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21화 (521/1,303)

521화 내가 심장 전문이야 (2)

덜커덕.

초음파 모니터에 뜬 화면을 보니 정말이지 덜커덕하는 느낌이 들었다.

승모판에 뭔가 있다더니만, 이걸 보고 뭔가가 있다고만 한 놈을 눈앞에 붙잡아 두고 보고 싶었다.

“뭐야, 이게?”

이현종으로서도 처음 보는 크기의 덩이가 승모판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심장이 뛸 때마다 덜커덕거리고 있었는데, 당연히 숨이 찰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덩이가 거의 직경 6cm는 넘어 보이는데, 그 용적만큼의 혈액이 덜 들어와서 온몸으로 뿜어지는 거 아닌가.

이것만으로도 환자는 숨이 찰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냐고 하신겨?’

옆에 있던 안대훈은 화면도 화면이지만 이현종의 반응 때문에 기가 찼다.

세상에 이현종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무려 교주님의 아버지였다.

다른 놈이 수혁의 아버집네 하고 까불면 짜증 나겠지만, 이 사람만큼은 예외였다.

그야말로 납득이 간다고 해야 할까?

심장내과의 월드 스타일뿐더러 명실공히 세계 최고라 자부해도 좋은 수준의 의사였다.

‘모르신다고?’

놀란 걸로만 치면 안대훈보다는 아무래도 뒤늦게 내려온 심장내과 펠로우가 더했다.

안대훈이야 아직 레지던트에 불과한 사람이지만 심장내과 펠로우는 이미 전문의를 따고 군의관도 겪고 펠로우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 아닌가.

군의관 3년 동안 고민할 만한 것이 ‘내가 이제 다시 필드로 돌아가면 과연 무슨 분과를 선택할 것인가’인데, 이현종의 존재가 심장내과를 선택하는 데 있어 지대한 공헌을 했더랬다.

“뭐야, 이게 대체.”

사실 이현종 정도 되는 교수라면 몰라도 체면 때문에라도 아는 척을 하겠으나, 이현종은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아닌가.

한참을 더 초음파를 바라보다가 모르겠다는 말을 한 번 더 했다.

이건 진짜 모르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몰라서 신이 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친 사람 아닌가 싶겠지만, 이현종은 중증 명의병에 걸린 지 하도 오래된 사람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수혁을 이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터였다.

“저, 교수님?”

입을 연 것은 환자였다.

돌아보니 정말이지 불안한 얼굴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의 얼굴을 아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나.

누가 봐도 이현종은 노회한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들도 그를 고수로 대했고.

그래서 적잖이 안심하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모른다는 얘기를 해?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아, 환자분. 이것만 봐서는 아직 모르겠네요. 차차 알아보면 되죠, 뭐.”

“그…… 그런 건가요?”

이현종은 그제야 아차 싶어서 수습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뭐 대강 알겠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하진 않았다.

쓸데없이 솔직하게 아직 모르겠다는 말을 해 댔다.

때문에 환자는 아까보다 더 숨이 찬 거 같은 착각에까지 빠졌다.

하지만 이현종은 객관적인 소견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그런 환자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속을 까 보지 않고도 속에 뭔 병이 있는지 알아내는 게 내과 의사의 일 아닌가.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어쭙잖은 위로 같은 것이 아니라 진단이었다.

“음.”

해서 이현종은 우선 지금까지 알아낸 바를 슥 종합했다.

‘심전도상 좌심방 비대가 있긴 했지만…… 초음파를 보니 좌심실 비대에 비교했을 때 그리 크진 않아.’

이 말은 곧 이 덩이가 발생한 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니란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덩이가 아니라 혈전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였다.

애초에 심장에는 덩이, 즉 종양이 거의 안 생기다 보니 그게 더 그럴싸하긴 했다.

‘하지만 혈전이라 하기에는…… 덜렁이는 모습이…… 너무 유착이 강해. 뭔가 자라 나왔다고 봐야 하는데.’

그러나 초음파상 보이는 모습은 혈전 같진 않았다.

게다가 혈전이었다면 아까 유추했던 것처럼 이미 사단이 났을 터였다.

머리나 발 눈 등 말단 동맥이 위치한 모든 곳이 틀어막히지 않았을까?

이만한 크기의 혈전이 있다면 필시 그래야 했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종양을 떠올려야만 했다.

‘자라는 속도가 빠른 종양? 심장 내부에? 흠.’

심장 종양이라고 하면 근육이 변이되면서 발생하는 종양을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우선적이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드물어서 좀 어색하긴 하지만, 하여간 심장 내부의 종양이라고 하면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건 근데 자라는 속도가 느려…….’

초음파 소견과 반대되는 녀석이었다.

물론 자신이 본 게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현종은 그 가능성은 우선 배제했다.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내가 잘못 봐?’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뭐지?’

이현종은 끄응 소리를 내면 고민에 빠졌다.

그럴수록 옆에 있던 이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사실상 심장에 있어서는 이 병원 끝판왕이 온 참인데,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빌 언덕이 와서 헤매고 있는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오.

특히 이 자리에서만큼은 넘버 투다 보니, 게다가 평생 심장내과를 하겠소 하고 결정한 펠로우는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뚫어져라 모니터를 바라보고 또 환자를 보고 심전도도 봤지만 어째 보이는 게 많아질수록 머리는 하얗게 탈색되는 기분만 들었다.

이현종이 모르겠다고 하는 걸 내가 어찌 알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합리화의 일종인데, 여기서 섣불리 안다고 나서는 건 좀 건방진 일이 아닐까 하는 결론까지 이르렀다.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수혁이.”

이현종도 안대훈과 펠로우를 돌아보기는 했다.

뭘 알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말이라도 하다 보면 힌트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말이라도 하려면 배경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했다.

수혁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이현종은 저도 모르게 수혁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안대훈이 이때다 싶어서 나섰다.

“전화할까요?”

교주님이라면 될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데 그때 이현종의 얼굴이 돌연 편안해졌다.

아들이 온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대기했더니 웃기까지 했다.

“아니, 아냐.”

그리곤 이현종은 손을 내저었다.

더없이 여유로운 얼굴이 된 채, 자리에 앉으면서였다.

면접관을 떠올릴 만한 표정이었는데, 과연 면접관처럼 질문을 퍼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대훈이라고 했지?”

“네.”

“이거 뭐 같냐?”

수혁의 얼굴을 떠올려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우연인가는 몰라도 그 순간 깨달음이 있었다.

이현종은 이제 처음 보는 환자 소견이 무엇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당장 어떻게 될 병은 아니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렇다면 교수로서 뭘 해야 할까.

바로 교육이었다.

“어…….”

안대훈이 느끼기에는 교육을 빙자한 린치였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뭐일 거 같냐니.

이게 말이나 되는 질문이란 말인가.

한참을 어버버거리고 있다 보니, 이현종이 펠로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좀 낫겠지? 뭐 이런 표정을 지으면서였는데 그래서 정말 죽고 싶어졌다.

‘하나도 안 낫습니다. 교수님.’

펠로우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명색이 펠로운데 개소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파악하기로 이현종은 하여간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는 떠들어 대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곽미경이나 김인석 모두 그렇게 얘기해 준 바 있었다.

“이게…… 이게 혈전일까요? 거대한?”

그렇다고 진짜 개소리를 하라는 건 아닌데.

펠로우는 머릿속이 하얘지기 직전이어서 개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말이 되니? 이만한 게 혈전이면 환자분이 살아 있겠어?”

“그…… 아닙니다.”

“왜 못 사는데?”

“그.”

언짢아진 이현종이 아까보다도 한층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펠로우로서는 더 상황이 어려워진 셈인데, 그래도 이왕 떠들기 시작한 거 아무 소리나 하기로 결심했다.

난사하다 보면 하나는 맞겠지, 뭐 이런 안일한 생각도 들었다.

“그…… 피떡이 이리저리 튀니까요?”

“표현이…… 표현이 그게 뭐니.”

“아, 혈전이 말단 동맥을 틀어막을 겁니다. 그럼 뇌경색이나 기타 다른 질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만한 사이즈의 혈전이라면 그럴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잖아?”

다행한 것은 태화 의료원에서 심장내과를 택할 정도면 내과 안에서도 꽤 똘똘한 편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펠로우가 내과 택하던 시절은 지금하고 불과 몇 년 차이긴 해도 내과가 스테디셀러를 자부하고 있을 때라 원래도 공부를 잘하던 친구였다.

“그럼 혈전은 아냐?”

“그…… 우선 배제하고 싶습니다.”

“그럼 뭘까?”

“심내막염?”

“그거랑 혈전이랑 대체 뭐가 달라?”

“더 나쁘죠.”

“이만큼 크면 더 죽겠네?”

“네, 음. 그것도 배제해야겠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해서 바로 답으로 직진하지는 못했다.

이현종은 이제 다리를 꼰 채, 질문이 아니라 시비를 던졌다.

“그럼 뭘까? 이게 뭐야. 이 덩어리가 뭐냐고. 혈전이 아니면 뭐야.”

“조, 종양?”

“심장에 주로 생기는 종양이 뭔데?”

“마이오마나…… 믹소마?”

“그게 빨리 자라?”

“네?”

“아, 이걸 생각 못 했겠구나. 초음파상 봐라. 좌심방 비대가 아주 심하지가 않잖아. 이렇게 종양이 큰 게 있는데 천천히 자라는 놈이면 어떻게 되겠어.”

“아, 아주 심하게…….”

“그럼 뭐야? 어떤 종양이야?”

“빨리…… 빨리 자랍니다.”

펠로우는 이현종이 리드 하는 대로 답을 하고는 있었는데 이게 과연 맞나 싶었다.

심장 내의 종양이 빨리 자라?

눈앞의 있는 사람이 이현종이 아니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터였다.

근데 적반하장격으로 이현종이 되물어 왔다.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심장 안에 생길 수 있는 종양 중에 어떤 게 빨리 자라는데?”

“이…….”

펠로우는 이런 시발이라는 욕설을 간신히 삼켰다.

‘교수님이 이렇게 답하게 유도했잖아요?’

그러고서도 속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현종은 그런 펠로우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 이 뭐.”

“아뇨. 아닙니다.”

“긴장했잖어. 이로 시작하는 종양이 있나. 설마 내 이름 부르려고 했어?”

“아, 아뇨. 제가 긴장하면 이 소리를 냅니다.”

“잉? 그건 또 뭐야?”

“아니, 잉을 하는데 이까지만 나왔습니다.”

“아, 그래. 그래 뭐……. 하여간 모르겠다 이거지?”

“네. 모르겠습니다.”

“공부 좀 해라. 수혁이 같았으면 마.”

“그…… 죄송합니다.”

이수혁이 아무리 천재라지만 이것도 알까요? 심장인데?

펠로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닥쳤다.

전혀 모르겠다는 사실이 남을 깎아내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현종은 그렇게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펠로우를 바라보다가 이내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놀랍게도 흉부외과였다.

“네, 이현종…… 원장님.”

이현종을 싫어하는 사람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잘나가는 사람한테 뻗대기는 어렵지 않나.

해서 원장 소리를 붙여 줬는데, 이현종도 속이 넓은 사람은 아니라 흉부외과 사람들에게만큼은 원장 소리 듣는 걸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어, 그래. 원장이야.”

“네네.”

오히려 강화하는 편이었다.

“근데 웬일이에요?”

빨리 끊고 싶은 마음에 물었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내려와 봐. 수술해야 할 환자가 하나 있어. 그사이에 CT 찍어서 뭔 수술 어떻게 해야 할지 브리핑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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