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53화 (553/1,303)

553화 여기도? (2)

신도라 이거지.

수혁은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그야말로 싱가포르 의료계의 젊은 동량들이라고 생각했던 놈들이 이상한 놈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화 의료원 애들이야 안대훈 같은 또라이가 옆에서 계속 바람을 잡아 댔으니 넘어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얘들은 뭐란 말인가.

어찌 바다 건너 있는 사기꾼한테 당해서 사이비 종교를 갖게 되었단 말인가.

‘대체 얼마나 순진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표정이 고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안대훈은 개의치 않았다.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어서 그랬다.

‘우리 교주님은 기분이 좋으면 찡그리시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오해는 아니었다.

그저 안대훈이 혼자 자기가 이러는 걸 수혁이 싫어할 리 없다고 믿어서 그랬다.

물론 안대훈 혼자서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놈들이 모여서 역시 그렇다고 말을 해 대다 보니 강화에 강화를 거듭해서 지금은 아예 교정이 불가능한 망상이 되어 있었다.

“교주님,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휴.”

“교주님?”

“해 봐.”

수혁은 이런 망상이 있다는 걸 모르긴 했지만, 하여간 안대훈이 보통 놈이 아니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안대훈하고 쓸데없는 잡담 나누시지 마시고, 뭔 환자인지나 묻죠.]

‘그래, 이놈하고 얘기하면 머리가 지끈거려.’

[그게 느낌만이 아닙니다. 안대훈과의 잡담은 수혁의 연산 속도를 평균 10%가량 끌어 내립니다.]

‘이 새끼 버릴까.’

[그러기엔……. 또 안대훈이 물어 오는 환자를 볼 때는 반대로 20%가량 증가합니다.

‘뭐야, 대체.’

[분석해 보면 수혁은 남들의 기대에 약하지 않습니까? 이현종이나 신현태도 수혁의 진단 능력을 믿고 기대하지만 안대훈만 할까요?]

‘그건 어렵지.’

이현종과 신현태가 수혁에게 거는 기대는 그나마 정상적이지 않나.

물론 둘에게도 비정상적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안대훈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이었다.

이놈이 갖고 있는 믿음은 신앙이지 않나.

신앙은 모름지기 신을 대상으로 해야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되는 법이었다.

이런 걸 세상에서는 사이비나 이단이라 불렀다.

[극단적인 믿음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수혁의 연산 능력이 올라가는 거죠. 그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하……. 나도 이상한 놈 같은데, 그렇게 들으니까.’

[말을 아끼겠습니다.]

‘왜 이럴 때만 아껴? 평소에는 말이 더럽게 많더니.’

[상처 되는 말을 하면 싫어하니까요.]

‘하.’

수혁이 바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끝내 한숨을 쉬게 된 사이, 안대훈은 부리나케 환자에 대해 읊었다.

사실 환자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또 다른 레지던트였으나, 그 레지던트는 감히 수혁과 말을 섞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

“47세 남자 환자로 지금 4주 전 시작된 구토를 주소로 두 번째 입원 중인 환자입니다.”

“응?”

처음엔 불만이 있었지만, 딱 듣고 나니까 흥미가 동했다.

4주 전 시작된 구토라?

이 말은 곧 지금도 구토를 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이상한데요?]

‘그러니까, 대체 원인이 뭘까?’

수혁은 안대훈에게 갖고 있던 불만 따위는 이미 잊은 채 케이스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버려 버린 정신이어서 그랬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바루다도 수혁도 자신의 태도가 확 변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하여간 수혁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확인한 안대훈은 역시 몸은 솔직하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환자 4주 전 발생한 복통, 구역, 구토를 주소로 싱가포르 국립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였습니다. 응급실에서 시행한 복부초음파검사에서 전반적인 소장 마비 및 복수 소견 보여 급성 복막염 의증 하에 소화기 내과로 입원하였습니다.”

“으음. 계속해 봐.”

“네, 교주님.”

안대훈은 역시 우리 교주님은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했다.

이건 그렇게 억울할 것도 아닌 게, 지금 수혁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 같지 않나.

그 덕분에 모여들었던 싱가포르 새 신자들은 역시 주교님의 위력은 다르다 느끼고 있었다.

‘본인 입으로 본인이 주교라 하길래 미친놈인가 했는데…….’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구만그래.’

‘이래야 우리의 주교지.’

‘나무위키가 되게 정확하구나.’

수혁이 케이스에만 너무 몰입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되었다.

“입원해서 시행한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 검사(CT)에서 불규칙한 장간막 덩이가 관찰되었습니다. 다만 발열이나 야간 발한 등의 증상은 전혀 없어서 경화성 장간막염으로 진단 내렸습니다.”

“으음……. 가능한 진단명이지.”

덩이란 것은 달리 말하면 종양이었다.

종양이 있는데 왜 염증이라는 진단명이 튀어나오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원래 염증이 있다 보면 그렇게 되는 수도 있었다.

또 장간막은 지방과 림프절로 이루어진 곳이다 보니 애초에 종양 질환이 잘 안 생기는 곳이기도 했다.

만약 생긴다고 하면 림프종일 텐데, 그건 발열이나 야간 발한을 동반하니 그게 없다면 배제할 수 있었다.

“네, 그래서 지금 약을 프레드니솔론 40mg, 타목시펜 10mg bid로 경구 투여 시작했습니다.”

“그게 4주 전?”

“네.”

“증상은 어떻게 됐지?”

“호전 보여서 2주 전부터 프레드니솔론 35mg으로 감량했습니다.”

“타목시펜은?”

“그건 유지하고요.”

“근데 이번에 또 입원하게 된 이유는?”

“입원 이틀 전부터 악화되었습니다.”

“흠.”

경화성 장간막염은 쓸데없는 염증 반응 때문에 장간막이 단단해지는 질환을 의미했다.

장간막이라는 게 소장을 덮어서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놈인데 이게 단단해지면 어떻게 되겠나.

당연히 소장의 움직임이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소장이 움직이지 않게 되면 복통이나 구토 등이 발생할 것 또한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프레드니솔론과 타목시펜이면 꽤 잘 선택한 건데.’

[네, 처방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것이 없습니다. 루틴대로 한 거니까요.]

‘용량이 잘못된 건 아닐까?’

[프레드니솔론 40mg이면 고용량인데요?]

‘환자 체중을 우리가 모르잖아. 한국인한테야 고용량이겠지만 외국인은 또 몰라.’

[서양인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저 내과만 진료할 때는 몰랐던 것을 통합진료센터를 운영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면, 그저 대한민국에서만 진료할 때는 몰랐던 것을 국제 진료소를 생각하게 되면서 알게 된 참이었다.

생각보다 인종이나 사는 지역 등이 질환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컸다.

수혁은 바루다와 자신이 또 성장했다는 생각과 함께 입을 열었다.

“환자 체중은? 인종이 어떻게 돼?”

“아……. 그건 제가 잘.”

“그럼 환자 보는 사람이 말해 봐. 여기서 누구지?”

안대훈은 아차 하는 얼굴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래, 환자 파악을 할 거면 정말 그냥 다 했어야 했는데 이걸 놓쳤구나.

그래서 수혁과의 대화가 끊겼구나.

천려일실이라는 말이 이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누가 보면 꽤 흉한 몰골이었을 터였다.

갑자기 핸드폰 앞에서 얼마 남지도 않은 귀한 터럭을 쥐어뜯고 있다니.

다행히 수혁은 딱히 안대훈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꼴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아, 접니다.”

“이름이?”

“왕팡입니다.”

“네, 닥터 왕. 말해 주세요.”

수혁의 질문에 나선 이는 왕팡이라는 레지던트 3년 차였다.

꽤 이쁘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양이 자꾸 힐끔거리고 있었다.

수혁이 볼 땐 가망이 없어 보였기에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보며 누가 누굴 안타까워하나 싶었으나, 지금 그런 말을 했다간 마음의 상처가 될 거 같아 입을 다물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산 처리 능력이 떨어질 게 뻔해서 다물었다.

딱 봐도 이 케이스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이지 않나.

[최선을 다하십쇼, 저도 그러고 있습니다.]

‘뭘 했다고?’

[말하면 싫어할 겁니다.]

‘그럼 말을 아예 하지 마!’

[제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서요.]

‘하, 시발.’

수혁이 돌연 얼굴을 굳혔기에 왕팡은 긴장했다.

‘역시 주교님 통해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다 보니…….’

동시에 이런 오해를 했다.

왕팡만 한 것이 아니라 안대훈도 했다.

‘후후. 역시 교주님…….’

그렇다 해도 말을 하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통 케이스였다면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 굳이 찾아와 묻겠는가.

도저히 뭐가 보이지 않으니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환자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입니다. 체중은 69kg이구요.”

“그럼 용량은 제대로 들어갔네.”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줄이기까지는 증상이 호전되고 있었고……. 근데 다시 악화됐다라.”

“네……. 그리고 입원하고 나서도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래요? 어딨지, 환자?”

“병실에…… 아, 같이 가 주실 수 있나요?”

수혁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쪽을 돌아보았다.

이미 의료진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접떨기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조태진도 지금은 없었다.

아마 이곳의 혈액종양내과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러 갔을 터였다.

남은 건 몇몇 태화 생명 및 바이오 측 사람들뿐인데, 딱히 그들과는 할 일이 없을 거 같았다.

박지현 과장이라고 했던 사람이 유심히 이쪽을 보고 있기는 한데 그냥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 그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죠. 어차피 병원에서 달리할 게 있나요? 의사가 환자 봐야지. 더욱이 어려운 환자라면 더 좋죠.]

‘그건 그래.’

해서 환자나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진심 어린 미소가 흘러나왔다.]

“가죠.”

“아,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왕팡을 비롯한 다른 의사들은 역시 수혁이 인자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어려운 케이스라고 하면 환장하는 이상한 의사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서라면 외국에 나온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식이 되어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대체 누가 감히 환자 보는데 미친놈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런 인간은 비단 대한민국에서만 드문 게 아니라, 그냥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었다.

“여기예요?”

“네.”

“음.”

“병원이 좀 오래돼서.”

“아니, 오래되긴 했어도 깔끔하네요.”

병동은 진짜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났다.

회의실은 그나마 리모델링 해서 깔끔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아무래도 계속 환자를 봐야 하니 리모델링 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역시 태화가 세계 제일입니다.]

‘인테리어로 병원 평가하는 게 말이 되냐.’

[그냥 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 건데요.]

‘그래…….’

하여간 수혁은 곧 환자를 볼 수 있단 생각에 왕팡을 따라 병동 복도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실 쪽에서 알람이 울렸다.

“혈압이 잘 안 잡혀요!”

누군가 비명도 질렀다.

그러자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당 병실로 달렸다.

동시에 왕팡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어, 저기 내 환자 있는…… 환자 있는 병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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