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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28화 (528/1,303)

528화 이렇게까지 나와? (3)

바루다는 전에 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언제는 안 그랬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바루다는 애초에 의학 전문 에이아이라 이런 사회관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현종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충분한 데이터가 쌓여서 그런가 바루다는 정말이지 당당했다.

‘그래? 좋다고 한다고?’

[네. 이현종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재밌어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까?]

‘음……. 그건 그렇지.’

원장이 된 후에도 원장일 재미없고 흥미 안 생긴다고 내팽개쳐 두고 다니지 않았나.

하여간 지금까지 원장 한 사람 중에 이현종만큼이나 회의 안 들어가고 놀러 다닌 사람도 없을 터였다.

동시에 그만큼 진료 보러 다닌 사람도 없을 테고.

[이현종 입장에서 칠성이 공들여 키운 사람 하나 뺏어 온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아직까지도 칠성으로 간 제자 얘기하면서 열변을 토하는데요.]

‘그것도 그렇다. 음……. 그래. 그리고 사실 고민할 이유도 없긴 해.’

[맞습니다. 이현종은 수혁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니까요.]

바루다의 말대로 이현종은 수혁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나.

솔직히 지금 같아서는 가서 뺨 한 대 때린다고 해도 그럴싸한 핑계만 대면 별말 없을 거 같았다.

해서 수혁은 곧 이현종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같으면 어떤 시간이건 간에 당연히 병원에 있겠거니 했겠으나, 이제는 아니어서였다.

간혹 일찍 집에 갈 때도 있었다.

이기자 때문이었다.

“어, 수혁아.”

오늘은 아닌 모양이었다.

배경음처럼 들려오는 모니터링 소리가 있었다.

집에 가기는커녕 중환자실에 있는 게 분명했다.

“어……. 뭐 해요?”

“아, 전에 수술한 환자 있잖아. 그 심장 원발성 림포마.”

“아……. 그 환자. 좀 어때요?”

“아직 재워 뒀지. 초음파나 봐주러 왔어.”

“아, 초음파.”

루틴은 아닐 터였다.

중환자실까지 초음파 끌고 가는 거 자체가 별일이니까.

물론 태화 의료원이니만큼 흉부외과 중환자실에는 하나 구비 되어 있긴 했지만, 지금 이현종이 말하는 초음파는 저가형 모델이 아니라 정식 검사실에서 쓰는 초음파였다.

“괜찮네, 잘 뛰어. 근데 웬일?”

“오래 걸려요? 오래 걸리면 그쪽으로 갈게요.”

“응? 아니, 뭐……. 오래 걸릴 게 있나. 다 봤어. 사실 이제 가려고 했지. 오늘 기자가 와인 한잔하자고 했어서.”

“아……. 저도 뭐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에요.”

“그럼 편의점 앞에서 보자.”

“네.”

수혁은 이현종을 만나기 위해 암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수술하기 전에는 어디 이동하는 거 자체가 항상 도전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 봐야 기민하게 활동하거나 오래 서서 버티는 건 좀 힘들었지만.

하여간 내려가니 이현종이 서 있었다.

지나는 레지던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였다.

“편의점에서 노닥거리지 말고 가서 공부해! 수혁이 보고 본받으라고! 연애는 60 넘어서 하라고! 의학에 뜻을 뒀으면, 어?”

아니, 인사를 받는다기보다는 광범위 도발 스킬을 걸고 있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데다가, 교수라면 할 법한 소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현종에게 시비 털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어서 다들 고개를 숙이고 멀리 흩어져갔다.

그러다 보니 원래 원내 데이트 코스 중 핫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는 편의점 앞이 금세 황량해졌다.

편의점 주인이 본다면야 통탄을 금치 못할 광경이었겠으나 지금은 알바만 있는 시간이었다.

알바가 뜻하지 않은 꿀타임에 씨익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 수혁은 이현종에게 다가갔다.

“아빠.”

“어어. 왔어?”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아니, 이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잖아.”

“지금 8시 넘었잖아요.”

“난 12시까지는 공부하다 잤어.”

“그…….”

그래서 당신이 이 병원에서 단둘밖에 없는 석좌 교수가 된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지금 말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지 않나.

이미 저게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산 지 수십 년이 지난 참이었다.

수혁은 흠흠 하다가 아까 하려던 말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아빠.”

“어, 왜.”

“박국진 교수님 알죠? 칠성에.”

“응? 그 새끼는 왜? 설마 스카우트 제의했어? 너한테도 10억 준대? 아니지. 내 제자 놈한테 10억이면 는 100억인가? 그럼 좀…… 좀 고민된다.”

이현종은 박국진 얘기를 듣자마자 흥분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네? 100억이라뇨?”

“10억을 불렀어? 내 이 개새끼를 그냥.”

그러더니만 수혁의 말은 더 듣지도 않고 성큼성큼 계단을 향해 뛰었다.

“어어.”

수혁이 수술받고 나서부터는 잠깐 정도는 이현종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바로 계단이었다.

도저히 계단만큼은 남들처럼 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어.”

해서 난간을 잡고 절뚝이면서 내려가고 있으려니 부아앙 하고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운전도 못 하는 양반이 어떻게?’

[이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시동 걸리는 소리가…….]

‘뭐야, 이런 것도 데이터베이스에 있어?’

[매주 지우는데 이게 남았네요?]

‘그럼 이번 주에 탄 차라는 건데. 내 차는 아니고?’

[신현태 원장 차 같습니다. 마침 퇴근하고 있다가 이현종과 행동을 함께하게 된 거 아닐까요?]

‘허.’

세상에 그런 우연이 있을라고?

수혁은 말도 안 된다 여기면서도 혹시 맞을까 봐 부지런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내려갔을 때 수혁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텅 빈 원장 자리뿐이었다.

어찌나 급히 나갔는지 주차장 바닥에 스키드 마크까지 박혀 있었다.

“이런 미친. 전화는 또 왜 안 받아.”

잔뜩 오해한 채 가는 마당 아닌가.

이현종이라면 가서 충분히 박국진 교수 싸대기라도 날릴 수 있는 양반이었다.

여전히 술 먹으면 주기적으로 하는 얘기가 제자 뺏긴 얘긴데 이제 아들까지 빼앗으려고 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삼촌이 있으니까 좀 나으려나?’

[요새 하는 짓 보면 도긴개긴입니다.]

‘하.’

예전 같았으면 신현태가 갔으니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었을 텐데.

요즘 들어서는 그렇지도 않았다.

어찌 된 게 시간이 갈수록 수혁에 대한 애정이 점점 깊어져만 가는지 주책바가지였다.

원장이라 바빠서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든 것인데 자꾸 자기만 빼놓고 밥 먹고 한다고 삐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칠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고 들었다면 어떻게 할까?

“아 왜 안 받어.”

수혁은 일단 자기 차량에 오른 후에도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 봐도 뻔했다.

둘은 아마도 추격전 하듯 박국진을 쫓고 있을 터였다.

“야, 박국진!”

“어? 이현종 원장님, 웬일이세요?”

아니나 다를까, 이현종은 차가 도로 위에 오르자마자 대뜸 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란해서 병원 연구실을 서성이고 있던 박국진은 거의 전화가 울리자마자 받았다.

“이놈 봐, 이거? 아주 어? 기다리고 있는 전화라도 있나 보지?”

이현종으로서는 수상쩍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원래 대학 병원 의사들이란 족속들이 전화를 좀 빨리 받는 편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받는 경우가 어디 흔하던가.

이건 필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은 내 아들 수혁이에게 되도 않는 추파를 던지고 답을 기다리고 있어서일 거라 확신했다.

“정말이야, 이거? 이 개새끼들이!”

원래 같았으면 말리는 포지션을 맡아 줘야 할 신현태도 덩달아 욕설을 내뱉었다.

‘나 때문에 화난 거야, 이 사람들?’

그 상황에서 박국진은 난데없이 감동했다.

이기원 의원이랑 친하다더니만 칠성 의료원에서 부리는 수작질에 대해 전해 들은 모양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랬다.

‘울지 마, 박국진. 울지 마!’

박국진은 애써 눈물이 핑 돌려는 것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긴! 내가 다 알지! 일거수일투족 다 내 눈 안에 있다고! 내가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아?”

“그, 그러셨어요?”

이현종이 말하는 대상은 수혁이었지만, 박국진은 심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평소처럼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단 얘기였다.

“울어?”

이현종이 의리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더랬다.

이 양반이야말로 태화 의국을 비롯한 각 의국에 전해 내려오던 부조리에 맞서 싸운 사람 아닌가.

하마터면 그때 밉보인 거 때문에 이토록 똑똑한 사람이 교수 못 되는 거 아니냔 말까지 나왔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라이벌 병원에 있는 사람 때문에 이렇게까지? 아니, 그보다 나를 그렇게 신경 쓰고 계셨다고?’

그때 들었던 소문에 더불어 지금 이런 말까지 듣자 감정이 복받쳐서 어찌할 도리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 이럴 게 아니라 만나서 얘기하시죠.”

해서 설마 우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이현종을 향해 만남을 제의했다.

이현종도 기다리던 바이지 않은가.

덥석 물었다.

“안 그래도 너네 병원으로 가는 길이야! 너 어디야?”

“허흡.”

“뭐야.”

“아니, 아닙니다. 그럼 병원에서…… 병원에서 뵙죠.”

“그래, 너 딱 기다려! 내가 신현태랑 간다!”

“허흐흡.”

박국진이 이미 병원에서는 끈 떨어진 연처럼 하잘것없는 신세가 된 자신을 위해 이현종과 신현태까지 온다는 생각에 의사 가운을 하염없이 먹기 시작한 사이, 이현종은 전화를 끊고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신현태는 이미 속도위반까지 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런 이현종을 마주 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궁금증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바로 물었다.

“뭐래요, 이 새끼?”

“어떻게 알았냐고 하던데?”

“와, 이 개새끼가. 그럼 수혁이가 설마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쌩 갈 줄 알았다는 거야 뭐야. 우리 사이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 포인트에서 화가 나는 거야, 지금?”

이현종은 신현태가 진짜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 인마. 내 아들인 줄 뻔히 알면서 빼 가려는 게 괘씸한 거잖아.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어?”

“아, 그렇지. 근데 얼마 준대요? 100억? 수혁이 정도면 100억은 줘야지.”

“자세히 못 들었는데 10억 부른 거 같아.”

“10억? 고작 10억? 미쳤나 이 새끼들이 우리 수혁이를 뭘로 보고 10억을 불러.”

“그러니까 말야. 세계 최고 의사를 10억으로 불러? 돌았나?”

“100억 불렀으면 어, 내가 같이 고민해 주려고 했는데, 와……. 진짜 개새끼네, 이거.”

100억을 불렀으면 했던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차 안은 한동안 욕설로 가득했다.

워낙 흥분해 있었기에 바로 뒤에 수혁의 차가 따라붙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수혁이 하이빔을 쐈는데도 그랬다.

‘아니, 뭔 생각을 하고 밟길래 이걸 몰라?’

[그러게요. 그나저나 박국진에게 가는 건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 이 길 칠성 가는 길이잖아.’

[그럼 앞지르죠. 먼저 가는 게 낫겠습니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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