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16화 (516/1,303)

516화 객혈 (2)

보호자는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머리를 굴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 심장에 시술을 했는데…….”

그렇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상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나 시술 이름이 익숙하지 환자나 보호자들은 그게 아니지 않나.

돌아서면 까먹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일생일대의 큰 수술을 받고서도 부위만 기억하지 수술명까지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사자도 아닌 보호자가, 그것도 몇 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정확하게 기억하는 걸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입원해서 하셨을 텐데, 병원 이름은 기억하시나요?”

“아, 아 네네. 인천 세조 병원입니다.”

“아……. 세조 병원.”

로컬 중에서는 몇 안 되는 수술이나 시술의 강자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심장 쪽에서는 진짜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기도 했다.

물론 심장 수술을 하려면 월급을 엄청 깎아서 계약을 해야 하긴 했으나, 흉부외과 의사를 진짜로 흉부외과 수술을 시키려고 뽑는 병원이 거의 없는 만큼 그 가치를 학회에서조차 인정했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니 실력도 썩 괜찮은 편이었다.

“거기 무슨 교수님께 받으셨나요?”

“아……. 이현우 교수님입니다.”

“이현우.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여쭤보죠.”

“아, 네.”

사실 교수가 직접 다른 병원에 전화까지 걸어서 뭔가 묻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수혁이야 아직 교수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가, 바루다가 성질이 급하다 보니 그냥 직접 하는 게 편해서 이렇게 하는 편이기도 했다.

하윤은 그런 수혁이 익숙해서 그냥 있었지만, 뒤따라와 있던 흉부외과 레지던트나 호흡기 내과 펠로우는 황송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심장은…….”

해서 둘이 황급히 나섰는데, 그걸 보고 나서야 보호자도 이런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제야 감사 인사도 나왔다.

하지만 수혁은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

[빨리빨리. 아직도 정보가 부족합니다.]

이제 와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라고 시키는 것도 이상한 일일뿐더러 머릿속에서 요정 악마 바루다가 말 그대로 지랄을 해 대서였다.

“아니, 내가 할게.”

자세히 알고 보면 무척 꼴사나운 내막이 있었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훌륭한 교수로 보일 뿐이었다.

‘괜히 애들이 교주 교주 하는 게 아니구나…….’

‘와……. 우리 교수님들은 맨날 화만 내는데…….’

하나의 펠로우와 하나의 레지던트는 그렇게 수혁에게 매료되었다.

우하윤은 그런 태도 변화를 놓치지 않고 안대훈에게 톡을 보냈다.

<오늘 또 한 건 하심. 흉부외과 레지던트 김응수 포섭 바람.>

<오케이.>

펠로우는 아무래도 좀 어려워서 레지던트부터 전도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 수혁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받은 사람은 교수가 아니라 레지던트였는데, 여느 레지던트가 그러하듯 업무 시간에 걸려 온 전화라 그런가,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네? 환자에 관해서 묻는다고요? 어디신데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싸가지가 없었다.

이제 병원 생활 하면서 유교적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된 바루다는 당연하다는 듯 노발대발했다.

[교수님이 물으면 얼씨구나 하고 답을 해야지. 어디신데요? 어디신데요? 미쳤나, 이놈이. 멍석을 말아라.]

게다가 아주 최근에 수혁이 연구하면서 심심하답시고 태조 왕건 정주행하는 유튜브를 틀어 놨기에 말투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미친놈아. 멍석을 왜 말아. 딴 병원 교수가 뭔 교수냐. 걍 남이지.’

[그렇지 않던데요? 수혁의 기억을 보면 타병원 교수님에게도 열심히 딸랑거렸습니다.]

‘그…… 그래, 이 새끼가 싸가지가 없네.’

해서 뭐라고 했으나 돌이켜 보니 수혁은 그렇지 않았던 거 같아서 동의하고 말았다.

하여간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이제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별개로 다른 대화도 이어 나갈 수 있게 된 참 아닌가.

바로 레지던트가 물은 바에 대해 답할 수 있었다.

“아, 네. 저는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엇. 헙. 힉.”

그 말을 들은 레지던트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나이 든 교수들에게 이수혁은 아직 듣보잡 수준이거나 좀 똘똘한 주니어 스탭 수준이겠지만.

레지던트들에게는 거의 아이돌이었기에 그랬다.

“왜 그러시죠?”

수혁도 사실 그러하다는 걸 대강 알았다.

그런 주제에 굳이 물었다.

“아니, 죄송합니다. 제가 이수혁 교수님인지 모르고……. 어떤, 어떤 환자죠?”

“교수님한테 묻고 싶은데, 바쁘신가 봐요?”

“아, 네. 지금 시술실에 계셔서요.”

“그럼 그 환자 혹시 어떤 시술 받았는지 봐 주실 수 있나요?”

“성함만 아시는 거죠?”

“아, 생년월일도 불러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바로 찾겠습니다.”

세조 병원은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군림해 온 지 오래라 이름만 달랑 검색해서는 너무 많은 양이 검색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생년월일까지 같은 사람은 없어서 수혁은 금세 환자에 대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아, 여깄다. 교수님?”

“네, 듣고 있어요.”

“네. 5년 전에 두근거림을 주소로 오셔서 심방세동을 진단받았습니다. 약물 치료를 시도했는데 호전이 없어서 4년 전에 고주파 이용한 전극도자절제술 시행했습니다.”

“심방세동에 대해서 말씀이시죠?”

“네. 그런데도 호전이 완전히 되지 않아 한 번 더…… 이게 언제지. 2년 전에 시행했습니다.”

“아……. 그럼 전극도자절제술을 두 번이나 했다는 거네요? 혹시 시술 중에 문제는 없었습니까?”

수혁은 일부러 보호자에게서 멀리 떨어지면서 물었다.

시술 중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의료 사고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괜한 오해는 피해야 하지 않겠나.

“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려움이 있었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는 거죠?”

“네. 교수님이 전극도자절제술 진짜 많이 하시거든요. 해부학적인 변이가 있었거나 하면 무조건 적으라고 하시는데…… 없습니다. 그림으로도 기록을 남겨 두었는데, 이건 제가 사진 찍어서 지금 뜬 번호로 보내 드릴까요?”

“그럼 좋죠. 알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네, 교수님.”

방금 도움이 되었다고 했으나 전화를 끊는 수혁의 얼굴이 막 좋지는 못했다.

전극도자 시술을 한 것과 폐의 출혈은 사실 크게 관계가 없어서였다.

물론 피가 날 수도 있긴 할 텐데 그건 급성 부작용에 해당했다.

2년 전에 했다면 이건 잠시 뒤로 접어 주어도 좋을 터였다.

“흐음…….”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문진을 하고 싶었다.

[수혁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습니다. 우선 필요한 처치부터 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한쪽 폐로만 숨을 쉬게 만든 지 시간이 꽤 지난 참이었다.

이렇게 되면 딱 이것 때문에만도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은 아까부터 이미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검사를 지시했다.

“기관지 내시경을 해 보지. 펠로우 선생님, 노티는 됐어요?”

“아, 네. 홍창기 교수님 대기 중입니다.”

“홍 교수님이면 믿을 만하지. 한번 봐달라고 하죠.”

“네, 교수님.”

일단 피가 왜 나는지는 몰라도 피 나는 곳을 찾으면 일차적인 지혈은 가능하겠다는 계산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럼 저는 노트 남기고 일단 물러가겠습니다.”

“아, 그래요. 수고했어요. 혹시 필요하면 협진 요청하겠습니다.”

“네, 교수님.”

기관지 내시경에는 딱히 흉부외과가 있을 필요가 없지 않나.

해서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노트에 기록만 남기고 떠나갔다.

드르륵.

환자는 곧 기관지 내시경실로 옮겨졌다.

꽤 오랜만에 보는 홍창기 교수가 안에 있었다.

“어, 이수혁 교수. 왔어?”

“네, 케이스가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응급실에서만 종이컵으로 5, 6컵 정도를 쏟았다고 합니다.”

“아이고……. 그럼 혈전이 엄청나겠는데?”

“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는 선에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지. 검사하다가 사고 치는 건 안 되지.”

홍창기는 긴장도 풀 겸 여러 가지 목적으로 너스레를 떤 후 내시경을 잡았다.

애초에 환자는 의식이 없어서 검사 준비 자체는 아주 수월했다.

쑤우욱.

게다가 삽관도 되어 있지 않나.

관을 살짝 밖으로 빼서 기관지가 양측으로 갈라지는 부위에 걸친 후, 그대로 내시경을 밀어 넣으면 되었다.

“지금은 막 피가 나는 거 같지는 않네.”

“피떡이 돼서 그럴까요?”

“알 수 없지.”

덕분에 홍창기는 두런두런 얘기도 하면서 내시경을 출혈이 의심되는 쪽으로 진입시켰다.

여기까지는 참 쉬웠으나, 그다음부터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수혁의 말대로 피떡이 오만 군데 다 져 있어서였다.

“석션 팁 좀 뚫어 줘.”

“네.”

어찌나 심한지 석션을 하다가 계속 팁이 막히고 있었다.

경기관지 내시경이 아니다 보니 내시경의 직경 자체가 아주 넓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다.

슈우욱.

게다가 무턱대고 막 빨아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체 어디서 얼마만큼의 출혈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나.

괜히 시원하게 뚫어 보겠답시고 빨아들이다가 출혈 부위가 터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슈우욱.

하여간 홍창기는 능숙하게 피를 빨아들이면서 점차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음.”

“딱히 출혈 부위가 보이진 않네요.”

“이상하네. 이 정도로 혈전이 차려면 출혈량이 꽤 됐다는 건데……. 이 안에서 터졌나?”

“폐 실질의 문제일까요?”

“아니, 아니. 그러면 출혈보다는 기흉이 문제가 되었을 거야.”

“아, 하긴. 터지면…… 그렇겠네요.”

“이 환자가 혹시 결핵이 있었나?”

결핵이 오래된 경우, 결핵균에 폐 조직이 잡아 먹히면서 일종의 공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공동에 노출된 혈관이 터지면 객혈이 시작되는 것.

역사 속 인물인 제갈량을 보면 종종 피를 토했다는 묘사가 있는데, 아마 제갈량도 폐결핵에 의한 공동 현상을 겪었을 터였다.

“아뇨. 없었다고 합니다.”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네, 근데 다른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자료를 보면…… 당시 나온 건 없어요. 마지막으로 검사한 게 2년 전이라.”

“아, 그럼 가능성이 없겠네.”

2년 사이에 결핵이 걸렸을 수는 있었다.

생각보다 대한민국은 결핵이 만연하니까.

하지만 고작 2년 만에 공동화가 진행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해서 홍창기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수혁을 바라보면서였다.

이제 빼도 되냐고 넌지시 물은 것인데, 수혁이 보기에도 딱히 더 있어 봐야 별 소득은 없을 거 같았다.

“네, 빼죠.”

“미안한데, 별로 도움이 안 돼서.”

“출혈이 딱 있을 때 보면 더 좋을까요?”

“그게 아무래도 좋지. 위험할 수는 있어도…… 피가 나는 곳을 볼 수 있어야 막기도 하니까.”

“네, 그럼 일단 입원해서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언제든 불러 줘. 나 요새 어차피 집에 잘 못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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