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34화 (534/1,303)

534화 뭐니 이게 (1)

신현태는 괜히 이 시간에 병동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원장이라 정말 병동에는 환자도 별로 없는 상황이지 않나.

이현종이야 원장 하면서도 일부러 환자를 엄청나게 많이 보려고 노력했다지만, 원장이라는 직책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었다.

특히 빅3 중 하나의 원장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요새는 빅3, 즉 태화와 칠성, 아선이 워낙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보니 원장단 회의가 진짜 많았다.

‘어제 수혁이랑 얘기하다가 삘 받아서 왔다가 이게 뭐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에서도 원장의 진료 건수를 더 줄여 버린 참이었다.

해서 신현태는 병동에 환자가 단둘이었는데, 그마저도 어려운 케이스는 해결했기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임상 의사로서의 펌핑이 와서 왔는데 마침 장덕수가 회진을 돌고 있었다.

“음……. 대체 뭘까요?”

장덕수는 딱 봐도 안 좋아지기 시작한 폐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신현태와 장덕수는 같은 교수긴 하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장덕수는 아직도 교수로 살아온 세월보다 신현태의 제자로 살아온 세월이 더 길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신현태를 돌아보는 그의 눈에는 기대감이 많이 서려 있었다.

‘그래, 대체 뭘까?’

평소의 신현태였다면 그런 눈빛도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받아 주었을 터였다.

신현태가 이현종과 수혁 사이에 낑겨서 그렇지, 대외적으로 보면 역시 대단한 의사이지 않나.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부담스럽기만 했다.

케이스가 이상했다.

“어제 입원했다고?”

“네. 응급실 통해서요. 열이 39도였어요.”

“그냥…… 폐렴 아닐까?”

“단순 폐렴이라기에는 진행이 너무 빨라요. 이거 이러다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ARDS, adult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으로 가는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에요.”

“그래, 그렇네. 어제랑 오늘 폐 사진이…… 이렇게 두 개야? 다른 사람 거 아니고?”

“네. 어제는 그냥 발열이 주된 증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받았죠.”

“음.”

하긴 태화 의료원의 시스템이 허투루 잡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만약 처음 왔을 때 호흡기 증상이 뚜렷했다면 감염내과 메인이 아니라 호흡기내과가 메인으로 보고, 감염내과는 협진으로 보는 형태로 갔을 터였다.

“발열을 주소로 왔는데 하루 만에 이게 이렇게 돼?”

“네.”

“일단…… 검사는 다 나갔지?”

“네. 컬쳐는 다 나갔죠.”

“그래……. 안티는 뭐 들어가?”

“원래는 2세대 세파 줬어요. 어제는 불명열에 가까웠어서요. 근데 지금 보니 폐렴이 이래서…… 타조박탐이랑 레보플록사신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래, 음.”

일단 프로토콜을 잘 따라서 바꾸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장덕수는 물론이거니와 신현태 또한 환자의 진단명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과 질환에서 이건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뭔지도 모르면서 약을 쓰고 있다는 건, 운에 기댄다 이거 아닌가.

물론 지금 쓰는 약이 그냥 골라진 건 아니고 경험적으로 문헌을 통해 골라진 약들이긴 하니 아주 운에만 기대는 건 아니긴 하지만.

질환 경과가 이런데 마냥 평소처럼 치료가 되기만을 바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뭔가 기대하는 눈빛을 장덕수뿐 아니라 다른 레지던트들 그리고 펠로우도 보내고 있었다.

‘뭐라도 다른 얘기를 하나 해 주자.’

해서 신현태는 죽도록 고민하다가 간신히 의미 있어 보이는 조언 하나를 찾아 입을 열었다.

“이거 일단 최악도 상정하고 보자고. 호흡기 협진 내고, 오전 중에 중환자실로 내려. 여기서 더 나빠지면 일반 병실에서는 대응 못 해.”

“아, 네.”

“혹시 모르니까 지금부터 처치실로 빼서……. 인투베이션 세트 프랩 하자고.”

“네.”

물론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턱도 없이 일반적인 조언이었다.

사실 장덕수는 이미 그렇게 조치를 취해 두고 있기도 했다.

장덕수가 어디 레지던트도 아니고 교순데 설마하니 이거 하나 못 했을까.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교수이기에 정말 도움이 됐고, 감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답을 했다.

“흠, 그래. 난 이제 회의 있어서. 이 환자는 팔로우업 할 테니까, 변동 사항 있으면 나한테도 문자 보내 줘.”

“네, 교수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르겠지만 신현태는 아까보다는 조금이나마 편안해진 얼굴로 병동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가슴 한켠엔 계속 환자 생각이 남아서 회의하는 중간중간에도 딴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원장님?”

지금도 그랬다.

신현태는 대체 그 환자에게서 발열 원인은 뭐고 폐가 또 그렇게 된 건 왜일까를 고민하다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질문을 던진 이는 놀랍게도 이현종이었다.

지는 아예 회의를 들어오지도 않았던 주제에, 너 원장인데 여기서 뭐 하느냐는 눈으로 신현태를 보고 있었다.

‘와…….’

신현태는 순간 너무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성질을 부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던 와중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생각을 하던 장본인인 자신이 걸려서 그랬다.

“아, 네. 그……. 박국진 교수님 스카우트 건 말입니다.”

“네, 그거요. 그거 얘기하다 말고 뭐 하는 거예요?”

“그.”

이현종은 이 희귀한 상황을 그냥 넘길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렇지 않나.

맨날 자기보고 너 이상하다 했던 바른 생활 사나이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어디 이현종이던가.

“원장님이 올린 안건인데…… 바쁜 사람 불러 놓고, 이거야 원.”

해서 계속 시비를 걸었는데, 신현태는 애써 그걸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박국진 교수님이면 순환기내과 분야에서 꽤 유명한 분이죠. 진료 성과도 있고……. 칠성 내과의 중진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분이 과연 스카우트가 될까요?”

다른 사람도 그랬다.

환자 얘기하고 있던 중이라면야 이현종에게 누구라도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회의에서는 무시하는 게 답이었다.

“네, 내부적으로는 얘기가 돌았어요.”

“아. 무슨 일이 있었나?”

“그건 기밀입니다. 공개적으로 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

“뭔가 불민한 일이 있어서 나오는 거라면 그걸 굳이 저희 병원에서 받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게다가 지금 신현태와 말을 이어 가고 있는 내과 과장 김문재는 미리 신현태에게 미션을 받은 몸이었다.

원죄가 있는 상황에서 적극 협조하기로 약조하고 과장이 된 터라 맡은 바 일을 하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어야만 했다.

“그런 건 아니라는 점 제가 개런티 하겠습니다.”

“원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확실하죠. 알겠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 느낌만 없게 해 주시면……. 저는 찬성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연극인 셈이었다.

‘박국진까지 불러오면…… 우리 입지가 더 작아질 텐데?’

일부 불만이 있는 사람들 눈에는 그게 잘 보였다.

알레르기내과와 내분비 쪽에서도 특히 갑상선 쪽 그리고 류마티스, 그리고 소화기내과 일부가 그랬다.

하지만 소화기 쪽은 장강명이 꽉 잡고 있는지라 불만이 있어도 감히 입도 뻥끗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이들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이미 원장과 과장 그리고 기조실장에 이현종까지 오케이 하고 나선 마당에 여기서 뭐라 한단 말인가.

원장단이 새로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당인 데다가 김다현 이사장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에 반기를 들었다가는 새로 들어오는 박국진과 바톤 터치하고 어디론가 나가는 수가 있었다.

“좋아요. 그럼 세부 사항은 순환기내과 측에서 정하는 걸로 하고……. 박국진 교수 스카우트 건은 이걸로…… 응? 홍 교수, 어디 갑니까?”

신현태도 그걸 잘 알고 있어서 확 몰아붙인 마당이었다.

그런데 다 얘기 끝나 가는 상황에 갑자기 홍창기, 그러니까 기조실장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냐고 물으니 홍창기가 황망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아, 오전에 협진 들어왔던 환자 있는데……. 지금 너무 안 좋다고 전화가 와서요.”

“협진……?”

딱 협진이라는 말을 듣는데 느낌이 세했다.

‘이거 설마?’

그제야 홍창기가 기조실장이기 전에 호흡기내과 교수라는 걸 떠올린 탓이었다.

그냥 호흡기내과 교수도 아니고, 나름 우리나라에서 중환자 의학을 선도하는 이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실력이 좋으니 이 나이에 기조실장 시킨다고 할 때 다른 이들의 반발이 적었던 것이었기도 하지 않나.

“그거 혹시 감염내과?”

“아, 네. 저 근데 급해서.”

“아,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와 주신 여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현태는 다급히 회의를 마치고, 숫제 달려 나가고 있는 홍창기를 따라잡았다.

적어도 병원 내에서는 뛰는 누군가를 뒤따라갈 수 있다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 운동 부족이라 그런지 뛰어봐야 빨리 걷는 수준이었다.

“홍 교수.”

“아, 네.”

그런 주제에 홍창기는 벌써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평교수 시절에는 그래도 주말에 골프라도 치고 하면서 운동 부족을 어느 정도 해소했는데, 지금은 그러기도 어려워서였다.

“어떻다는데 그래?”

“일단 인투 한다고 합니다.”

“아, 그래? ARDS(성인 호흡곤란 증후군)래?”

“거의…… 거의 그래요. 계속 산소 주는데 산소 포화도 반응이 적다고 해요.”

“이런 망할.”

아직 ARDS, 즉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은 뚜렷한 정의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산소에 반응하지 않는 산소 포화도였다.

가스 교환에 관여하지 못하는 혈류가 발생해서였는데, 말만 들어도 느낌이 딱 오겠지만 당연히 예후가 그리 좋지 못했다.

해서 둘은 후다닥 달려서 중환자실에 닿았다.

간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어디 그런가.

특히 아침에 환자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신현태는 더 불편했다.

‘40살이라고 했지?’

젊디젊은 환자였는데, 옆에 있던 아이들 나이가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이제 막 학교나 갔을까 싶은 수준이었다.

그 나이에 엄마를 잃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일이었다.

“아, 원장님. 교수님.”

딱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인투베이션, 즉 기관 삽관을 마친 장덕수가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이제 막 들어갔어요.”

“반응은?”

“뭐…… 마스크로 줄 때보다는 아무래도 있는데, 그래도 풀로 주는데 88인 거 보면…….”

“진행 중이구나. 엑스레이는?”

신현태와 홍창기는 그런 장덕수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환자 상태를 살피면서였는데, 도저히 어제 응급실로 올 땐 구급차를 타고 오긴 했지만, 의식이 온전했던 환자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신현태는 빨라도 너무 빠르단 생각을 하면서 홍창기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호흡기는 경험이 이쪽이 더 많으니 뭔가 뾰족한 수가 있나 싶어서였는데, 딱 얼굴 보자마자 답이 나왔다.

‘이 새끼도 모르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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