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65화 (565/1,303)

565화 으음? (4)

소화기내과 교수는 처치실에 들어오다 잠시 움찔했다.

안에 자기네 레지던트들만 있는 게 아니어서 그랬다.

아니, 수혁이 있어서 정말 놀랐다.

“이수혁 교수님……? 여기는 왜…….”

수혁도 그 교수를 보고는 잠시 고민했다.

좀처럼 어디 서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장 뒤에 서 있었습니다.]

이럴 때 바루다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사람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면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소유하고 있는 셈 아닌가.

그러다 보니 한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용량을 줄이기 위해 아예 지워 버리거나 해상도를 낮춰 버리기도 하긴 하지만.

바루다는 일단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에는 메모리를 풀로 돌리고 있었다.

“아, 이 환자 봐 달라고 해서요.’

“아……. 아, 그렇군요. 하긴 노티 들었는데, 머리 쪽 증상이 이상하더군요. 영상만 보면 머리는 깨끗하고…… 배는 위암…… 어? 한 분 더 계시네. 김진실 교수님 맞으시죠?”

수혁은 자기 편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뻔뻔한 얼굴로 아주 당당하게 질러 버렸다.

원래 이렇게 나가면 긴가민가한 사람들도 그런갑다 하지 않던가.

지금 온 소화기 교수는 장에게 들은 것도 있거니와 양의 발표도 아주 감명 깊게 들었고, 또 개인적으로 수혁이 낸 케이스 리포트나 논문을 탐독했던 적도 있었다. 때문에 애초에 호의적이어서 그런가 바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환자를 처치실에서 빼서 내시경실로 이동시키면서였다.

심지어 김진실 교수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김진실 교수는 할로우 파트, 그러니까 위, 소장, 대장을 주로 보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그리 유명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네, 어떻게 저를?”

“아……. 제가 원래 간 파트였거든요. 그러다 자리가 안 나서 이쪽으로 빠졌습니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간을 다룬 적이 있었다면 뭐 이해할 만했다.

태화 의료원 자체가 간 쪽으로는 세계 최고이지 않나.

그냥 최고 아냐? 뭐 이런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존의 위치라고 보면 되었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김승규 교수가 이끄는 이식 외과와 이하언 교수가 이끄는 복부영상파트였다.

김진실은 그런 이하언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제자로서, 명성이 이미 해당 파트에서는 자자했다.

“네, 논문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고주파 열 치료 시의 전이…… 그건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때 여기 이수혁 교수도 고생했죠.”

“아, 공저였죠?”

“네.”

“영광입니다. 하하.”

일이 이렇게 되자 이수혁, 김진실이 같이 내시경실에 들어가는 데도 아무도 막는 이가 없었다.

내시경실 직원들이야 좀 수상쩍다는 눈으로 바라보긴 했으나, 맨날 보는 교수랑 저리 친밀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뭐 어쩐단 말인가.

수술실하고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일부 비슷한 느낌이 있는 곳이라 더했다.

이곳에서 내시경을 맡은 소화기내과 의사의 위치는 상당해서, 적어도 시술을 앞둔 상황에서는 심기를 거스르는 게 거의 금기라 할 수 있었다.

“환자분 금식은 됐다고 들었는데……. 대강 몇 시간일까요?”

“2주 전부터는 물하고 술만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술. 이분 의사라고 하지 않았나?”

소화기내과 교수는 시술을 위해 수술 가운을 걸치면서 계속 응급실 레지던트와 양에게 물었다.

둘 중 답을 한 것은 역시나 양이었다.

그는 이미 안대훈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들은 참이라 환자에 대한 문진도 최선을 다한 바 있었다.

“네, 이비인후과 의사입니다. 그거 파악했을 땐 이미 의식이 흐려져서……. 아들에게 물었는데, 지금은 개원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개원이라. 이비인후과가?”

“네.”

“별일일세.”

“아무래도…… 퍼포먼스가 떨어진 건 꽤 오래되지 않았을까요?”

“하긴, 매일 고량주 한 병이라고?”

“네.”

대한민국은 개원의의 대다수가 전문의이지만 외국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이비인후과와 같이 외과 계열은 개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제대로 된 수술 장비를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그랬다.

그런데도 개원을 결심했다는 건, 아주 돈이 많거나 또는 너무 뛰어나서 투자해 줄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찾아올 사람이거나 원래 있던 큰 병원에서 있을 수 없을 만큼 기량이 떨어졌다는 걸 의미했다.

이 환자는 아무리 봐도 기량이 떨어진 축에 속할 거 같았다.

‘우리랑 상황이 좀 다르구나.’

[그러게요. 확실히 다른 나라 환자들을 보다 보면 이런 것도 배우게 되는군요.]

‘그러니까.’

의학은 이미 글로벌하게 일원화되어 가고 있지만.

의료 시스템은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니만큼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 갈 수밖에 없어서였다.

이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너무 달라서, 아무리 의사라 해도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아마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 때문인지 아니면 숨겨져 있던 본성이 깨어난 탓인지는 몰라도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환자 얘기가 좀…….”

“아뇨, 아니에요. 저는 좋습니다.”

“아, 네.”

그러다 보니 별의별 얘기가 다 재밌었다.

소화기내과 교수도 처음엔 그냥 인사치레인가 하다가 반짝이는 수혁의 눈빛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고 하던 얘기를 이어 나갔다.

생각해 보니까 환자 보는 걸 돕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환자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면 뭐라도 실마리를 잡을지 알 수 없었다.

드문 일이지만 이수혁은 천재 아닌가.

실제 환자 보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수혁이 쓴 논문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싱가포르 내에는 이만한 의사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세계 최고의 의사와 일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먹은 식사는 뭐지?”

“술입니다.”

“그게 언제야?”

“2시간 전쯤 됐습니다.”

“이런 미친……. 안주는 없는 거 확실해?”

“술도 게워 냈다고 들었습니다. 아까 엘튜브 해 봤는데 나오는 건 없습니다. 출혈도 없기는 했습니다.”

“아, 엘튜브를 했어? 그럼 뭐…… 그래.”

이런 시술을 하기 전에 금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위내시경도 사고가 날 수 있는 검사 아닌가.

물론 대장보다야 위가 훨씬 두껍다 보니 구멍이 날 일은 적겠지만, 일단 나면 대참사였다.

자연적으로 궤양 때문에 발생하는 구멍보다 이렇게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구멍은 수술로 막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면 금식이 필요했다.

또 음식물이 위에 있으면 뭐가 뭔지 모를 수도 있고, 넘어와서 폐로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자, 그럼……. 해 볼까.”

하여간 엘튜브까지 확인했다고 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깨끗할 거라 상정하고 들어가야 했다.

물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 그러니까 옆으로 뉜다거나 하는 일은 죄다 하고서였다.

스으윽.

소화기내과 의사는 처음부터 간이 아니라 내시경을 했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내시경을 환자의 입안으로 진입시켰다.

미숙한 사람은 식도 입구 찾다가 그 양옆으로 위치한 조롱박오목을 찢기도 하는데 이 사람은 괜히 교수가 아니라는 듯 별 어려움 없이 식도 입구로 들어갔다.

‘바렛…….’

[진짜 술 많이 마셨나 봅니다. 간경화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식도 정맥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야.’

지금 봐야 하는 지점은 위였기에 스르륵 넘어갔지만 워낙에 식도 내의 변화도 명확하다 보니 잘 아는 사람 눈에는 다 들어왔다.

특히 수혁은 바루다 때문에 원하는 지점은 사진처럼 볼 수 있다 보니 더 정확한 확인이 가능했다.

[아, 잠깐.]

‘왜?’

[아까 식도 정맥류……. 혈관벽이 좀 얇아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동 확인을 요청합니다.]

‘아니, 잠깐만. 지금 너 저거 안 보여?”

[아. 그럼 빠져나올 때 다시 확인하라고 하십쇼.]

‘오케이.’

바루다의 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일단 뒤로 미뤘다.

바루다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드러난 위암의 위용 때문이었다.

“이거…… 진행 암이군요. 타입은…… 음, 보우만 III. 아니, 의산데 검진 계속 안 했나?”

말 그대로 꽤 진행한 암이었다.

소화기내과 의사라면, 그중에서도 특히 내시경을 하는 사람이라면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자신의 생활 습관과 관계없이 제때 검진만 했어도 조기 발견은 가능했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더욱 자세한 건 복부 CT를 리뷰 하고 또 PET CT도 찍어 보긴 해야겠지만, 하여간 위는 전절제를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아……. 이 밑으로 폐색이 있군요. 이거 때문에 식사가 어려워서 물이나 술만 마신 듯합니다. 아니, 의사라는 사람이 대체 왜 이렇게…….”

“이것만으로도 예후를 장담하긴 어렵겠는데요?”

“네. 음. 아이고.”

“아까 초음파로 보니 림프절 전이도 있던데…….”

“하. 몇 살이라고요?”

“41세입니다.”

“아이고. 나보다 어리네…….”

소화기내과 의사는 같은 의사라는 생각도 들어서 그런가,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수혁도 안타깝기는 했으나 소화기내과 의사만큼 강한 공감을 하진 않았다.

바루다 때문이었다.

[암이 있는 것도 확인했고, 지금 식사 못 하고 있는 이유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식도로 돌아가 식도정맥류 파열 위험을 확인해야 합니다.]

‘일단 아까 사진 보여 줘.’

[네, 합당한 요청입니다.]

지금 소화기내과 의사는 조직검사 중이었다.

수술만으로는 안 되는 상황 아니던가.

조직검사를 해서 가장 유효할 만한 항암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거…… 여기는 일단 스텐트를 박아야겠는데. 그래야 수술할 때까지 입으로 먹지.”

소화기내과 의사는 귀신 같은 솜씨로 조직검사를 해냈다.

피가 조금 나긴 했으나, 최근 위내시경 하는 사람치고 이런 거 조절 못 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기구의 발전 덕도 있었다.

지혈제를 칙 하고 뿌리곤 주변에 에피네프린을 찔러 넣어 순식간에 지혈을 해냈다.

그리곤 암 덩이로 인해 막혀 버린 지점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스텐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입으로 먹는 게 얼마나 영양학적으로 중요하단 말인가.

사람들은 흔히들 기운이 없으면 수액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일종의 미신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뭐가 되었건 입으로 먹는 게 제일이었다.

[수혁, 스텐트는 어차피 당장 할 수 없는 겁니다. 식도 재확인 요청……. 아.]

“아!”

그때 환자의 입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위에 들어가 있던 내시경의 시야도 붉어졌다.

출혈이었다.

그것도 시야가 안 나올 정도의 대규모 출혈.

“어디, 어디지? 조직검사 하던 곳인가?”

“아니, 아닙니다!”

“네? 그럼 어디라는 건지…….”

“식도! 식도정맥류!”

당황한 소화기내과 의사를 향해 수혁이 외쳤다.

지금 당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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