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40화 (540/1,303)

540화 뭐니 이게 (7)

“말라리아 맞아?”

“네. 흔한 타입이에요. 삼일열. 아시죠? Plasmodium vivax 같아 보이는데.”

“으음. 알았어.”

“어…….”

신현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했는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가 먼저 건 전화를 말도 없이 끊어 버렸을 지경이었다.

‘얘가 나보다 더한데?’

그걸 보고 있던 이현종이 이런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원장인 데다 기수도 위니까 선배는 선배지만, 그래도 다른 과 교수한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가 뭐 잘못했나? 말라리아였으면 안 되는 거였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단검사의학과 김 교수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조금 무서워졌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전화를 끊어?

‘그래 내가 뭔가 심기를…… 심기를 건드렸구나. 어쩌면…….’

게다가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었다.

얼마 전 있었던 회식에서 술 먹고 입을 턴 적이 있지 않나.

‘야, 솔직히 요새 너무 내과 판이지? 우리야 원래 병원 권력에서 동떨어져 있는 과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내과가 득세하니까 좀 그래. 이수혁 교수도 그렇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그렇지……. 펠로우도 안 하고 교수가 돼? 요즘 세상에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과 회식이다 보니 마음이 풀어졌던 탓이었다.

설마하니 진단검사의학과에 프락치가 있었을까?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이긴 했다.

진단검사의학과는 병원 전체에서 보면 정말이지 변방 중의 변방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었다.

신현태 원장은 아닐지라도, 이번에 태화 바이오의 수장이 된 김다현 사장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

병원 전체를 휘어잡고 끌고 나가는 힘이 이전과는 달랐다.

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신현태는 받지 않았다.

‘와, 진짜 화나셨구나!’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은 상대가 조금만 예상외의 모습을 보여도 쫄기 마련이었다.

김 교수는 허둥지둥하다가, 이제 막 검체실을 빠져나가려는 인턴을 붙잡았다.

“너 어디서 왔어?”

인턴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눈알을 굴렸다.

‘뭘까, 이 사람은.’

아무리 인턴이 밑바닥이라지만, 어디서 왔냐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을 이렇게 막 집어 던져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답해야 이 사람이 만족하려나 하는 고민이 드는 자신이 싫었다.

그때 김 교수가 다시 인턴을 다시 한번 쥐고 흔들었다.

“질문 어렵니? 너 저 검체 어디서 들고 왔냐고.”

“저는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나…… 아, 네. 그거구나. 네네 그…… 그…… 본관 중환자실입니다.”

“뭔 소리야. 아무튼, 중환자실?”

“네.”

“오케이, 알았다. 고마워.”

김 교수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려 했던 인턴을 두고 훅 달렸다.

그사이 신현태는 폰을 중환자실 데스크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 두고, 환자에게로 달렸다.

나머지 교수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말라리아라니?

방금 전에 다 설득이 되긴 했었지만, 설마하니 진짜일 줄이야.

미쳤다 싶었다.

“미쳤다!”

실제로 조태진은 드디어 미쳐 버렸는지 중환자실이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외치기까지 했다.

중환자실에 환자가 이 사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이 사람보다 더 심각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이지 미쳤다.

“조용히 해 인마.”

“아니, 어떻게 조용히 해요?”

“어떻게라니. 입만 다물면 돼.”

“우리 수혁이가 어? 말도 안 되는 진단을 또 했는데!”

“아니……. 이 미친놈이.”

보다 못한 신현태가 그를 말리고 나섰지만 별 소용이 있진 않았다.

조태진이 너무 흥분한 탓도 있었지만, 신현태도 사실 흥분한 상태여서이기도 했다.

게다가 둘만이 아니라 나머지 인간들도 죄 비슷한 심경이었다.

“말라리아……. 바이박스에 의해 이런 게 올 수도 있구나.”

“허……. 검색해 보니까, 브라질 쪽 논문이 하나 있어. 거기는 워낙에 말라리아가 많다 보니까…… 이런 일이 있었나 봐.”

“아냐, 아냐. 어쩌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닐 수도 있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감염내과가 말라리아를 좀 등한시하기는 했어.”

“그것도 그렇네. 으음. 하아.”

아까는 제일 먼저 나서서 수혁을 의심했던 장덕수와 홍창기 둘도 잔뜩 놀라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역시 우리 아들! 간 커졌다고 할 때부터 뭔가 있을 거 같았다니까!”

결국, 애써 팔불출 짓을 참고 있던 이현종도 터졌다.

가뜩이나 자신이 보기에도 대단한 일을 해낸 거 같은데, 나머지 인간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아버지를 자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죽었다 살았나?”

“글쎄…….”

마침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가까워 오던 참이라, 입구 쪽에 환자 보호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조용하기만 하던 중환자실 내부에서 누가 막 소리를 지르고 있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의사들이 미쳤다고 다른 일로 중환자실에서 즐거워하겠는가.

환자 중 하나가 죽다 살아났음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모두 그 환자가 자기 가족이길 바랐다.

“음……. 이제 들어가세요. 한 명씩.”

해서 보호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조금씩은 상기된 얼굴로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안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의사들이 몰려 있는 환자를 가족으로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어……. 어!”

환자의 남편은, 아직 어린아이들을 장인, 장모에게 맡기고 초췌한 얼굴로 달려온 사내는 의사들이 다름 아닌 자기 아내 옆에 모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표정이 밝아 보이는 것이 뭔가 잘되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한번 가족을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아주 짧은 순간에도 오만 가지 안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사무치면 사무칠수록 그랬다.

“괘, 괜찮은 겁니까?”

해서 남편은 찰나도 참지 못하고 내달렸다.

원래 중환자실에서 이렇게 뛰는 행위는 자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간호사들은 그런 남편을 제지하는 대신 옆으로 가만히 비켜서 주었다.

면회 시간마저 제한되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중환자실이 아닌가.

아무리 자주 본다고 해도 하루 두 번, 그마저도 15분씩이 다였다.

그 시간을 최대한 환자와 보내겠다고 하는데 그것마저 막으라고?

그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아, 보호자분.”

“아.”

남편은 자신의 외침에 돌아서는 자기 아내의 지정의 장덕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입원하고 내내 미간에 잡힌 주름을 펴지 못했던 사람 아닌가.

특히 폐가 안 좋다고 하면서 중환자실로 내려보내기 직전 저 교수가 보였던 표정은 남편으로서도 쉬이 지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근데 그러던 장덕수가 지금은 엷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어떻, 어떻게.”

남편은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환자를 돌아보았다.

삽관한 것을 뽑았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봐도 별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얼굴이 더 부어서 그런가, 안 좋아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점차 밝아지려던 남편 얼굴이 다시금 어두워지고 있을 무렵, 장덕수가 수혁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교수가 환자분이 말라리아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이제 보니 주소지가 강화도신데…… 이쪽은 국내에서는 말라리아 감염 우려 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죠.”

“말…… 말라리아요? 열나고 춥고 떨리는?”

“네.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이라 다른 가족분들은 별 증상이 없었던 겁니다.”

“아……. 그럼?”

“지금 일단 문제가 되었던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에 대해서는 여기 호흡기내과 홍창기 교수님께서 봐주신 덕에 꽤 호전이 되고 있습니다. 원인이 되는 질환도 제대로 찾았으니, 쾌차하실 거라 예상합니다.”

“아이고.”

쾌차할 거란 말에 남편의 다리가 휘청였다.

아무리 멀리서 좋아졌을 거라고 예상을 했다 해도, 단 하나뿐인 아내가 돌연 쓰러진 상황 아닌가.

아마 아이가 없었더라면 이미 같이 쓰러졌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긴장감 하나로 견디고 있었는데, 그게 팍 풀려 버리니 다리가 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이쿠.”

옆에 있던 신현태가 남편의 팔을 잡아 주었다.

원래 대학 병원 내과 의사로 있다 보면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은 법이었다.

내과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과도 드물지만, 그만큼 또다시 살아나는 과도 드물었다.

특히 감염은 그중에서도 꽤 급성에 속하다 보니 신현태는 허물어져 가는 보호자를 붙잡아 준 경험이 많았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은 우선 자신을 잡아 준 신현태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 아까 장덕수가 가리켰던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보자마자 교수님인데 나이가 진짜 어려 보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 수혁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나 싶기만 했다.

[수혁, 아직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도 감사해하는군요.]

‘그러게.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남았는데.’

반면 수혁은 남편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이현종조차도 이럴 때면 꽤 흐뭇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야말로 인공지능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이런 일이 의사에게 동기 부여가 되겠죠.]

‘그렇지. 나도 그래.’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뭔 소리야, 인마.’

[수혁의 심장박동 수를 분석해 보면, 아까 말라리아임을 떠올렸을 때가 지금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 말은 곧 수혁은 지금보다 아까 더 고양감을 느꼈단 얘기가 되죠.

‘그건…….’

수혁은 바루다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아마 바루다가 이게 정말 수혁을 공격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면, 바루다는 더 밀어붙였을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딱히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자기는 인간이 아닌데, 수혁에게 인간미를 기대해서 뭐 한단 말인가.

[변명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수혁의 특성이 저와의 시너지를 내기에 더 적합합니다.]

‘오, 그런가.’

[그렇죠. 지금 또 어려운 환자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가야지.’

[네, 몇 시인지도 생각 안 하셨죠? 밥도 안 먹었는데. 케이스에 대해 이만큼이나 집착을 보일 수 있는 인간은 몇 안 될 겁니다. 적어도 제가 관찰한 인간 중에는 없었어요.]

‘흐음.’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바루다가 수혁 말고 다른 이에게 붙었어야 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건가 싶어서였다.

물론 뭐가 되었건 그리고 실제로 수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간에 보호자의 인사에는 화답을 해야 했다.

그게 예의고 또 앞으로 치료를 위해 도움이 될 테니까.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속내와는 관계없이 수혁의 인사는 꽤 진정성 있게 들렸다.

애초에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이제 수혁에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건, 그 환자가 얼마나 어렵건 쉽건 간에 관계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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