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병원 실사 (3)
눈빛만으로 사람에게 부담감을 줄 수 있는 인간.
그게 수혁이었다.
그냥 가능해진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상황 속에 처해 있어서였다.
우선 공간이 앰뷸런스 안이지 않나.
일반인은 그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이미 주눅 들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닥터 양은 누가 봐도 의사임을 알 수 있는 차림새, 즉 가운을 입고 있는데 완전 수혁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어…….”
“혹시 이 친구 어디 아파서 약 먹는 게 있어요?”
“아, 아뇨. 제가 알기론…….”
“고혈압이나 당뇨 있습니까?”
“아뇨, 없어요. 엄청 건강합니다.”
덕분에 친구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답을 해 주었다.
좋은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가족보다 나은 친구 관계도 있다지만, 동거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정보들도 많지 않나.
“친구끼리 그런 얘기 안 할 수도 있는데……. 확신할 수 있어요?”
“네. 저희 현장에서 일하려면 검진받아야 되거든요. 저랑 원래 친해서 같이 지원했는데……. 검진도 같이 받았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도 그렇고요.”
“아.”
검진을 같이 받았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 친구 말을 신뢰해도 좋다는 얘기가 되었다.
‘고혈압, 당뇨가 없어. 그 말은…….’
[역시 일반적인 종류의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나이도 젊지 않나.
그런데 기저질환도 없는데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이 왔어?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뭔가 놓친 게 없을까?’
[우선 건강 검진 리스트부터 물어보십쇼. 거기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만 알아도 대강 감별이 됩니다.]
‘아, 그렇겠네.’
[저는 그동안 우리 추론 과정에서 허점이 없었는지 점검하겠습니다.]
‘좋아.’
수혁은 바루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고, 다시 친구를 돌아보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고 해 봐야 찰나였기에 친구로서는 그저 수혁이 계속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만 받았다.
“혹시 검진 시에 심전도……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가슴에 뭐 붙이고 하는 검사도 했나요?”
“아, 네.”
“심초음파도 했어요? 차가운 거 가슴에 대고 문지르는 겁니다.”
“아……. 네, 첫 채용 검진 때.”
“그때 이상은 없었어요?”
“기억은 안 나지만 없었을 겁니다. 그냥 정상이라고 알고 있어요. 저희 둘 다.”
“그렇군요.”
초음파는 아주 간단한 검사지만,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검사이기도 하지 않나.
그걸 했을 때 정상이었다는 건, 적어도 심장 구조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말이 되었다.
선천성 이상으로 의심했던 것 중 상당수가 소거되었다.
물론 구조의 이상을 동반하지 않는 질환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도 태반이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왜냐하면 환자는 평소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할 만큼이나 건장한 체격이기에 그랬다.
심각한 질환이 있었다면 결코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음.”
“어쩌죠? 약을 줄까요, 일단?”
고뇌하기 시작한 수혁을 향해 닥터 양이 다시 물었다.
문진을 했다고 해 봐야 수혁은 바루다 덕에 쓸데없는 말을 미리 쳐내고 할 수 있었기에 별로 시간이 흐르진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절대적인 시간은 흐르고 있어서, 의사라 이 상황이 길어지면 어찌 될지 뻔히 아는 닥터 양으로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 주교님이라면 그냥 기다리셨을까?’
머릿속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도 모르게 지금 수혁이 하는 일이 아무 소용 없는 짓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믿음이 없는 자야, 이 독사의 자식아!’
불현듯 안대훈이라면 이런 말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미쳤나.’
닥터 양이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했을 무렵,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바루다가 자신이 분석해 낸 둘 사이의 대화 그리고 아까 환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검진 목록을 계속 보여 주고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화에는 오류가 없어.’
[애초에 이쪽 방향으로 잡고 이끌어 와서 그럴 겁니다.]
‘응, 너랑 나랑 너무 빨리 의견을 통일했어.’
[그렇습니다.]
‘그럼 어디서 오류가 있는 걸까?’
[이미 허혈성 심질환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까?]
‘거의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만에 하나 허혈성 심질환이면 어쩌시려고 이럽니까? 일단 닥터 양이 요청한 약에 대해서는 승인하십시오. 설령 아닐지라도 지금 해가 될 만한 일은 없습니다.]
‘아, 그래.’
그렇다고 계속 속으로, 또 속으로 침잠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자는 현실에 있지 않나.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회생 가능성 또한 더 떨어질 터였다.
이미 맥박이 희미해질 정도로 혈압이 떨어지고 있으니, 어쩌면 가는 동안 죽을 수도 있었다.
“도부타민하고 노르에피는 주자.”
“아, 네!”
“거기에 아스피린, 플라빅스도.”
“네!”
해서 수혁은 초조해 죽을 거 같은 얼굴이 된, 절반쯤은 수혁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진 닥터 양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무리 불신이 생긴 상황이라 해도 지시 자체는 적절하다 못해 사려 깊은 상황이었던지라 닥터 양은 즉시 명을 받들었다.
구조대원과 함께 약을 줬다는 얘기였다.
만약 수혁 혼자 이런 처방을 내렸다면 당연히 무시되었을 테지만, 닥터 양은 누가 봐도 의사였다.
심지어 가운에는 지금 행선지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 병원 마크가 떡하니 새겨져 있었다.
‘일단 처방했어.’
[잘하셨습니다. 그럼…….]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허혈성 심질환이 아닐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거 같거든?’
[음……. 증상의 발현은 허혈성 심질환에 가깝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재생해 봐.’
[처음 환자 증상 발현할 때 말씀이시죠?]
‘어.’
[알겠습니다. 수혁의 기억을 토대로 해당 장면을 재현합니다.]
닥터 양과 구조대원 덕에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해서 수혁은 곧 바루다의 재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혁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바루다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기에, 재현의 수준도 차원이 달라져 있었다.
바루다는 수혁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을 아예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 것처럼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래……. 환자가 갑자기 벽을 짚었지. 응?’
[왜 그러십니까?]
‘땀이 너무 많이 났잖아.’
[싱가포르는 더우니까요.]
‘그렇다고 저렇게 비 오듯이 흘린다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그럼…….]
‘이전 시점도 기억이 있나?’
[드문드문 있습니다. 집중하기 전이라, 수혁이 두리번거릴 때마다 본 게 다입니다.
‘그거 재생해 봐.’
[알겠습니다.]
바루다는 수혁의 요구가 성가시긴 했으나 지나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혁이나 이현종은 소위 촉이 좋은 사람 아닌가.
아직 바루다가 논리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인간들만의 사고 구조였는데, 생각보다 꽤 정확했다.
바루다는 이런 감이라는 게 어쩌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는 데 필요했던 본능의 발현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이지 유구한 세월에 거쳐 선별된 유전자 특성이라는 얘기 아닌가.
바루다로서는 이것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란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멈춰.’
[네. 아……. 배에 손이 가 있네요?]
‘상복부가 아니라 하복부야.’
[네, 그렇습니다. 하복부 통증은 허혈성 심질환의 증상과는 거리가 있는데.]
그렇게 되돌린 영상에는 환자가 아랫배를 움켜쥔 채 인상을 쓰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벽을 짚고, 가슴을 움켜쥔 것은 시간이 대략 1분 이상 흐른 다음이었다.
그동안 내내 식은땀을 흘렸으니, 수혁이 집중한 시점 이후로 얼굴이 땀에 폭삭 젖어 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랫배 통증이라?’
[그다음 벽을 짚었으니 어지럼증이 왔습니다.]
‘그다음 심장.’
[이 순서는…….]
‘환자 처음 만졌을 때 느낌이 어땠지?’
[차가웠습니다.]
‘숨소리는?’
[헐떡였고, 일부 쌕쌕거리는……. 아.]
바루다는 환자에 대한 청음 소견을 떠올리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양.”
“네.”
둘은 서로의 의견이 다시금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행동에 나섰다.
양을 불렀다 이건데, 아까까지만 해도 교주 교주 하던 놈이 그냥 네라고 했다는 아주 사소한 차이는 인지하지 못했다.
인지했다 하더라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수혁과 바루다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기에 그랬다.
“환자 입안을 벌려 봐.”
“어……. 네. 어?”
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환자의 입안을 벌렸다.
그리고 놀랐다.
환자의 혀가 약간 부풀어 있어서였다.
물론 혀라는 것도 사람의 생김새 중 하나라 다들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병리적인 소견이었다.
정상이 아니란 얘기였다.
다행히 숨을 못 쉴 정도로 틀어막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부어 있었다.
“경도 아나필락시스가 있어.”
“네? 우리가 쓴 약에?”
“아니, 노르에피에 어떻게 아나필락시스가 있겠어. 오히려 그거 쓰고 좀 호전되었다고 봐야지.”
실제로 노르에피가 들어간 이후 환자의 체온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청음 소견도 조금 달라졌다.
[쌕쌕거림이 줄었습니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단순 허혈성 심질환이었다면 이런 소견은 애초부터 없었을 터였고, 노르에피네프린을 쓴다고 해서 호전이 될 일도 없었다.
의심이 확신이 된 수혁은 다시 친구를 돌아보았다.
“오늘 이 친구 벌에 쏘이거나, 평소 안 먹던 약 먹은 적이 있어요?”
“어…….”
갑자기 친구인 환자에게 주사약을 넣는 등 뭔가 본격적인 처치가 일어나는 바람에 당황했던 친구는 즉각 답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을 하고 있던 덕에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답을 할 수 있었다.
“벌은 모르겠는데. 약은 먹었어요.”
“왜요?”
“어제 다리 접질린 거 때문에…… 병원 가서 처방받았어요.”
“언제 먹었죠?”
“저녁 먹고니까……. 아, 이거 쓰러지기 한 15분 전……?”
“진통 소염제가 범인이었군.”
수혁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바루다도 손만 있었으면 손뼉 한 번 정도가 아니라 댓 번은 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어서 그런 수혁을 딱히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추론 결과에 대한 조언만 해 주었다.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 사용을 요청합니다. 또 환자의 바이털 상황에 맞추어서 노르에피네프린 추가 사용도 검토하십시요.]
‘좋아.’
수혁도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했기에 바로 입으로 옮겼다.
“스테로이드 슈팅하고 항히스타민 줘. 노르에피도 대기.”
“어……. 갑자기 스테로이드요?”
스테로이드가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긴 했다.
하지만 심장에서?
닥터 양은 아직 수혁과 바루다의 추론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 여전히 허혈성 심장병이란 진단 병에 갇혀 있었기에 의문만 가득했다.
수혁은 그런 양을 보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환자 Kounis 증후군이야. 그러니까 쓰라면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