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화 내가 심장 전문이야 (6)
툭.
이재한 교수는 심장을 열고 종양을 확인했다.
강제로 멈춰 놓은 상태다 보니 시간을 들일 수 있어 좋았다.
다들 이들에게도 그랬다.
“야, 사진기 들고 와.”
특히 이현종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사진까지 찍어 댈 기세였다.
수술하는 입장에서는 살짝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찰나였지만, 의외로 이재한도 그걸 말리진 않았다.
원래 수술하는 과나 시술하는 과에서는 이런 극히 드문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일단 사진을 찍는 게 보통이어서 그랬다.
“아니, 아니. 좀 좋은 거. 여기 수술방에 이거밖에 없어?”
아예 수술실이나 수술실 중간쯤에 과 차원에서 예산을 받아서 사거나, 아니면 졸국 한 선배들에게 후원금을 받아서 구매한 카메라를 보관해 두기도 했다.
흉부외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졸국 한 선배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사 둔 카메라가 있었다.
하지만 흉부외과 사정이 워낙 별로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과에 비해 저가 카메라를 두고 있었는데, 이현종이 딱 그 점을 지적했다.
‘윽.’
의도하고 찌른 건 아니겠지만, 이재한은 가슴 근처가 우리하게(콕콕 찌르지 않고 둔한 통증) 아파 왔다.
‘그래……. 내과는 돈 좀 있다 이거지.’
사실 내과도 그리 돈 많이 버는 과가 아니긴 했다.
의사를 놓고 돈 돈 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한데, 진짜로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은 죄 성형외과나 피부과 쪽에 포진하고 있지 않나.
내과도 거의 모든 진료가 건강 보험의 테두리 안에 있다 보니 그저 그랬다.
하지만 세상은 상대적인 법이었다.
흉부외과에 비하면 풍족하다 못해 부유하단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어, 그래. 그걸로. 이건 어디 거야?”
“성형외과 수술방에서 빌려 왔습니다.”
이재한이 속으로 분노 폭발하고 있을 때쯤, 인턴이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까 흉부외과 카메라랍시고 들고 왔던 것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서였다.
이현종은 묵직한 느낌마저 드는 카메라를 삭 쥐어 보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와, 라이카? 이런 걸 써? 미쳤나.”
이현종이 골프랑 먹는 거 말고는 딱히 취미가 없어 보이겠지만, 의학이랑 연관이 있는 취미인 사진에 대해서도 꽤 조예가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카메라라면 브랜드를 막론하고 잘 다루었는데, 성형외과에서 쓰는 카메라는 그중에서도 거의 하이 엔드 급이었다.
솔직히 전문가 아닌 사람이 쓰면 돈지랄이란 말이 딱 나올 정도?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기에 이현종은 딱 자세를 잡고 수술 부위로 다가갔다.
“잘 찍어 주세요.”
이재한은 그런 이현종이 잘 찍을 수 있도록 슬쩍 몸을 비켜 주었다.
나름 배려를 한 셈인데, 이현종은 거따 대고 또 이상한 소리를 해 댔다.
“당연하지. 이거 찍어서 너네도 줄게.”
“아니, 이 환자 우리 환잔데요?”
“진단 네가 했어?”
“와…….”
그놈의 진단한 게 위세였다.
그렇다고 뭐 대수라고 이렇게 까부느냐는 말을 하기에는 또 어려웠다.
상대가 이현종인 데다가, 실제로 이현종이 없었다면 진단이 어려웠거나 아예 실패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망할.’
이제 지기 싫어서라도 공부 시간을 더 늘려야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애초에 흉부외과다 보니 남는 시간 자체도 별로 없는 주제에도 그랬다.
찰칵.
찰칵.
하여간 그사이에 이현종은 심장 안쪽으로 자라난 종양을 찍었다.
참으로 진귀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히야.”
“흉부외과 아니었으면 이거 못 찍겠죠?”
“응? 뭐, 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이현종을 보고, 이재한은 이때다 싶어서 한 대 날렸다.
이현종은 바로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흉부외과 아니고서는 이렇게 가슴을 열고 심장까지 쨀 수 있는 과가 없지 않겠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관데 국내 한정 천대받는 과라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흉부외과는 인기과이지 않은가.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의사들이니만큼 대우도 확실했다.
“뭐.”
이현종은 그런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나서서 대우해 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뭐만 반복하다가 뒤로 물러섰다.
이재한도 딱히 이현종이 뭐 외에 다른 말을 해 줄 거라 기대했던 건 아니라 그냥 그런갑다 하고는 수술 부위에 다시 붙었다.
톡.
그리곤 종양 일부를 떼어 낸 채 대기 중이던 인턴에게 건네주었다.
“동결 절편 검사해 달라고 해. 부위는 심장이라고 하고, 심장이라 급하다고. 대강 얘기해 놨으니까 아마 알아서 서두를 텐데, 아랫선에서 잘리지 않게 하라고.”
“아, 네! 다녀오겠습니다, 교수님!”
인턴은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듯한 얼굴로 자리를 분연히 박차고 나섰다.
아무래도 심장을 연 상태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초조해지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교수도 급하다고 하지 않았나.
인턴 잡이라는 게 대부분 잡일이다 보니 이렇게 생명과 연관되는 경우가 드물어서 더더욱 그랬다.
두두두.
해서 녀석은 수술실 안에서도 다 들릴 만큼이나 요란하게 달렸다.
그사이 수술실은 오히려 조용해졌다.
어차피 동결 절편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수술을 더 진행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아무리 다른 검사에서 다 림포마, 즉 림프종이 확실해 보이긴 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이게 그냥 양성 종양이라면 아예 치료 방법을 달리해야 할 수도 있었다.
악성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암이라고 다 같은 암이 아니지 않나.
림프종만 해도 그 종류가 세세하게 나누기 시작하면 수십 가지가 넘었다.
-아아.
인턴이 얼마나 난리 법석을 피워 댔는지 몰라도 녀석이 방을 나간 지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수술실 천장에 달린 스피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리과 임 교수입니다. 11번 방 맞죠?
“네, 맞습니다!”
놀랍게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이라 여기서 답하면 저쪽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진은 보지 않았습니다. 종양에서 그냥 떼어 낸 조직이라고 해서요. 맞죠?
“네!”
-네. 자세한 사항은 염색을 해 봐야 알겠지만, 형태는 Diffuse Large B Cell Lymphoma(광범위 큰 B세포 림프종)에 가깝습니다.
“그레이드는 어떨까요?”
-어그레시브 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대화는 조태진이 주로 이끌어 나갔다.
애초에 혈액암에 대해서는 그가 전문가였기에 그랬다.
비록 수술이야 흉부외과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겠지만, 범위는 오로지 조태진에게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 혈액암은 수술하는 질환이 아니지 않나.
다른 장기에 발생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수술실까지 올 것도 없이, 조직검사만 하고 혈액종양내과에서 알아서 봤을 터였다.
“절제 범위는 딱 증상 호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만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겠어요.”
“아, 그렇습니까?”
“네. 광범위 큰 B세포 림프종이면 꽤 잘 드는 편이라서요. 어그레시브 하지도 않다고 하시니…… 그레이드도 높진 않을 테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된 일이었다.
해서 이재한 교수의 표정도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져 있었다.
아무리 흉부외과라 해도 심장을 갈라서 하는 수술은 부담이 되기 마련 아니겠는가.
게다가 범위가 자칫하면 심장에 바깥쪽으로 구멍이 날 수도 있게 생겨서 솔직히 말하면 들어오기 전에 남몰래 심호흡도 했더랬다.
그런 상황에서 낙관적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적잖게 놓였다.
슥슥.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이재한 교수에게는 잘된 일인데, 내과 놈들에게는 조금 지루한 시간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더 있을 필요도 없을 거 같았다.
어차피 수술 후 관리는 흉부외과의 몫 아닌가.
“나갈까?”
결국, 누가 제일 먼저 총대를 메어 주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이현종은 딱히 남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아닌 데다가 실용적으로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양반이기도 해서 시간이 별로 흐르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김인석과 곽미경 그리고 수혁과 조태진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향했다.
“수술 마무리 잘해!”
마지막으로 격려인지 뭔지 모르겠는 말을 남기고서였다.
이재한은 그런 내과 놈들을 돌아보았다.
‘그래, 빨리 가라.’
속이 다 후련했다.
별 도움도 안 될 것들까지 왈랑왈랑 다 들어와서 너무 시끄럽지 않았나.
‘아니, 근데 진단한 거로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정작 수술은 끝날 때까지 있지도 않어? 그래도 오늘은 동진데 센터장 체면이 있지. 밥은 사 주셔야지.’
한편으로는 또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전우애가 싹트지 않았나.
이 어려운 질환에 대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도전했으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어휴, 간만에 수술방 갔더니 힘드네.”
물론 그건 이재한만의 생각이었다.
이현종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네. 아빠.”
“둘 다 건수 올렸으니까 비싼 거 먹자.”
“그런 데는 바로 예약 안 되잖아요?”
“나는 되는 곳들이 있지.”
그저 파인 레스토랑이나 갈 생각뿐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지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이재한 따위는 잊었다는 얘기였다.
이제 곧 8시가 넘을 테니, 수술이 끝나고 나온 이재한이 먹을 수 있는 건 주먹밥 정도거나 아니면 배달 음식뿐일 텐데도 그랬다.
“아이고, 원장님.”
“하하, 이제 원장 아니라니까요.”
하여간 이현종은 비밀처럼 숨겨 두고 먹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는 예약이 절대로 안 되는 곳인데, 주인장 심장에 이현종이 넣은 스텐트가 무려 세 개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생명의 은인이 되면 이런 게 좋았다.
절대로 거절을 못 했다.
“5명이요?”
“네. 아, 하나 더 올 수도 있어요. 지금 원장. 그놈이 요새 좀 서운해하더라고?”
“아아, 신 원장님이요? 알겠습니다. 별채로 모실게요.”
“말이 별채지, 개인 공간 아닌가?”
“저희 사이에 개인 공간이 중요한가요. 지금 오셔요. 준비하겠습니다.”
“고마워요.”
해서 이현종은 7시 반에 저녁 2부를 예약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원래 자기 스승이 음식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걸 아는 곽미경이 먼저 물었다.
“어디예요?”
“아, 여기. 모소라고 한식 퓨전이야. 원래 같으면 인마 한 달 전에 예약해도 잘 안 돼.”
“아, 저도 들어 봤어요! 거기가 이렇게 예약이 된다고요?”
“이게 다 내가 쌓은 덕이지. 덕. 인생은 나처럼 살아야 해.”
“네…….”
곽미경은 다시 한번 자신의 스승을 돌아보았다.
제정신이라면 농담이라는 말을 덧붙일 텐데 그러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턱을 조금 치켜든 채 껄껄 웃고 있었다.
‘한결같이 뻔뻔하시네.’
어차피 얘기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지 않나.
해서 그냥 같이 웃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이라 합창 웃음처럼 되었다.
그렇게 태화 사람들이 웃고 있을 때, 박국진 칠성 내과 전 과장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리베이트를 받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