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화 병원 실사 (4)
“Kounis 증후군……?”
닥터 양은 수혁의 말을 듣고서도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만 지어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너무 낯선 이름이지 않나.
일단 증후군이 붙은 것들 중엔 괴질 같은 놈들이 많다고 보면 되었다.
때문에 양은 자신이 처음 들어 보는 것이 그리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라 여겼다.
하지만 수혁이 보기엔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우리 미친 대머리 안 선생이라면 알아먹었을 텐데.’
어쩌면 안대훈은 진단명을 수혁이 입 밖에 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의심을 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고까지 여겼다.
물론 안대훈이 이 말을 들었다면 교주님의 은혜가 차고 넘쳐서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울고불고했겠지만.
어느덧 바루다 때문에 다른 이들의 능력 또한 과대평가하게 된 수혁으로서는 양이 영 못마땅했다.
“이것도 모르나. 어지간히 공부 안 하는구나.”
해서 가슴에 비수를 팍 꽂았다.
“으.”
그리곤 고통스러워하는 양을 두고 자신이 읊었던 약을 차례로 주입했다.
“바로 효과가 나진 않을 거야. 이미 일부 허혈성 심질환으로 진행을 했으니까. 그래도…… 원인을 제거해 주면, 대개는 좋아지기 마련이지.”
설명을 덧붙이면서였는데, 아까 비수로 찌를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를 구사하고 있었다.
더없이 부드럽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하여간 친절하게는 느껴졌다.
원래 까칠하던 놈은 조금만 부드럽게 해 줘도 확 매력을 느끼게 되기 마련 아닌가.
그 상대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 여길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닥터 양은 지금 사정없이 흔들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바이털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환자를 보고 있었다.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뛰지? 이것이…… 주교님이 말하던 신심인가.’
흔들다리 효과에 더해 스톡홀름 증후군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양은 그런 사항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호르몬의 변화에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그래, 이분은 진짜…….’
심지어 환자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단순히 혈압만 오르는 게 아니라,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허혈성 심질환일 때 뭔가 처치도 하지 않았고 또 시간도 그리 많이 흐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어디 흔하단 말인가.
‘이건 기적이야.’
과장 조금 보태면 기적이라는 말도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어…….”
다 죽어 가던 환자가 눈을 뜨고 말을 하는데 그럼 이게 기적이 아니고 달리 뭐란 말인가.
“어, 어!”
같이 탄 친구도 그제야 변화를 깨닫고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대단하지 않나.
엄청난 일이었다.
“환자분, 좀 어때요?”
“어…….”
“여기 병원입니다. 아까 쓰러지셨어요. 기억이 없나요?”
“그…… 네. 누가 막 달려온 거 같기는 한데…….”
“그렇군요.”
수혁은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환자의 바이털을 살폈다.
어느새 뚝 떨어져 있던 혈압이 정상화 되어 있었다.
심장박동 수가 살짝 빠른 게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였다.
아무리 심장이 허혈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바로 심박출량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나.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해서는 심장이 빨리 뛰어야 할 터였다.
게다가 너무 놀란 상황이니 그냥 넘어가도 좋을 터였다.
[우선 혈색과 맥박은 돌아오고 있습니다.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괜찮을 가능성이 큽니다.]
‘좋아.’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통해 더욱 안심을 한 채 말을 이었다.
“쓰러지기 전 상황은 기억납니까?”
“아, 네. 그…… 갑자기 배가 막…… 아팠어요.”
닥터 양은 그야말로 순한 양이라도 된 것처럼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일단 지금 말한 진단명을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뭔 얘기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대체 뭔 말을 한단 말인가.
이런데 그냥 닥치고 듣는 게 최선이었다.
다행히 병원 문화라는 것이 나라나 문화권을 막론하고 비슷한 면이 있어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라 양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배가 아팠다라. 정확히 어디쯤이죠?”
“음.”
그동안 수혁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이렇게 머리 굴리게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정신 잡고 있는 것이 대개의 경우에서 좋았다.
게다가 바이털도 안정된 마당이니 물어보지 못한 이유도 없지 않나.
무엇보다 Kounis 증후군 진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환자의 히스토리였다.
약이 들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맞겠지만, 이걸 정말 앞으로도 써먹을 만한 자산으로 가지고 가려면 지금 이 케이스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했다.
“여기…….”
“아랫배군요. 설사할 거처럼 아팠나요?”
“아, 네. 그리고…….”
“팔다리가 아프진 않았어요?”
“아, 네. 제가 다리를 삐긴 했는데 괜찮았던 쪽까지 계속 아팠어요. 이게 참. 근데 이걸 어떻게…….”
수혁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이렇지 않았냐고 묻는 거 아닌가.
그냥 그게 의료 지식이 없는 환자와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 편하기에 사용하는 수법인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또 이것만큼 신기한 일도 드물었다.
특히 이 질환에 대해 아는 게 개뿔도 없는 사람이 볼 땐 더더욱 그랬다.
지금은 양이 그랬다.
‘예언……?’
일단 반쯤 정신이 나가서 더더욱 그랬다.
안대훈의 세뇌 교육이 효과적이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애초에 나무위키 종교란을 보고 심취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양의 자질을 미루어 짐작게 한다고 보면 좋았다.
“혹시 아까 먹었던 약 들고 있나요?”
“아, 그건 제 가방…….”
“여깄습니다!’
수혁의 말에 옆에서 역시나 각 잡고 경청하고 있던 환자 친구가 가방을 건네주었다.
친한 친구라더니 가방도 챙겨서 온 모양이었다.
대단한데, 하고 있으려니 구급대원이 자기가 시킨 것이었노라고 밝혔다.
아무래도 수혁이 너무 대단해 보이다 보니 한 번쯤 칭찬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까짓거 한 번 하죠.]
‘오케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이거야 뭐 돈 드는 일도 아니지 않나.
해서 수혁은 구급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잘하셨다고 해 준 후, 가방 안에 있던 약을 집어 들었다.
약 이름이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생긴 것만 봐도 대강 성분명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약이었다.
“이부 부루펜. 이거 진통 소염제인데…… 이런 약 전에도 드셔 보신 적이 있나요?”
한국에서는 사실 크게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아까 차에 타기 전에 물었던 바에 의하면 이 친구의 나이는 24살.
의료 접근성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좋은 한국이었다면 분명 먹어 봤을 터였다.
알레르기가 있었다면 옛날 옛적에 알게 되었을 거란 얘기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었다.
“아뇨. 크게 아픈 적이 없어서.”
“그렇군요. 아 한번 해 보시겠어요?”
“아.”
“이것도 가라앉았네. 아마도 이 약이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네? 이 약 때문에요?”
환자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자그마한 알약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건장한 체격의 자신이 고작 이런 알약 때문에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친구도 그렇게 여기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양도 비슷한 얼굴이었는데, 이유는 조금 달랐다.
‘알러지……? 알러지 반응이었다고? 그러고 보니까 아까 쓴 약들이 알레르기…… 그중에서도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일어날 때 쓰는 약이긴 한데.’
알레르기로 심장이 이렇게까지 허혈이 된다고?
적어도 양은 처음 들어 보는 일이었다.
물론 양같이 경험도 적고 공부도 별로 안 한 의사가 처음 들어 보는 일이라 해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은 아니었다.
“진통 소염제는 항생제와 더불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아주 흔한 약제예요. 대개는 그냥 더부룩한 느낌을 주거나 또는 약간 얼굴이 붓는 수준에서 그치기도 하지만, 간혹 아나필락시스라고 해서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숨을…… 음, 약간 숨이 좀 차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가슴이 진짜 아팠어요. 이것도 그런가요?”
“네. 드물긴 하지만, 심장으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는…….”
수혁은 말을 하다 말고 양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제부터 할 말은 비의료인인 환자에게보다 의사인 양에게 훨씬 의미가 있을 거라 그랬다.
환자는 그저 아, 나는 진통 소염제에 알레르기가 있구나라는 사실만 굳게 인지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양은 그렇지 않았다.
이 녀석이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또는 생사가 갈리기 때문이었다.
방금도 그렇지 않나.
‘너 인마 나 없었으면 환자 죽었다.’
수혁은 나무라는 눈빛을 보내곤 말을 이었다.
“심장 세포에 마스트 세포, 즉 비만 세포가 많다는 건 알지?”
“어…….”
“모르는구나? 어떡하니, 이거.”
“아니, 그건…….”
“그래, 교과서 수준에서는 다루지 않지. 근데 너 학생 아니잖아. 교과서로 공부하는 건 학생, 논문으로 공부하는 건 의사. 몰라?”
“그.”
대부분 의사가 비로소 전공의가 된 다음에서야 자기 전공 과목 교과서를 탐독하게 되지 않습니까 라는 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 못했다.
원래 의료인인 수혁이 제일 먼저 그런 오해를 정정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오해 거리를 잔뜩 싸질러 놓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이야 수혁이 하는 말이니 당연하다 여기는 얼굴로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무식하고 노력도 안 하는 의사가 된 셈이었다.
나름 싱가포르 전체에서 순위를 논할 수 있는 수재인 양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구차하게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하여간 수혁은 교수였고 교주였다.
“아무튼, 심장 세포에 워낙 비만 세포가 많기 때문에 간혹 이런 식의 알레르기 자극이 들어가면 거기서 나오는 히스타민, 트롬복세인, 프로스타글란딘, 류코트리엔, 혈소판 활성화 인자 등의 매개 물질 때문에 빈맥, 관상동맥의 연축(spasm), 심장 수축력의 저하, 심장 전도의 차단 등을 유발될 수 있다고.”
“아…… 그…… 그렇군요.”
“그래. 결국 허혈성 심질환이 일어난다는 건데, 이건 구조적인 폐색이 아니기 때문에 원인을 제거해 주면 좋아져.”
“아……. 그래서 환자가.”
세상에 이런 병도 있었구나.
양은 놀라움에 입을 벌린 채 한동안 있었다.
수혁은 그런 양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는 방금 대화는 솔직히 알아듣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고 있었다.
“응, 아무튼, 환자분. 환자분은 이제 진통 소염제는 절대 드시면 안 되겠습니다. 향후 어느 병원을 가시더라도 이랬다는 걸 꼭 말씀드리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자, 다 왔습니다.”
수혁이 딱 입을 다물자마자 앰뷸런스가 싱가포르 병원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이미 CPR 환자가 간다고 연락이 갔던 상황인 데다가, 아까 차에 탈 때 양도 전화를 했었기 때문에 앞에는 의료진들이 각종 처치 기구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그중 몇몇은 벌써 뛰어오고 있었다.
“환자는!”
“환자는 어떻게!”
그걸 본 양은 이제 어떻게 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좆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