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으음! (2)
김진실 교수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수혁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간덩이가 부어서 용감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뵈는 게 없어져 버렸다.
원래 혈류량의 부족으로 인한 어지럼증에서는 흔히 동반되는 증상이었다.
‘어, 약간 선 넘는……?’
당황한 수혁이 손에 잡히는 거 아무거나, 그러니까 양의 어깨를 꽉 움켜쥐면서 말했다.
아니, 생각을 전달했다.
“어어.”
“꽉 잡아 드려. 교주님이라면서?”
“아, 네.”
“거참.”
수혁이야 뵈는 게 없으니 무슨 상황인지 전체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이들로서는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특히 김진실 교수는 더더욱 그랬다.
‘조 교수님이 미친 줄 알았지, 나는. 그 선배가 원래 좀…….’
애초에 동아리도 오컬트 동아리 아니었다.
과학을 추구해야 하는 의대에서 무슨 놈의 오컬트냐는 말에 핍박도 많이 받았더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질 뻔한 동아리였다.
조태진 혼자 3년을 버티지 않았더라면 필시 그랬을 터였다.
‘강철의 조태진…….’
혼자 텅 빈 동아리 방에 나와 별 모양을 닦고, 수정구도 닦고, 타로도 닦고 했다던가.
솔직히 사람 있을 때 들어가도 좀 으스스한 느낌이 있는 방인데 거길 혼자 드나들다니.
태화에서 누군가 신내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조태진이 최초일 거라 여겼던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외로운 길을 걷던 오컬트 동아리는 갑자기 타로 카드 바람을 타면서 김진실을 비롯한 몇몇 여학우들이 가입하게 된 해가 있는데, 그 덕에 남학우들도 가입을 하게 됐고 그 후로 몇 해 더 버티다가 결국엔 사라져 버렸다.
‘사이비 보존의 법칙이 있다더니만.’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 행이 될 것만 같았던 오컬트는 안대훈을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융성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해외에도 퍼질 정도 아닌가.
‘오늘 더 강화되게 생겼다…….’
김진실은 어딘지 모르게 경건한 얼굴을 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수혁을 부축하고 서 있는 양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 저 둘만 떼고 보면 한때 유행했던 디아블로 게임이라도 떠오를 지경이었다.
사방에서 날뛰는 악귀들을 맞서 싸우다 쓰러진 성직자와 그를 지키는 성기사라고 할까?
‘아, 나 또 씹덕 모멘트 나왔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냥 퉁퉁하고 얼굴 하얀 의사 하나와 평범한 것보다는 잘생긴 축에 해당하는 교수가 보였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체되면 좀 곤란할 거 같았다.
[수혁. 답을 도출했습니다.]
다행히 바루다가 이내 답을 들려주었다.
끌어갔던 혈류와 기능을 돌려주면서였다.
“후.”
덕분에 수혁은 곧장 눈을 뜰 수 있었다.
[일단 답 듣기 전에 상황 수습부터 하시죠. 제가 좀 지나쳤나 봐요.]
‘알았어. 나 왜 얘 품에 안겨 있냐.’
[그러니까요.]
그리곤 양의 품에서부터 벗어났다.
“괜찮으세요?”
양은 그런 수혁을 보며 걱정을 담아 물었다.
안대훈 및 김진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특히 안대훈은 만약 의학의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과 교신하는 이는 필시 수혁이라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바로 답 말해 주면 진짜…….’
그렇게 물으면서 동시에 두근두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병원 생활만 하던 때에는, 아니 의학을 공부하면서는 전혀 닿지 못했던 신비의 영역에 발을 담근 기분이 들지 않나.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내가 잠깐씩…… 이럴 때가 있어. 검사해 보면 다 괜찮은데 이러네?”
수혁은 양의 얼굴에서 안대훈의 그것을 읽어 내고는 황급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법 아닌가.
심지어 방금 수혁이 한 말은 오해의 소지도 다분했다.
‘검사에는 안 나온다……. 역시 현대 의학으로는 풀 수 없는…… 수멘.’
양은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하여간 뭔가 납득했다는 얼굴이 되기는 해서 수혁은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했다.
그 말은 곧 드디어 바루다의 분석 결과를 받아 보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자, 이제 말해 봐.’
[네.]
이제는 도리어 수혁보다 인간들 사이의 심리 변화에 능하게 된 바루다는 좀 찜찜하다 판단했지만, 지금 와서 굳이 그러한 것을 언급할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다.
숙주라 할 수 있는 수혁에게 위해가 될 만한 일도 아니지 않나.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까지는 오히려 수혁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 온 바 있었다.
[우선 환자의 문제 목록은 알코올 의존증, 진행한 위암, 의식 변화 및 말의 어눌함, 사지의 운동 실조 등입니다.]
‘그렇지.’
어느 것 하나라도 만만한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나.
알코올 의존증만 해도 그랬다.
오래 경과한 알코올 의존증은 결국, 신체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응급실에 와서 시행한 혈액 검사 중 결과가 나온 것 중 이상 소견을 보였던 것을 출력합니다.]
‘Hb 11.7은…… 알게 모르게 출혈도 있었을 거고, 애초에 섭식 장애 때문에도 빈혈이 있었겠지.’
[네. 간 수치 이상은 간경화 때문일 것이고요.]
‘전해질 변화도 섭식장애나…… 구토 때문이겠지.’
[네, 수혁 이 중에서 소디움 농도에 주목해 주십시오.]
‘소디움? 음. Na는 121……. 줄어들어 있기는 한데…….’
[네, 그래서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의료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간호 기록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환자 바로 이 병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응?’
수혁은 바루다가 출력한 간호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바루다가 보조했기에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덕분에 옆에 있던 양과 김진실은 수혁이 정신 차리고 불과 수 초밖에 지나지 않았다 인식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수혁과 바루다만이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대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기 전에 자기가 다니던 병원에 들러서 수액을 맞았네?’
[네, 만약 그 전에도 저나트륨혈증이 있었다고 하면 이게 교정된 상태라는 겁니다.]
‘어…….’
[그걸 감안해서 환자의 문제 목록을 다시 봐 주십시오.]
‘MRI에는 나타나지 않는…… 하지만 양측의 운동 실조에 어눌함 그리고…… 호프만 소견 양성. 이거……?’
[네, 맞습니다.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central pontine myelinolysis)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하아, 그래. 이거라면…….’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
다소 복잡한 이름의 이 질환은 혈중 나트륨 농도가 떨어졌을 때, 너무 급하게 교정하게 되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영양실조 시, 특히 그것이 알코올 의존증에 의해 발생하였을 때 더 잘 발생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발생한 지 2주 내에는 MRI에서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게 지금 결정적인 단서로 보이는데?’
[네, 다른 원인은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모두 배제 가능한데, 오직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이하: CPM)만이 가능합니다.]
방금 말한 이유로 빠른 진단이 정말이지 어려운 질환이었다.
예후도 당연히 극악했는데, 지금처럼 빨리 발견한 상황에서는 얘기가 좀 달라졌다.
생각을 완전히 정리한 수혁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눈도 떴기에 그때까지 수혁을 응시하고 있던 이들은 뒤로 조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CPM…… 이 환자 CPM이야.”
그리고 수혁이 조금은 맥락 없이 얘기를 꺼낸 덕에 좀 더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어지는 수혁의 말을 듣고 나자 다시금 가까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만성적인 알코올 사용 장애를 앓았고…… 최근 2주 전부터는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했어요. 구토도 동반되었으니……. 당연히 전해질 장애가 생겼겠죠. 간호 기록을 보면 여기 오기 전에 이미 한차례 생리식염수를 맞았음에도, 응급실에서 나간 검사상 저나트륨혈증이 관찰됩니다. 지금 다시 나가 보면 더 떨어져 있을 거예요.”
“오. 그런 기록이 있었나?”
“네.”
누가 봐도 명확한 논리를 가진 얘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태화 정도 되는 사이즈에 있는 의사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수혁이나 이현종과 가까이 지내면 지낼수록 그렇게 되었다.
양은 안대훈이 건네준 여러 스터디 자료 덕에 익숙했다.
“게다가 혈관 장애로 인한 이상이었다면 지금 자극만으로 깨어나진 못했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아……. 근데 내 전공은 아니지만 CPM은 비가역적이지 않아?”
“2주 후에 MRI로 진단을 하게 되면 그렇죠. 그건 영상에서도 이상이 관찰될 정도로 진행을 해 버린 거니까요. 하지만…….”
“징후만 있을 땐 얼마든지 가역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구나.”
“사실 이렇게 진단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저로서도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치료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긴 하죠.”
“음, 그래,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어.”
김진실 교수는 레지던트 때 배웠던 바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CPM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 교수가 봤던 케이스는 전부 2주가 훌쩍 지난 상황에서 진단된 경우들이었고, 예후는 당연하게도 그리 좋지 못했다.
사실 이 환자도 예후가 좋을 거란 기대는 쉽사리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기저에 위암이…….’
다른 이상이 없이, 그저 재수가 없어서 발생한 위암이라면 그나마 기회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알코올 의존증 및 사용 장애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교수님, 일단은 이 환자 당장 처한 상태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 어어.”
수혁은 거기까지 생각하는 대신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기로 작심한 상황이었다.
해서 멍한 얼굴이 된 김진실을 다독였다.
‘수멘, 수멘, 수멘!’
조금 다른 이유로 멍한 얼굴이 된 양도 다독였다.
“거기, 닥터 양도. 나는 여기 의사 면허 없어.”
“아, 네! 네 뭐든 말씀하십쇼!”
“그렇게 씩씩할 필요는 없고…… 제일 급한 건 저나트륨혈증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거기서 아무 생각 없이 쏟아부었다면……. CPM이 생겼을 거야.”
“네!”
양은 수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처방을 내렸다.
같이 있던 간호사도 그랬다.
아무래도 수혁이 여기 있는 의사는 아니긴 하지만 분위기상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의사들이 수혁의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아까 식도정맥류 출혈 시 수혁의 실력을 보고도 신뢰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푹.
해서 곧장 검사가 나갔다.
다행히 전해질은 꽤 빨리 검사 결과를 볼 수 있는 검사 중 하나라, 환자를 다시 처치실로 데리고 오는 사이에 결과가 나왔다.
“아, 떴습니다!”
“얼마지?”
“소디움……. 109입니다!”
“역시. 그게 원인이었어. 극도로 천천히 교정하기로 하고…….”
“CPM에 대해서는……?”
“스테로이드 써야지.”
“그거밖에 없을까요?”
양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물어 왔다.
수혁은 당연히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근 란셋에 혈장 교환술이 도움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어. 그건 이것처럼 발견이 빠르지 않았는데도 썩 결과가 괜찮았어.’
“아, 네. 어레인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