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화 김승규가 온다 (2)
“어떻게…… 오셨다고요?”
한편 김승규를 마주한 공항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눈앞에 선, 정장 차림의 사내 때문이었다.
“일 때문에.”
어깨도 넓고 키도 크고 머리도 크고 목도 두꺼웠다.
모든 체형이 이 사람이 말하는 일이 좋지 못한 일일 거라는 걸 가리키고 있다고 할까?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얼굴이었다.
사실 여기서 일하다 보면 워낙 많은 사람을 보기 때문에 얼굴 때문에 놀랄 일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심지어 글로벌 스타를 봐도 아, 스타 봤네 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랄까?
‘숨을 못 쉬겠어.’
그런데 이 사내를 마주하고부터는 숨 쉬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허둥대고 있었다.
아마 공무원으로서의, 그중에서도 관문을 지키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각이 없었다면 도장 찍고 그냥 보냈을 터였다.
이후 뉴스에 나는 살인 기사마다 유심히 보게 되긴 하겠지만.
하여간 공무원은 꽤 강직한 사람이라 계속 질문을 이어 나갔다.
“무, 무슨 일이요?”
“응? 원래 이렇게 꼬치꼬치 묻나?”
그게 기분이 나빴는지 김승규는 인상을 썼다.
웃어도 무서운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인상까지 쓰면 어떻게 될까.
“힉.”
공무원은 저도 모르게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다다다.
곧 김승규는 총 든 군인 둘과 경비견에게 둘러싸였다.
“하아.”
당황스럽진 않았다.
그저 지겨웠다.
“또야?”
해서 김승규는 손을 내밀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은 하마터면 그거 때문에 총을 쏠 뻔했지만, 상대가 저항 의지가 없다는 걸 표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포박한 후 데리고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근처에 있던 이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김승규가 아예 사라지고 나서야 다들 한마디씩 보탰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살인범이지?”
“마약 사범 아냐?”
“보통 마약 사범이 살인도 해.”
“하긴…… 어디 보슨가.”
“그럴 거야. 저런 얼굴 해 가지고 누구 밑에 있으면 그것도 쪽팔리지.”
사실 공항 직원은 그냥 생긴 게 무서워서 군인 부른 느낌이라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주변에서도 하도 이렇게 떠들어 대자 비로소 자기 행동이 합리화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김승규는 이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합리함의 끝판왕이지 않나.
‘미친놈이…….’
더 화가 나는 건 이게 처음 겪는 일이 아니란 점이었다.
어찌 된 게 모든 공항에서 그 나라의 깡패라고 오인하지 않았나.
일본 학회를 가면 아쿠자의 한 유서 깊은 구미의 오야붕이 됐고, 한국에서는 전국구로 오인되어 한때 경찰청에 김승규 교수의 사진이 나돈 적도 있었다.
“삼합회지?”
그러더니 이제 싱가포르에서는 삼합회로 오인받고 있었다.
‘이것도 나름 업적이라면 업적일까?’
야쿠자, 삼합회 그리고 전국구면 동북아시아를 주름잡는 조폭 조직은 다 하나씩 해 본 셈 아닌가.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면 아마 그들만의 위인전에 아름을 올릴 수 있을 터였다.
“태화 사람입니다.”
하여간 오해를 풀기는 해야 했기에 김승규는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지 오래인, 그러니까 싱가포르 사람들도 다 알 법한 기업 이름을 댔다.
그러자 군인 중 하나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외쳤다.
“태화파? 신규 조직인가?”
“이거 큰일인데요. 이 정도 거물이 있는 파인데 처음 들어 봅니다.”
“여긴 왜 왔어. 누구 묻으러 왔어.”
“이래서 카지노 사업은…….”
“어허! 총리님 결정인데.”
“그래도…… 그 후로 확실히 늘었잖아요.”
그리곤 지들끼리만 알아듣는, 정확히 말하면 지들끼리만의 망상을 이어 나갔다.
김승규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는데 그와 동시에 다른 군인이 전기 충격기로 위협했다.
그냥 위협이 아니라 진짜로 겁나서 하는 말 같았다.
“어어, 주먹에 힘 풀어!”
“미친놈들이 진짜.”
김승규는 계속되는 과한 반응에 한국말로 욕한 후, 다시 영어로 말했다.
“태화 의료원. 나 의사야, 이 사람들아.”
“거짓말하지 마!”
“말도 안 되는…….”
“싱가포르가 물로 보여? 앙?”
그러자 더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따르릉.
이제 어쩌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김승규 핸드폰이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나머지들이 눈에 띄게 긴장했다.
“뭐야, 받아 봐.”
“스피커 폰으로 해.”
“후.”
김승규는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전화를 받았다.
외과 애도 분명히 와 있을 텐데, 이상하게 조태진이 걸었다.
‘그 새끼는 나랑 벌써 몇 년짼데 아직도 목소리도 못 들어?’
김승규는 불만이 한가득이었지만 외과 조교수도 할 말이 있었다.
오히려 맨날 보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코앞에서 얼굴이 재생되기 때문이었다.
봐도 봐도 적응되지 않는 얼굴이 있는데 그게 바로 김승규라는 것.
말마따나 얼굴 하나만으로 전국구가 가능할 사람이지 않나.
아니, 수감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이 너무 좁다고 했다.
“교수님, 저 혈액종양내과 조태진입니다. 지금 어디세요? 착륙하신 건 맞죠?”
“어, 여기가…… 여기가 어디냐면.”
“영어로 말해!”
“잉.”
조태진은 전화를 하다말고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누군가 위협적으로 끼어들어서였다.
“뭐예요?”
“여기 공항 경비대 본부 같은 곳이야.”
“네? 거긴 왜.”
“몰라, 얼굴 때문인가.”
“아.”
“납득하지 말고.”
그리고 바로 납득했다.
얼굴 때문이라면 어디든 끌려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싱가포르니까 망정이지, 미국이었으면 관타나모로 일단 가서 얘기가 진행되었을 수도 있었다.
“빨리 나오세요.”
“나갈 수가 없어. 얘네들은 내가 삼합회라고 생각하나 봐.”
“아싸. 들었지?”
조태진은 삼합회라는 말에 흥분해서 외쳤다.
그러자 설마 그렇게까지 오인하겠냐는 생각을 했던 소수 인원이 고개를 떨궜다.
100달러씩을 내놓으면서였다.
난데없이 소란이 이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아서 김승규는 너무 화가 나고 분했다.
“아싸?”
“아니, 아닙니다.”
“돌았어?”
“아닙니다, 교수님. 잘못했습니다. 그…… 저희가 사람 보낼게요.”
“사람 보낸다고 보내 줄 거 같지가 않은데.”
“아닙니다. 될 거예요. 기다려 보세요.”
분노를 느낀 조태진은 만회하기 위해, 그리고 전화를 될 수 있으면 빨리 끊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다름 아닌 리홍이가 보내 준 사람이었고 꽤 공신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정말로 송구스럽게 여기는지, 연신 사과를 하곤 달려 들어갔다.
그렇지 않나.
병원 교수를 경비대에서 붙잡아?
딱히 귀빈이 아니더라도 이런 실례가 없었다.
듣자니 김승규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나름 레전드 격인 의사라는데, 이거 일이 잘못되면 국제문제로 비화 될 여지도 있었다.
‘미친놈들…… 미친…… 미친?’
해서 엄청 달려서 경비대로 들어갔는데, 딱 김승규를 보자마자 헷갈렸다.
‘저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억울하게 붙잡혔을 거 같진 않았다.
분명 뭔가 하지 않았을까?
“뭡니까?”
잠깐 시선을 빼앗긴 채 서 있으려니 군인이 와서 물었다.
경호원 쪽은 딱 봐도 생긴 게 건실하다 보니 조직은 아닐 거라 여겨서 깨나 정중했다.
“아, 저는…….”
경호원은 말로 떠드는 대신 명함부터 보였다.
리홍이 의원실 경호원이라고 쓰여 있는 명함이었는데, 싱가포르 내에서는 어지간한 의원 명함만큼이나 힘이 있었다.
“아, 네. 무슨 일로?”
아니나 다를까 태도가 딱 바뀌었다.
“여기 김승규 교수님이 계시다고 해서요.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교수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김승규는 사람 눈앞에 두고 교수는 없다느니 하는 것도 화가 나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났다.
쾅.
해서 김승규는 책상을 꽝 하고 치고 말했다.
“나다, 이 새끼들아. 내가 김승규 교수고 의사라고!”
쾅 해서 총을 겨누고 보니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경호원이 듣기에도 그랬다.
“김승규세요?”
“그렇다니까!”
“태화 의료원에 단둘뿐인 석좌 교수?”
“그래!”
“간 이식의 세계적…….”
“권위자가 나라고!”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김승규는 사과를 받으면서 동시에 이제 자신이 의사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뭐가 좋을까.
메스?
‘아니지……. 내가 들면 그것도 연장인데…….’
고민하고 있으려니 공항 직원들도 달려와 사과했다.
경호원이 이 사람이 보통 의사가 아니라 진짜 명의고, 심지어 리홍이 의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서였다.
물론 다 그 말이 진짜라고 믿는 건 아니었다.
‘하긴 정치하려면 구린 일도 해야지.’
이런 인간이 떳떳한 신분으로 입국해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누구 묻고 싶으면 말만 하면 되지 않겠나.
솔직히 어두운 밤길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거 같았다.
다행인지 뭔지 직원들은 그런 말을 굳이 입 밖에 낼 정도로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사람들은 아니어서 김승규는 그나마 마음의 평화를 안고 나설 수 있었다.
“와.”
“저분이……?”
그래도 표정이 어둡기는 했는데, 그 얼굴을 본 닥터 장은 당연하게도 너무 놀랐다.
그리고 걱정이 들었다.
‘오늘 회의에서 좀 개길려고 하던데…….’
국제 진료소를 안 하겠다 뭐 이런 논지는 아니었다.
다만 조건을 좀 까다롭게 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있었다.
예를 들면 여기서 보내는 환자에 대해서는 뭔가 좀 커미션을 받는다든지 하는 방향이랄까.
국제 진료소는 국내 의료법에서 좀 자유로워서 가능한 얘기였다.
또 듣던 대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맞나 뭐 이런 것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만 해도 수혁의 실력을 보기 전까지는 회의적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먹질하진 않겠지?’
그런 분위기를 사전에 전해 들었으니 걱정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교수님, 어떻게 된 거예요?”
“몰라, 개새끼들이 갑자기 총을.”
“네? 총을 가져오셨어요?”
“아니, 미친놈아. 내가 왜 총을 들어!”
“아, 하긴 그건 아니지.”
게다가 김승규는 지금 기분이 정말로 안 좋았다.
아까 안에서도 이상한 일을 당했는데, 어쩐지 밖에 있던 놈들은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있는 거 같아서였다.
심지어 총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지 않나.
벌써 수 년째 제자로 있어 놓고서!
얼굴만 무섭지, 인품은 썩 괜찮은 편이라 여기고 있는 김승규로서는 이보다 열 받는 일도 드물었다.
쾅.
덕분에 김승규는 다소 거칠게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심 차 타고 오다 보면 화가 가라앉지 않을까 싶었는데, 조태진이 한 번 더 화를 돋우는 바람에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돈 땄어요.’
‘뭔 돈?’
‘삼합회로 오인받나 안 받나 억.’
목울대를 침으로써 한동안 호흡이 부자연스럽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뭐야. 깡패야?”
“뭐야.”
씩씩대며 들어온 김승규를 본 싱가포르 병원 측 사람들은 일단 쫄았다.
김승규는 그런 의사들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회의…… 시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