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60화 (560/1,303)

560화 니네 다 왜 그래? (2)

‘경찰한테 신고할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신고였다.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들이 시술을 했다.

이건 중범죄였다.

대체로 어떤 나라에서건 그랬는데, 싱가포르는 법이 더 강한 편이었다.

어쩌면 단순 추방이 아니라 태형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아냐, 그렇게 되면…….’

속은 잠시나마 시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위치도 크게 흔들릴 게 뻔했다.

누가 봐도 리홍이가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 아닌가.

게다가 태화와는 이미 함께하기로 한 마당이었다.

어디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면 씹을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태화는 싱가포르 태생의 그 어떤 기업보다 거대했다.

그런 곳의 대표에게 엿을 이런 식으로 먹인다?

‘죽을 수도 있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교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역시 직접 나서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어쩌면 신고가 된 후에 바로 경찰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었다.

아니면 리홍이 측 사람들이 오거나.

둘 중 어느 것도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아, 원장님.”

해서 교수는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가 되었건 지금 원장은 불만이 좀 있는 상황 아닌가.

일단 꼰대였다.

과거 싱가포르가 아시아에서 일본 말고는 제일 잘살던 시기를 또렷이 기억하는, 그래서 한국에 대해 알 수 없는 적대감을 가진.

“어……. 류 교수.”

“네, 다름이 아니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떤?”

“글쎄 이수혁 교수가 제 환자를 멋대로 봤습니다.”

“어? 뭐라고? 그런 일이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원장은 류 교수에게 호의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김승규만 아니었다면 어제 회의를 수렁으로 이끌려 했던 이가 바로 원장이지 않나.

그걸 기세에 눌리고 논리에도 밀려서 망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약점 잡을 만한 건수를 들었으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쪽으로 오지. 원장실로.”

“아, 네.”

아예 제대로 작당을 해 보고자 류 교수를 불러들였다.

류 교수도 옳다구나 싶어서 달렸다.

후후 웃으면서였다.

‘그래, 원장이라면 뭔가 수가 있겠지.’

이제 더 이상 뭐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존심 싸움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말이지 못난 싸움이 되었다는 건데, 한복판에 있다 보면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어어, 어서 와. 자세히 말해 봐.”

해서 류 교수는 원장의 말에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일렀다.

심지어 원장실에 있던 컴퓨터까지 동원해서, 의무 기록도 다 보여 주었다.

그걸 듣고 있던 원장은 솔직히 말하면 조금 어이가 없기는 했다.

‘그러니까 죽을 뻔했던 자기 환자…… 이수혁이 살려 줬다 이 말 아닌가.’

의사라면 아니,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응당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일이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뭐라도 사 들고 가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원장도 이미 어제 무너진 자존심에 매몰된 지 오래였다.

“처음엔 경찰을 부를까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렇다 해도 경찰 얘기를 들었을 땐 움찔했다.

이 미친놈이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히 그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장은 안도의 한숨을 마치 원래 내쉬려던 것처럼 가장하고는 답했다.

“그래, 그래도 항의는 해야겠는데.”

“어느 루트로 해야 할까요? 보아하니 같이 온 김승규 교수는 완전히 저쪽 편인 거 같던데.”

이식외과를 통해서 들은 바에 따르면 김승규 교수가 이식외과에서도 이수혁 교수 얘기를 했다지 않나.

이식외과 환자들 이수혁 교수가 봐주면서 생존율이 확 올랐다고, 니들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넣으라고.

그냥 윽박지르기만 한 게 아니라 전후 비교를 데이터를 가지고 해 주니까 다들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간 이식에 있어 김승규는 대가이지 않나.

그냥 ‘내 생각은 이런데’라고 말해도 다들 들어줄 만한 사람인데, 데이터까지 떡하니 들이밀었으니 안 넘어가고 배기겠나.

“음……. 나도 그때 느꼈어. 들은 것도 있고. 이식외과는 완전히 그쪽으로 의기투합했던데.”

“네, 아무래도…… 명성 차이도 있고요.”

이식외과는 말 그대로 장기를 이식하는 과이지 않나.

인조 장기가 보편화 된 세상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은 인체 유래 조직이나 장기를 이식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말은 의사나 환자나 기회가 단 한 번뿐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얘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수술 성공률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데, 그걸 보정해 준다고 하니 넘어가지 않고 어떻게 배기겠나.

“그럼…… 일단 원장하고 통화해 보지.”

“원장이요? 아, 태화?”

“그래. 설마하니 밖에서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돌아다니는 놈이 조직 생활 잘하겠어?”

“하긴 그렇네요. 나이도 어린놈이…… 까분다고 싫어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이거 뒤집는 건 무리야. 윗선에서 다 결정한 건데…… 그래도 내부 징계라도 먹일 수 있으면 다행이지.”

“네네. 역시 원장님과 대화하고 나니 뭔가 좀……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거로 혼자 끙끙 앓고 그래.”

“아유, 감사합니다.”

사실 류 교수는 이게 너무 약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부 징계가 있기는 할 텐데, 그래 봐야 뭐 얼마나 혼내겠는가.

싫어하는 사람이야 한둘이 아니겠지만 뭐가 되었건 대외적으로는 밀어주는 인물이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야 능력이 좋기로서니 저 나이에 벌써 부센터장입네 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걸로는 분이…….’

하지만 삭이긴 해야 했다.

말마따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병원 생활 끝에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모난 놈은 정 맞는단 것이었다.

해서 류 교수는 속마음과는 달리 실실 웃으면서 원장이 전화 거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네, 신현태입니다.”

둘이 수혁을 미워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윗선 중의 윗선 신현태가 곧 전화를 받았다.

“아, 안녕하세요. 저 리신입니다.”

“아, 리 원장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 걸려고 했던 참이었습니다. 회의는 잘됐다고 들었습니다.”

신현태는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

토요일 회의가 끝나자마자 결과를 통보받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김승규 교수님.’

판타지 소설로 치면 원탁회의에 대악마 사우론을 보낸 마당 아닌가.

이미 비행기 타기로 했을 때부터 기대는 했더랬다.

그리고 김승규는 신현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처음엔 얼굴로 제압하고 다음은 데이터로 두들겨 패는 전략이라니.

괜히 그가 원장 하던 시절 태화 의료원의 삭감이 전체적으로 크게 준 게 아니었다.

심평원 측에서 태화 측에 로비를 해서 이현종이 된 거라는 말도 있지 않나.

“아, 네…….”

반면 리신 원장은 떨떠름하기만 했다.

태화 입장에서야 잘 끝난 회의겠지만 이쪽으로서는 처발린 회의이기에 그랬다.

‘아휴.’

원장은 리홍이가 약속한 후원을 떠올리며 간신히 신현태의 기만질을 견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조금 불안해졌다.

어째 하는 짓이 이수혁과 비슷하지 않나?

어쩌면 태화 의료원이라는 곳은 죄다 이런 놈들만 있는 곳일 수도 있었다.

“뭐래? 그렇대?”

“그렇다지, 뭐. 그럼 아니라고 해?”

“배알도 없네.”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런 생각까지는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리신 원장의 전화를 받고 있는 신현태가 이현종은 그런 놈들이긴 했다.

몇 년 전이라면 신현태가 말렸겠지만, 지금은 비슷해져 있었다.

원래보다도 더 이현종과 가까워진 탓이었다.

“근데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이수혁 교수 문젠데…….”

“네? 우리 수…… 아니, 이수혁 교수님이요?”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이수혁이 있었다.

‘잘못 들었나.’

리신 원장은 ‘우리 수’까지 듣고는 뭔 소린가 싶었다.

자신도 총애하는 교수들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단 한 번도 남들 앞에서 우리 누구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건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쓰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이건 공식적인 전화였다.

거기서 우리 누구라고 할 리는 없었다.

‘잘못 들었네.’

해서 리신은 이런 결론을 내린 후 말을 이었다.

“이수혁 교수가 허가도 없이 진료 행위를 했다는 제보가 있어요.”

“아, 그래요?”

근데 반응이 어째 뜨뜻미지근했다.

한국 의료법이라고 해서 가볍진 않을 거 아닌가.

아니, 언젠가 싱가포르에서 했던 화이자 포럼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한국은 의료법이 전 세계에서 제일 빡센 나라 중 하나였다.

‘사람이 침착하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일을 겪어서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해서 리신은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고 말을 이었다.

“네, 여기 류 교수 환잔데…….”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할 거라 믿었다.

한데 옆에서 처음 보는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역시 우리 수혁이. 잘했네!”

이현종이었다.

“네? 지금 뭐라고?”

“아니, 뭐…… 환자 살렸네요?”

신현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아니, 그래도 법이…….”

“법이요? 법이 생명보다 중합니까?”

“그건…….”

“의사라는 사람이 그걸 문제 삼아요? 저희 병원 전화는 다 녹음 되는데……. 이거 어떻게 딴 데 물어볼까요?”

“아, 아니. 아뇨. 그게.”

그리고 논리적이었다.

하도 이현종에게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당하다 보니 저절로 키워진 까닭이었다.

“리홍이 의원도 이런 거 알고 있습니까? 얼토당토않은 거로 시비 거시는 거 같은데.”

“아, 아뇨. 류 교수가 하도 찾아와서 뭐라고 하길래…….”

“아이고, 원장님. 그건 원장님 선에서 끊으셔야죠.”

“네네. 제 실책입니다.”

결국, 리신은 본전도 못 찾고 내쫓기고 말았다.

그렇게 망신당한 리신이 류 교수를 내쫓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 너무 화나네?’

그러니까 류 교수는 괜히 원장 찾아갔다가 혼나기만 하고 나온 셈이었다.

화가 안 나는 게 더 이상했다.

물론 자기 잘못이고 또 자업자득이지만.

거기까지는 당연하게도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혁에게 푸는 건 불가능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도 어린 그놈은 이미 거물이었다.

‘만만한 놈 어디 없나.’

주머니에 손 놓고 다니다 보니, 저기 만만돌이 하나가 보였다.

닥터 양이었다.

이수혁과 친한 놈이었다.

“야!”

해서 일단 빽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놀랍게도 양은 류 교수의 말을 씹고는 어디론가 달렸다.

‘저 새끼 봐라?’

류 교수도 달렸다.

딱히 잘못한 거 없어도 혼낼 요량이었다.

그렇게 달려가던 양은 어떤 회의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잠깐 문이 열린 사이에 봐도 안에 사람이 많았다.

그래 봐야 교수는 없을 거 같긴 하지만, 아무리 레지던트라도 저렇게 많으면 좀 부담이 되기 마련이었다.

해서 몰래 살폈다.

그냥 놀려고 모인 거 같지는 않았다.

지들끼리 컨퍼런스라도 하려는지, 빔프로젝터도 켜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대훈입니다.”

웬 대머리 하나가 커다란 화면에 나타나더니만 말하기 시작했다.

‘뭐여,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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