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화 뭐니 이게 (4)
내과라는 과가 약간 이런 면이 있기는 했다.
외과는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모르겠다 싶으면 열고 들어가서 보는 게 되지 않나.
오죽하면 수술명 자체가 아예 탐색 복강경(Exploratory laparoscopy)이나 탐색고실절개술(Exploratory tympanotomy) 등이 있을 지경이었다.
들어가서 보고 문제가 있나 없나 보고, 있으면 그에 맞춰서 수술명도 바꿔서 진행하겠다 이런 얘기였다.
하지만 내과는 열 수가 없었다.
단지 칼을 다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딜 열어야 할지 가늠을 못 하는 질환을 봐서 그랬다.
애초에 연다고 해 봐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내과적 질환은 문제가 훨씬 작은 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음.”
“으음.”
“흐으음.”
그렇다 보니 기다리는 것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현종도 성질 급하기로만 따지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사람이지 않나.
오죽하면 내과 중에서는 그나마 결과를 즉각적으로 볼 수 있는 심장 내과를 택했을까.
그래 봐야 기다려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새벽에 나간 거 아직 안 나왔나?”
“네, 교수님.”
“언제 나갔는데?”
“6시요.”
“음.”
이현종은 불만 어린 눈으로 담당 간호사와 일부러 눈을 피해 저만치 달아나고 있는 인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달라지는 게 있을 거 같진 않았다.
지금 시간이 6시 20분이기 때문이었다.
꼴랑 20분 지났는데 대체 누굴 족쳐야 결과를 빨리 볼 수 있을까.
‘신……?’
이현종은 하릴없이 천장을, 그러니까 하늘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태 자체는 어제보단 나아진 참이었다.
홍창기가 큰소리 뻥뻥 치더니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최선을 다한 덕이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산소에 반응이 있어요.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까지 진행한 건 아닌 것으로 보여요. 뭐……. 타이밍 좀 늦었으면, 백 퍼 그렇게 됐을 거 같긴 한데.”
홍창기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원인이 아직도 불명이라는 거죠.”
처음 입을 뗄 때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는데, 마지막에는 한숨이라도 쉬어야 될 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인을 알지도 못하고 치료한다는 건 참 한심한 일 아니던가.
특히 국내 최고를 자부하고 있는 태화 의료원 내과 의국 사람들로서는 더더욱 자괴감에 빠질 만한 일이었다.
“뭐 생각해 온 거 없나?”
신현태가 홍창기의 말을 역시나 어두운 얼굴로 듣더니, 나머지 사람을 바라보았다.
딱히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멤버에 무려 수혁과 이현종이 끼어 있음에도 그랬다.
“뭐 없지. 간이 좀 커져 있다고 하던데……. 수혁이가. 그게 뭔 상관이야.”
이현종은 신현태의 말에 힘없이 답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으면 딱 잘난 척하기 좋은 시점이지 않나.
한데 이렇게 조용하다는 건, 이현종의 성격을 가늠해 볼 때 정말이지 개뿔도 아는 게 없다는 걸 의미했다.
신현태야 이현종과 원데이, 투데이 함께하는 게 아니다 보니 바로 알아차리곤 수혁을 바라보았다.
‘너는…… 너는 좀 어떠니.’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빛을 하고서였다.
하지만 수혁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단서가 너무 없는 상황에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저도 아직은 간이 좀 커진 것 외에는……. 이건 근데.”
“감염이 진행하고 있으면 간이야 커질 수도 있지.”
“네.”
간이라는 장기가 하는 일이 오죽 많단 말인가.
일단 해독 작용을 하는 장기다 보니 염증이 심해지면 원인을 막론하고 커질 때가 있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간염이 발생했을 때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긴 하지만, 그런 걸 크기 변화로 미루어 짐작하진 않았다.
간 수치가 떠야 했다.
“결국, 어제랑 같네.”
“네. 문헌 뒤져봤는데…… 뭐 짚이는 게 없어요.”
“단서를 너무 안 주셔서 그래.”
신현태는 이제 나머지 일행에게서 환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보다 낫다는 말은 바이털 사인 얘기일 뿐, 환자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로 꼼짝 못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은 그게 누구라 해도 보기 싫은 법이었다.
근데 원래 건강했던 사람이면 그게 더했다.
하루하루 얼굴이 변해 가는 게 보여서였다.
‘부었구나. 음.’
게다가 신현태는 하필 어제 이 환자의 아이들까지 본 마당이었다.
마음이 무겁다 못해 누군가 추라도 달아 놓은 것처럼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오랜 시간 내과 의사로서 살아온 경험 덕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1년 차였다면 지금쯤 침울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을 터였다.
‘아, 수혁이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신현태는 불현듯 수혁은 자기가 맡은 환자를 잃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걸 떠올렸다.
너무 실력이 좋다 보니 벌어진 일인데,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현대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지 않나.
어떻게든 환자는 잃을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멘탈이 깎여 나가면 결국, 이 짓도 오래 하기 어려웠다.
신현태는 그렇게 필드를 떠난 사람을 지금껏 여럿 보았다.
‘흐음…….’
하지만 신현태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수혁은 애초부터 꽤 긍정적인 사람이지 않나.
다리가 다쳤는데, 바루다가 들어왔으니 됐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이미 일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바루다와 워낙에 오래 붙어 다녀서 그런가 일정 부분 바루다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차갑기 그지없는 눈으로, 환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때?’
[간이…… 더 커졌습니다. 이제 비장도 그래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남들은 절대로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세한 변화도 수혁은 알 수 있지 않나.
바루다 덕인데, 그 때문에 수혁은 이미 환자 검진하는 데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그럼…….’
[전신 감염이 더 진행했음을 시사하는 소견일 수도 있죠.]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일단 염증 반응은 가라앉히고 있잖아?’
[그렇죠.]
염증 반응이 가라앉는 것과 감염이 가라앉는다는 말이 꼭 같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둘은 명백히 다른 것을 의미했다.
감염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들어와 증식하고 동시에 우리 몸을 영양분으로 삼아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면 염증 반응은 그런 병원체에 대해 우리 몸이 대응하는 일련의 방어 기제이지 않나.
간이 커지거나, 비장이 커지거나 또는 사이토카인 같은 염증 매개체가 올라가는 것들이 후자에 속했다.
지금 이 환자에 대해 시도하고 있는 치료는 바로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것들이었고.
과도한 반응으로 환자가 죽어 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이 더 커졌다는 게 이상했다.
‘얼마나 커졌지?’
[미세합니다. 아무래도…… 스테로이드 때문이겠죠. 염증 반응 확 떨어뜨리는 데 그만한 약도 없으니까요.]
‘미세하다라……. 그럼에도 변하긴 했다 이거지?’
[네. 이건 어쩌면 염증 반응이 아니라, 감염 그 자체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간염이 있다는 거야?’
[네. 하지만…….]
‘간염 바이러스는 죄다 음성이던데.’
그 말은 곧 간염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응급실에서 이미 우리나라에서 호발하는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검사를 싹 긁고 입원한 참이었다.
워낙에 간염이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보니 원칙 아닌 원칙으로 자리 잡아서 그랬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닌 게, 이번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 그랬죠. 다 음성입니다.]
상대적으로 흔한 B형 바이러스는 물론, C형에 D형까지 긁은 마당이었다.
A는 왜 안 긁었나 싶을 텐데, A는 보통 급성으로 오기 마련이라 딱 보면 느낌이 오기 마련이기에 그랬다.
아마 그게 맞았다면 애초에 놓치지도 않았을 테고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소환되어 고민에 빠질 일도 없었을 터였다.
레지던트 선에서 진단에서 치료 계획까지 싹 끝났을 가능성이 더 컸다.
‘뭐지?’
[모르겠네요, 아직은.]
둘은 한동안 확 몰입해서 환자를 보다가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한 걸음 떨어졌다.
때마침 너무 많이 몰려온 교수들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레지던트가 소리쳤다.
“아, 오늘 검사 결과 떴습니다.”
이런 거 말고는 할 말도 없지 않나.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교수들이 와서 고민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대고 감히 레지던트가 이건 이런 거 같다, 어떤 거 같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이놈은 안대훈에게 감동 감화된 지 오래라, 수혁교의 교인이기도 했다.
‘불경한 일이지, 암.’
수혁이 모르겠다고 하는데 감히 한마디 얹어?
애초에 떠오르는 게 없기도 했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입을 다물었을 터였다.
“그래?”
“어디 봐 봐.”
“네.”
해서 레지던트는 딱 결과만 띄웠다.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았다.
심지어 딱 봐도 붉게 표시된 결과가 있음에도 그랬다.
“염증 수치가 올라갔어.”
“CRP가 뭔…… 10을 넘네.”
“ESR도 120이네요.”
두 수치 모두 염증 수치인데, 차이가 있다면 CRP는 급성이고 ESR은 만성이었다.
둘 다 높다는 건 이 감염이 생각보다 오래됐고, 또 아주 심하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어제보다 올랐다는 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염증 반응을 가라앉히는 것이 지금 주력하고 있는 치료라지만, 항생제도 들어가고 있음에도 이렇다는 건 당연히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감염은 확실히…….”
“다른 수치는 어때?”
“수액 들어가고 있어서 그런가? 약간 헤모글로빈 떨어졌어요.”
“정상 범위잖아.”
“네.”
“근데…… 음. 수액 얼마나 들어갔지? 희석되었다고 봐야 할까?”
“어제만 2ℓ?”
“아. 왜케 많이 넣었어? 폐 안 좋은데.”
“이뇨제는 또 잘 들어서요. 사진은 좋아졌어요. 다 보면서 넣었죠.”
홍창기는 랩을 보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막힘없이 받았다.
원래 주치의인 레지던트가 해야 할 일이었으나, 지금은 그럴 만한 환자가 아니어서 그랬다.
“흐음, 그래. 간 수치도 살짝 떴네.”
“아, 그건…… 감염이라서 그럴 겁니다. 패혈증으로 넘어가지 않나 잘 봐야겠네요. 바이털은 아직 괜찮은데.”
장덕수도 자신이 답해야 할 종류의 질문은 열심히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환자를 지금 이 상태로라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홍창기와 장덕수가 뇌를 갈아 넣은 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답변은 정말이지 막힘 없이 쭉쭉 이어졌다.
“WBC가 더 떴네.”
“이렇게 보면 확실히 세균성에 가까운데 말이죠.”
다만 그래서 무엇이 원인인가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형으로만 끝나고 있었다.
이 환자를 최초로 본 장덕수는 물론이거니와 엉겁결에 낑겨 들어간 신현태 또한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초조해져서 그랬다.
그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수혁이 말을 듣고만 있나 싶더니만, 언젠가부터 조태진이 말하는 신들린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