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58화 (558/1,303)

558화 여기도? (7)

“응? 이게 뭔 소리니, 수혁아.”

당연히 태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미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도 이현종이나 신현태 아니면 조태진이나 이수혁 등만 보다 보니 미친놈들의 집합소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정상인이 훨씬 많았다.

다행인지 뭔지 몰라도 김진실은 정상인 축에 속했다.

“지금 여기 환자가…… 아무래도 Myeloid sarcoma 같아서요. 때를 놓치면 죽을 거 같은데……. 상태가 복강경하려면 거의 2주는 더 기다려야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나보고 지금 가서 세침 흡입을 하라고?”

“네.”

“어…….”

그렇다 보니 이 대화가 참으로 터무니없게만 느껴졌다.

“왜, 뭔데? 설마 출장 나온 건데 이 시간에 병원에서 전화 온 건 아니지?”

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옆에서 같이 놀던 교수가 말을 걸어왔다.

동기이기도 하고, 동기 중에서도 실습 같이 돌았던 사이라 거의 죽마고우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김유나 교수가 볼 때 지금 김진실 교수의 얼굴은 일촉즉발 그 자체였다.

‘역시 김진실 판독실 호랑이…….’

사실 교수들이 발령받고 나면 성질이 좀 풀리기 마련인데.

확실히 이하언 교수 밑에서 일하는 게 만만치는 않나 보다 싶었다.

“어? 어, 맞기는 한데.”

“미쳤네? 야, 우리 휴가야!”

이럴 땐 그저 맞장구쳐 주는 게 제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김진실의 성질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잠깐만. 이수혁 교수야.”

“교수면 다…… 응? 이수혁 교수 지금 여기 있잖아?”

해서 있는 힘껏 자신이 대신 화를 내려 했는데, 말이 어째 좀 이상했다.

왜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아니, 어떻게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 병원에서 전화를 걸어?

김유나 교수가 혼란에 전염된 듯 물음표를 띄우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오시죠.”

단호박이 따로 없었다.

의료법 위반이라는 말을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

“사람 살리면 대강 넘어가더라고요.”

“아니, 그럴 리가…… 응? 이런 적이 또 있어?”

“네.”

“아, 있구나. 이수혁 교수 이러는 거 원장님이 아시면…….”

“알아요. 같이 있었어요. 아빠도 그렇고.”

“아.”

다른 방향으로 설득을 해 보려 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수혁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엔 정상인이 없지 않은가.

아마 말리기는커녕 신나서 구경이나 갔을 터였다.

가서 잘했다고 헹가래나 안 했으면 다행 아닐까.

여전히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주기적으로 이수혁 헹가래 행사가 치러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김진실로서는 아예 전의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오실 거죠?”

“아니…….”

“괜찮아요, 저 리홍이 의원이랑 친하잖아요. 그리고 살리면 그만이죠.”

“아니…….”

해서 대꾸하는 대신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또 뭔가 혹하는 게 있었다.

“김진실 교수님만 살릴 수 있어요.”

“음.”

사실 영상의학과가 서비스 파트다 보니 직접 환자를 본다는 느낌이 좀 적어서 더했다.

내색은 안 해도 임상과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정작 임상과 의사들은 환자 안 보는 영상의학과 의사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원래 인생은 자기가 못 가진 것을 열망하며 보내기 마련 아닌가.

김진실은 비록 영상의학과 의사로서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야말로 성공한 의사였지만 그럼에도 일부 그런 마음이 있었다.

“지금 오시면 살릴 수 있어요.”

“으음.”

그 와중에 너만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뽕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말은 처음 듣지 않았나.

머리로는 알고 있기는 했다.

내 진단과 검사가 환자를 살리는 데 어떻게든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것도 꽤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안 그러면 영상의학과에 왜 월급을 그렇게 많이 책정해서 주겠나.

“오실 거죠? 지금.”

“어, 어어.”

하지만 갈증은 있었다.

내 손으로 환자를 진정으로 살려 봤다는 경험은 없어서였다.

그때 수혁이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마치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 유혹하듯 속삭이자 잠시 정신이 나갔다.

“어?”

“야, 갑자기 병원은 왜 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랩을 잡아탄 후였다.

방에 혼자 남는 게 싫었던 김유나도 같이 타 있었다.

“어……. 환자 살리러.”

“응? 취했어? 아닌데. 아직 안 깠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자, 김유나가 이게 뭔 소린가 하는 얼굴로 김진실을 바라보았다.

과학고 조기 졸업자라 동기들보다 한 살 어림에도 불구하고 늘 당찬 모습을 보이던 친구가 지금은 맹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에 취했다고 할까?

술은 아니었다.

마셔도 안 취하는 사람 아닌가.

“오셨습니까!”

싱가포르 자체는 꽤 큰 도시지만, 호텔을 병원 근처에 잡아 놨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딱 내리자마자 얼굴이 통통한, 어제도 봤던 레지던트가 동료와 함께 달려왔다.

“어…….”

“양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의사 가운 입은 둘이 누가 봐도 교수 느낌 물씬 나는 사람 둘을 모시고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그 누구도 막아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리어 길이 막 열렸다.

마치 홍해 갈라지듯 쫙쫙 열렸다.

아닌 게 아니라 양이 꽤 서둘러서 더 그랬다.

게다가 김진실 교수는 몰라도 김유나 교수는 심장내과였기에 병원만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죽을 사람 하나쯤 구하러 가는 의사들 같았다.

드르륵.

그렇게 도착한 중환자실에는 수혁과 조태진 그리고 왕팡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환자와 누가 봐도 김진실 교수 쓰라고 가져다 놓은 듯한 초음파 기기도 눈에 들어왔다.

“이 환자야?”

“네.”

김진실 교수는 아직 가슴속에서 우러난 뽕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사람 중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태화 사람들이 더 많아서 뭔가 익숙한 느낌마저 있었다.

“영상 좀 볼 수 있어요?”

물론 영어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원래 김진실 교수쯤 되면 해외 학회에서도 발표를 많이 해야 하지 않나.

심지어 김 교수는 세계 복부영상의학회에서 젊은 연구자상까지 받았을 정도의 재원이었다.

“아, 네. 이게 4주 전 사진이고요, 이건 이번에 찍은 사진입니다.”

덕분에 왕팡과도 대화를 아주 자연스레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흐음.”

영상이 뜨자 김진실은 본능적으로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부 CT를 보는 건 김 교수가 매일같이 하는 일 아닌가.

게다가 눈 앞에 펼쳐진 영상 소견은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쪽만 보면…… 경화성 장간막염에 손을 들어 주고 싶은데…… 최근에 찍은 걸 보면 덩이가 커졌네. 림포마나 아까 이 교수가 말한 것처럼 골수성 육아종 가능성도 있겠는데.”

홀린 듯 스크롤을 굴려 댄 김진실은 아까 수혁이 대강 말해 준 케이스와 영상 소견을 섞어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 냈다.

수혁과 조태진의 의견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어느 한 점을 계속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 덩이가 많이 커졌어. 위치가 림포마에서는 드물게 전이되는 곳이라……. 아무래도 골수성 육아종이 더 가능성이 있겠어.”

“아, 그래요?”

“응. 어차피 골수성 육아종이 드물긴 한데……. 그래도 문헌을 보면 이쪽으로 꽤 잘 간다고 되어 있거든.”

“아하.”

확실히 영상의학과 짬바가 다르긴 했다.

모두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김유나가 불안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저기 근데 여기 외국 병원인 건 알죠? 이러다 우리 다 감방 가요. 싱가포르는 때린대…….”

한국말로였다.

워낙 다들 영어로 말하던 참이라 모국어임에도 오히려 이질적으로 들렸다.

귀에 똑똑히 들어갔을 거란 얘긴데 놀랍게도 김진실을 비롯한 모두가 이를 무시했다.

“그럼…… 그래, 이거. 이거 타깃으로 찔러 보면 되겠다. 앞에 혈관이 좀 걸리긴 한데…… 이거야 뭐 들어가면서 피하면 돼.”

“가능하신 거예요?”

“응? 응. 어려울 거 뭐 있어. 이번 주만 해도 이거보다 어려운 거 몇 개나 했는데.”

“오.”

그냥 그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김진실 교수는 초음파 프로브를 환자의 배에 가져다 댔다.

이건 더 익숙한 일이라서 그런가, 더없이 편안한 얼굴이었다.

“진실아?”

“쉿.”

불안한 것은 오직 김유나뿐이었다.

직접 검사에 나선 김진실은 물론이거니와 옆에 있던 수혁이나 조태진 모두 여유가 넘쳐 보였다.

“옳지. 보인다. 바늘.”

“네.”

하여간 김진실은 실력이 진짜 좋아서 금세 아까 타깃으로 했던 림프절을 찾아냈다.

말한 대로 중간에 혈관이 있는 듯했으나 김 교수는 망설임 없이 바늘을 푹 하고 찔러 넣었다.

[어우.]

‘와우.’

바루다와 수혁은 동시에 움찔했다.

저기 핏줄이 찔려서 관통되면 어찌 될지 뻔히 미래가 보여서 그랬다.

하나 김진실 교수는 바늘 끝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슬쩍 피하더니 그대로 덩이를 찔렀다.

쫘아악.

김 교수가 바늘을 뒤로 당기자, 조직이 쭉 딸려 나왔다.

“와……. 이 정도면 거의 뭐…….”

다시 보니 바늘이 그리 얇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딸려 나오는 조직의 양이 적지는 않았다.

“무리하면 림포마 검사도 하겄네.”

조태진의 너스레를 마지막으로 김진실은 바늘을 빼냈다.

소기의 목적보다도 더 큰 목적을 달성한 채였다.

“혹시 모르니까, 배 누르고.”

“네.”

김 교수는 왕팡에게 복부 압박을 명한 후, 검체통에 검체를 담아 말했다.

“근데 이거 봐 줄 사람 있나?”

“있죠.”

아니, 물었다고 봐야 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 토요일 밤인데 병리과 교수가 있겠냐는 뜻이었다.

한데 의외로 수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편을 가리키면서였다.

병리과 교수가 나왔다.

태화 사람이었다.

“아. 너 다 불렀구나.”

“네, 아빠 추종자셔서.”

병리과 교수는 양의 도움을 받아 병리과로 향했다.

이 시간 병리과는 응급 수술을 위한 당직만 남아 있어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별 방해 없이 검사를 해낼 수 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와…….”

“왜요?”

“맞네. 골수성 육아종.”

“와…….”

병리과 교수도 양도 왕팡도 다른 모든 이들도 다 놀랐다.

조태진과 수혁만이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태진은 신이 오셨다고 믿고 있어서 당연하다 여기고 있어서 그랬고.

수혁은 김진실의 의견도 일치해서 남아 있던 1%의 아닐 확률마저 소거해 버린 참이라 그랬다.

하여간 환자는 이제 죽지 않고 살게 된 셈이었다.

물론 육아종이라는 게 암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그냥 깔려 있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예후가 좋을 터였다.

“됐다.”

“야……. 잘됐다. 생각보다 빨리 끝냈네.”

“그러니까요.”

“그래, 뭐. 김 교수도 오고 했는데 다 같이 한잔할까? 여기 근처에 바 좋은 데 있대.”

“그럴까요?”

그렇다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았다.

방금 저지른 일들이 대부분 불법이란 생각은 다 잊었다.

심지어 김유나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의사들은 좀 단순한 사람들 아닌가.

해서 태화 의료진은 우르르 사라져 갔다.

남은 것은 싱가포르 레지던트들이었다.

“진짜 엄청나네.”

“내가 뭐랬냐.”

“수멘이다, 수멘.”

“그래, 수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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