 드문 진상이니만큼 엿이나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어머니인 만큼 거기서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칠성에서는 보기 드물게 태화를 겉으로도 인정해 주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이기원 의원이 박국진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근데 제가 그 후로 보니…… 제가 마지막이더군요.”

“네? 무슨 소리신지…….”

“통합진료센터로 의뢰된 칠성의 처음이자 마지막 환자가 제 어머니란 얘기입니다.”

“아, 그건…… 그건 저희 역량이 그만큼…….”

“에이, 박 교수님. 저랑 박 교수님이랑 얼굴 본지도 벌써 십 년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음…….”

박국진은 이기원 의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 후로도 몇 번 박국진은 환자를 보내려고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지금 칠성이 태화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환자를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원장단의 입장은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태화 통합진료센터가 더 화제가 되는 것도 문젠데 거기서 우리가 떠먹여 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안국태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들이 현 원장단이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은 이사회의 지지도 받고 있었다.

칠성은 기업의 명운을 걸고 태화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정작 태화는 이미 눈을 해외로 돌려 글로벌 1위로 자리를 굳히려 하고 있는 와중이라는 게 상당히 슬프지만, 칠성에 몸담은 사람에게 중요한 건 세계적인 추세가 아니라 칠성의 태도였다.

“원장단이 강경한 거죠?”

그러한 사실은 이기원도 알았다.

정치적인 감각뿐 아니라, 이런저런 루트로 들어서 그랬다.

확실히 지금 칠성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국내 문제로 치킨 게임이 있어서는 한국 경제에 별로 좋을 게 없다는 정치권의 은근한 제스처가 있음에도 그랬다.

“아, 네. 그렇습니다. 엄청납니다…….”

“내과 과장이시면 원장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으신 거 아닙니까?”

“아…… 그게.”

“그게…….”

“저 과장 아닙니다.”

“네? 과장이 아니에요? 임기 남으셨잖아요.”

“그게, 음.”

박국진은 한참을 저어하다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때 태화에 보내 드리고 이렇게 됐습니다.”

“허……. 그 덕에 저희 어머님 사셨는데요?”

“아시잖습니까. 병원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좀 보도도 되고 하니까…… 한동안 죄인처럼 지냈죠.”

“이거야 원…….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뇨,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결과가 좋아서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환자가 잘못되길 바라는 의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흐음……. 근데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원장단이 강경하네요? 그럼 과장은 누가 됐습니까?”

인원이 좀 적은 과 같으면 과장은 그냥 돌아가면서 하는, 어쩌면 좀 귀찮기만 하기도 한 자리였다.

하지만 내과는 대형 병원인 경우 교수 수가 무려 기백을 헤아리지 않는가.

그 과의 과장이라는 자리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자리였다.

병원 내 영향력이 있다는 얘기.

게다가 수가 많다 보니 돌아가면서 할 수도 없었다.

“그…… 안국태 교수가 됐습니다.”

“안국태……? 아 감염내과 안국태 말입니까?”

“네. 그 안국태 교수요.”

“사이 엄청 안 좋으신 거로 알고 있는데…….”

“네, 뭐.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아무리 과장이라도 분과 일에 간섭하진 않으니까요. 다만…… 분위기가 완전 그쪽으로 넘어가기는 했죠.”

“흐음…….”

이기원 의원은 박 교수의 말에 잠시 침음을 흘렸다.

조직 내에서 힘을 잃은 사람에게 뭔가 새로운 제의를 요청하는 건 못할 짓이었다.

원내대표로 있어 봐서 잘 알았다.

“박 교수님 생각은 어찌 되었건 어려운 환자는 그쪽으로 보내는 게 맞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밖에서 도움을 주는 게 옳을 터였다.

당연히 그 전에 도움을 원하는지부터 확인을 해 봐야 하긴 하지만.

이기원 의원은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있었다.

원래 어떤 일을 해서 박해를 당하게 되면 어떻게든 더 하게 되어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병원이 빅3 중에 오진율이 제일 높아요. 내부 정보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너무 폐쇄적이고 또 내부에서도 경쟁을 시키다 보니 이럴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내부 협진도 적은 편입니다.”

“음……. 그럼 바뀌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네, 그렇죠. 하지만 쉽지는 않네요. 위에서 의지가 너무 강해서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건 좀 어떻습니까?”

예상대로 박국진은 꽤 강한 반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기원 의원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묘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확실히…… 그쪽이 움직이면…… 무시하기 어렵죠.”

“그렇죠?”

“네. 의원님. 근데 무리하시는 건 아닌지요?”

“무리랄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누가 들어도 이게 더 좋은 방법이라는 건 알 테니까요.”

이기원은 박국진 교수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사람을 불러 모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칠성 병원 후원회 사람들을 모았다.

작은 병원이 아니다 보니 후원을 통해 VIP 대우를 받으려면 억 단위 기부를 해야만 했다.

그만큼의 돈을 기부할 수 있다는 건 나름 돈이 많다는 얘기인데, 거기에 더해 나름 생각도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란 뜻이기도 하지 않은가.

딱히 병원에서 금지하는 것도 아닌지라 모임이 자연스레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원님이 보자고 한 건 처음인데……. 무슨 일이죠?”

여유도 있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보니 모일 때마다 훈훈함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이기원은 직업상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보니 약간 섭섭한 마음도 있던 차에 이렇게 모임을 소집하니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가 물었다.

지금 모임을 갖는 장소, 즉 신논현 근처에 있는 고깃집 사장이기도 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말씀드릴 것이 좀 있어서요.”

“그래요? 이거 참, 의원님이 모임 주선한 것도 놀라운데……. 말할 것이 있다니 진짜 궁금해지는데요?”

이기원은 잠시 서글서글한 사장의 눈을 피해 고기 불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그러면서도 믿음직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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