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15화 (515/1,303)

515화 객혈 (1)

객혈.

피를 토한다는 말로 혼용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토하는 건 아니었다.

이건 위를 비롯한 소화기관에서 피가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 호흡기관에서 나오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라 그랬다.

토혈에 비하면 당연히 드문 상황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술 먹다 토하는 건 아니다, 이 말이지?’

[우하윤이 그 정도 능력치는 아닙니다. 수혁이 저를 탑재하고 있어서 잘 실감이 안 나겠지만 안대훈과 우하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요.]

‘하긴 이 두 개를 착각했을 거 같진 않아. 토혈은 상대적으로 흔하기도 하고…….’

[그렇죠.]

막말로 피 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나.

실제로 술을 적정량 이상 먹어서 토를 하게 되면 그 압력 때문에 식도가 찢어지는 경우가 왕왕 생겼다.

주로 자기 주량을 모른 채 미친 듯이 마시는 신입생이나, 억지로라도 마셔야 하는 사회 초년생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빈도가 꽤 흔했다.

흔하다는 말은 의료진에게 경험치가 싸인다는 말이기도 하기에 대부분의 큰 병원 응급실에서는 피 토한다는 젊은 환자가 오면 우선 이것부터 감별했다.

‘식도 정맥류도 아니겠지?’

[그것도 감별이 됐을 겁니다.]

식도 정맥류란 간경화가 진행해서 간이 단단해지면서 생기는 질환이었다.

간이 단단해지면 간으로 들어가는 간문맥에 압력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 때문에 식도 쪽 정맥이 부푸는 수가 생겼다.

내시경으로 보면 식도 내부로 정맥이 보일 정도가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게 터지면 당연하게도 초응급이었다.

외국에서는 엄청난 질환으로 취급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워낙에 음주나 비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가 많기도 하거니와 그 때문에 우수한 소화기 내과 의사들도 많아서 어지간히 대응이 되는 편이었다.

‘하긴 그것도 흔하긴 해.’

[네. 뭔가 특이한 질환이거나…… 앞서 열거한 질환의 특이한 형태일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데?’

[네.]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된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참 이상한 일인데 어쩌겠는가.

이미 오래전에 버린 몸이었다.

희한한 케이스만 보면 참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아, 교수님!”

들어가자마자 우하윤이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하윤은 안대훈과는 달리 시도 때도 없이 교주 소리를 입에 다는 사람이 아니라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어, 환자 어딨어?”

“일단 바로 처치실로 옮겼어요.”

“객혈이야?”

“네. 산소 포화도가 쭉쭉 떨어져요. 피 때문에 시야도 안 나오고…….”

“그럼 이럴 때가 아닌데.”

수술을 포함해 어떤 시술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바로 시야였다.

뭐가 보여야 뭐라도 하지 않겠나.

무언가 가리고 있다면 그거부터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출혈은 늘 곤란한 존재였다.

피가 어디서 나오는지 찾아서 멎게 해야 하는데 안 보이지 않나.

게다가 그 피가 기도해서 나온다?

최악이었다.

“아, 최우선적으로 이엔티 콜 해서…… 기관절개는 했습니다.”

“잘했네. 그럼 지금은?”

“기관지 레벨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서…… 카리나 안쪽으로 깊숙이 삽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피는 안 나옵니다.”

카리나란 공기가 기도 오른쪽, 왼쪽 폐로 각기 들어가기 위해 양쪽으로 나뉘는 부위를 말했다.

그것보다 더 들어갔다는 건 필시 하나의 폐를 선택했다는 뜻이 된다는 뜻이었다.

딱히 배경 설명이 필요 없는 둘이다 보니 대화는 지체 없이 이어졌다.

“어느 쪽으로 들어갔는데?”

“우측입니다.”

“그럼 피가 나는 건 좌측이겠네.”

수혁은 하윤과 빠르게 대화를 정리하면서 아까 하윤이 가리켰던 처치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은 대로 환자는 이미 기관절개 후 관까지 다 들어간 마당이었다.

기관절개 하면서도 피를 계속 품었는지, 주변이 온통 피 칠갑이었다.

‘엄청 어려웠을 거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토록 이쁘게 수술을 해 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칼을 대면 피가 나기 마련인데, 안쪽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주변으로 뿜어져 나간 피의 양을 보아하니 적지도 않았다.

시야를 엄청 가렸을 것이 뻔했다.

“누가 하셨지?’

수혁은 눈앞에 레지던트 하나가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윤에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레지던트 레벨에서 한 건 아닌 거 같아서였다.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 이낙준 교수님이 하시고 가셨습니다. 마침 원래 외래 다니시던 분이 응급실에 오셔서…… 들르셨더라고요.”

하윤은 답을 하면서 방금 왔던 이낙준을 떠올렸다.

다들 허둥지둥하면서, 심지어 기관절개 해 달라고 부른 이비인후과 레지던트조차 허둥대던 와중에 소란스럽다고 들어왔더랬다.

‘지랄 말고 칼이나 줘.’

그는 그런 레지던트에게서 칼을 빼앗아 들더니만 슥슥 몇 번 안 되는 절개를 끝으로 관을 박고 쿨 하게 밖으로 나갔다.

‘내과 레지던트야, 환자 잘 봐라. 우리 할 일은 끝났다.’

그리 크지도 않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등짝이 어찌나 든든하게 보이던지.

그야말로 칼잡이 그 자체였다.

“아……. 운이 좋았네.”

“네. 정말…… 수술실도 아닌데 계셔 가지고요.”

“하여간 시간은 번 셈인데……. 그럼 이 환자 지금 한쪽으로만 숨을 쉬고 있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왼쪽은 피도 나고 있는 데다가, 애초에 관이 안 들어가 있으니 공기가 아예 안 통하고 있었다.

폐라는 기관도 다른 장기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여유분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한쪽만으로도 꽤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 적응만 되면 한쪽만으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두 쪽 다 갖고 사는 게 좋지 않겠나.

괜히 폐가 두 개 있는 건 아니니까.

“흡연 여부는 체크 했어?”

“아, 네. 담배를…… 엄청 오래 피우셨습니다. 40갑년이요.”

“아이고……. 나이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아 보이는데.”

“하루 두 갑씩 20년…… 입니다.”

“스무 살 되시자마자 꽉 채워서 피웠구나.”

“네.”

게다가 담배를 이렇게 많이 피웠다면, 폐 기능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왼쪽 폐 또한 살려야 했다.

그러자면 빨리 원인을 파악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환자에게 문진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관을 박은 순간부터 성대로 공기가 가지 않으니 말을 할 수 없을뿐더러 지금은 재워 두기까지 했으니까.

“사진은?”

“아직입니다. 오자마자 일단 이것부터 해서요.”

“음. 판단 잘했네. 사진 찍다가 죽었을 거야.”

“네.”

“그럼 일단 AP부터 하나 찍자. 포터블로…….”

“네.”

수혁은 잠시 하윤을 칭찬한 후 처방을 냈다.

태화는 어디건 간에 시설이 꽤 좋은 편인 데다가, 인력도 충분한 터라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딱 사진이 뜨자마자 하윤, 수혁 그리고 뒤늦게 얘기만 듣고 달려온 호흡기내과 쪽 펠로우가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었다.

‘잉, 아빠는 어디 갔어?’

[모르겠네요? 아까 같이 왔는데?]

이현종이 중간에 사라졌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애도 아닌 데다가 여기 원장까지 했던 양반이 길을 잃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높은 확률로 어디선가 또 심장 쪽 문제가 의심되는 환자에게 홀려서 거기로 갔을 터였다.

‘음…….’

[폐가 되게 지저분하네요.]

우측에도 피가 이리저리 튀었는지 어쨌는지 양측 모두 지저분했다.

아니, 좌측 폐는 지저분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어려울 만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애초에 지금 공기가 안 들어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무기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오래 끌면 위험하겠는데.’

[원인을 알아내야 합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합니다. 환자 히스토리를 요청합니다.]

‘오케이. 그건 있겠지.’

바루다의 의견은 언제나처럼 타당하기 그지없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윤을 바라보았다.

“환자 혹시 기저 병력이나 이런 건 없어?”

“아……. 사실 문진은 따로 못했습니다만, 119대원분 말이 다른 병원에 다녔다고 합니다. 보호자분은 계십니다.”

“그래? 그럼 한번 불러 줘. 우선 문진부터 해 보자.”

“네.”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지금 협진 요청으로 내려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는 내과나 흉부외과 측 인원이 불만을 품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특히 호흡기내과 쪽은 워낙에 홍창기에게 주워들은 것도 있고 또 직접 본 일도 있고 하다 보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흉부외과 쪽도 교수가 수혁에게 홀딱 넘어가서 연구까지 같이 진행했던 바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감히 내가 뭐라고 뭐라 할까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수혁은 보무도 당당하게 여러 인원을 끌고 보호자에게 향할 수 있었다.

약간 신경질적인 인상의 여자였는데, 아내인 듯했다.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교수 이수혁입니다.”

“아……. 네.”

인상처럼 시큰둥했으나 레지던트 시절처럼 툴툴대지는 못했다.

애초에 수혁이 여럿을 뒤로 거느리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도 한 데다가, 이현종에게 들은 바대로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교수임을 강조해서 더더욱 그랬다.

처음에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으나, 문진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은 이후론 굳이 붙였다.

“우선 환자분 응급 상황은 넘겼습니다만…… 고비를 넘겼을 뿐입니다. 시간을 지체하면 아마 다시 안 좋아질 겁니다.”

“아……. 얼굴을 볼 수는 없고요?”

“의식이 없습니다.”

“올 때는 있었는데?”

“필요에 의해서 재웠습니다. 피가 기도에서 나는 상황이라…… 그대로 두면 피가 기도로 흘러가 굳어서 기도를 아예 막을 수가 있어서요.”

“음.”

응급실에서 보호자의 협조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건 좀 지나친 일이었다.

수혁은 짜증스러운 반응에도 별 상처 받지 않을 만큼의 경험은 있었기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 진단을 위해서는 몇 가지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혹시 보호자분께서 환자분이랑 같이 사시는지요?”

“네, 같이 살죠 그럼.”

“그럼 환자분이 어떤 질환을 앓았는지 알고 계시나요?”

“음……. 그…… 옛날에 부정맥이 있었어요.”

“부정맥? 그럼 약을 먹고 있나요?”

수혁은 심방세동을 떠올렸다.

보통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먹게 되는데, 그렇다면 작은 상처로도 저만한 출혈을 일으키는 수도 있었다.

“아뇨, 지금은 약을 안 먹어요.”

하지만 수혁의 추론은 단박에 파쇄되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막 문진을 시작한 참이니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산다고 해도, 아픈 거 얘기하는 걸 터부시하는 한국 정서상 보호자의 질병 경과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호자는 툴툴거릴지언정 확정적으로 말할 만큼은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요? 그럼 어떤 처치를 했나요? 아니면 저절로 좋아졌나요?”

해서 수혁은 아까보다도 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바루다의 도움 덕에 설득력 최고의 목소리까지 덧붙이면서였다.

수혁의 스킬에 적중당한 보호자는 저도 모르게 최선을 다해 기억을 더듬었다.

“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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