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화 이제 칠성? (2)
“저희 어머니 보신 분들도 계시죠?”
이기원 의원은 일부러 더 민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인성이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남들 앞에서 엄마 얘기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였다.
게다가 국회의원으로서 갑질하는 사람도 아니고, 진짜 봉사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더했다.
예전엔 자다가도 몇 번씩 왜 우리 엄마는 갑질을 할까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했더랬다.
“아, 네. 봤죠. 사실 의원님은 검진 말고는 진료도 안 보시잖아요.”
“하하. 어머니…… 이제 건강하시죠?”
“거참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입니다.”
다행히 다들 점잖은 양반들이라 그런가. 어머니의 패악질은 잊어 준 모양이었다.
아니, 기억에 이 사람들 앞에서는 그나마 자제를 했던 거 같긴 했다.
진짜 나쁜 게 사람이랑 상황 봐 가면서 난리 법석을 피우는 스타일이지 않은가.
다른 병원도 아니고, 칠성 병원의 고액 후원자로 현판에 이름 석 자 새길려면 수억씩 내야 하는 사람들이니만큼 만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휴.’
이기원은 어째 사람이 그럴까 하고 남몰래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배경 설명이 필요 없어서 다행이라 여기면서였다.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기원의 어머니가 어떤 병이 있었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대강은 알고 있지 않은가.
천하의 칠성에서도 치료가 잘되지 않는다 해서 다들 걱정도 했더랬다.
“네, 다행히 잘 치료가 됐습니다. 박국진 교수님이 태화의 통합진료센터로 의뢰해 주신 덕입니다.”
“아…….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소문이 아니라 기사도 떴었어. 한국 일보 말고는 안 내서 그렇지.”
“그래? 왜 그렇지?”
“왜 그렇긴……. 당연하지.”
언론이라고 해서 다 중립적인 건 아니지 않은가.
특히 광고주를 대상으로 하는 보도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회적인 물의를 잔뜩 일으킨 경우라면 광고주고 나발이고 없이 보도를 하겠지만.
이런 건 애매하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괜히 큰 물주 중 하나인 칠성을 엿 먹이는 건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특히 칠성에서 직접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이 온 경우엔 더 그랬다.
어차피 그리 중요한 건도 아닌지라 다들 뭉갰다.
“그 통합진료센터가 요새 좀 시끄럽지 않습니까? 아선에서도 진료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요.”
“아, 맞아요. 그거…… 건너 듣기로는 사짜 같다는 말도 있고, 또 엄청난 곳이라는 얘기도 있던데요.”
“아선이 인정했으면 아무래도 대단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또 칠성 교수님들 말씀만 들으면 말이 안 된다고 하고요. 제 생각에도 과와 관계없이 협진 보는 게 되나 싶고…….”
이기원은 언론 얘기를 굳이 짚고 넘어가는 대신 하고자 했던 말을 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직접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칠성 측에 후원을 하고 있다 보니 당연히 칠성 측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몇몇은 통합진료센터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살짝 흥분하는 게 보였다.
당연히 이기원에게 그 흥분을 이어 나가지 않았지만, 이기원은 느낄 수 있었다.
정치를 하다 보면 싫어도 사람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기에 그랬다.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습니다. 아마 어머님이 그렇게 난리만 피우지 않았으면 안 갔을 거예요. 박 교수님이 하도 시달리니까 우리를 딴 병원으로 보내나 싶기도 했고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요. 후원을 얼마를 했는데……. 사실 칠성 가면 따로 대기실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후원을 왜 하는데.”
후원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한두 푼도 아니고 억 단위로 후원하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뜻도 있겠지만, 그 좋은 일을 하필 칠성에 하게 하려면 뭔가 더 유인 요소가 있어야만 했다.
때문에 비단 칠성 병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예약이야 워낙에 예민한 문제다 보니 크게 건드리진 않았지만, 하여간 취소되는 자리가 있으면 우선 배정이었다.
또 병원 가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시간 다 가는 게 보통인데, 그때 편안히 있을 수 있게 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낸 후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려 주는 건 기본이었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다 보니 한번 후원금을 많이 내어서 고액 후원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 병원을 바꾸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도 아쉬운 일이지만 후원자 개인으로서도 그렇다는 얘기였다.
이기원은 잠시 그때 섭섭했던 일을 떠올렸다.
아마 엄마가 가서 더 난리를 피웠던 것도 그런 이유도 있어서였을 터였다.
물론 통합진료센터라는 곳이 있다던데 하면서 소리 지른 것도 엄마긴 하지만 그 성질머리를 떠올려 보면 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잘해 보라는 뜻이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네, 근데 막상 가고 보니 왜 보냈는지 알겠더라고요. 거기 시스템이 꽤 좋습니다. 칠성이나 아선에서도 따라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요? 아니, 정말 거기서 고친 거예요?”
“네, 그것도 가서 거의 하루 이틀 만에 진단하고 치료까지 됐어요.”
“와……. 그런 게 된다고요? 음.”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지 오래였다.
박국진 교수는 환자를 내치려고 보낸 게 아니라, 정말 가서 잘 치료 받아 보라는 생각으로 보낸 참이었다.
그리고 통합진료센터는 그런 박국진 교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만 이틀이 채 지나기 전에 진단과 치료가 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 봐도 기적이었다.
‘아니, 그런 게 태화에 있어?’
‘왜 하필…….’
‘칠성은 뭐 하고?’
이기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도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뻔했다.
아까 말했듯 한번 고액 후원자가 되면 병원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다들 칠성이 최고의 병원으로 남아 최고의 서비스를 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칠성은 하지 못하는 엄청난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있어?
게다가 태화는 딱히 칠성이랑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대학 병원이라는 게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이지 않나.
태화나 칠성이나 접근성 면에서는 도긴개긴이라는 얘기였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이걸 아선처럼 진료 협력 체계를 구축해서 우리도 이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어,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근데 거기서도 VIP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가 보니까 통합진료센터는 워낙 시설이 좋아서 그냥 다 VIP 같습니다. 게다가 아무나 안 받아요. 어려운 케이스만 받아서 환자가 막 몰리지도 않고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그거…… 그거 왜 안 해 주고 있지?”
이기원이 제때 가려운 부분을 딱 찌르자,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서 미끼를 물었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대세는 기울고 있었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데 대체 왜 반대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건 단순히 편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닌 의료 서비스였다.
생과 사가 오갈 수 있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있다고 해도 몸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운데…….”
“아유, 저희가 뭐 어디 가서 이런 거 얘기하는 사람인가요?”
“그러니까요. 여기서 나온 얘기 밖에서 안 하는 건 불문율인데요.”
이기원이 일부러 망설이자, 몸이 단 몇몇이 손까지 휘둘러가면서 말하기를 종용했다.
사실 그들의 말이 맞기는 했다.
이 안에서만 도는 투자 정보도 있고, 또 임장도 같이 다니는 멤버도 있었다.
다들 믿을 만한 사람들이고 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란 암묵적인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중에서 이기원은 굉장히 겉도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의견을 제시하자 다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무리의 경계선에 있던 사람이 입을 열면 이렇게 되는 법이었다.
“네, 뭐……. 제가 여러분들을 믿지, 그럼 누구를 믿겠어요.”
이기원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중요한 말도 아니었는데, 이기원의 직책이 주는 무게감도 있고 또 연륜에서 나오는 무게감도 있어서 그런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알아보니, 이게 칠성 원장단에서 막았더라고요.”
“네? 왜요?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아뇨. 대외적으로 칠성이 태화에게 밑지고 들어가는 모양이 나오지 않나, 뭐 이런 우려가 있는 거 같습니다.”
“아니……. 병원이 사람 고치는 거에 집중해야지 이미지가 무슨 소용이야.”
“저도 그게 좀 아쉬워서 말씀을 드려 봤는데……. 알고 계셨나요? 박국진 과장님이 과장에서 경질됐더라고요.”
“네? 아니, 그 사람 과장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뭐…… 사고 쳤대요?”
과장에서 조기 경질되는 경우는, 적어도 우리나라 대학 병원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사고를 쳐야 했다.
그것도 작은 게 아니라 큰 거였다.
예를 들면 성 추문을 일으켰다거나, 아니면 리베이트를 받았다거나 하는 아주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아, 아뇨. 그게…… 이게 참.”
“뭐, 뭔데 그러세요.”
“저희 어머니…… 통합진료센터로 의뢰했다고 경질됐다고 합니다. 과장이 본을 보여야지…… 알아서 환자를 보내면 되겠냐고 했다고 하던데……. 이게 참…….”
“에? 환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고쳐졌는데 그랬다고요?”
“네. 저도 그거 듣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이기원은 그 말을 하면서 일부러 옷깃을 매만졌다.
남들에게는 그냥 옷깃이겠지만, 이기원은 국회의원이라 거기에 금배지가 있었다.
한창 말이 오가던 참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배지를 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상대가 국회의원인데도 칠성이 그렇게 나왔다, 뭐 이런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까.’
이기원은 다른 의원들이나 야당 원내대표 회동 때나 펼치던 고급 스킬을 쓴 다음 슥 하고 일행을 살폈다.
다들 심사가 복잡해 보였다.
그중 성미가 급한 편인 고깃집 사장은 핸드폰을 꺼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어요? 전화라도 해야겠는데?”
“아니, 아니. 그건 좀…….”
“아뇨. 말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저희가 그래도 이만큼 후원을 하는데…… 말 한마디 할 자격은 있죠.”
과장은 아니었다.
과신도 아니었고.
이 모임에서 매년 기부되는 액수가 년으로 따지면 십수억에 달하는데, 감히 어떻게 무시를 할까.
병원 전체 규모로만 보자면야 당연히 아주 큰 돈은 아니겠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럴 게 아니라…… 정말로 저희 의견을 강하게 개진하고 싶으면 제가 또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하나하나 의견을 얘기하는 건 별일이 아니었다.
정치할 때도 그랬다.
민원인 하나하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큰 영향이 없지 않나.
하지만 그 민원인들이 모여서 단체로 목소리를 내면 그 어떤 정치인이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저희 후원회 이름으로 의견을 내죠. 제가 초안을 작성하고 돌리겠습니다. 수정 사항 있으면 알려 주시죠.”
“아……. 그거 그게 좋겠네요.”
“칠성 후원인이라고 더 좋은 서비스를 이용 못 하게 되면 그건 역차별이지.”
“좋은 생각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