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화 이렇게까지 나와? (2)
비서가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한보 제약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아무리 체계가 완전하지 않은 중소기업 수준의 기업이라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키는 편이어서 더 그랬다.
특히 이번 김 이사라는 사람이 연관된 일은 뒤가 구린 일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비서는 이기원 의원이 괜히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간신히 입증해 냈다.
‘의외로 답이 가까이 있었네.’
박국진 전 과장에게 찾아갔던 제약회사 직원을 추궁했더니만 술술 불었던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거의 대부분 낭설에 가까운 소문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 관련된 이를 또 찾아서 묻고 또 묻는 지리한 과정을 반복한 결과 낭설보다는 사실에 더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음…….”
그러나 비서는 늘 그렇듯 자신의 의견은 배제한 채 알아낸 사실 관계만 이기원 앞에서 늘어놓았다.
지금 감사실에서 불법 접대로 조사받고 있는 원래 박국진 담당이 아니고, 그 식당에서 백석했다는 오 교수 담당이라는 것을 전해 들은 이기원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비서는 그런 이기원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병원 측에 전달된 자료를 보면 박국진 담당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단순 오류일 가능성은?”
“접대 문제는 제약회사에서 제일 중요시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누굴 접대했는가, 이런 문제는…… 일전에…… 서산 제약 사건 때문에 의협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잡고 있으니까요.”
“아, 서산 제약. 그거 떠들썩했지.”
서산 제약은 당시 거의 신생 제약회사나 다름없었는데, 유례없는 성장을 보인 바 있었다.
무슨 특허라도 있는 상황에서 매출 신장이 있었다면 참 잘된 일이라고 다들 축하나 하고 말았겠지만, 그 회사는 딱히 그런 것도 없이 튀고 올라간 케이스였다.
매년 리베이트 관련 기획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회사였다.
저길 털면 대체 얼마나 많은 비위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거의 무슨 난파한 보물선 취급을 받았더랬다.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한 바 있던 이기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알고 보니 기업 간 비리였는데…… 윗선 덮겠다고 영업 사원이 관계없는 의사들 이름 다 불어서 난리가 났죠.”
“응, 그래. 그거 때문에 검찰도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지.”
엄청난 매출 신장은 알고 보니 그 회사 대표와 친인척 관계에 있던 제약회사에서 알짜 자리를 몰아주면서 생긴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이득을 대표와 친인척인 사람이 뒷구멍으로 챙겼던 것이었는데 그걸 덮겠답시고 아무 죄 없는 의사들을 걸고넘어졌었다.
검찰 잘못이라고만 보기도 어려운 게, 당시만 해도 사실 많은 수의 의사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고 있기도 해서 더더욱 대대적인 수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밝히면 밝힐수록 뭔가 이상해서 보니 헛다리를 짚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서산 제약과 그 윗선이 모두 감방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 모든 제약회사는 합법적이건 아니건 간에 접대 장부를 제대로 쓰게 되었다.
그런데 한보 정도 되는 사이즈에서 그런 실수를 한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의도적이라는 건데…….”
“네, 저도 동의합니다.”
“박국진 교수를 그렇게까지 해서 털어 버릴 이유가 있나?”
“칠성 그룹 사내 정치 싸움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긴 전자 쪽이나 이런 데는…… 거의 복마전이지.”
기껏해야 사내 정치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살하는 사람까지 매년 나올 정도로 문화가 이상했다.
보통 그렇게까지 하면 회사가 망해야 하는데 몇몇 걸출한 이들이 있어 결과는 또 내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니, 망하기가 어려운 게…….’
이기원 의원은 언젠가 다국적 기업 한국 지사 사람이 하소연했던 일을 떠올렸다.
세상에서 대한민국만큼 자기네가 영업하기 어려운 곳도 없다면서였는데, 그때 지목당한 기업도 칠성이었다.
‘칠성이 네거티브의 달인이지.’
대놓고 저놈들 제품 나쁩니다! 이러지도 않았다.
아주 은근하게 맥였다.
주로 이상한 말 만들어서 아무 문제 없는 제품인데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드는 수법을 썼다.
그런 기업임을 생각해 보면 계열사인 칠성 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 그럼……. 음. 근데 제대로 가려면 구속 영장이 나와야 할 텐데? 그거까지 갈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가능하기는 했다.
여당 원내대표라는 자리가 만만한 게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의전서열 15위인데, 사실 그 위에 서열만 위지 실제적인 힘은 못 미치는 자리들이 많아서 한 손가락에 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이기원이 차기 당 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기원의 말을 거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터였다.
심지어 이 일은 어찌 되었건 부정이 의심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이기원도 비서도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해 오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럼 병원 측에 압박을 줄까?”
“압박을 줬는데 이런 식으로 해법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실제적인 불이익이 가지 않는 이상 다르게 행동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구나.”
“아마…… 그럴 겁니다.”
이기원은 실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원래 사람이 사람 봐 가면서 발도 뻗고 한다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 기분 나쁜 건 그렇게 믿는 바가 있어 까분다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 철학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금배지를 다는 순간 서약하지 않았나.
힘이 있다고 해서 그 힘을 휘두르지 않겠다고.
“음…….”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움직이기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박국진 교수는 해임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새 칠성 그룹 차원에서 임원 비리 엄벌하겠다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건 물산 측 아닌가?”
물산, 즉 건설은 원래 임원 비리가 좀 있는 편이었고 회사에서도 그간 고생했으니 눈 감아 주는 문화가 있기는 했다.
가령 하청을 줄 때 임원 가족이 세운 회사에 주고 가라로 인원을 올려도 어느 정도껏 하면 그냥 돈을 주는 식이었다.
해서 건설사 임원 몇 년 하면 수십억은 그냥 땡긴다는 말이 나온 것인데 칠성은 이제 거기에 칼을 댈 생각인 듯했다.
사실 옳지 않은 일인 데다가 사회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깨끗해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다 보니 다 공교롭게만 느껴졌다.
“전임 교수도 해임이 되나?”
“과장에서 조기 경질된 것만으로 나가는 사람도 많죠.”
“아…….”
“그런데 진료 못 보게 되거나 하면 어지간히 자존감 높은 사람 아니고서는 나가게 될 겁니다.”
“그렇겠네.”
직장이라는 곳이 단순히 돈만 벌 수 있는 곳은 또 아니지 않나.
특히 박국진 나이 정도 되면 그 직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느냐, 부하 직원들에게 존중을 받고 있느냐 아니냐도 중요했다.
한데 바로 직전까지 학회 주요 인사이자 과장으로 잘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인수분해 당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그럴 때 사람은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잘못하면 그냥 병원을 나가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수도 있었다.
‘알아보니 박국진 교수가 내가 원래 알던 것보다도 더 훌륭한 사람인데.’
지금 이기원 의원이 박 교수에 대해 알아본 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워낙에 신중한 사람이다 보니 한번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정보가 많아서 그랬다.
‘인사부장 관둔 것도…….’
원래 인사권을 갖는다는 건 권력을 쥔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데 박국진은 칠성의 공격적인 스카우트 제도에 반기를 들다가 거기서도 경질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워낙에 똑똑한 데다가 학회에서도 명성이 있고 따르는 후배들도 많아 칠성에서도 여러 번 만류했음에도 불고하고도 그랬다.
다른 곳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제자를 돈으로 뺏어 온다는 것이 찜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렇게 데려온 사람들에게는 또 공을 들이긴 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칠성 내에 박국진이 뽑아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파벌이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한다?”
“의원님이 직접 힘을 행사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겁니다.”
“후원회를 다시 움직이는 건?”
“그 근간이 된 박국진 교수가 무너질 텐데…… 움직여 줄까요?”
“음.”
그것도 그랬다.
후원회 사람 중에 만만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지 않나.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다들 명분이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한데 여론을 이끌었던 박국진이 무너져도 따를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아니지. 그럼 어쩐다.”
“으음.”
둘은 고민을 좀 더 이어 나갔으나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둘 다 쓰고 싶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지 않나.
해서 하릴없이 한숨만 쉬는 구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아, 의원님.”
“응?”
“그…… 이현종 센터장님께 연락 한번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현종 교수님? 거기를 왜?”
“박국진 교수가 지금 끈 떨어진 연 되는 게 문제 아닙니까? 어차피…… 지금 분위기 봐서는 통합진료센터와 협정 맺는 건 안 될 거 같고요.”
“그것도 그렇지.”
“박국진 교수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니 태화에서 데리고 가 달라고 하면…….”
“흐음. 그게 될까?”
큰 병원끼리, 그것도 정교수급을 데려간다?
약간 싸우자는 느낌 아닌가?
물론 해임되기 전에 빼간다면 박국진에게는 잘된 일이겠지만, 이현종이 거절할 거 같았다.
식사할 때 느낀 바에 따르면 좀 자유분방해 보이긴 했으나 이현종은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에서 제일 명성 높은 의사 중 하나였다.
그런 이가 자기 체면 깎아 먹는 짓을 해?
“흠.”
고민이 되다 보니 한 번 더 한숨이 나왔다.
비서는 그런 이기원을 보면서도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현종 교수가 칠성에 제자를 한번 뺏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현종 교수 성정이 굉장히 특이하다고 듣기도 해서요. 자초지종을 들으면…….”
“음, 아냐아냐. 이현종 교수는 위치가 위치라……. 그리고 바쁜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얘기 꺼내는 건 안 되지. 게다가 다 될 것처럼 얘기해 놓고 지금 안 된다고 얘기도 해야 하잖아? 근데 부탁까지 해? 도리가 아니지.”
“그럼…….”
“이수혁 교수에게 운을 띄워 보자고. 젊은 사람이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설마 이대로 박 교수를 버릴 생각인가 했던 비서는 좀 더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수혁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잠시만요.”
“네네.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고민해 보시죠.”
당연하게도 수혁은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비서도 그러리라 예상을 했기에 차분히 기다렸다.
비서가 예상하지 못한 건 바루다의 존재였다.
수혁은 이제 별의별 것을 다 바루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번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떨 거 같아?’
[이현종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그래? 이거 좀 켕기는 일인데?’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이면 애초에 수혁이 자기 아들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