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48화 (548/1,303)

548화 병원 실사 (5)

찰나.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양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기는 충분했다.

일대 레지던트가 응급실을 뒤집어 놨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지금 보니 다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모양인데, 24살짜리 환자가 심장마비로 간다고 해 놨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하…….’

해서 난감해하고만 있으려니 덜커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돌아보니 응급실 교수님이 서 있었다.

“야, 뭐 해! 왔으면 환자 내려야지. 아 설마 CPR 중이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원래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다 보면 남들보다 좀 텐션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쌈박하게 일할 때 일하고 아닐 때 쉬려면 그래야만 했다.

이 양반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예 안 좋은 환자가 온다고 미리 연락을 받은 참이어서 그런가, 거기서 더 긴장감을 끌어 올린 모양이었다.

앰뷸런스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누워 있던 환자가 몸을 일으켰다.

환자 내리라는 말을 자신이 직접 내려야 한다고 이해한 모양이었다.

이미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응급 환자는 아니게 된 셈이었다.

“네, 내리겠습니다.”

“그래, 빨리 내려…… 응?”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환자는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나마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도 하고 또 상체는 비교적 하체에 비해 자유로워서 환자를 제지할 수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걸었을 터였다.

“닥터 양. 이게 뭔…… 뭔 일이야?”

걷지는 않았지만 거의 걸은 걸 본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맥이 탁 풀려 버린 응급실 교수는 양을 바라보았다.

표현은 바라봤다고 했지만 거의 노려봤다고 보는 게 옳았다.

정말 뭔 일인지 묻는 게 아니라, 해명해 봐 이 새끼야 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

양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일단 Kounis 증후군이라는 말 자체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해서 어버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이라고 합니다.”

“어?”

아마 조태진이 이런 말을 했다면 응급실 교수도 네가 뭔데 인마 뭐 이런 표정을 지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수혁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닥터 장, 그러니까 내과의 나름 간판스타인데 불구하고 외국 의사에게 도움을 받았단 사실은 지금 싱가포르 병원에서 워낙에 유명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양이 그 케이스를 가지고 발표를 끝내주게 잘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수혁을 알고 있군요.]

‘나도 엄청 유명한가 보다.’

[그…… 그래요. 일단 얘기하시죠. 깔끔하게 환자에 관해 얘기해 주는 겁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환자가 죽었거나 지금 여기 와서도 계속 삽질할 가능성이 크다, 뭐 이런 논지가 좋겠습니다.]

‘아니, 인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입을 열었다.

“환자가 심장마비 의심되는 증세로 쓰러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리듬에서도 lead II, III, aVF에서 ST 분절의 하강소견이 보였습니다. 심근경색을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 그랬어요? 하강이 있었다…….”

“네, 여기.”

수혁은 이제 앰뷸런스에서 내려 천천히 환자가 실린 침대를 끌어 내리고 있었다.

다른 때처럼 서둘 필요는 없지 않나.

환자는 지금도 두 눈 멀뚱히 뜬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혁은 환자가 아니라 바이털 사인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 뽑아낸 심전도를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건네주면서였다.

“아, 정말이네……. 음. 아이고, 이게 어떻게?”

딱 심전도를 보자마자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여태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면서 보아 온 수많은 심장 환자를 돌이켜 봐도 딱히 이런 케이스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만큼이나 분절 하강이 극심한데 오면서 호전이 되는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멀쩡해져?

‘뭐야. 말이 안 되는데? 이건 협심증이 아니라 확실히 경색 수준이었는데?’

아마 지금 당장 피를 뽑아서 심장 효소 검사를 해 보면 엄청 높게 나올 것이 뻔했다.

워낙 빨리 회복이 되었으니 심장 기능에 해가 있을 만큼 심장 세포가 많이 망가지지는 않았겠지만 하여간 망가지기는 했을 게 뻔해서였다.

“Kounis 증후군이었습니다.”

수혁은 혼란에 빠진 교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알겠지? 뭐 이런 얼굴을 하고서였다.

“kounis……?”

교수는 실망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떠올렸다.

문헌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사실 그래야만 하기도 했다.

응급의학과만큼 응급 질환을 많이 보는 과가 어딨단 말인가.

그중에서도 아나필락시스는 필수 질환이었다.

이걸 놓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당장 전문의 자격증을 찢고 울면서 마리나 만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근데 그걸 어떻게 현장에서 바로 알았죠?”

kounis 증후군은 사실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에 준한 치료를 센터에서 하다가 보이는 특이한 경과로 인해 후향적으로 알게 되는 진단명이었다.

이걸 처음부터 의심하고 치료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 했다.

아니, 응급실 교수는 전혀 그런 상황을 보지 못했다.

문헌으로까지 범위를 넓힌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를 보십쇼. 나이도 젊고 기저질환도 없는 사람이에요. 게다가 지금 현장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근데 심근경색이 온다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겠죠.”

“아, 거기서 의심을 했다……. 음.”

교수는 수혁의 말을 들었음에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확실히 환자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진단해야 하는 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심근경색에서 kounis 증후군으로 건너뛰었다고?

증상이 비슷하긴 하지만 둘 사이의 의학적 거리는 거의 안드로메다 성운급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학적 검사상 허음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입안을 보니 혀가 부었더군요. 잘 보면 입술도…… 부었던 흔적이 있죠? 미세하지만 말입니다.”

“아…….”

그렇게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긴 했다.

그 말은 곧 처음부터 의심을 하고 보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닥터 장이…… 한번 맡겨 보면 알게 될 거라고 했지?’

하긴 닥터 장이 어떤 사람인가.

몸은 싱가포르에 있지만 마음은 대륙에 있다는 평을 들을 만큼이나 중화사상에 대단히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곧 다른 나라 사람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이 없단 얘기였다.

한데 그 인간이 수혁을 겪은 후로는 국제 진료소에 적극 협력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어렵게 쌓아 올린 학회 내의 위치와 학자로서의 명성까지 이용해 가면서였다.

‘확실히…… 이렇게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여기까지 진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미쳤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찰칵찰칵.

응급실 교수가 크게 놀란 얼굴은 그대로 현장에서부터 따라붙은 기자가 든 카메라에 담겼다.

말이 기자지 사실상 리홍이 의원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 이른바 사설탐정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되었다.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 싱가포르는 어느 정도 잘산다 싶은 나라 중 제일 민주주의 지수가 낮은 나라 아닌가.

권력자의 말을 일개 기자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나라란 얘기였다.

더군다나 오늘 하는 일은 딱히 도덕적으로 흠이 갈 만한 일도 아니었다.

‘미쳤네. 저 환자 분명히 심장 부여잡고 있었는데?’

덕분에 기자는 꽤 흥분해 있었다.

원래는 그냥 닥터 양이 가운 입고 태화 의료원 사람들을 에스코트한다는 사진만 찍어서 흘리면 될 일이었다.

그것만으로 싱가포르 내에 국제 진료소 설립이 메이저 병원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우연히 이런 대박 건수를 잡았으니 어찌 아니 신날 수가 있을까.

‘죽어 가던 환자를 살린 한국의 의사, 그는 누구? 아냐, 제목을 좀 더…….’

벌써 머릿속에는 헤드라인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느라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그사이 수혁과 일행이 병원 안으로 사라져 있었다.

‘허.’

아쉬웠으나 어차피 관계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리홍이 의원이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을 원래보다 훨씬 더 잘 해냈다는 사실 뿐이었다.

빵.

워낙 흥분한 탓에 찻길임에도 불구하고 뛰다 클랙슨까지 들었음에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쳤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 역시 리홍이 의원이 수혁에게 붙여 주었던 사람이었다.

뒤에는 조태진이 타고 있었다.

“이해하시죠. 병원이잖아요. 가족이 아프거나 본인이 아픈 거 같은데…….”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둘은 헤실거리며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기자를 보며 쯔쯔 혀를 차다가 이내 앞을 돌아보았다.

곧 응급실 정문이었다.

그 말은 곧 여기쯤에서 조태진은 내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차가 아무리 리홍이가 보내 준 차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급실 앞에 떡하니 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저는 그럼 내리겠습니다.”

“저는 근처에 있을 테니, 일 보고 나시면 연락 주시죠. 어디로 가시든 모시겠습니다.”

“아유, 저는 그랩인가 뭔가 하는 택시 타도 되는데요.”

“네, 조태진 교수님은 그러셔도 됩니다.”

“네?”

조태진은 예의상 꺼낸 말이었는데 상대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서 놀랐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다시 아유 아닙니다, 뭐 이런 말이 돌아와야 인지상정 아니던가.

한데 그러라고?

다 같은 동양이라고 해도 문화권이 달라서 그런가.

삼세번의 원칙은 대한민국에서나 통하는 거였나, 뭐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돌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리홍이가 보내 준 경호원은 그런 조태진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수혁 교수님은 안 됩니다. 그분이랑 함께 다니실 거 아닙니까? 그분은 리홍이 의원님의 귀빈이십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

중요한 게 내가 아니지, 참.

조태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여간 수혁과 함께 다니다 보면 상하 관계가 역전될 때가 너무 많아서 헷갈렸다.

‘그래, 수혁이 덕에 이런 호강도 해 보는 거지.’

보통의 교수였다면 이럴 때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조태진은 그저 웃음만 나왔다.

조태진이 특별히 인품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그냥 수혁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동생 사랑의 기적이라는 걸까.

조태진은 허허 웃으며 안으로 향했고, 환자를 인계하고 나오는 수혁과 마주쳤다.

“오, 어떻게 됐어?”

“다행히 kounis 증후군이었어요.”

“그래? 다행이네. 그럼 대강 검사하고 끝?”

“네. 바로 저녁 먹으러 갈까요?”

“좋지. 사실 내가 예약해 둔 곳이 있어. 거기로 가자.”

“좋죠.”

그렇게 둘은 아직 어디 가지도 못하고 있던 경호원 차를 타고 점보 식당으로 향했다.

경호원이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래, 라디오를 모두 끄고 있었기에 몰랐는데, 이미 기자가 쓴 기사가 뉴스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한민국 태화 의료원 소속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의사가 오늘 길거리에서 환자를 살렸다고 합니다. 훈훈한 소식 자세하게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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