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화 이렇게까지 나와? (1)
박국진은 눈앞에 앉은 제약회사 직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사와 제약회사 직원의 관계라는 게 무조건적인 갑을 관계로만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걸 잘 증명해 주는 한 쌍이라 할 수 있었다.
박국진은 사생활이 깨끗한 만큼 남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서 그에게 영업했던 이들 중엔 박국진을 존경하는 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과장이 되고 난 다음에도 한결같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과장님.”
“음……. 확실한 건가?”
“네. 내부에서 징계 소문이 돌아요. 근데 거기 박 교수님 이름이 나옵니다.”
“아니……. 나는…….”
“네, 저도 그럴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교수님 담당은 저잖습니까. 영업이랄 것도 없이, 데이터로 증명된 약만 쓰시는 거로 유명한데…… 이름이 나와서 너무 황당했습니다.”
“근데 확실히 내가 걸려 있다 이거지?”
“네.”
박국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그리곤 조금씩 떨려 오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떳떳하면 이럴 게 없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이게 어쩐지 어디서 시작된 작전인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우리 쪽인가?’
안 그래도 최근 척을 지지 않았나.
병원 원장단에서는 대놓고 박국진을 쳤는데, 거기다 후원회 모임의 이름으로 투서까지 낸 상황이었다.
이기원 의원이 보증한 만큼 별일 없이 넘어가겠거니 하고 있었으나,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았다.
“내부 감사가 시작됐어?”
“네. 저희는 뭔가 얘기가 오간 게 있는 건지 뭔지……. 소문 돌고 바로 해당 영업사원 감찰실로 갔어요. 그래 봐야 액수도 크지 않고 해서 내부 징계로 끝날 일이긴 한데…….”
영업사원은 힐끔 박국진의 눈치를 보았다.
국내 제약회사는 대부분 신약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약으로 돈을 버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신약도 아닌데 약들끼리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
결국, 영업에 사활이 걸려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영업하다가 구속 조사받을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면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 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달랐다.
리베이트라는 게 병원에서 받는 게 아니라 의사 개인이 받는 거 아닌가.
특히 칠성처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있는 교수가 리베이트를 받았다?
지탄의 대상이 될뿐더러, 억울하게 병원 전체가 욕먹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얘기가 없는데…… 자료 넘어오면 바로 나도 걸리겠지.”
“아니, 근데 교수님. 정말 거기서 식사를 하신 거예요?”
“식사…… 한 적 있지. 근데 그날 후배가 산다고 해서 먹은 거야.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고.”
눈문 엑셉트 되는 데 박국진이 도움을 준 마당 아닌가.
그거 보답하겠답시고 밥을 사겠다고 하니,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 후배가…… 오 선생 그분 말씀하시는 거죠?”
“어, 그놈이 원래 좀 지저분한가?”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긴 한데…… 소문이 좋지는 않습니다.”
박국진은 사원의 말을 들으면 인상을 구겼다.
제아무리 편하게 대해 준다고 해도, 정말 편할 리가 있겠나.
근데도 자기 앞에서 이렇게 소문 운운하는 것을 보면 오가 놈의 평소 행실이 개판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러니 감히 선배 밥 사 준다고 해 놓고 제약회사 카드로 긁었겠지.
그것도 그 비싼 곳을, 조심성도 없이.
“나는 몰랐다고 하면…… 통할까?”
“회사 측에서 어떻게 전달이 되느냐가 문제데……. 지금 감사 주도하고 있는 분이 김 이사입니다.”
“김 이사?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아, 네.”
영업사원들하고 많이 어울리는 사람이라면야 회사 사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요새는 좀 덜하다 하지만, 예전엔 이사급이랑 짝짜꿍이 맞아서 같이 사업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교수 퇴임하고 제약회사 이사로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박국진은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사원은 역시 그런 사람이었지 라고 중얼거리곤 말을 이었다.
“안국태 교수 라인 타고 엄청 큰 사람이에요. 굵직한 영업 다 성사시켰죠. 칠성에서 저희 약이 많이 나가는 게 그 때문입니다.”
“아, 안국태.”
한편 박국진은 안국태 얘기를 듣자마자 아까보다도 더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국태는 발표 시간에만 진상 부리는 게 아니라 그냥 인생 자체가 진상이어서 그랬다.
그런 주제에 나름 진료도 잘 보고 연구도 잘한 데다가, 윗사람들 비위도 끝내주게 맞춰서 지금 꽤 끗발 날리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 박국진 날리고 올라간 이가 안국태지 않나.
그것만 봐도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럼…….”
“말이 이상하게 전달될 공산이 큽니다. 사실 병원에서도 둘이 돈을 받았거나 했으면 더 높은 사람이 그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거고요.”
“하……. 그럼 어쩌지?”
“저도 그걸 모르겠어서 온 겁니다, 교수님.”
“음, 그래. 그렇지. 여기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고마워.”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참.”
영업사원은 언젠가 어머니 아팠을 때 박국진이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자기 일처럼 신경 써 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 보답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근처 식당에 돈을 달아 놓았는데 그것도 거절한 사람이었다.
어떤 새끼들은 골프장 픽업도 모자라 가족여행에 공항 픽업까지 시키는데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으니 돕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해서 박국진과 이런저런 신세 한탄만 해 대다가 그냥 빠져나왔다.
“하아.”
박국진은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소파에 앉아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까부터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다보면서였다.
습관처럼 집어 든 것은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이기원 의원의 번호가 떠 있었다.
‘걸어, 말어.’
고민이 되었다.
이 사람도 볼꼴 못 볼 꼴 다 본 사람일 텐데 이런 전화를 한다고 믿어 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결국, 박국진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서였다.
“음, 박 교수님.”
다행히 일정이 없었는지 이기원은 금세 전화를 받았다.
꽤 밝은 목소리였는데 역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아는 게 더 이상하기는 했다.
설마하니 병원 측에서 이렇게까지 나올까 싶지 않나.
아마 박국진도 본인이 몸담은 병원이 칠성이 아니라 태화나 아선이었다면 이런 의심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우리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야.’
하지만 칠성은 조금 달랐다.
후발 주자라는 핑계 하에 지금껏 얼마나 나쁜 짓을 자행해 왔나.
직접 관여한 적이 없어 과장을 끝으로 내려오기는 했으나,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바루다가 엇나간 것도 칠성이 배후에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건 아무리 칠성이라 해도 억울할 거 같아서 입을 다물긴 했지만.
“네, 의원님. 죄송합니다, 오늘도 별로 좋지 못한 소식으로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네? 무슨 소리예요?”
박국진의 말에 이기원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 잘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게…….”
박국진은 그런 이기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이기원은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니 이 사람 과장 잘린 게…… 좀 뒤가 구려서 아닐까?’
병원 내부 정치도 만만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솔직히 진짜 정치판에 몸담고 있는 이기원이 보기엔 애들 장난이었다.
물론 칠성 본사에서의 정치 싸움은 정말 장난이 아니긴 할 터였다.
필드에서 잔뼈가 굵은 사업가들이 대기업에 지분 넘기고 왜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겠는가.
다 노회한 이사들에게 털려서 그랬다.
하지만 병원은 어떠한가.
‘내 친구들이 고민 상담하는 거 들어 보면 소꿉장난 같던데.’
말은 거창했다.
하지만 막상 보면 결국, 다 뭐 이사장이 독단적으로 한다더라 하는 다분히 중소기업적인 사건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들은 건 너무 어마어마한 음모 아닌가.
깨끗한 사람을 이렇게 엮어서 보내는 건 여의도에서조차 드문 일이었다.
“의원님 제 말이 이상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이거…… 위에서 공작하는 거예요. 무조건 도와달라는 말씀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아만 보셔도 좋습니다.”
해서 잠자코 있으려니 박국진이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절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는데, 듣고 있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약해졌다.
“제약회사가 어디라고요?”
“한보입니다.”
“한보…… 지금 우리나라에서 거의 제일 큰 회사죠?”
“네, 맞습니다.”
“음…….”
한보라.
말 그대로 제일 큰 제약회사 중 하나였다.
그래 봐야 대한민국 제약 산업이 형편없다 보니 절대적인 규모는 작았지만.
하여간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사람은 많을 터였다.
그 말은 알아볼 방법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손바닥 뒤집듯 쉬웠다.
비서에게 시켜도 좋을 일이었다.
‘호의로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까지는 해 줘야겠지.’
게다가 이 일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현종이 있지 않은가.
그는 어머니 생명의 은인이었다.
“알겠습니다.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죠.”
“네, 근데 너무 늦으면…….”
“알겠습니다.”
너무 늦으면 박국진은 국내에 체류하면서 정식 서류에는 해외 연수 중으로 뜨는 유령 교수가 될 수도 있었다.
제아무리 칠성이 기업 병원이라 해도 박국진은 병원에만 소속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정식으로 전임 교수가 된 사람이다 보니 막무가내로 자르긴 어려웠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식물인간을 만들어 놓고 안팎으로 괴롭히면 다들 알아서 관두게 되어 있었다.
박국진은 그걸 눈앞에서 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순전히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별생각도 없었는데, 눈앞에 닥칠 줄이야.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김 비서?”
한편 이기원은 전화를 끊고 비서를 불렀다.
“네.”
그렇지않아도 오늘쯤 이현종에게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달해 주기로 했었기에 비서는 그냥 답만 하는 대신 말을 조금 더 이었다.
“이현종 교수님에게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전화 드릴까요?”
“응? 아니, 아냐. 그런 내용이 아니라…….”
“아, 네.”
그러나 이기원 의원의 반응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제 나름 상대의 마음 읽는 데 익숙해졌다 여겼던 비서는 후회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기원은 비서의 정수리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한보 제약 말야.”
“네.”
“박국진 교수가 억울하게 리베이트 건에 엮었다는데…… 김 이사라는 사람에 대해 조용히 알아봐 줄 수 있겠어?”
“딱 떠오르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방법은 만들면 됩니다.”
“그래, 시원하네. 그럼 한 이삼일 내로 알아봐 줘.”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