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화 내가 심장 전문이야 (3)
‘지가 전 원장이었으면 다야? 사람을 어? 막 오라 가라 해? 아오.’
흉부외과 교수는 투덜투덜하면서도 가운을 챙겨 들었다.
어쩌겠는가.
전 원장이었으면 단데.
게다가 현 센터장이다? 게임 끝이었다.
가뜩이나 요새 흉부외과의 설 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나.
의학적인 가치가 흔들린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도 이현종이 결국, 흉부외과를 찾지 않았나.
그보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훨씬 더 컸다.
‘그래도…… 과장님이 이제 이현종한테 잘하라고 했지…….’
만년 적자 과.
큰 병원 흉부외과일수록 피할 수 없는 꼬리표였다.
심장을 만지는 행위 자체에서 늘 적자가 발생하기에 그러했다.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수술일수록 수가를 적게 책정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었는데, 대형 병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흉부외과를 운영하기는 해야 했다.
3차 병원의 필수 과로 지정이 되어 있어서 이게 없으면 3차 병원이 취소되고, 그럼 다른 과의 수가도 죄 떨어지기에 그랬다.
천덕꾸러기다, 이 말인데, 놀랍게도 요새 이현종이 흉부외과를 변호하고 나서 주고 있었다.
‘원장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과장 회의가 언제부터 돈 얘기만 하는 자리가 됐어? 이거 애초부터 태화 그룹에서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지은 병원이잖아. 그럼 적자가 뭔 문제야. 어? 사람 살리면서 눈치 봐야 해?’
이게 다른 인간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냥 묻히고 말았을 터였다.
응, 또 다른 적자 과의 비겁한 핑계, 넘어가. 뭐 이런 식으로?
하지만 지금 이현종이 이끄는 통합진료센터는 오랫동안 고착되어 왔던 빅3라는 고인물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을 정도로 파워풀한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손을 들어주니 흉부외과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센터에서 더 많이 벌면 되잖아. 됐어, 적자 얘기는 그만하죠.’
게다가 신현태는 누가 뭐래도 이현종 사람이었다.
사전에 이런 얘기가 오고 갔는지 신현태 원장도 당황하는 대신, 그럼 이만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하고 말았다.
같이 참여했던 이사회에서는 좀 벙 찐 모습을 보이게 되었으나 뭐 어쩔까.
먹이사슬에서 아득히 위쪽에 위치한 김다현이 이현종의 백인데.
‘그래……. 납작 엎드리자.’
해서 흉부외과 교수는 투덜대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후다닥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래 봐야 병원이 크다 보니 10분 이상이 소요되었는데, 그사이 이현종의 명에 의해 환자는 흉부 CT를 찍으러 CT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왔어요?”
“네, 교수님. 지금 CT 찍는 건가요?”
“응, 내가 듣기로 심장 여는 건 주니어 중에 최고라던데, 맞아요?”
“에유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영광입니다.”
“흉부외과 주니어라고 해 봐야 우리 병원 하나, 칠성, 아선에 각각 하나 셋인데 그중에서는 최고여야 되는 거 아닌가?”
“아, 네. 그, 그렇죠.”
들어오자마자 웬일로 얼굴에 금칠을 해 주나 했더니만 역시나 아니었다.
‘아니 이렇게 구박을 할 거면 왜 회의 때는 우리 편을 들었어?’
조교수는 속으로 투덜댔다.
사건의 전말을 전혀 알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건데, 이현종은 당연히 얘기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현종 교수님, 편을 좀 만드시죠. 외부로도 적이 생기는데 내부적으로 결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내과는 무조건 지지하는데……. 외과계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있어요. 심장내과 전문으로 흉부외과랑 결속 다지면 보기에도 좋고 명분도 있고, 좋지 않습니까?’
김다현의 조언이 있었다.
김 사장은 이기원을 통해 아선, 칠성을 공략하는 한편 내부도 더 공고히 하기를 원했다.
운영하는 꼴을 보아하니, 결국 태화가 국내 최고라는 이름값을 확실히 하려면 이 통합진료센터가 키가 될 거 같아서 그랬다.
다른 분야는 칠성도 아선도 너무 잘하고 있지 않나.
이미 세계 레벨을 운운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옳지, 영상 넘어온다.”
“아, 네.”
이현종은 조교수가 불만이 있거나 말거나 영상이 넘어오자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조교수도 영상에 집중했다.
그렇지 않아도 좀 의아해하던 참이어서 그랬다.
흉부외과라고 흉부 CT를 등한시만 하는 건 아니긴 했다.
흉부외과에서 폐도 수술하지 않나.
하지만 심장은 빠르게 움직이는 장기였고, CT로는 제대로 된 파악이 어려웠다.
‘대체 뭘 보라는 겨…….’
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영상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역시나 심장이 뛰고 있는데, 그걸 보정하는 기술이 있다고 해도 다소 뭉개지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한데, 보다 보니 좀 이상한 부위가 있기는 했다.
“이거……?”
“종양이야.”
“종양이요? 혈전 아니고요?”
“너무 크잖아. 게다가 봐, 영상에서 보면 승모판뿐 아니라 옆 벽에 붙었어. 유착이 아니라 거기서 자라 나왔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아…….”
“그리고 반대편을 봐.”
“반대요? 우심방?”
“아니…….”
이현종은 다소 한심하다는 얼굴로 조교수를 바라보다가, 이 인간이 이따가 가슴을 열고 심장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주 중요하면서 동시에 어려운 수술을 하게 된다는 뜻인데 그 전에 기를 팍 꺾어서 뭐 좋을 게 있을까.
‘이야, 인간 이현종 인성이 공자님이네.’
해서 간신히 인내심을 발휘해 나오려던 말을 삼킨 후, 좌심방의 좌측을 가리켰다.
“심장 바깥으로도 벽이 두꺼워져 있잖아. 이쪽으로 종양이 자란 거야.”
“아……. 오. 그렇네요? 아니, 이상하네? 이런 식으로 자라는 종양은…….”
“거의 없지. 아니지. 딱 하나 있지.”
“이거 설마…….”
방금까지는 좀 못 미더운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었지만 하여간 교수는 교수였다.
흉부외과 조교수는 그중에서도 심장에 미쳐야 될 수 있는 자리지 않은가.
경제적인 보상도 없는데, 병원에서도 찬밥 신세가 되기 일수인 흉부외과 교수가 되는 사람들은 오로지 심장에 미쳐서였다.
이 조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원발성 심장 림프종이에요?”
“내 생각에는 그래.”
“와……. 이거 정말 드문 건데.”
“드물지. 나도 문헌으로만 봤어.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발표하면 최초 아닌가?”
“그, 그렇죠. 아니, 근데 음. 수술은 어렵겠는데……. 흠.”
“그래? 그럼 먼저 항암치료부터 해야 해? 근데 종양이 누르고 있는 게 심장이라서 말야.”
“그렇죠. 음.”
원래 림프종에서는 수술적 절제가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항암 치료에 워낙에 잘 듣는 녀석이기도 하고 또 빠르게 자라는 놈이다 보니 절제해 봐야 항암 치료가 없으면 또 고대로 자라서였다.
하지만 위치가 심장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졌다.
항암 치료에 잘 듣는다고 해서 오늘 쓰면 내일 없어지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않나.
특히 지금처럼 이미 압박으로 증상을 일으키고 있다면 수술적 절제도 고려해야 했다.
조교수는 심각해진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더니,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완전 절제는 불가능합니다. 심장 멈추고 체외 순환기로 돌린다 해도…… 이걸 다 절제하면 벽 터지거나 할 거예요.”
“음, 역시 그럴까?”
“네, 범위가 중요한데……. 이거 결정하려면 아무래도 혈종 측이랑 상의가 필요하겠는데요? 아무래도 항암 치료 범위는 그쪽이 전문이라.”
“혈종…… 오케이. 그럼 조태진 불러.”
조태진을 동네 똥개 부르듯 하는 이현종을 보며 흉부외과 교수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물론 조태진이 이현종보다 아랫사람인 것은 맞긴 하지만 분과가 다르지 않나.
지금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눈친데, 너무 막무가내란 생각이 들었다.
“네? 여기서 바로요?”
“지체할 거 뭐 있어. 오늘 하는 게 좋지. 어차피 환자분 밥맛 없어서 밥도 못 먹었대. 금식은 됐어.”
하지만 말을 듣다 보니 이현종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자고로 수술이란 건 미루면 미룰수록 집도의와 환자 측이 불리해지기 마련인데, 심장 수술은 그중에서도 특히 더했다.
조금이라도 더 심장이 괜찮을 때 째야 그나마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덜커덕 째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술 전 검사는요? 심장은 이거.”
전신마취를 거는 행위만으로도 몸에 부담이 가지 않나.
때문에 마취를 걸어도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해야만 했다.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심장을 멈춰 세워 놓고 하는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보니 더더욱 면밀한 검사가 필요했다.
한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조교수와는 달리 이현종은 그저 태연하기만 했다.
“어, 괜찮아. 검사 충분히 했어. 완전 절제할 것도 아니면 해도 돼.”
“아, 그래요? 정말이에요?”
“정말은 이놈이. 내가 그럼 거짓말할 사람처럼 보여? 나 이현종이야. 심장내과 이현종. 월드 스타라고.”
“어……. 네.”
너무 당당하게 나오자 조교수는 은근슬쩍 이현종이 말을 놓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아 되는구나, 하긴 월드 스타시지 라고 연신 중얼거리면서였다.
그사이 회진 돌고 이제 좀 쉴까 했던 조태진이 끌려 내려왔다.
아니, 끌려 내려왔다기엔 좀 신난 얼굴이었는데 두리번거리는 거로 봐서는 누군가 찾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수혁이는요?”
“응? 없어.”
“왜요?”
“걔는 걔 환자 보러 갔지.”
“아씨.”
“야, 어디 가! 내가 불렀어.”
“아, 맞아. 수혁이 보러 온 거 아니지.”
누가 수혁 빠돌이 아니랄까 봐 수혁이 보러 왔던 조태진은 잔뜩 실망한 얼굴이 된 채, 심지어 몸을 뒤로 돌리기까지 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나 갑니다.”
간다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가고 있었다.
이현종은 잠시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같이 내려와 있던 흉부외과 교수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농담하는 거겠지?’
그러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은가.
이현종이면 흉부외과로 치면 제일 시니어 교수급인데 감히 눈앞에서 쌩하고 고개를 돌려?
아니, 고개를 돌리는데 그치지 않고 그냥 가?
흉부외과였으면 그 자리에서 흉골 썰려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태진은 진심이었고, 정말로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저저.”
이현종은 흉부외과 앞이라 쪽팔리기도 하고, 또 화도 나기도 해서 냅다 달렸다.
‘저 자식은 왜 아빠는 난데 지가 수혁이 아빠처럼 애정 뿜뿜이야? 어이가 없네?’
화난 이유가 좀 이상했는데,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흉부외과 교수가 들었다면 정말 이상하게 여겼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과 분위기가 이수혁 때문에 좀 기이하단 말이 돌지 않나.
원장이고 센터장이고 어화둥둥 하지 못해 안달이라는 둥, 흉부외과와 같은 거친 사내들의 집합소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소문이 있었다.
“이 새꺄!”
하여간 이현종은 내가 수혁이 아빠란 생각으로 사자후를 질렀다.
웬만해서는 뛰지 않는 발을 재빨리 움직이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