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화 내가 심장 전문이야 (5)
딱 이현종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가 수혁이 환자 해결하고 이현종을 찾을 때였다.
“근데 아까 사라진 지 되게 오래됐는데, 이상하긴 하네요.”
수혁은 자기 폰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친자식 사이는 아니지만, 이제 곧 정식으로 법원 가서 입양 절차를 밟기로 할 정도로 돈독하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올해 들어 이현종의 행방이 묘연했던 건 이기자 교수와 썸씽이 빠르게 진행되었던 그때 말고는 없었다.
“병원에서 행불될 리는 없고.”
물론 수혁은 이현종이 설마하니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고 믿었기에 별걱정까지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곽미경과 김인석은 이현종의 제자인 동시에 신현태와 더불어 이현종 말년 지킴이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그나마 이기자 교수와 잘되어 가면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도, 이 셋에게 이현종의 이미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반이었다.
특히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치매를 염려해야 했다.
“전화해 보자.”
“어, 누나.”
해서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현종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이현종은 거의 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어려운 환자 있어?”
그것도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이면서였다.
김인석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아, 네, 있었는데……. 이수혁 교수가 진단해서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래? 어떤 환잔데. 아, 우리 수혁이가 건수 올리는 거 못 봤네.”
“좌심방 세동에 대해 고주파 하 전극도자절제술 두 번 받은 환잔데요, 그 때문에 폐정맥에 협착이 와서 폐 고혈압이 왔던 환자입니다.”
“오……. 그럴 수 있지. 되게 드문데, 그걸 어떻게 잡았지?”
“그…….”
“아니다, 그건 와서 얘기해.”
“네? 지금 어디신데요?”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대화는 이현종이 원하는 대로 이어졌다.
김인석은 다짜고짜 오라는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았다.
원래 이랬으니까.
“수술방.”
“네?”
하지만 수술방이라는 답에는 조금 놀랐다.
옆에서 듣고 있던 수혁이나 곽미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거 우리만 바쁘게 보낸 건 아닌 모양인데?’
[네. 대화 문맥상 이현종이 수술받으러 갔을 리는 만무하니……. 아무래도 본인이 진단한 환자 수술에 따라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응급으로 수술할 정도면…… 심근경색인가?’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단순 심근경색인 경우에도 응급한 질환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이현종이 관심을 품진 않았을 겁니다.]
‘그건 맞네.’
계속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 봐도 그렇고, 바루다와 대화를 해 봐도 그렇고.
이현종이 보고 있는 케이스 또한 만만치 않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해서 수혁은 김인석, 곽미경 교수와 함께 저도 모르게 수술실을 향하게 되었다.
“누가 집도합니까, 교수님?”
“어……. 이름이 뭐지?”
집도하는 사람 이름도 모르고 들어갔구나.
김인석과 곽미경은 이 이상한 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한때 이기자 교수랑 잘 되면서 좀 변하는가 싶어서 오히려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 보니 그냥 이현종 그 자체였다.
‘그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데요, 교수님. 오래 사셔야 합니다.’
이현종 덕에 김인석은 인생이 좀 꼬였다고 봐야 했다.
원래 심장내과에 관심도 없었는데, 이현종한테 낚여서 오지 않았나.
내과 들어올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쯤 검진 내과 개원해서 어지간히 살고 있으련만.
하필 응급이 넘치는 과로 와서 결혼도 못 하고 고생 중이었다.
그럼에도 이현종을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뭐가 어찌 되었건 심장에 대한 매력을 알게 해 준 사람이고, 교수가 되게 큰 도움을 주어서 그 심장을 계속 다룰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어서 그랬다.
드르륵.
하여간 일행은 곧 3층 수술실에 도착했고 수술복 자판기에서 새 수술복을 받아 든 후, 탈의실로 향했다.
“어…… 어, 그래. 하하. 이재한 교수네. 어, 알아?”
그사이 이현종은 겨우 교수 이름을 알아내어 알려 주었다.
김인석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동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네. 제 동깁니다.”
“그래? 제대로 하려나, 이거? 나한테 배운 너도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흉부외과에서…… 수련이 제대로 되나?”
“지금 같이 있으신 거 아니세요?”
“같이 있지.”
“아, 네.”
앞에 두고 그냥 막 디스를 해 버리시는구나.
김인석은 한결같은 이현종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마 악의가 있어서 저러는 건 아닐 터였다.
그냥 순수한 자기 감상을 얘기하는 건데, 그 감상이 이 모양일 뿐이었다.
‘조용히 있겠다고 하고선…….’
한편 이재한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정말 방금 전에 조용히 있겠다고 해 놓고는 바로 이렇게 대놓고 디스를 해?
윗사람만 아니면 아니, 윗사람이더라도 차이만 별로 안 났으면 들이받았을 거 같았다.
“뭘 봐?”
“아뇨, 아닙니다.”
하지만 이재한과 이현종은 거의 30년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다.
부모뻘이라는 얘긴데, 학회에서 이 정도 차이가 나는데 들이받았다?
그날로 제명이었다.
상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심지어 상대가 이현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후레아들 놈 되기에 십상이었다.
드르륵.
해서 애써 참고 있으려니, 망할 내과 놈들이 더 들어왔다.
그것도 눈엣가시로 여길 수밖에 없는 심장내과에 있는 곽미경, 김인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김인석은 참 괜찮은 놈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현종과 묶인 상태의 김인석은 그렇게만 보이진 않았다.
“어, 아들!”
“아, 아빠. 무슨 케이스예요?”
그때 둘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수혁도 눈에 들어왔다.
수술실이 무슨 사랑방인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어……. 원발성 심장 림프종이야. 넌 처음 보지?”
“아, 네. 처음 봐요. 문헌에서만 살짝 본 거 같은데……. 흉부외과 협진 보신 거예요?”
“응? 아니, 아니. 아무래도 흉부외과에서 진단 내리긴 어려운 케이스잖아. 내가 했지.”
“아아, 그렇구나.”
게다가 나누는 대화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망할 놈들이 뭐? 흉부외과에서 진단하기는 어려워?
‘하 내가 진짜.’
이걸 진단했어야 했는데.
왜 몰라 가지고 이렇게 수모를 당할까.
그렇다고 아 시끄러워, 하기도 좀 애매했다.
이게 같은 외과 계열이면 불문율처럼 수술실 안에서는 집도의가 왕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이놈들은 내과 놈들이지 않은가.
온실 속 화초처럼 수술실같이 험악한 곳에는 안 들어오는 샌님들이라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었다.
‘저기, 좀 도와주세요.’
해서 마취과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과묵한 사람이지만 시니어였다.
그렇다고 이현종에 비견될 만한 사람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이재한보다는 나았다.
“그, 이제 마취 거니까……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아, 아 네. 조용히 해야지. 하하.”
그리고 이현종도 사실 그렇게 무례한 인간은 아니었다.
특히 환자 치료와 관련한 일이라면 더더욱 협조적이었다.
해서 이현종이 입을 다물자 다른 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수술실이 꽤 이질적인 공간이다 보니 어색해서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취됐습니다.”
“네. 소독하고.”
비로소 조용해진 수술실에서 이재한은 펠로우 그리고 레지던트와 함께 환자를 소독하고 또 드랩을 치고 손 닦고 들어와서 수술에 돌입했다.
이게 문장으로 나열하면 별거 아닌 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범위가 가슴이다 보니 꽤 넓어서 시간이 걸렸다.
‘지루하네…….’
수술이라고 하면 수술을 잘 모르는 사람은 늘 박진감 넘치는 광경을 기대하게 되지 않는가.
특히 이현종은 더더욱 그랬다.
본인이 거의 수술에 가까운 시술을 하는 사람임에도 그랬다.
‘네?’
수혁은 당연히 잘못 들었겠거니 하면서 되물었다.
아무리 아빠가 정신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눈앞에서 이제 막 가슴 열려고 하는데 지루하다는 말을 할 리는 없다고 믿고 싶었다.
[아마 맞을 겁니다.]
그러나 수혁의 바람은 헛된 것이었다.
‘거 좀 빨리하지……. 뭐 하냐.’
‘원래 수술은 저렇게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한테 밀리는 거 아닐까? 이제 수술에 대한 개념도 바꿀 필요가 있어.’
‘음.’
이현종은 끊임없이 이상한 소리를 해 댔다.
다행한 점은 속삭이고 있어서 아마도 잘 들리진 않았을 거란 것이었다.
아니, 아마 꽤 큰 소리를 내도 지금은 귀에 들리지 않을 터였다.
“메스.”
수술에 돌입한 집도의는 그게 누구건 간에 집중하게 되어 있었다.
보조의들은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는데, 집도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보조도 안 하는 사람들은 집중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도 되었다.
그나마 수술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면 억지로라도 보겠지만, 여기 들어와 있는 내과 놈들은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 지루하다는 평은 비단 이현종만의 것도 아니었다.
‘나갈까요? 우리 뭐 있어 봐야…….’
‘아니, 너 아까 범위 봐준다고 했잖아.’
‘아 맞네. 내가 왜 그랬지?’
‘그냥 수혁이 얼굴이나 보고 있어, 정 지루하면 나는…….’
‘교수님은 나간다고요? 그건 안 되죠?’
‘아니, 난 좀 앉는다고. 나이 들어 봤어? 60 넘으면 그냥 있어도 삭신이 쑤셔 인마.’
그렇다 보니 다들 도망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현종도 그렇고 조태진도 그렇고 입을 털어 둔 게 있어서 쉽지만은 않았다.
해서 억지로 버티고 있다 보니 곧 환자 심장이 멈추고 피가 체외 순환기를 통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심장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도 신기한 광경이라 다들 잠시 지루함을 잊고 넋을 놓은 채 구경했다.
“오…….”
“이야. 이렇게 도네.”
“심장 멈춰 놓고 하면 수술 진짜 쉽겠다.”
중간에 이현종이 흉부외과 입장에서 들으면 개빡칠 만한 말을 하긴 했으나, 이재한 교수도 그 광경에 기분이 좀 흐뭇해졌다.
‘그래, 내과 촌놈들아. 이게 심장 수술이다. 그리고 멈춘다고 쉽겠어요? 어? 쉽겠어? 심장인데?’
동시에 살짝 화가 나기도 해서 이현종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이현종이 딱히 이재한을 보고 있지 않기도 했거니와 이재한이 루페를 끼고 있기도 해서 별 소용은 없었다.
사실 알아차리면 그게 더 큰 일이었다.
해서 이재한도 몰래 욕을 하다가,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그 수술이라는 게 심장을 열고, 안에 들어 있던 종양을 잘라 내는 거다 보니 이것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와……. 심장 열렸다. 이래도 돼?’
[되니까 열었겠죠? 상대는 흉부외과 교수입니다.]
‘하긴 그렇지. 그래, 말도 안 되는 짓을 하진 않았겠지.’
[그렇죠. 근데 말이 안 되어 보이기도 하긴 하네요.]
세상에 심장을 열다니.
이현종과 이수혁을 포함한, 통칭 내과 놈들을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수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까는 도망 운운했던 조태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