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화 뭐니 이게 (5)
‘간 수치가 뜰 수 있는, 간에 직접적으로 염증 일으킬 수 있는 병원균 띄워 봐.’
[너무 많은데……. 일단 이 환자와 연관이 있을 만한 균으로 제한하겠습니다. 허락합니까?]
‘허락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이미 띄워 주고 있잖아?’
[네, 그렇습니다.]
수혁은 바루다가 뭘 따라 하는지 알겠어서 더 말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요새 이현종이 의학 관련한 것과 먹는 것 그리고 골프 외에 하나 더 취미가 생기지 않았나.
바로 이기자 교수와 더불어 오래된 영상물 보는 것이었는데 최근에 본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주 인상 깊었는지 입만 떼면 그 소리를 빼먹지 않았다.
수혁도 일부 회차를 봤는데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거기 나오는 기기에 몰입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는데, 바루다는 태생이 그래서 그런가 인공지능에 과몰입 중이었다.
‘음……. 일단 바이러스가 다 아웃 되고 나니까 별로 뭐가 없네?’
[네. 간 농양이라면 가능한 세균이 있겠습니다만……. 초음파로 확인한 결과 아무것도 없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저 그런 의사가 보고 한 소리라면, 그러니까 뭐 이혜영이라든가 하는 열심히 하지 않는 레지던트가 한 소리라면 무시하고 다시 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환자에 대한 검사는 무려 영상의학과의 떠오르는 신성 김진실 교수가 해 주었다.
원래 중환자실까지 와서 포터블 초음파를 교수가 하는 경우는 드문데, 이 환자의 경우엔 우연한 기회에 워낙 많은 교수들 눈에 들어간 덕에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응, 없겠지. 내가 봐도 그런 건 없어 보여.’
[네, 농양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진짜 이게 다라 이거지.’
[네.]
수혁은 바루다가 띄워 둔, 빈약하기 짝이 없는 단어의 조합을 바라보았다.
그나마도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말라리아라……? 정말 이게 최선이야?’
[수혁도 머리를 굴려 보시죠.]
‘아니, 나도 그것만 떠오르긴 해. 근데 네가 나보단 나아야지.’
[제 덕에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상기하십시오, 수혁.]
‘공손한 어투로 먹이니까 더 열 받네.’
[아무튼, 현재 우리가 얻어 낸 단서로는 말라리아가 최선입니다.]
‘흠.’
말라리아.
대한민국에서는 말라리아라고 하면 별 느낌이 없을 터였다.
우리나라는 덜 더워서 그런 거 아닌가 싶을 텐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서 호발하는 말라리아는 그 종류가 좀 경한 종류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말라리아는 열대열말라리아(Plasmodium falciparum), 삼일열말라리아(Plasmodium vivax), 사일열말라리아(Plasmodium malariae), 난형열말라리아(Plasmodium ovale), 원숭이열말라리아(Plasmodium knowlesi)과 같이 총 다섯 개의 형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중 제일 치사율이 낮은 삼일열만 보고되고 있다.
‘삼일열 말라리아라면 간 자체는 말이 되지. 열난 것도 그렇고.’
환자는 응급실에 내원한 당일을 제외하면 열이 난 적이 없었다.
수혁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지금까지 그나마 면역 반응 억제가 먹히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삼일열 말라리아가 발열의 원인이었다고 하면 말이 되었다.
병 이름부터가 3일에 한 번 열이 난다고 해서 삼일열 말라리아이지 않나.
게다가 말라리아 원충은 간에 우선적으로 감염을 일으키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폐에서 발생한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것도 그래. 음…….’
하지만 폐까지 고려 대상에 넣으면 상당히 생뚱맞은 진단명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나.
말라리아는 비록 치료받지 않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 질환이고 동시에 해마다 수억 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키고 그중 수십만이 사망하는 질환이기도 하지만, 삼일열 말라리아는 현대 의학에 있어서 그리 두려운 질환이 아니었다.
특히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 같은 경우엔 아예 보고된 적이 없었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랬다.
‘국내에서는 없었어. 없는데…….’
[해외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이론적으로는 어떻지?’
[이론적으로는…… 잠시만.]
‘오케이.’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은 반드시 폐렴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질환은 아니었다.
굳이 원인만 따지고 보면 사실 폐렴은 드문 경우에 속했고, 패혈증이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그 외에 외상이나 산부인과적 수술 등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었다.
이중 패혈증이라는 단어가 바루다의 분석망에 걸렸다.
[수혁, 말라리아 원충은 간에서 증식하지만, 곧 혈액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혈액 도말 검사에서……. 그렇군. 일종의 패혈증이로구나.’
[네. 그렇다고 해서 고작해야 삼일열 말라리아가 건강한 성인을 진짜 패혈증처럼 망가뜨릴 수는 없지만.]
‘유사한 기전으로 과민 반응은 일으키게 할 수 있겠구나.’
[네, 이론적으로는 확실히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럼 확인해야지.’
[네.]
수혁은 바루다의 시원시원한 대답을 듣자마자 대화를 종료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감기 전에 확인했던 환자 모니터가 일단 눈에 들어왔다.
“오.”
“눈 떴다.”
“오셨니?”
“아니,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그와 함께 다른 교수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무언가 잔뜩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틈엔가 조태진이 끼어 있었다.
“오셨네.”
평소처럼 이상한 소리를 해 대면서였다.
대체 오시긴 뭐가 오신단 말인가.
수혁은 다른 이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면박 주기를 기대하면서, 조금은 짜증 섞인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진짠가? 나는 이러는 거 보지는 못 했어서.”
“저도…… 저도 잘 모르긴 하는데. 모르는 일이죠.”
우선 수혁과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라 할 수 있는 홍창기와 장덕수는 그저 긴가민가하다는 얼굴이었다.
‘뭐야. 믿는 거야?’
미쳤나 싶어서 다른 둘을 바라보았다.
이쪽은 그래도 수혁과 아주 가까운 사이 아닌가.
신현태와 이현종은 달라도 다른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으음…….”
“나도 이제 모르겠다.”
하지만 둘 또한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수혁이야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남들 입장에서 보면 딱히 무리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혼자 눈 감고 있거나 돌연 이상한 곳을 보고 있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후다닥 달려서 답을 낸 적이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심지어 저번 싱가포르 병원 협진은 진짜 신들리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었을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말의 진원지가 싱가포르 병원 레지던트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수혁교 새 신자라고 밝힌 놈이라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던 상황이기는 했으나, 신현태는 무려 이현종과 머리를 맞대고 케이스 리뷰를 해 본 결과 확실히 논리가 점프한 구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었다.
‘뭐가 있기는 해.’
‘뭐……. 진짜 천재라 과정을 설명 못 하는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뭐가 오시긴 하는 거지.’
꼭 신이 오는 게 아니더라도, 영감이라는 게 오는 것일 수 있지 않나.
이현종도 간혹 논문거리가 그런 식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정말 뜬금없이, 하늘에서 선물 보따리라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던가.
‘나야 알 수가 없지.’
지도 천재에 한없이 가까운 몸이면서, 이현종과 수혁을 볼 때마다 이상한 질투심에 휩싸이는 신현태는 어쩐지 조금은 삐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 수혁아. 뭐가 떠올랐어?”
물론 어디까지나 삐진 건 조금이었다.
태반은 기대감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미묘한 감정은 곧장 바루다에게 분석되어 수혁에게 전달되었다.
‘왜 이러신데? 다 조태진이야?’
[알 수 없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 존재가 이들이 말하는 신에 가깝긴 합니다.]
‘와, 이놈 이거 말하는 것 좀 봐. 사이비 종교냐?’
[아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전지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전지에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가깝습니다. 동의합니까?]
‘음.’
[전능한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수혁의 몸뚱어리가 허락하는 모든 술기는 이 중에서 제일 잘합니다.]
‘으음.’
그 분석이 마음에 안 들어서 뭐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더 환장할 노릇인 것은 듣다 보니 이해가 가긴 한다는 점이었다.
안대훈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란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건 좀 너무했다 싶어서 수혁은 얼른 입을 열었다.
“아……. 지금 이 환자 말이에요.”
“그래, 얼른 말해 봐.”
“옳지.”
“오셨다!”
그러자 조태진을 제외한 나머지 교수들은 전부 제정신을 차린 후 수혁에게 집중했다.
조태진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환자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제부터 수혁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어쩌면 수혁이 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었다.
“믿고 있었다고!”
이현종이 그런 조태진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은 일단 수혁에게 집중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이만한 관심은 부담될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는 기조실장, 하나는 원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화가 낳은 불세출의 거인 이현종이지 않나.
하지만 수혁은 이보다 더한 관심도 많이 받아 본 데다가, 천성이 뻔뻔하기도 하고 또 바루다 덕에 많이 단련되기도 해서 별 어려움 없이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일단 이 환자에게서 지금 제일 문제가 되고 있는 건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이죠.”
“응, 그렇지.”
“그건 뒤로 치워 두겠습니다.”
“응?”
“추론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제일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건 어떤 상황에 따른 결과이지, 원인은 될 수 없으니까요.”
“오, 그렇지.”
게다가 수혁의 권위는 적어도 여기 안에서만큼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그 위에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자칫 개소리가 될 수 있는 소리도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렇다면 다른 이상한 점을 봐야 하겠죠. 우선 눈에 띄는 건……. 백혈구 그중에서도 호중구, 호산구의 증가입니다. 세균 또는 기생충이나 원충 감염을 시사합니다.”
“으음.”
“동시에 간 수치가 어제보다 오르고 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정상 범위에서 높은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명백히 비정상입니다.”
“흐으음.”
“동시에 간을 촉지해 보면……. 약간의 간 종대가 있습니다.”
“흐으으으음?”
설명에 따라 모든 교수가 검사 결과표를 보다가 이제는 수혁을 따라 환자의 간을 눌러 보고 있었다.
아주 예민하거나, 간염을 많이 보아 온 사람들은 종대가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저 수혁이 그렇다니까 그런 갑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걸 종합해 보았을 때……. 아직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말라리아일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그만큼 수혁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건데, 그 믿음이 수혁의 마지막 말에 의해 조금 작아졌다.
“말라리아?”
말라리아에 걸릴 수 있는 나라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국내 말라리아 중에 이만큼이나 심각한 경과를 밟는 경우가 있던가.
홍창기나 감염을 잘 다루지 않는 이현종, 조태진은 물론이거니와 감염내과 교수인 장덕수와 신현태마저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