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20화 (520/1,303)

520화 내가 심장 전문이야 (1)

“음?”

이현종은 수혁을 따라 응급실로 들어오자마자 눈에 띄는 환자를 발견했다.

70대로 보이는 환자가 침대에 걸터앉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살짝 가슴도 부여잡고 있었으니 이현종의 관심을 끄는 데 있어서는 이보다 더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

그 순간 이현종은 처음 응급실로 온 이유를 새까맣게 잊었다.

원래는 수혁이 이번에는 또 어떤 활약을 할까,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도움을 줄까. 뭐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환자를 본 순간부터 수혁은 잊었다는 얘기였다.

의학과 결혼했다고 장담했던 게 빈말은 아니었지 않나.

그만큼 환자 보는 걸 좋아했다.

자신도 있었고.

“어……. 원장님. 안녕하세요.”

환자를 보고 있던 인턴은 이현종이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교수들이 욕심을 내는 것만큼 원장이라는 게 별거 있는 자리는 아니지 않나.

그저 끝나면 평교수로 돌아가야 하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자리였다.

그래서 원장 한번 달았으면 죽을 때까지 원장이라고 불러 주는 게 예의라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센터장인데.”

“아, 네. 죄송합니다.”

물론 이현종은 허례허식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만큼 굳이 호칭을 정정해 주었다.

아무리 인턴이 1년 계약직이라도 병원에 들어왔으면 지금 원장이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냐, 신현태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러면 안 된다는 둥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면서였다.

‘하……. 뭐지?’

해서 인턴은 심사가 복잡해졌다.

원래 높은 사람 마주하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 병원처럼 수직적인 곳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소문에 의하면 이현종은 그렇게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라지만 인턴처럼 병원 맨바닥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은 얘기였다.

“이 환자 너 혼자 봐?”

게다가 환자 얘기까지 꺼내자 답답하기까지 해졌다.

몰랐던 협심증이 있나 싶을 지경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불편한 것과 대답해야 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일개, 정말이지 일개 인턴 주제에 전 원장에 현 센터장 그리고 석좌 교수인 이현종의 말을 무시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 네. 방금 오셔서요. 일단 제가…….”

해서 답을 막 하려는데, 뒤에 있던 응급실 레지던트가 하하 웃으며 끼어들었다.

딱 봐도 가슴 만지고 있는 환자를 인턴에게 보라고 했다는 건 잘못한 일이어서 그랬다.

흉통이 응급실에서뿐만 아니라 그냥 전체에서 제일 급한 일인데 그걸 인턴한테 내깔겨?

맞아 뒈져도 할 말 없었다.

그리고 태화는 그렇게 시스템이 허술한 곳도 아니었다.

“하하, 인턴 샘이 그냥 왔나 봅니다. 저도 보고 있습니다! 전원 의뢰할 때 이미 흉통이라는 얘기가 있어서 심장 내과 쪽에도 노티 들어갔습니다.”

레지던트는 눈으로 눈치 챙기라는 의미의 레이저를 쏘면서 답했다.

사실 이현종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일정 수준 이하라면 다 똑같아 보여서 그랬다.

심장내과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펠로우가 내려오면 또 모르겠지만, 꼴을 보아하니 일단 레지던트가 내려올 거 같았다.

아직 심전도 찍지 않은 상황 아닌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봐도 좋았다.

“어, 그래. 환자분 내가 좀 봐도 좋지?”

“아, 네. 여기 의뢰서 있습니다.”

“그래. 음.”

그런데 왜 내가 끌렸을까?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면서 의뢰서를 읽었다.

[72세 남환 운동할 때 발생하는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3년 전 심근경색에 대해 스텐트 시술받은 병력 있으며, 내원 당시에는 흉통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행한 심전도에서는 이상 소견이 없어서 경과 관찰하던 도중 호흡곤란이 더 심해져서 시행한 초음파상 판막 근처에 판막에 유착된 것으로 보이는 덩이 관찰되어 전원 의뢰드립니다.]

덩이라.

판막 근처의 덩이.

제일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혈전이었다.

물론 그냥 막 생기는 건 아니니, 부정맥이 있거나 또는 심내막염이 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과연 의뢰서에도 아래쪽에 이 두 가지 질환을 의심한다고 쓰여 있었다.

‘으음.’

합리적인 생각인데, 이현종으로서는 딱 납득할 수도 없는 의견이기도 했다.

부정맥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세동이 있다고 해서 초음파에서 관찰 가능할 정도로 커다란 혈전이 생긴다?

그랬으면 먼저 혈전 조각이 튀어서 문제가 생겼을 공산이 더 컸다.

심내막염도 마찬가진데, 그전에 감염에 대한 징후가 이 환자에게서는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어…….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렇게 의심을 품고 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돌아보니 내과 레지던트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대훈이었다.

이현종이 이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레지던트 중 하나였다.

“어, 대훈이.”

“어쩐 일이세요? 제가 아직 아무한테도…….”

“어, 응급실 들른 김에 한번 보러 왔어. 일단 심전도부터 찍자. 급한지 아닌지 보게.”

“아, 네. 아직 안 찍었구나.”

대훈은 니들은 대체 뭐 하고 있냐는 식으로 응급실 레지던트와 인턴을 훑었다.

그렇지 않은가.

심장 환자로 심장내과 돌고 있는 레지던트를 불렀으면 기본적인 검사는 해 놔야지.

심지어 심전도도 안 하고 사람을 불러 놓고 기다려?

미친 거 같았다.

‘아니……. 교수님이 오셔서 타이밍 놓쳤다고.’

응급실 레지던트는 좀 억울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이현종이 있는데 당신 때문에 못 찍었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아무리 권위적이지 않다고 해도 선 넘는 것까지 막 허용해 줄 거 같지는 않았다.

“바로 찍겠습니다!”

“네, ABGA도 좀 해 줘요.”

“네!”

이현종은 안대훈을 보면서 ABGA를 지금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다 자기 같은 건 아니니까.

레지던트 수준에서는 저 검사도 도움이 되긴 할 터였다.

게다가 이제 5월도 넘어간 시점이라 인턴들의 채혈 실력도 늘었을 테고.

드르륵.

이현종의 예상대로 인턴은 환자가 인상 한 번 썼나 싶은 순간에 피를 뽑았다.

응급실 레지던트는 곧이어 심전도를 찍어 이현종에게 건네주었다.

“흐음.”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급해 보이진 않았다.

해서 이현종은 옆에 있던 안대훈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어때 보이냐?”

질문은 하면서였다.

‘하 숏 됐다.’

안대훈은 속으로 좋지 못한 것을 떠올리면서 머리를 마구 굴렸다.

하필이면 이현종이 내미는 심전도를 판독하게 될 줄이야.

현세에 지옥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일까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안대훈은 현 내과 레지던트 중 제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 일단 좌측 심비대가 있고요.”

“응, 그리고?”

“av block이…….”

해서 안대훈은 더듬거리긴 할지언정 대강 답은 할 수 있었다.

“grade 1으로 있습니다.”

“호오.”

어느 정도였냐면 이현종에게조차 인상이 깊을 정도의 답이었다.

아마 단언하건대 이렇게까지 빨리 판독할 수 있는 애는 3년 차 중에서 별로 없을 터였다.

“또?”

“어.”

하지만 거기까지가 다였다.

그렇다고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현종은 속 시원히 말을 해 주었다.

“여기 잘 봐. v1에서 p파가 살짝 뒤로 밀려 있지?”

“아, 네. 그렇게 보입니다.”

“p파가 뭐야.”

“그…… 심방 수축의 강도입니다.”

“이게 좋아 그거 생각하면서 봐 봐. v1에서 음봉이 확실하잖아. 강도는 강한데……. 수축 시간이 길어진다는 거야. 그럼 뭐야?”

심전도를 심도 있게 공부 안 한 사람이 들으면 뭔 개소린가 싶을 상황이었다.

실제로 옆에 있던 응급실 레지던트나 인턴은 멍한 얼굴로 있었다.

외계어라도 들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안대훈은 스스로 포스트 이수혁을 꿈꾸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전도자인 사람답게 답을 할 수 있었다.

“좌심방 비대…… 아, 이게 승모판형 p파군요?”

“그래. 좌심방이 커지는 이유가 뭐 승모판 협착만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게 제일 흔한 원인이라 P mitrale이라는 이름이 붙었지. 그냥 좌심방이 커졌다고 보면 돼.”

좌심방은 심장의 네 개의 방 중 하나로 온몸으로 피를 보내는 좌심실로 피를 채워 주는 역할을 했다.

좌심실은 온몸으로 피를 보낼 만큼 수축력이 세기 때문에 이게 수축할 때 좌심방으로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방지해 주는 판막이 있었다.

이 판막의 이름이 승모판인데 승모판이 좁아지게 되면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피를 보내는 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되므로 좌심방 비대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뛰어난 의사들은 심전도 하나에서 이러한 정보를 다 얻을 수 있었다.

“종합해 보면 환자는 좌심실 비대도 있고, 1st grade의 av block도 있어. 근데 환자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 이 두 개 다 있을 수 있지. 원래 심장 오래 쓰면 좌심실 비대는 많이 오니까.”

“네, 그럼…….”

“그래, 오히려 중요한 소견은 P mitrale이야. 좌심실 비대가 왜 있나를 봐야지.”

이현종은 내과 의사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를 실컷 늘어놓다가 돌연 응급실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레지던트는 이 양반이 설마 이 수준에서 갑자기 질문을 던지려나 싶어서 긴장했다.

솔직히 지금 말한 것 중 어느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아이 시발.’

절로 욕이 나오려는데, 의외로 이현종이 먼저 화를 냈다.

“여기까지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있어?”

“어, 네?”

괜히 화를 내는 건 아닐 거 같았다.

그럼 뭘 했어야 할까.

설마 흉부 압박?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의사도 못 알아듣는 말을 들은 환자는 멍하니 이현종을 보고 있었다.

적어도 심장이 멈춘 거 같진 않았다.

머리는 멈춘 거 같긴 했지만.

“초음파 봐야지! 승모판 문젠지 뭔지 봐야 될 거 아냐? 여기 떡하니 승모판에 뭐 붙어 있다고 써 있기도 하고. 아유. 어떻게 이러니.”

“아! 네! 죄송합니다.”

듣고 보니 당연히 들고 왔어야 할 거 같긴 했다.

딱히 심전도 소견이 아니라고 해도, 전원 의뢰서에 쓰여 있었으니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를 속으로 외며 레지던트는 초음파를 끌고 왔다.

그사이 이현종은 벌써 환자를 초음파 보기 좋게 눕힌 후, 손을 풀고 있었다.

안대훈은 자연스럽게 보조 역할이 됐는데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간 혼자 독박 다 쓸 거 같아서 펠로우도 불렀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종은 조금 신이 난 상황이었다.

우연히 응급실에서 눈길 끄는 환자가 있어서 와 봤더니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수혁보다도 더 명의 병이 도진 지 오래된 사람이었기에 특이 케이스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었다.

이번엔 또 어떤 환자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다 쿵쾅거렸다.

“초음파 할게요. 좀 차가워요.”

해서 이현종은 환자를 보고 난 이래 처음으로 환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자마자 프로브를 가져다 댔다.

눈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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