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여기도? (3)
다다다.
왕팡은 그 말을 끝으로 냅다 달렸다.
뒤따르던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내과 병동 간호사들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별의별 꼴을 다 보면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이쪽은 준중환자실 역할도 하고 있기에 시니어 중에는 아예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황급히 달려간다?
분명 무슨 일이 터졌다고 봐야만 했다.
“혈압 안 잡혀요?”
그렇다고 해서 수혁의 다리가 갑자기 남들처럼 뛸 수 있게 되는 건 아닌지라, 수혁이 병실 안에 들어섰을 땐 이미 한창 뭔가가 진행 중이었다.
“네, 아니. 음. 수축기가 70?”
“그럼…….”
“네, 곧 넘어갈 수도 있어요.”
“중환자실은 수배해 둔 거죠?”
“네, 그렇기는 한데.”
왕팡은 담당 간호사와 얘기를 하다가 말고 병실 밖을 내다보았다.
간호사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너무 알겠어서 그랬다.
‘하긴 중환자실이 잡혀 있다고 환자가 안 죽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처치실로 빼서 지금의 위기를 넘겨야만 했다.
평범한 주말이었다면 꽤 어려운 일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수혁 때문에 양에게 포섭된 이들이 모두 와 있었다.
내과 레지던트만 6명이지 않나.
이만하면 죽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숨넘어가는 사람 하나 정도는 살릴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교주님도 계시지.’
마지막으로 수혁의 얼굴도 확인했다.
이쯤 되면 일종의 드림팀 아닌가.
왕팡은 여유를 되찾고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우선 처치실로 빼죠. 여기서는 넘어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네.”
“보호자는…… 어딨죠?”
“구토로 입원한 거다 보니…… 지금 연락 돌리고 있습니다.”
“네. 일단 빨리 옮기는 거부터 하죠.”
죽음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병원에서는 어느 정도 분류가 가능했다.
이미 준비가 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은 확연히 다르지 않나.
전자의 경우엔 이미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보호자들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어디까지만 처치를 하겠다는 동의를 받아 놓는 편이었고.
하지만 이 환자는 후자에 속했다.
비단 환자나 보호자만 그런 게 아니라, 의사들도 그랬다.
단순히 구토를 주소로 와서 경화성 장간막염으로 생각하고 치료 중인 상황인데 죽어?
주치의도 동의가 안 되는데 환자나 보호자들은 어떨까.
두두두.
그렇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과는 별개로 다들 바삐 움직였다.
나는 원래 오픈데 이수혁 교주님 보러 온 건데, 뭐 이따위 말을 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케이스에 대해 다들 전해 들었기에, 대강 상태에 대해서도 알아서였다.
‘좆 될 수도 있겠는데.’
그중에서 특히 왕팡과 친한 닥터 양은 인상을 썼다.
이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
사실 왕팡은 그리 큰 책임을 지진 않을 터였다.
레지던트니까.
대학병원에서 책임은 거의 교수가 지기 마련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마음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교주님……!’
해서 닥터 양은 이미 자신이 실력을 본 바 있는 수혁에게 기대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혁은 이미 환자의 머리맡으로 가서 청진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적어.’
[네, 오면서 듣기로 담배를 피우기는 했지만 벌써 끊은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환자는 프레드니솔론을 썼어. 거의 4주간.’
[면역력이 떨어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죠.]
‘게다가 여긴 병원이지.’
[음.]
바루다와 얘기를 나누면서였는데, 언제나처럼 환자를 앞에 두고 하는 바루다와의 대화는 천금보다 귀했다.
뽀드득.
이미 병원 획득성 폐렴일 거라 예상하면서 청진기를 가슴에 가져다 댔고, 가슴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렴이었다.
그것도 꽤 심한.
“인투!”
수혁이 외치자, 간호사들이 조금 혼란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의사 가운이 아닌 정장을 입고 있는 데다가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그랬다.
하지만 왕팡을 비롯한 나머지 레지던트들이 모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간호사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그중 발이 제일 날랜 사람에게 기관 삽관할 기구와 튜브를 건네받고는 조금 기다렸다.
“아직! 심장은 일단 너무 걱정 말고…… 도부타민 걸고, 수액만 적당히 따라가자.”
“아, 네. 심장은 괜찮을까요?”
“심장 문제는 아닐 거야. 심전도는 찍어 봐야겠지만. 근데 언제 와?”
“인턴 달리고 있을 겁니다. 근데 그럼 뭘까요?”
“이 환자 프레드니솔론, 그러니까 스테로이드를 오래 썼잖아. 그 상태에서 응급실을 두 번이나 왔고 또 입원까지 했어. 병원 획득성 폐렴에 걸릴 가능성이 어찌 보면 제일 높은 군이지.”
“아.”
수혁의 말은 곧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진행 중일 거란 뜻이기도 했다.
면역이 억제된 상황에서는 워낙에 진행이 빠르지만, 그렇다고 몇 시간 만에 이렇게 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가 더 예민하게 봤어야 했어!’
적어도 어제저녁 회진 때 환자를 봤던 왕팡은 눈치챘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담당 교수조차 놓친 것을 레지던트가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건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아쉬움과 자책은 남았다.
[환자 혈압은 70에 40, 심장박동 수 150, 분당 호흡수 34회에 산소 포화도 60으로 떨어집니다.]
‘체온은?’
[38.9도입니다.]
‘미친……. 이거 어쩌면 폐렴으로 죽을 수도 있겠는데?’
[그럴 수 있겠습니다. 포화도 55, 50……. 이제 슬슬 준비하죠.]
‘오케이.’
수혁은 왕팡과는 달리 환자 상태에 온전히 집중했다.
바루다 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비록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같은 건 모니터를 봐야 알 수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대강 바루다가 분석을 실시간으로 해 줄 수 있지 않나.
계속 귓가에 대고 이런 걸 떠들어 대는 데 딴생각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아마 없을 터였다.
“어……. 환자 의식이!”
“괜찮아, 아직 혈압 잡히고, 리듬도 단순 타키야.”
산소포화도가 더 떨어지면서 환자가 깔아지자, 왕팡이 놀라 외쳤다.
하지만 이미 다 예측하고 있던 수혁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환자에게 집중하면서 동시에 시야를 넓게 간직할 수 있어서 그랬다.
“여기서 삽관을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환자가 다쳐. 그렇게 되면 삽관을 실패하게 되지. 경험 있는 사람도 있을 거야.”
“아.”
이 와중에 티칭이 가능할 지경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몇몇은 정말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친 적이 있었다.
기도라는 곳은 인체에서 가장 예민한 곳 중 하나이기에 그랬다.
아직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지 않은 상황에서 거기에 뭘 넣으면 발버둥을 치기 마련이고, 그러다 상처라도 나게 되면 기도가 출혈로 인해 가려지게 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면 삽관 난이도가 수배 이상 치고 올라가고, 때에 따라서는 이비인후과를 불러 기관절개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운이 나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좋아. 이제 됐어.”
수혁은 포화도가 30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튜브를 쑥 집어넣었다.
기다릴 때는 한없이 여유롭더니만 넣을 때는 전광석화였다.
수혁은 그와 동시에 청진기를 통해 튜브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까지 한 후,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내려가지.”
“아, 네.”
중환자실 자리는 한국이 되었건 싱가포르가 되었건 간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병원 구조상 중환자실을 충분히 만들어 놓기가 어려워서 그랬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보험 수가 자체가 조금 더 유리하기도 했거니와, 미리 수배까지 해 준 덕에 전화를 걸자마자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가는 동안에는 수혁이 할 일이 딱히 없었다.
‘패혈증은 어차피 알아서 관리할 거야.’
[네, 그럴 겁니다.]
떄문에 수혁은 바루다와 더불어 환자에 대한 토의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우선은 자신이 나서야 할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나누기로 했다.
이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싱가포르 국립 병원의 역량을 대강이나마 서류로 본 덕이었다.
그에 따르면 태화보다는 좀 처지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 병원급은 되었다.
그 말은 곧 얼토당토않은 짓을 할 일은 없을 거란 얘기였다.
‘그래도 항생제는 일단 정해 줄까.’
[네, 내려가면 어차피 새로 처방이 들어갈 겁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고……. 패혈증의 원인은 폐렴일 거야, 그렇지?’
[엑스레이를 찍어 봐야 더 명확해질 텐데, 그럴 겁니다.]
‘내 생각에 폐렴이 원인 질환과 크게 연관이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아까 확인한 복부 CT에서 폐는 완전히 깨끗했습니다.]
덕분에 수혁은 바루다와 더불어 환자의 병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증상은…… 구토란 말인데.’
[경화성 장간막염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복부 CT 영상을 다시 재생합니다.]
만약 바루다가 없었다면 그저 생각만으로 환자의 병을 유추해야 했을 테니, 꽤 지리하고 또 난감한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지 않나.
그냥 히스토리만 보는 게 아니라 아예 환자의 영상까지 죄다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루다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영상에 한해서는 그저 주요 장면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일지라도 전체를 다 저장해 두기 때문이었다.
‘음……. 확실히 폐는 깨끗하고…… 여기 이 덩이가 단순히 장간막에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지?’
[네, 후복막과 공장 일부에서도 림프절 종대가 관찰됩니다.]
‘단순 염증이 아니라……. 림프종 가능성도 있겠는데.’
[림프종이라면…… 조직 검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종양 분포 및 모양을 볼 때 아주 그레이드가 높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때 치료가 안 되면 환자는 죽겠지. 게다가 림프종이라고 하면 프레드니솔론에 일부 반응을 보였다는 것도 얘기가 되고, 또 그럼에도 진행이 다시 된다는 것도 얘기가 돼.’
[네, 또한 패혈증으로의 급격한 진행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림프종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쪽으로 사고를 진행 시키면 또 얼마든지 다른 가능한 질환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가령 유암종, 암종증, 지방육종 등도 다 가능한 병들이었다.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뭔가 다른 단서를 낑겨 넣는 것이었다.
‘혈액 검사는 어땠지?’
[차례로 띄우겠습니다.]
‘음…….’
[오.]
아까는 왕팡에게 설명을 듣느라 대강 저장만 하고 넘어갔던 혈액검사표를 보자 대번에 눈에 들어오는 이상 소견이 있었다.
백혈구 수 자체는 7,100으로 정상이었으나 백혈구 분포가 이상했다.
‘모노사이트가 30%…… 엄청 높은데?’
[10% 이상인 경우 모노사이토시스로 분류됩니다. 가능한 질환으로는 결핵, 전염성 단핵증, 부르셀라병, 매독, SLE와 같은 류머티즘 질환이나 염증성 장 질환 또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에서 발생 가능합니다.]
‘그럼 림프종일까, 역시?’
[모르겠습니다. 림프종이라면 모양에 비해 꽤…… 성장이 빠르지 않나 싶군요.]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