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으음? (2)
사실 김진실 교수도 이런 차를 처음 타 보는 건 아니었다.
‘전에 탄 것도…… 공항에서 부지 갈 때였잖아?’
문제는 그때도 수혁이 덕에 탔다는 점이었다.
‘진짜 거물이긴 거물이다…….’
김진실은 문이 이상하게 열리는 차에 탄 채, 옆자리에 앉은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얘긴데, 수혁은 한때 조태진에게 연애 상담을 무던히도 했던 적이 있었다.
조태진이 직접적으로 김진실과 업무적으로 엮인 건 없었지만 같은 동아리 출신이다 보니 이리저리 얘기를 들을 때가 많았다.
‘아니, 이렇게 잘났는데 왜 연애를 못 해?’
김진실 교수는 거참 모를 일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시선을 거두었다.
머릿속으로는 다소 모자란 면이 많은 남편을 떠올리면서였다.
지금이야 나름 성공한 편에 드는 축이 됐다지만,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웠는지 그땐 안 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알코올 과다 사용 장애와 연관이 있을까요?]
김진실 교수가 아예 다른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수혁은 오로지 환자 생각뿐이었다.
롤스로이스 팬텀에 타고 있다 보니 조용하기도 하고 노면이 아예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기도 해서 생각하기는 좋았다.
이만한 차에 탄 감상이 고작 이것밖에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다는 얘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혁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도 못했다.
‘모르겠어, 아직은. MRI, CT에서 잡히지 않았다는 게 너무 이상해.’
[이상이 있는데 판독을 잘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영상의학과에서 판독을 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야?’
[응급의학과에서도 주로 출혈과 경색을 보기는 하지만 미세 변화는 못 잡아낼 수 있죠.]
‘전문과는 아니니까.’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문과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대두되지는 않았더랬다.
그때의 의학 지식이란 한 사람의 걸출한 천재가 거의 대부분 습득할 수 있을 수준에 이르러 있지 않았나.
실제로 슈바이처는 봉사 당시 진단, 치료, 수술을 혼자 다 해낼 수 있었다.
그 진단이라는 것에 병리과적인 진단도 포함되어 있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고도로 발달해 버린 지금엔 전문과가 가지는 의의가 어마어마해진 지 오래였다.
[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십시오. 게다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 병원의 수준은 태화에 한참 못 미칩니다.]
‘응……. 확실히. 뭐 그만한 규모에서는 이게 최선이겠지.’
[네, 그럴 겁니다.]
게다가 병원 차이도 있었다.
아무리 대부분의 지식과 경험이 공유되고 있으면 뭘 하겠는가.
결국, 내가 직접 겪지 못하면 죽은 지식이었다.
그걸 뛰어넘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텐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노력하는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병원이 큼으로 해서 가능한 시스템도 있는 법이었다.
그 모든 면에서 싱가포르 국립 병원은 태화 의료원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이수혁 교수님.”
그렇게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어느새 차량이 병원에 도착했다.
로비에 미끄러지듯 들어갔는데 딱 봐도 너무 좋은 차다 보니 시큐리티도 저도 모르게 달려왔다.
원래 같으면 함부로 로비에 민간차를 세워선 안 되는데도 그랬다.
“좋은 차가 여러모로 좋네.”
김진실 교수는 씨익 웃으며 차문으로 향했다.
차 안에 있으면서 뭘 향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움직일 일이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만큼 큰 차는 그랬다.
덜커덕.
시큐리티는 홀린 듯 멈춰선 차 문을 열었다.
저도 모르게 먼저 내린 김 교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였다.
모르긴 해도 여기 귀빈이나 경영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딱 생긴 것부터 길 비켜라 하고 외치게끔 생긴 롤스로이스 팬텀의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네, 고마워요.”
“아닙니다.”
“차는 금방 갈 거예요.”
“네네.”
수혁이 뒤이어 내리자 리홍이가 붙여 준 비서가 말했다.
“주차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응급실이요.”
“네.”
병원 안에서 뭔 일이 벌어질 리는 없을 터였다.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가 사실 치안이 좋은 편에 속하는 곳 아닌가.
대한민국 서울처럼 새벽에 무방비로 다녀도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범죄율이 꽤 낮았다.
‘이수혁 교수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겨선 안 되네.’
하지만 비서는 리홍이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비해 예의를 갖추는 편이었으나, 화가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로열패밀리의 분노를 견딜 수 있는 싱가포르인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갈까?”
“네.”
“수술받길 진짜 잘했네. 꽤 잘 걷네?”
“네? 아, 네. 뛰지는 못해도 걷는 건 괜찮아요. 오래 걸으면 힘들긴 한데…….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참 긍정적이라서 좋아.”
김진실은 부축이라도 해야 하나 하다가, 그게 오히려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청이 있을 때까지 참기로 했다.
해서 그냥 속도만 맞춰서 걸었다.
의외로 잘 걷는 수혁의 모습에 놀라면서였다.
어찌 보면 환자 보러 가는 길에 지나치게 한가로운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이건 그냥 천성이었다.
영상의학과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고.
서비스 파트는 진단을 돕는 파트이지, 주도하는 파트는 아니지 않나.
물론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많아지고는 있지만 수혁을 대동한 상황이니만큼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았다.
‘어제처럼 내가 활약할 일이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했다.
그에 반해 수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워낙 그가 중심이 되어 진단한 경험이 많아서였다.
“아, 교주님!”
지금도 그렇지 않나.
무슨 구세주를 영접한 것도 아니고.
수혁을 보자마자 양이 후다닥 달려왔다.
옆에 왕팡도 있었다.
“퇴근 안 해?”
“교주님께 환자 맡기고 어떻게 갑니까. 게다가 정말 어려운 환자예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뭐……. 그래. 어딨지?”
수혁은 이제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사이 양과 왕팡은 앞장 서서 환자가 있는 처치실을 향해 걸었다.
오래된 응급실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이제 태화에서는 안 쓴 지 오래인 소독약품 냄새일 터였다.
‘정겹다.’
[정겨워요? 불쾌한데.]
‘너야 이거에 관련한 추억이 없겠지만…… 나는 있거든.’
옛날엔 어떤 응급실에 가도 이 냄새가 났다.
지금도 나는 곳이 있기는 했다.
보라매 병원 같은 곳은 그랬다.
설계 자체가 그걸 써야만 하게끔 만들어져서 그랬다.
‘하여간 환자를 볼까.’
[네. 집중하세요.]
하여간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수혁은 처치실 안으로 들어가 환자를 마주했다.
응급실 레지던트와 담당 간호사도 있기는 했는데, 이미 언질을 받았는지 이방인의 등장에도 잠자코 있었다.
‘말랐어.’
[거기…… 암액질 형상과 가깝군요.]
암액질(Cachexia).
쉽게 말하면 피골이 상접한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전통적으로는 당연히 영양 결핍에 의해 발생하는 형태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기아는 거의 퇴치되지 않았나.
특히 싱가포르의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영양 결핍?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은 무언가 만성질환이 있을 거라 의심하는 게 옳을 터였다.
가령 암 같은 치명적인 만성질환.
‘마냥 이상하게만 볼 일이 아니긴 해.’
[네,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면……. 영양 결핍이 쉽게 발생할 수 있죠.]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니었다.
알코올, 그러니까 술은 참으로 위험한 약물이지 않나.
대한민국은 너무도 술에 관대한 문화라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일 뿐, 기본적으로 이건 약물이었다.
의존증이 생길 수도 있고 그냥 섭취만으로 우리 몸을 망가뜨릴 수 있는.
‘일단은 보자. 문진할 수 있는 상태는 아냐.’
[아뇨. 그 전에 아들에게 묻죠.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아, 그래. 그게 좋겠네.’
병원에 오기는 했지만 이 환자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럴 때는 보호자 문진이 필수였다.
같이 사는 보호자가 아니라는 게 절망적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묻는 건 안 될 일 아닌가.
“아드님은……?”
“아, 밖에 계십니다. 불러 드릴게요.”
“응.”
수혁의 말에 양이 밖으로 후다닥 달렸다.
원래도 안대훈 때문에 신도가 되어 있었는데, 한 번의 시험을 겪고 나서부터는 광신도가 되어 버린 까닭이었다.
멀리서 보면 역시 미친놈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불확실한 통계에 기반해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의사는 언제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밝혀진 게 이전에 비해 많다고는 하나,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것도 더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나.
‘저분은 살려 줄 거야.’
그런데 수혁은 세 번이나 양의 환자를 살려 준 바 있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회개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데, 양이라고 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 아드님입니다.”
“네, 뭐.”
아들은 여기에 자신이 와 있는 것 자체가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 좋은 아빠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불퉁한 얼굴이 지금 여기 누워 있는 남자와 크게 닮아 있었다.
‘뭐……. 천륜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수혁 또한 그리 좋은 부모를 만나진 못했던 입장에서 아들을 십분 이해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긴 해야 했다.
때문에 망설임 없이 질문을 던졌다.
“보호자분, 혹시 이분과는 자주 보시는 편인가요?”
용어에 주의를 하긴 했다.
수혁도 난데없이 자길 버린 부모가 와서 대뜸 아빠라 부르라 하면 화가 날 거 같단 생각을 자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라는 호칭 대신 이분이라고 하는 수혁을 보며 의외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객관화해서 불러서 좋았다.
“아뇨. 한 달에 한 번이나 볼까……. 그나마도 연락이 와서 봐요.”
“그래요? 그럼 꽤 자주 보는 건데.”
“그렇죠, 뭐.”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죠?”
“2주 정도 됐습니다.”
“2주라.”
생각보다 아주 오래된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2주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게는 무슨 일이라도 생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렇지. 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랬다.
하여간 질문은 계속해야 했다.
실낱같은 실마리라도 붙잡아야 했으니.
“그때는 어땠죠?”
“그때는…… 음. 뭐……. 대화를 많이 안 해서……. 그래도 어눌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발음이 명확했다는 뜻이죠?”
“네. 가족한테는 몰라도, 좋은 의사이기는 했거든요. 말은 잘했죠.”
“흐음……. 그 외에 뭐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글쎄…… 만나도 오래 보는 건 아니라……. 아.”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 갔는데 커피는커녕 물도 입에 대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