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화 으음! (3)
수혁의 명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엄하기 짝이 없었다.
소화기내과 교수뿐만 아니라, 처치실에 있던 왕팡, 양 그리고 응급실 레지던트 등등이 모두 받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 못했을 때는 도저히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란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으나, 수혁에게 한번 듣고 나니 그것 말고 다른 질환은 불가할 거 같았다.
“그리고 스텐트도 해야 할 거 같은데…….”
“몸 상태가 견딜 수 있을까요?”
“바이털은 뭐…… 아까 출혈 때문에요? 그것도 워낙 빨리 대처해서 괜찮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어레인지 하겠습니다. 다만 내일 오전은 돼야 할 거 같습니다. 밤에 하다가 사고가 나면 대응이 어려워서요.”
“물론이죠. 그렇게까지 급한 건 아니니까요.”
덕분에 수혁은 편하게 이런저런 오더를 내릴 수 있었다.
심지어 스텐트 하라는 말조차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는……. 저나트륨혈증일 때 너무 빨리 교정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야. 그 외에도…….’
영양결핍이 아주 주요한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나.
모든 저나트륨혈증의 교정에서 이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걸 떠올려 보면 되었다.
그 말은 곧 영양결핍을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곳은 병원이니만큼 주사도 가능하기는 했다.
게다가 예전과는 달리 주사제도 많은 개선이 이루어져서 나름 썩 괜찮은 영양 공급이 가능해지기는 했다.
‘그래도 입으로 먹는 게 최고야.’
영양제로는 도저히 줄 수 없는 영양 성분도 존재하지 않는가.
게다가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행위 자체가 신경 재활에 있어서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생각보다 이게 꽤 복잡한 과정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자극이 되어서였다.
괜히 신경과에서 노인일수록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 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 여러 연구에서 낯선 식재료 또는 익숙한 식재료라도 색다른 조리법을 이용한 음식을 먹었을 땐 인지기능이 개선됨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래, 스텐트는 내가 내일 직접 해야지. 외래 조금 밀고…….’
해서 소화기내과 교수는 수혁의 의견을 전격 수용했을뿐더러 더 나아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따르릉.
그때였다.
내내 잠잠했던 환자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처치실에 들어오자마자 상의는 자르고, 하의는 벗겨서 옆에 두고 있었다.
핸드폰은 하의 안에 들어 있었는데 어차피 보호자가 같이 온 상황이라 딱히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울리고 있으면 일단은 받는 게 좋았다.
“제가 받겠습니다. 밖에 보호자 분도 불러 주세요.”
“네.”
나선 것은 왕팡이었다.
밖으로 내달린 것은 양이었고.
제아무리 수혁교 싱가포르 지회의 제1 신도가 양이라고 해도 연차는 엄중하기에 그랬다.
“싱가포르 국립병원 내과 3년 차 왕입니다. 환자분 지금 본원 응급실에 계십니다.”
전화기를 집어 든 왕팡은 아주 자연스레 전화를 받았다.
사실 말하기 아주 곤란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청산유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내과 의사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안 좋은 소식과 엮이기 마련이니까.
“아……. 응급실? 상태가 어떻죠?”
“제가 누구신지 알아야 대략적이라도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상대는 꽤 침착했는데, 왕팡은 더 침착했다.
‘오……. 여기는 이런 교육은 또 되게 잘 되어 있네?’
[그러니까요. 이건 태화보다 낫네요.]
수혁에게도 인상적일 지경이었다.
나만 그런가 해서 옆을 보니 김진실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 레지던트는 독립된 의사라기보단 피교육자의 위치가 강해서 그럴 터였다.
수혁이야 레지던트 때 이미 의사로서 교수들에게도 존중을 받았으나,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지 않나.
아무래도 시키는 일을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 탓일 터였다.
게다가 대학 병원은 그런 문화가 만연한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심한 편이었다.
‘우리가 좀 레지던트를 부속품 취급하는 편이지?’
[네, 맞습니다. 내과가 그나마 티칭 마인드가 좋기는 한데……. 그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건 좀 배워야겠네.’
[그러니까요. 이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 많이 해 봐서 잘 하는 거 같습니다.]
‘응, 우리는 그럴 기회를 잘 안 주고 있지.’
오히려 기회를 주는 건 예전이 더 관대했다고 들었다.
그때는 사회 분위기상 가운을 입고 있으면 환자나 보호자들이 나이를 가늠하지 않고 일단 의사로 존중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이 빠르게 해소되면서 가운을 입고 있어도 누군가는 인턴이고, 레지던트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또 기업 병원은 거기에 의료 사고에 대한 부담이 워낙 컸기에 레지던트들에게 기회를 주기가 어려워졌다.
빅3는 펠로우까지 해야 그나마 수술을 해 볼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겠나.
‘사실 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데 말야. 책임질 수 있는지 판단을 해 보고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면 일을 줘야 할 텐데.’
[맞습니다. 레지던트도 3년 차면 벌써 의사 된 지 4년째고, 의학 교육 받은 지는 10년이니까요.]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 왕팡도 전화를 건 상대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평정심을 잃었는데, 대화 내용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아, 저는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의 리웨이라고 합니다.”
“리웨이……? 리웨이 원장님이요?”
“아, 네. 지금은 그렇습니다.”
“어……. 네, 안녕하세요.”
마운트 엘리자베스는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아주 커다란 병원은 아니긴 했다.
고작해야 400병상이니, 어지간한 2차 병원 수준이지 않나.
걸핏하면 천 병상이고 좀 크다 하면 2천 병상을 넘어가는 대한민국이라면 그냥저냥 지역에서 좀 치는 병원 정도로 인식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저만한 규모는 드물었다.
게다가 마운트 엘리자베스는 그중에서도 오래된 데다가 꽤 훌륭한 명성도 얻고 있었다.
“닥터 샤오잔은 저희 병원에 있던 의사예요.”
“아, 네. 환자분이. 그렇군요.”
“상태가 좀 어떻죠?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기는 합니다.”
“아……. 네.”
원래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유선상으로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특히 같은 병원 사람이 아니라면 금기에 해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료인에게는 예외를 걸 수 있었다.
일종의 보호자이기도 하지 않나.
“얘기해 드려.”
왕팡은 소화기내과 교수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환자분 심한 알코올 사용 장애가 기저에 있으시고요.”
“그건 압니다. 그거 때문에…… 아뇨, 됐습니다. 그리고요?”
“저희 병원에는 복통을 주소로 보호자…… 그러니까 아드님하고 오셨습니다. 와서 문진 시행하던 중 의식 흐려지면서 사지의 모터 및 센스 떨어지는 소견 보여 MRI, CT 찍었습니다.”
“아, 이런.”
여기까지만 들으면 당연히 머리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거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리웨이는 샤오잔의 평소 생활 행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출혈이나 경색을 딱 떠올렸다.
“하나 거기서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역시, 네? 이상이 없어요?”
“네. 아무튼, 환자는 그뿐만 아니라 응급실에서 시행한 초음파상에서 위암이 의심되어서 CT 찍었고 임파선 전이 보여 내시경 시행했습니다. 진행 암 소견입니다.”
“아, 아이고.”
“그리고 간 경화가 있었는데 검사 도중 식도정맥류 파열되었습니다.”
“어? 그럼……?”
어째 새로운 소식이 계속 있는데 그 소식마다 최악이었다.
리웨이의 새된 소리를 들으며 왕팡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도 다 이 두 사람이 그저 직장 동료는 아니겠다 싶었다.
특히 목소리 분석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바루다는 꽤나 심도 있는 의견을 제시했다.
[혈연관계 같은데요?]
‘응? 혈연?’
[네.]
‘근거는?’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어요. 주로 장례식장이나 중환자실 보호자 면회 시에 이런 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 음.’
이렇게까지 말하면 또 신빙성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나.
하여간 구미가 동한 수혁은 저도 모르게 왕팡에게 몇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왕팡이야 어차피 수혁이 뭘 하든 간에 내버려 둘 생각이기도 했거니와, 지금은 통화에 워낙 집중하고 있어서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행히 잘 대처는 했습니다. 그리고 문진 및 간호 기록 그리고 검사 결과 검토하던 중 환자가 본원에 오기 전…… 다른 병원…….”
“저희 병원이에요.”
“아, 네. 거기서 기운 없다는 것을 이유로 수액을 맞은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 전에 저나트륨혈증이 있었을 거란 것을 유추했고, 그 결과…….”
“그럼 설마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를 의심하고 있어요?”
“네.”
“그게…… 그런…….”
“영상에서 이상이 없.”
“아니, 저 지금 도착했습니다. 처치실로 가도 될까요?”
“아, 네.”
왕팡이 막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에 대해 설명하려는 순간 전화가 끊겼다.
왕팡은 당황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이미 바루다에게 분석 결과를 들은 수혁은 그럴 줄 알았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만가?’
[또는 이모일 수도요. 나이를 생각해 보면요. 하여간 꽤 각별한 사이로 보입니다.]
‘흐음. 오면 더 명확해지겠지.’
해서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환자는 자신의 오더대로 딱딱 처치가 되고 있는 데다가, 상태도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있으니 달리 할 일이 없지 않나.
물론 아까부터 조태진에게 문자가 오고 있기는 했으나, 지금은 여기가 더 호기심이 일었다.
“여기니?”
“네, 이모.”
리웨이는 샤오잔의 아들과 함께 처치실로 들어왔다.
호칭은 이모였다.
[맞죠?]
‘오, 그러네.’
하여간 리웨이는 급히 샤오잔에게로 내달려 본인 눈으로 상태를 확인했다.
별 소득은 없었을 터였다.
제아무리 의사라도 눈에 뭐가 달린 건 아니지 않나.
그저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쩌다…… 아, 아까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라고 했죠? 그게 만약 오늘 발생했다면, 당장 진단은 불가했을 텐데.”
당연히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나마 화까지 내진 않았는데, 딱 봐도 처치실 안에 의사로 보이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조카에게 듣기로는 딱히 배경을 말하지 않았다는데, 그럼에도 이만큼 신경을 써 주었다는 얘기 아닌가.
‘중심다리뇌말이집용해 같은 어려운 진단명이 튀어나와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뭐가 되었건 고마운 일이긴 했다.
본인도 병원 원장이어서 잘 알지 않나.
일정 숫자 이상의 의료진을 동원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
반면 왕팡은 좀 자신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상대가 의사가 아니거나, 의사더라도 내과 의사가 아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전화상으로 얘기하는 거면 대강 넘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감히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 원장 바로 앞에서 자기 생각이 아니었던 진단을 풀어서 설명할 수 있을까?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눈빛은 곧바로 소화기내과 교수에게 읽혔고, 합리적이란 판단도 내려졌다.
“이수혁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제가요?”
그렇지 않아도 수혁은 입이 들썩들썩하던 차였다.
아니라곤 하지만, 사실 이미 나르시시즘의 노예가 된 지 오래 아닌가.
뭔가 자랑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가 꽤 높아 보이지 않나.
[콩고물이 떨어지려나요?]
세태와 야합한 지 오래인 바루다도 부추기고 있었다.
“알겠습니다.”