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화 으음! (1)
피.
붉은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양이 심상치 않았다.
“새츄레이션 떨어집니다!”
“흡인 가능성 있겠는데!”
“교수님! 신경 쓰지 마시고, 지혈만 하세요. 제가 기도는 잡을게요!”
“아, 아, 네!”
이만한 출혈은 내시경 하는 입장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새츄레이션, 그러니까 산소 포화도가 떨어진다?
이건 최악 중의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식도 출혈에서 생각보다 흡인이 드물어서 그랬다.
토혈이 주된 기전이 되어서였다.
“후.”
아마 수혁의 조언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당황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혁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벌써 기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칼.”
보통 내과 의사들과는 달리 기관 절개를 하면서였다.
[손가락으로 촉지 하세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네가 적절한 곳을 알려 줘.’
[네. 지금. 거기가 좋겠습니다.]
‘오케이.’
옆으로 누워 있던 환자를 잠시나마 바로 눕힌 후였다.
이렇게 되면 내시경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위치를 잡는 건 가능해서, 내과 의사는 빠르게 내시경을 아까 보았던 식도정맥류 쪽으로 옮겼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지이익.
수혁은 바루다가 알려 준 곳을 칼로 그으면서 화면을 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시경을 보았다.
내시경은 지금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지점이 적혀 있지 않나.
지금처럼 시야가 없을 땐, 저걸로 대강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기억을 해야 하는데, 수혁은 바루다 덕에 그것마저 가능했다.
“교수님, 5cm 정도 더 위입니다.”
“어, 네?”
한참 헤매고 있던 소화기내과 교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출혈은 이미 렌즈를 적신 지 오래라,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5cm 위입니다. 교수님.”
“아…….”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조언을 해 주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쉬이 믿기지 않았다.
‘진단에 특화된 의사이지……. 술기는 딱히 하지 않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나.
지금껏 써 재낀 논문을 보면 죄 진단이나 치료에 대한 것뿐이지 술기에 대한 건 없었다.
“5cm 위!”
하지만 그런 수혁이라도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한번 들어줄 만은 했다.
어차피 지금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지 않나.
경험상 여기가 맞을 거 같긴 했으나, 없는 걸 뭐 어쩐단 말인가.
게다가 술기를 못하는 의사라고 하기엔, 벌써 기관 절개술을 마치고 환자를 다시 옆으로 뉜 참이었다.
‘이비인후과보다 빠르다…….’
미친 수준 아닌가.
그렇다면 내시경도 믿을 만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생각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수혁의 외침 덕에 빠르게 대응을 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침착할 수 있을 정도의 출혈은 아니어서 그랬다.
해서 소화기내과 교수는 수혁의 말대로, 그러니까 다분히 기계적으로 5cm 정도 뒤로 뺐다.
“아.”
그러자 피가 튀어나오는 곳이 보였다.
‘어떻게……?’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그야말로 잠시뿐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수혁이 어떻게 이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을까가 아니라, 피 나오는 걸 어떻게든 막아 내는 일이었다.
철커덕.
다행히 발달한 내시경술 및 내시경 기기 덕에 위치만 특정하면 지혈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야 피 나오는 걸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환자를 잃는 경우도 너무도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란 얘기.
촤아아악.
소화기내과 교수는 클립을 쏴서 혈관이 터져 버린 부위를 집어내고, 지혈제를 뿌려 추가적인 출혈 또한 막아 냈다.
그리곤 이미 흘러나온 피들을 석션 했다.
그러자 비로소 온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후우.”
단순 진단용 내시경이라 생각하고 왔다가, 이런 출혈을 겪은 상황 아닌가.
소화기내과 교수뿐 아니라 보조를 위해 들어왔던 간호사 또한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위기를 넘긴 셈이니 내쉴 만도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들 표정만은 어두웠다.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출혈까지 발생한 상황이지 않나.
‘혈류 장해로 인한 신경 손상이었다면…… 이런 망할.’
그중에서도 특히 수혁이 그랬다.
그는 바루다 덕에 상황을 보다 빨리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랬다.
[검사를 요청합니다.]
‘응, 바로 해 볼게. 일단…… 바이털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니까. 그리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시경 및 기관 절개 등이 자극이 되긴 한 모양이었다.
외부 자극을 줘도 미동도 없더니만, 지금은 눈을 뜨고 있었다.
초점이 흐리멍덩한 것이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 같진 않지만.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는 유일한 좋은 사인이었다.
“환자분!”
“으…….”
게다가 환자를 불렀는데 눈동자를 맞추는 것이 아주 고무적이었다.
[지금 그냥 빠르게 검사하시죠.]
‘오케이.’
문진까지는 절대 무리일 터였다.
어떻게 아냐면, 그래도 뭔가 소리를 내고는 있는데 의미 있는 말은 단 하나도 없어서였다.
그래도 오리엔테이션 정도는 확인해야만 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으……. 루…….”
“여기가 어디예요?”
“벼…… 원?”
“지금 총리가 누구예요?”
“리…….”
나름 성과는 있었다.
‘대통령은 모를 줄 알았는데.’
[여기 리 씨가 집권한 지 수십 년인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아, 맞네. 그러네.’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그렇긴 했으나.
하여간 말은 알아듣는단 소리 아닌가.
뭐가 되었건 사리에 맞는 대답을 하려 하는 상황이었다.
“오.”
“아까 정도는 되나?”
옆에 있던 응급실 레지던트와 양 또한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수혁은 이미 환자에게 몰입한 상황이었기에, 둘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바로 검사에 들어갈 뿐이었다.
“환자분, 신경학적 검사입니다! 경색이나 출혈 또는 다른 문제일 수 있어요! 아시겠어요!”
“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사람이 술로 망가졌을지언정 의사는 의사란 점이었다.
본인 머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눈빛부터 바뀌었다.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소리쳤다.
“팔 들어 봐요!”
“으…….”
환자는 최선을 다해 수혁의 요청을 따라 팔을 들었다.
[우측 팔 모터 2/5입니다.]
[좌측 팔 모터…… 2/5.]
[우측 다리 모터 2/5.]
[좌측 다리도…… 모터 2/5 입니다.]
느낌으로 점수를 매겨야 하는 류의 검사는 바루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나.
수혁은 그냥 검사만 수행할 뿐 평가는 온전히 바루다에게 맡겼다.
그리고 믿었다.
‘안 좋은데.’
[네, 전반적으로 다 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혈류는 안 좋아졌을 텐데 의식은 깼어. 그리고…….’
[어찌 되었건 힘이 들어오기는 합니다. 아까는 근육의 긴장도가 다 떨어져 있었어요.]
5점 만점에 2점이라는 건 객관적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리 좋지 못한 사인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출혈이 있고 나서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나.
만약 뇌혈류의 이상으로 이러한 소견이 발생했던 것이라면 절대로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다른 검사를 추천합니다.]
‘어떤?’
[지금으로서는 가능한 신체 검진은 그냥 다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어. 그래, 그게 좋겠어.’
내시경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내시경을 진행하는 동안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실마리는커녕 환자 숨넘어갈 뻔해서 그거 막느라 피똥 싼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아직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의 의견을 따라 신경학적인 검사를 죄다 수행했다.
‘뭐냐…….’
‘왜 이렇게 능숙한 건데?’
‘저건 뭐 하는 검사지?’
수혁 스스로는 이것밖에 못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여기고 있었으나, 옆에서 볼 때는 그렇지가 않았다.
신경학적 검사 중 일부는 분명 내과에서도 시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수혁이 하고 있는 검사들은 신경과 스페셜리스트들이나 할 법한 검사들이었다.
꽤 많아서, 검사 시간도 짧지는 않았다.
‘휴. 지치네.’
수혁은 그중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 검사를 상기했다.
‘호프만 반사가 양측 모두 양성이었어.’
[deep tendon reflex도 항진되어 있습니다.]
이중 진짜 의미가 있어 보이는 건 호프만 반사(Hoffmann’s reflex)였다.
3, 4번째 손가락의 끝 마디를 두드릴 때 엄지손가락의 끝 마디가 구부러지는 현상으로 주로 피질척수로(Corticospinal track) 손상이 있을 때 나타났다.
피질척수로의 손상은 반대편의 운동실조로 나타나는데, 지금 이 환자는 양측이 모두 양성이었다.
외상이 아닌 한 양측이 전부 망가지는 게 흔할까?
대규모 출혈이나 경색이 있다면야 가능은 하겠지만 지금 이 환자는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시발 뭐야.’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나 검사 다 했어.’
[그 말이 아니라…… 이 환자 전반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다시 정리해 보자……. 이거야?’
[네. 지금 검사에서 획득한 검사 결과를 이용해 이전 검사 결과 및 문진 결과와 대조하겠습니다.]
‘아 이거 어지럽던데.’
[어쩔 수 없습니다. 뭐라도 붙잡으십시오.]
어지러움은 정말 싫은 증상이었지만, 바루다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수혁은 주변에 붙잡을 것이 없나 살폈는데 하필 김진실하고 양밖에 없었다.
냅다 김진실을 붙잡기는 좀 그렇지 않나.
해서 수혁은 양의 어깨를 잡았다.
“교주님?”
“음.”
“교주…… 님?”
그리곤 잠시 눈을 감았다.
얄팍한 신음을 내면서였다.
혈류가 돌연 부족해지는 느낌은 죽음과 비슷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었다.
양은 당연히 당황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환자를 보고 있었고, 그나마 그 환자의 변화에 제일 잘 대응하고 있는 교주가 쓰려지려 하지 않나.
“붙잡아 줘. 가끔 이래.”
“네?”
“이렇게 잡으라고. 나도 듣기만 했는데…… 진짜 이러네.”
다행히 이 자리엔 태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조태진과 꽤 친한 김진실이 있었다.
‘신 내린다 어쩐다 할 때는 선배가 돌았나 했는데…….’
물론 여상한 일로 여기지는 못했다.
사람이 갑자기 눈을 감고, 감은 눈꺼풀 안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튀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나.
‘그렇게 보일 만도 하네……. 이러고 나서 정말 진단명을 말하면…….’
조태진이 노상 외치던 말을 상기하고 보니, 소름이 돋았다.
혹 정말 그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환자 진단이야 정말 좋은 일이지만,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으.”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바루다의 맹렬한 연산에 의한 어지럼증에 또다시 신음을 흘렸다.
그냥 괴로워하는 표정만은 아니었기에 김진실 교수는 저도 모르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